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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406화 (406/1,497)

〈 406화 〉1부 17장 14

자고로 모든 게임이 그러하듯, 세번째 보스가 통곡의 벽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천가을이 튜토리얼이자 첫번째 보스로서 적절한 난이도를 자랑했다면, 히드라는 간부전이든 정령전이든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했다.

간부전은 그저 평범한 전투였다. 히드라답게 괴인들을 동원한 집단 난전을 펼치며, 히드라 개인은 진형을 파괴하여 주인공의 팀원들을 전부 날려버렸다.

그리고 정령전.

히드라를 지륜으로 각성시키기 위해서는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다른 이들에 비해서 쉬운 조건이었으니까.

데이트.

히드라와의 데이트를 통해 히드라의 마음을 직접 얻어야만이 히드라를 지륜으로 각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어떤 이에게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어떤 이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미션이었다.

- 씨바 내가 미연시하려고 이 게임 샀지, 진짜 연애하려고 산 줄 아냐!!

- 씨바 여친두고 다른 여사친이랑 바람피우는 것 같네ㅋㅋㅋㅋ 어 왜 접속기록이-

- 씨바 우리집 마눌도 이런 시절이 있었는데.... 하아.... 니들은 결혼하지 마라

게이머는 다양했고, 그들이 살아온 인생 경험에 따라 히드라의 정령전 공략 난이도는 달라졌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정령으로 각성시키기 위해 폭주 히드라를 이능력적으로 제압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히드라는 그 어떤 간부들보다도 미연시적으로 알콩달콩한 매력을 자랑했다.

물론, 지륜의 정체를 깨닫고 나서는 모두가 기겁을 했지만.

- 지륜의 사랑은 내핵까지 들어갈만큼 깊습니다.

하드 얀데레. 진성 얀데레.

타인을 의존하며 사랑만하던 이가 타인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여인이 되고싶어한게 지륜과 히드라의 관계였다. 순종적인 사랑을 하던 지륜이 팔색조같은 매력을 가진 여인으로 바꿔버린게 성주가 만든 히드라였다. 뱀이지만.

그리고 각성한 지륜의 사랑은 무겁다.

- 지구만큼 사랑해

정말로, 무겁다. 지륜의 히드라 루트를 타는 순간 다른 히로인과 바람을 피웠다가는 바로 배드 엔딩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으며, 싱크로 하기에 가장 난이도가 어려운 히로인이기도했다.

하지만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어 간부를 때려치고 한 명의 여자가 되기로 한 왕도적인 스토리에 사람들은 히드라를, 지륜을 포기할 수 없었다. 설령 보트를 타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땅속에 파묻히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지륜을 포함한 하렘을 만들겠다고 도전하는 이들은 넘쳐났다.

연애 시절에는 그렇게 밀고 당기던 여자가 결혼을 마음먹은 순간 순종적인 여인이 되어 주인공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된다. 본인의 죽음을 각오하고 가장 먼저 성주를 배반할 정도로.

"그렇게 알콩달콩 사랑에 빠져든 남자가 실은 남자로 변한 피닉스라면! 상상도 못한 정체!"

"너 진짜 너무한다."

싱글벙글 웃는 창염이 여느때보다도 악마같았다. 창염은 히드라를 능욕하는 동시에, 나마저도 능욕하고 있었다.

"흐흥, 뭣하면 본방까지 가시나요? 퓩퓩? 그것도 아니면 라스푸틴으로 큥큥?"

"안주인이 버젓이 보고 있는데 설마 그러겠어?"

"제가 허락하면 하실 거잖아요."

"본방은 절대로 안 해."

"그럼 스마타는?"

"유사 성행위도. 애초에 그런 건 너랑만 할 거지, 다른 애들이랑은 안 할 거야."

창염은 계속해서 나와 히드라가 행위로 이어나가도록 유도했다. 주인공 버프를 온전히 활용하라고 종용한 것도 창염이었고, 백청화를 통한 히드라 공략도 창염의 허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공략이었다.

"푸흐흐. 아, 기대된다. 지륜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너 히드라 싫어해?"

"아뇨? 딱히. 그냥 골려주고 싶어서 그래요. 구체적으로는...."

창염은 손을 뻗어 내 입술 위를 눌렀다.

"당신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지 직접 느껴보라 이거죠."

"그리고 너는 내가 네 것이라는 걸 과시하려고?"

"정답!"

창염은 두 팔을 벌리며 활짝 웃었다. 안아줄 것도 아니면서.

"에이, 그렇게 심통 부리지 말아요. 지륜으로 각성시키면 좋은 거 드릴게요, 좋은 거."

"뭐. 기억? 너랑 한 기억이라도 주게? 진짜로 나 너랑 한 거 맞냐?"

"그건 좋을대로 생각하셔요. 그보다 다른 애들은 뭐래요? 뭐 도움 되나?"

"전혀."

현재, 나는 두 개 팀의 도움을 받으며 히드라를 공략하고 있었다. 한 쪽은 정령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루살카-환룡 조합. 그리고 다른 한 쪽은 내 정신세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창염.

히드라 모르게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전자와 달리, 이렇게 잠깐잠깐 자리를 뜬 순간에야 잠깐 대화 가능한 창염이 더 도움이 되었다.

"그야 제가 당신의 데이트 테크닉을 다 알게 되었으니까 그런 거죠."

"또 생각읽네. 그럼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네?"

"으아아 히드라 말고 창염이랑 큥큥하고 싶다아아아아! 지금은 안 돼요."

"쳇."

이렇게 생각이 다 읽히니 억울했다. 창염은 슬쩍 시간을 확인하더니, 물티슈로 내 입술을 닦았다.

"푸흐흐, 그러면 화이팅! 꼭 성공하기를 바라요. 아, 이건 응원!"

그리고 창염은 테이블 위로 기어올라와 내 얼굴을 붙잡-

딸기맛이 났다.

* * *

"늦었네."

"잠깐 중요한 연락이 있어서."

시안은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화장실에 다녀온 시간은 불과 5분도 되지 않건만, 그는 여러모로 힘들어보였다. 히드라는 테이블 아래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누구 연락인데?"

"본사. 오늘내로 일을 처리하라고 아주 닦달이야. 모처럼 로마까지 출장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인간관찰이 일이라며? 지금 완전 놀고있는 거 아냐?"

"일하고 있는 거 맞아. 아."

딸랑딸랑.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히드라는 정장 차림의 남자에게서 어딘가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요원의 움직임을 느꼈다. 선글라스 남자의 등장에 쉐프가 직접 그를 응대했다.

"실례지만 지금...."

히드라와 시안은 귀를 쫑긋 세우고 남자의 말에 집중했다. 요약하자면 중요한 인물이 올 예정이니 자리를 비울 수 있냐는 말. 하지만 쉐프는 어떤 손님이든 자신의 레스토랑에 직접 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짜를 부렸다.

"...누굴까?"

"VVIP."

"진짜?"

"99%."

시안은 담담한 얼굴로 물잔을 들이켰다. 쉐프와 요원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합의를 봤고, 쉐프가 다가와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다.

"실례합니다. 그, 다른 테이블에서 소란이 있을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원하신다면 다음에 두 분이서 함께 오실 때, 제가 풀코스로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아뇨, 정중히 사양합니다. 저는 지금 케레스 양과 함께 하기를 바라거든요. 신경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안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있지 않았다. 어딘가 차갑기까지 한 눈빛은 쉐프가 아닌 그 뒤의 요원을 향하고 있었다. 쉐프는 히드라를 잠깐 살피더니,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남선녀의 데이트를 방해했군요. 면목이 없습니다."

"쉐프님 잘못도 아닌걸요."

쉐프는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의지를 다잡으며 다시 요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요원은 난감한 얼굴로 머리를 벅벅 긁다가 성질을 부리려고 했다.

"실례하겠소."

"풉."

히드라는 막 마시려던 물을 뱉을 뻔했다. 문이 열리며 들어온 남자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빌헬름 추기경이었고, 그의 뒤로 여왕과 가웨인-그리고 공주 아르엘이 따라들어왔다. 시안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우연이네."

"...우연일까?"

"우연이지."

시안은 어째선지 벗어둔 자켓을 다시 걸쳤다. 그리고 무언가를 확인하듯 손을 안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씩 웃었다가 표정을 굳혔다가 하기를 반복했다.

"......하아."

모처럼 즐거운 데이트가 또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생각하면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썸남인데,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왕님."

"저는 한 명의 손님일 뿐이예요, 쉐프."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

쉐프는 보통 또라이가 아니었다. 교황청의 추기경에 영국 여왕, 원탁의 수장, 그리고 공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평범한 손님처럼 맞이했다. 그들을 보좌하는 이들이 뒤따라 들어왔지만, 애초에 테이블이 네 개밖에 없어서 몇몇은 앉지도 못했다.

"시안 씨, 우리가 나가줘야하는 거 아니야?"

"케레스 양. 레스토랑에서는 쉐프가 주인이야. 그리고 모든 손님은 똑같은 손님이지. 색다른 경험이잖아?"

"...그렇긴 하네."

하필이면 테이블이 통로를 두고 맞은편이 되어버렸다. 시안은 정말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인사를 했고, 여왕과 공주도 시안에게 인사했다. 그에 따라 추기경과 가웨인의 표정이 여러모로 복잡해졌다.

"크흠."

추기경은 시안과 마주앉아있는 히드라 때문에, 그리고 가웨인은 아르엘과 여왕이 노골적으로 시안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때문에.

"...좀 불편한데."

"예뻐서 그래, 예뻐서."

"...그럼 시안 씨."

히드라는 눈짓으로 여왕과 공주를 가리켰다.

"누가 더 예뻐?"

히드라의 질문에 시안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반대편 테이블에서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실례인 걸 알면서도 그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히드라가 객관적으로 봐도 두 모녀는 자신에 견줄만큼 상당한 미인이었다.

"......뭐, 사람마다 매력은 다 다르니까."

시안은 물컵을 들어올리며 등을 뒤로 눕혔다. 상투적인 대답에 히드라가 속으로 혀를 찬 순간.

톡톡.

발끝에 무언가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시안은 구두굽으로 히드라의 발끝을 맞췄다.

"...흐흥."

"......."

시안은 물을 마시며 히드라의 시선을 피했다.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시안은 분명히 히드라의 질문에 대답했다. 히드라는 절로 싱글벙글해졌다. 이제 피닉스에게서 이 괴인을 빼앗으면....

"......."

"왜?"

"아니, 갑자기 기분이 다운돼서. 너 때문은 아냐. 아니다, 너 때문일 수도 있겠네."

히드라는 시안을 향해 턱을 괴며 물었다. 시안의 표정이 흠칫 놀랐다.

"시안 씨, 혹시 지금 직장 때려치고 나한테 취직할 생각 있어?"

"케레스 양 대학생이라더니?"

"대학생은 뭐 사업하면 안 되나?"

"문제없지. 그런데 미안. 나는 지금 회사가 좋아. 내 할 일만 하면 이렇게 자유롭고 즐거운 시간도 보낼 수 있거든."

시안의 눈이 순간 옆 테이블을 훑었다. 히드라는 속이 타들어갔다. 자꾸만 그 일이 무언가 암살을 예고하는 것만 같아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데이트를 할 거면 데이트에 집중하던가.'

자연히 그 분노는 방해꾼인 아돌프를 향했다. 히드라가 노골적으로 째려보자, 그는 깜짝 놀라며 헛기침을 했다. 여러모로 실례인 상황이었고, 히드라는 다시 시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시안은 또 스마트 워치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또 왜?"

자연히 히드라의 목소리도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시안은 스마트 워치에 집중하고 있었다. 히드라는 엉덩이를 떼고 테이블 너머로 상체를 쭉 내밀었다. 히드라의 얼굴이 시안과 거의 맞닿을 정도였다.

"무슨 일이야?"

"...그러지 말고 옆으로 와서 볼래?"

"응."

히드라는 냅다 시안의 옆자리로 붙었다. 시안은 자신이 통로측에 앉으려 자리를 일어서려했지만, 히드라가 먼저 통로로 빠져나와 시안을 안쪽으로 밀어붙였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는...."

"마약왕이 체포되었다고 하네. ...15살 중학생 헌터가 체포. 청화단."

"마약왕? 별 거 아닌.... 헉."

히드라는 체포된 마약왕의 모습을 보았다. 마약에 절어있는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괴인'이었다. 누구의 괴인이지? 히드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펜릴? 히드라? 그도 아니면 피닉스가 괴인으로 만들었을까?

"...지금 심문중이래. 자세한 건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흠."

시안은 마약왕이라는 존재에 대해 경계하는 눈치였다. 히드라는 일단 피닉스의 괴인이라는 정보는 제거했다. 하지만 아지다하카의 괴인이었다면 진작에 차원문을 열었을텐데. 혹시 아지다하카 열기 전에 미리 제거한 걸까?

"후우...."

시안은 잠시 고개를 뒤로 젖히며 눈을 감았다. 안도감이 든 것 같기도 했고, 미약한 짜증이 서린 것 같기도 했다.

"왜?"

"...세상에는 괴인이라는 것들이 너무 많아."

"딱 시안 씨 같이 잘생기고 착한 사람들이 괴인이 되기 쉽잖아. 그치?"

히드라는 엉덩이를 밀치며 시안을 툭툭 건드렸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케레스 양. 그러면 케레스 양은 괴인이랑 지금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데?"

"뭐 어때? 젊고 잘생기면 그만이지."

히드라는 누구 들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안은 씁쓸하게 웃으며 히드라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설마?

"다 봤으면 돌아가라."

"진짜.... 어휴."

히드라는 툴툴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발이라도 쭉 뻗어 시안의 앞섶을 건드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옆 테이블에 앉은 이들을 생각하면 그도 쉽지 않았다. 빨리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했다.

"시안 씨, 식사 끝나고 어떻게 할 거야?"

"흠.... 글쎄. 산책이라도 할까."

시안은 시계를 슬쩍 쳐다보며 아돌프 추기경을 눈으로 흘겼다. 그리고 오른손을 안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슬며시 웃었다.

"석양이 질 때 까지."

"...호텔로 돌아간다는 의미지?"

"글쎄."

시안은 마치 야수처럼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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