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5화 〉1부 17장 13
빌헬름 아돌프 추기경의 정오미사가 시작되었다. 광장에 모인 이들이 하나 둘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가운데, 히드라는 기도를 하며 시안의 눈치를 봤다.
정정.
시안과 아돌프의 눈치를 동시에 봤다. 둘 다 기도하고 있었지만, 둘의 상황은 확연히 달랐다.
시안, 그는 조용히 손을 모아 경건한 자세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워낙 그 기도가 진지하고 경건하여 옆을 보던 이들도 함께 기도하고 있을 정도였다. 간호 입모양으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잘 들리지 않아 번역기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안과 히드라를 바라보는 아돌프의 표정은 대중들의 앞만 아니었으면 기괴하게 일그러졌을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히드라는 아돌프를 어린 아이로 만들어 희롱하고 장난치며 애달프게 만들었다.
"......."
히드라는 괜히 잘못도 없는데 밀짚모자를 푹 눌러썼다.
아돌프는 히드라의 수많은 괴인 중 가장 권력이 높은 자이며, 히드라는 현재 시안이라는 괴인이 어째서 로마에 왔는지 손수 이유를 파악하고 있었다. 분명 히드라는 다크 레기온 간부의 일원으로 본연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저 넓은 벤치에 시안과 몸을 딱 붙여 연인처럼 함께 있다는 것과 그것이 꼭 데이트를 나온 것 같다는 것을 제외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내가 꿀릴 게 뭐 있어?'
시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결국에는 둘 다 침대 위에서 자신을 위해 열심히 앙탈을 부리게 될 놈들이었다.
하지만 미사 도중 자꾸만 자신을 노려보는 빌헬름 추기경의 눈에 절로 신경이 곤두섰다. 사람들의 이목이 이쪽으로 쏠리는 것 같았다.
"아…."
히드라는 신음을 흘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조금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시안이 히드라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뭐하는 거야?"
"누워있어. 잠깐만."
히드라를 자신의 무릎 위에 눕힌 시안은 자켓을 벗고 히드라의 상체 위에 올렸다. 자켓은 히드라의 목부터 가슴, 배, 그리고 허벅지 위를 가렸다. 밀짚모자는 시안이 히드라의 배 위에 올렸다.
"날씨 더운데 너무 무리하게 데려왔으려나?"
"그냥 잠깐 머리가 아팠을 뿐이야. 괜히 호들갑은. 기도 안 해?"
"끝났어. 두 세 시간씩 기도를 드릴 필요는 없지 않을 까? 내가 정말로 내가 사랑하는 그 분을 믿고 모시면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은 잠깐 자."
시안은 탄탄하면서도 탄력있는 허벅지로 히드라가 편안히 머리를 이고 잘 수 있도록 자세를 바꾸었다.
따가운 햇살에 시안은 고개를 숙여 그늘을 만들었다.
"이러면 좀 편해?"
"원래 이런 거 내가 해줘야하는 거 아냐?"
"뭐 어때? 그리고 지금 봐봐. 너한테 이런 거 해준 남자 있었어?"
"......없는데."
"그럼 네 처음은 내가 가져간 거네?"
"말을 무슨."
히드라는 괜히 부끄러워져서 밀짚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이미 배 부분은 자켓으로 가려져 있으니, 얼굴이라도 가려야했다.
"......."
복수를 위해, 히드라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얼굴이 시안의 배를 향하도록 몸을 뒤척거렸다.
"...나 잠깐만 이렇게 누워있을게."
"그래."
시안은 히드라의 등을 자켓위로 다독였다. 히드라는 코어가 두근거리지 않도록 마력을 억눌렀고, 고개를 조금씩 앞으로 들이밀었다. 거의 배에 밀착하도록, 그리고 시안이 자신의 얼굴이 위치하고 있는 곳을 신경쓰도록.
"실례합니다. 저기, 바티칸에서 이러시면...."
"아. 죄송해요. 제 여자친구가 빈혈이라서요. 한 번만 용서해주시겠어요?"
"......크흠. 알겠습니다."
히드라는 귀를 쫑긋 세웠다. 아돌프의 아래에 있는 수행 사제 목소리가 분명했다. 아돌프는 지금 자신이 시안의 무릎에 머리를 이고 누워있는 것에 질투를 하여 일부러 사제를 보내 방해한 것이다.
두근, 두근.
히드라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시안의 정체와는 별개로 남자가 자신을 애달프게 여기고 다른 남자에게 질투하는 건 언제나 기분이 짜릿했다. 히드라는 시안이 눈치채지 못하게 마력으로 주변의 감각을 살폈다.
"......허어."
아돌프는 히드라의 뒷태를 보며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그건 비단 아돌프 뿐만이 아니라, 미사를 들으러 온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했다. 자켓이 하필 흘러내린 통에 엉덩이 라인이 고스란히 겉으로 드러났고, 히드라는 미쳐 그걸 수습할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수습할 필요는 없었다. 볼테면 봐라지. 히드라는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남자들의 애탄 시선을 즐길 뿐이었다. 그리고 이 자세를 바꾸고 싶지도 않았다.
"하아...."
히드라는 일부러 짙은 숨결을 내뱉었다. 바로 앞. 고작 1cm도 되지 않은 이 얇은 천 너머에 시안의 물건이 있었다. 시안이 자는 사이에 스리슬쩍 확인한 그것은 히드라가 본 그 어느 물건들보다도 먹음직스러웠다.
아돌프가 왜 어린 사제들을 그리도 찾아다녔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히드라는 잠을 자듯 숨을 마셨다 내쉬며 시안을 자극해보려 애를 썼다.
"오, 가웨인이다."
"......."
흠칫. 히드라의 몸이 굳었다. 가웨인이라 함은 SS급 이능력자가 아닌가. 그가 갑자기 왜? 시안이 거짓말을 한 건가?
웅성웅성.
광장이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히드라의 귀는 쫑긋 세워져있었고, 가림막처럼 올려진 밀짚모자 너머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분명 '가웨인 경'을 언급하고 있었다.
온다는 얘기는 전혀 못 들었는데. 설마 호텔에 온다던 VVIP가 가웨인인가 싶었다. 하지만 가웨인이 혼자 올 리가 없다.
'설마 진짜로?'
공식방문 예정 통보도 없이 이리 전격 방문을? 히드라는 아돌프 조차도 당황하는게 느껴져 고개를 들어올렸다.
"쉬어도 괜찮아."
하지만 시안이 밀짚모자를 옆으로 밀며 히드라의 옆머리를 살포시 눌렀다. 분명 그 힘은 자신보다 약하건만, 이상하게 히드라는 시안의 행동에 저항할 수 없었다.
"여왕이 오든 원탁이 오든 예의차릴 게 뭐 있어. 너 지금 컨디션 안 좋으니까 쉬어."
"...아냐, 일어날래."
히드라는 고개를 돌려 시안을 올려다봤다. 시안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어날 거야."
"그럼."
시안은 히드라를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손을 뻗어 히드라의 머리칼을 단정히 정돈했다. 불과 손을 몇 번 움직인 것 만에 히드라의 머리칼은 나올때처럼 돌아갔다.
"자켓은?"
"네가 걸쳐."
청색 셔츠를 입은 시안은 히드라의 어깨 위에 자켓을 여몄다. 히드라는 그저 그 손길을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했다.
"크흠!"
저 멀리, 아돌프가 헛기침까지 하며 시위를 하는게 눈에 훤히 보였다. 그리고 그건 히드라를 더욱 흥분되게 만들었다.
'꼭 호스트 불러서 남편직장에 와서 데이트하는 것 같네.'
실제로는 아니지만 느낌과 상황이 그러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향해 질투하는 아돌프의 행새가 너무 웃겼다. 아돌프는 그 늙은 물건을 빳빳하게 세운 채, 가웨인과 여왕-그리고 공주를 맞이하고 있었다.
"추기경님 자세가 좀 이상한데?"
"나이 먹어서 그래. 늙으면 어디 다들 아프잖아."
"그런건가?"
사제복이 아니었다면 분명 걸렸을 것이다. 히드라는 남들 모르게 속으로 쿡쿡 웃은 뒤, 슬쩍 고개를 숙여 시안을 훑었다. 시안의 아랫도리도 은근히 부풀어올라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히드라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정작 시안은 심각한 얼굴로 스마트 워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시안 씨, 뭘 그렇게 보고 있어?"
"멕시코에 청화단 간 것 말이야."
"...응."
왠지 모르게 히드라는 기분이 다운되었다. 시안이 멕시코의 상황을 보고 있는 이 순간 만큼은 자신보다 스마트 워치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짜증이 일었다. 너무 당기기만 했으니 슬슬 튕길 타이밍인 것 같은데. 좋은 건수가 잡힌 만큼 히드라는 표정을 굳히며 심통을 장전했다.
"그게 뭐?"
"아지다하카 게이트 열렸는데?"
"엑."
히드라는 깜짝 놀라 시안의 몸에 붙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손이 시안의 앞섶을 꾹 눌렀다. 히드라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
시안은 난처한 미소로 히드라의 손목을 잡고 제 허벅지 위로 옮겼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히드라의 귀에 속삭였다.
"여기서 더 곤란하게 만들지 마라."
"......."
명령조로 말하며 단호히 선을 긋는 시안의 목소리에 히드라는 괜한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은근슬쩍 가슴을 붙이며 고개를 어깨 그의 위로 올렸다.
"나한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겠다고 하더니, 그쪽으로는 영 자신없나봐?"
"...이봐요, 케레스 양."
시안은 그 어느때보다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너 나랑 하면 앞으로 다른 남자랑 해서 평생 못 느끼게 될텐데, 자신 있으면 진심으로 덤벼봐. 세계 멸망 3개월까지 불감증 걸리고 싶으면."
"......."
히드라는 기가 찼다. 시안의 목소리는 진심이었고, 일말의 거짓도 없었다. 그리고 히드라의 시선은 영국 여왕을 맞이하고 있는 아돌프 추기경으로 돌아갔다. 그는 SS급 히어로 가웨인의 눈초리에 허리를 숙이며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시안 씨."
"왜."
"나 결정했어."
히드라는 시안의 앞섶을 다시 스치듯 쓸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역시 나, 당신을 가져야 할 것 같은데."
"케레스 양."
시안은 히드라의 등허리를 톡톡 건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
히드라는 입술을 뾰로퉁 내밀었다. 멋대로 리드당하는 것도 제법 재미는 있었지만, 자꾸 휘둘리기만 하니 짜증이 나고 재미가 없-
쪽.
"......."
"가자."
히드라는 시안의 손을 잡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드라의 입술 위에는 시안의 온기가 남아있었고, 히드라는 입술을 오므리며 혀로 그 온기를 핥았다.
시안의 입술은 딸기맛이었다.
"......."
히드라는 결심했다.
'딸기는 따먹는 거야.'
그리고 그 장면을 본 아돌프 추기경을 향해, 히드라는 윙크를 하며 시안의 손을 제 허리에 휘감도록 했다.
바티칸 광장을 구경하던 두 남녀가 떠난 뒤, 둘이 애정행각을 벌이고 떠난 벤치에는 그 누구도 쉽사리 앉지 못했다.
* * *
잠시 뒤.
우리는 광장을 빠져나와 미슐랭 2스타 쉐프가 홀로 운영하는 조용한 식당을 찾았다. 테이블도 적었고, 각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되어있어 두 명이서 아주 조용하게 식사를 나누기에는 정말로 좋은 곳이었다.
"굳이 3스타가 아니고 이런 곳에 온 이유는 뭐야?"
"미래에 3스타가 될 분의 식당이거든. 내가 보증할게."
한창 피자를 굽고 있던 쉐프가 내 말을 듣고 씩 미소지었다. 남자지만 자신의 요리 실력에 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자라 히드라보다 내 말에 더 기쁜 듯 했다.
"...그럼 믿어볼게."
"당연히 믿어야지. 걱정마. 로마에서 먹은 음식중에 여기 기억나서 반드시 꼭 찾아오게 될 걸?"
"으휴, 그래. 알았어."
케레스는 손을 휘저으며 진저리를 쳤다. 요리가 준비되는 사이, 나는 케레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손 좀 씻고 올게."
"흐응, 알았어. 금방 다녀와. 설마 다른 거 빼는 건 아니지?"
"그럴 거면 진작에 다른 곳에 데려갔지."
"......칫."
케레스는 섹드립을 쳤지만 나는 그걸 대놓고 받아쳤다. 인상을 찌푸리며 툴툴거리는 입술은 분명 곡물맛이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 잠시."
나는 케레스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왔다. 괴인이든 정령이든 배변은 일절 필요없었고, 나는 화장실에서 작전 타임을 가지기 위해 문을 잠그고 변기 위에 앉았다. 스마트 워치 아래, 밴드처럼 달라붙은 마도 기어를 통해 정령 네트워크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 얘, 거기서 그렇게 나가면 어떻게 하니? 키스만 하고 끝내? 당장 덮치렴!
- 와 누 구 는 간 부 때 부 터 키 스 하 고 와 와 와
'이 도움 안 되는 놈들.'
히드라의 공략은 미연시적 방법이 유일하건만, 그 도움을 줘야할 정령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정령 네트워크는 씨그럽게 큥큥대고 있었고, 나는 그냥 내 식대로 히드라를 공략해야만 했다.
'연애적으로 공략 안하면 지륜으로 각성 못한다고.'
카르나처럼 이능력자로서 싸워서 이기는 걸 메인으로 각성시키는 정령이 있는가 하면, 히드라처럼 연애적으로 밀당을 하며 감성을 자극해야만 정령으로 각성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한 명은 자기도 해달라고 난리를 치고, 다른 한 명은 일단 저지르라고 난리를 피웠다. 결국 나는 자다가 북경에서 난리를 치는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직접 전화를 걸기도 했다.
'덤으로 히드라 머리 깨지게 조금 혼란스럽게 하기는 했지만.'
이래서 주인공 몸을 꺼내지 않으려 했건만. 하지만 히드라를 공략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내 몸의 주인도 알고 있고, 딱 알맞은 타이밍에 하필이면 백청화의 몸을 내게 내어줬다.
나는 상체를 숙였다. 행여나 의식을 잃더라도 자빠지지 않게끔.
그리고 곧 내 의식이 어둠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똑같은 화장실이었고, 나가니 똑같은 장소였지만, 히드라의 자리에 앉은 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혀 넣어도 된다고 얘기했잖아요?"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런가? 에이, 진짜 괜찮은데. 푸흐흐."
창염은 싱글벙글 웃으며 한손으로 턱을 괴고 싱긋 웃었다.
"이제 뒷감당 하시려면 힘드시겠네요?"
"......그러게. 히드라면 몰라도 지륜은 각성하면 진성 하드 얀데레인데."
"에이, 기껏해야 배에 에베르스트 거꾸로 찍히는 것 정도로 끝나겠죠. 그래서 이제 어쩌실 거예요? 드라이브? 도서관? 그것도 아니면 또 쇼핑? 제 개인적인 선택은...그냥 계속 산책하는 게 좋아보이는데."
"나도 똑같은 생각이야."
현재.
나는 지륜의 히드라와 4:1의 싸움을 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가장 도움이 되는 이는 창염 한 명 뿐이었다.
"나중에 지륜이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자기가 푹 빠져서 성주를 배반하고 간부까지 때려치게 만든 로미오가 사실은 피닉스라는 걸 알면. 푸흐흐."
...창염은 가장 적극적으로 나와 히드라의 데이트를 돕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