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7화 〉1부 17장 5
내가 부른 핵심 멤버는 총 세 명이었다.
백희아.
석하랑.
그리고 김지화.
히어로 협회의 지휘관,
한국을 지킬 SS(S)급 히어로,
그리고 국내 최대의 헌터 길드 청화단의 단장.
한 명 히로인이 아닌 존재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김지화-등대는 여러모로 높은 자리까지 올라왔다. 나는 히카리의 연구실에서 히카리가 찾은 데이터를 그들과 공유하며 나의 작전을 알렸다.
그리고 셋이 가장 먼저 한 질문은 하나.
[피닉스 님, 멕시코와 로마는 전혀 다른 나라인데요.]
"알아요. 설마 그걸 모를까봐."
내가 시사에 관심은 없어도 두 나라가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한 나라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세계지리 지식을 무시한 둘에게 분명히 내가 멍청이가 아님을 밝혔다.
"멕시코는 미국 밑에있고, 로마는 이탈리아 안에 있잖아요? 누가 아메리카랑 유럽도 구분 못할까봐."
[그라믄 왜 청화단은 유럽으로 가라카는데?]
[...청화단'만' 멕시코로 보낼 생각이시군요.]
제법 오랜 시간동안 내 행동을 지켜본 사람답게, 등대는 내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 그리고 그 미묘한 악센트를 깨달은 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양동이군요.]
[청화는 멕시코로 날아가면서 시간을 끌고, 주요 인원들은 히드라가 있을 로마로 간다?]
"정답."
히드라처럼 용의주도한 적을 상대로는 철저히 정체를 숨긴 채 움직일 필요가 있다.
"히드라는 분명 아닌 척 하면서 서울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거예요. 피닉스가 정말로 설화령과 틀어져서 결계에 갇힌 건지, 아니면 결계에 갇힌 척 하면서 자신을 노리려 하는지 백방으로 정보를 알아보고 있겠죠."
[작전 상 후자라는 가정 하에 움직여야겠군요. 히드라가 단장님에 준할 정도로 용의주도하다면.]
"네. 그러니까 그걸 위한 양동인 거예요. 집행관과 청화단은 백나로 호를 타고 동쪽으로. 그리고 그 사이에 히드라 잡으러 갈 사람은 서쪽, 유럽으로."
[그건 알겠는데 뭐 하나 물어보자. 굳이 여기 갈 이유가 있나?]
석하랑은 지도를 펼쳐 멕시코를 가리켰다.
[멕시코에 뭐 꿀발라놨나? 큐브 있다거나 아지다하카가 멕시코 근처에 있는 거제?]
[아니면 괴인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군요. 마약 카르텔이 있는 곳이니 괴인들이 빌런들 틈바구니에 숨어들기 딱 좋은 지역입니다.]
[그도 아니면 뭔가 알려지지 않은 S급 괴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SS급 괴수는 뉴클리언으로 끝이니, 청화단 오랜만에 S급 괴수 레이드가 되겠군요. 어디에 있는지만 말씀해주십시오. 직접 잡아보겠습니다.]
"......."
나는 딸기가 잔뜩 들어간 마르가리타-멕시코 칵테일을 슬쩍 화면 옆으로 치우고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큐브도 있고 괴인도 있고 S급 괴수도 있으니 딱히 속이는 건 아니었다. 나는 행여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걸 들킬까봐 알코올을 마력으로 날리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잘 부탁해요. 큐브는...마약왕이 가지고 있어요. 큐브를 이용해 마약을 마구잡이로 양산하는 빌런이자 괴인이니까 조심하세요. 아, 괴인일지는 모르겠네요. 지금은 빌런만 해당이 될수도."
미래, 창염의 피닉스 휘하 괴인 중 하나였다.
평범한 마약상이었던 그는 큐브로 마약과 미약을 복제, 양산하여 막대한 돈을 쓸어담았다. 이능력자는 아니지만 돈과 마약중독의 힘으로 부하들의 힘을 샀고, 가만히 놔두면 카르텔의 정점에 오를만한 두뇌와 카리스마를 가진 자였다.
[마약이라…. 혹시 난민들을 통해 한국에 들어올 수 있으니 주의는 해야겠군요. 혹시 지금도 활동 중일까요? 간 김에 체포하겠습니다.]
"글쎄요. 지금은 잡범 수준일지, 아니면 이미 카르텔의 주축으로 들어갔을지 긴가민가해서. 어느쪽이든 조심하세요. 부하들은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니까. 아시잖아요? 마약과 갱단이 합쳐지면 어떻게 되는지."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백희아는 호언장담했지만 글쎄. 어련히 알아서 잘 처신하겠거니 믿기야 하겠지만, 전부 다 물에 내놓은 자식같아서 불안불안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같이 못 가줘서 미안하고."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양동작전을 펼칠 백희아와 청화단의 상황에 나는 이미 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줬다. 불안하기는 해도 믿고 맡길 수 밖에 없는 일.
[집행관, 조심하셔요. 등대 아저씨도 잘 부탁드립니다.]
[별말씀을. 김누리 양은 제가 잘 지키겠습니다. 심려하지 마세요.]
[아저씨…. 그렇군요. 아저씨군요. 크흠. 알겠습니다. 청화단도 한 명 빠짐없이 가는만큼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단장님, 저도 가을을 잘 보좌하겠습니다.]
"예. 잊지 마세요. 이번 작전은 여러분이 소란을 더 크게 일으켜줘야 합니다."
성동격서.
동쪽인 멕시코에서 큰 소란을 일으키는 사이, 나-<피닉스>는 서쪽으로 날아가 히드라를 잡는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카르나에게 연락을 하세요. 한국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가루라 타고 날아갈테니."
[알겠습니다. 그...단장님? 그래서 진짜로 궁금한게 하나 있습니다만.]
김지화는 상당히 머뭇거리며 물어보기를 두려워했다. 석하랑도 백희아도 침묵하며 말을 아꼈지만, 김지화가 대신 물어봐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정말로 혼자서 가실 생각이십니까?]
"혼자 가는 거 아닌데요? 엄연히 둘이서 가는데."
나는 연구실 한 켠에 놓인 대리석 야구배트를 들어올렸다. 언제 어딜가도 리필이 가능한 최고의 물건이었고, 히카리의 연구실에서 모처럼 강화까지 이루어진 좋은 무기였다.
[......중국같은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에이, 직접 비행기타고 가는 것도 아닌데 설마 항공사고 일어나겠어요?"
[제 말은 환룡님 각성시켰을 때처럼 소란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여러모로 혼란이었잖아요?]
맞는 말이기는 했다. 이틀만에 엄청난 사건이 몰아치듯 발생했고, 그 덕분에 나는 엄청난 아군을 얻었다. 그 아군은 현재 중국 전체를 훑으며 아지다하카의 흔적을 찾는 중이었다.
"걱정마요. 이번에는 그 때보다 더 세련되게 할 거니까요."
[또 무슨 테러를 할라고 그 카는데?]
"어허. 테러라니. 제가 지금까지 어떻게 뭘 했다고 그래요."
[관악 게이트 발발, 국회의사당 방화, 서울수복작전 어깃장, 광검 암살, 압록강 회군, 굿모닝 테러, 6민트 테러, 타지마할 방화, 대마도 반환. 여기서 얼마나 더 역사를 쓰실 생각이십니까?]
하나하나 나열하니 뭔가 대단하다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는 원작의 피닉스처럼 남아메리카 전체를 구워버리는 짓 까지는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다 세계평화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요. 네? 성주 막아야죠."
[진짜 맞는 말이라서 뭐라 칼 수도 없고. ...암튼 니 열심히 해라. 내도 집 잘 지킬테니까. 내 손으로 니 죽이는 일 없도록 부탁한데이.]
"물론이죠. 푸흐흐."
죽을 생각이 없지만, 약속은 하나 했다.
만약 창염의 피닉스가 성주에 의해 세뇌가 된다면, 신화에 이른 석하랑이 직접 간부 창염의 피닉스를 죽여주기로 합의를 보았다.
"죽을 생각 없으니까 걱정 붙들어 메시고요!"
창염을 죽일 생각따위, 추호도 없었다.
***
아지다하카 게이트는 전 세계에 국지적으로 발생했다. 초창기의 혼란도 어느정도 가라앉았고, 이제 사람들은 그나마 적응은 했다.
미래에 예정되어있던 멸망이 조금 빨리 다가왔을 뿐.
그건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었다.
국가의 지도자가 잘못된 선택을 한 나머지 잠자는 핵고양이의 콧털을 건드린다거나, 이계로의 탈출 버튼을 너무 세게 눌러서 역으로 차원문이 열린다거나 하여 특정인에게 죄와 책임이 씌워지는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사람들의 원망과 적의는 당연히 다크 레기온, 아지다하카를 향했다.
명왕성이 날아오는 것만으로도 미치고 팔짝 뛰겠는데, 그에 맞춰 움직이듯 천방지축으로 날뛰기 시작하는 아지다하카의 행동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아지다하카를 잡아야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 지구는 두 개의 종말을 목전에 두었고, 아지다하카는 당장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당연히 원탁에서는 아지다하카에 대해 성명을 냈었다. 원탁은 아지다하카를 상대로 총력전을 펼침과 동시에, 아지다하카의 본체 위치를 파악하는 즉시 모든 원탁이 동원될 것이라 세상에 알렸다.
-그래서 아지다하카의 본체는 어디있냐??
사람들의 의문과 분노에 아지다하카를 잡고자 하는 현상금까지 붙었다. 대한민국의 한 재벌 그룹 회장은 아지다하카의 본체에 대한 제보만으로 무려 2000억을 내걸기까지 했다.
그 대부분이 인생의 마지막 3개월을 불태워 보겠다는 허위신고였지만, 그중 일부는 제법 유용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지다하카는 어디에 있냐고!!
약 99.99%의 사람들은 아지다하카의 본체를 찾고자 갖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0.01%의 미친 존재들-멸망론자, 빌런 등이 존재했다. 허위정보를 퍼트리거나 파괴, 범죄를 무작위로 일삼는 그들에 대하여 <트롤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결국 트롤러와 아지다하카를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한히 대기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테러든 차원문이든 언제 어디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에는 뚜렷한 방법이 없었다.
예언 능력자 <오라클>.
명왕성이 움직임과 동시에, 그는 마지막 예언을 하고 이능력의 힘을 잃었다.
***
"푸른 불꽃이 세상을 뒤덮고, 불사조는 하늘에서 추락하며 소멸하리라. 이거 되게 기분나쁜 예언이네요."
원작과 어떻게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나 때문에 미래는 꼬이기는 커녕 개판이 났건만, 어찌 창염의 피닉스에 관한 예언은 변하는 게 없다.
푸른 불꽃이 세상을 뒤덮는다.
이건 창염이 세계를 멸망시킨 다는 말이 아니라, 창염의 힘을 얻은 주인공이 세계를 창염으로 구한다는 말이었다.
불사조는 하늘에서 추락하며 소멸하리라.
간부로서의 창염의 피닉스가 사라지고 정령으로 각성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인공에게 힘을 넘겨주며 소멸을 택하는 건 맞지만.
"한 마디로 정리해서 간부 피닉스가 정령 창염으로 각성한다는 얘기입니다."
나는 TV에서 떠들어대는 오라클의 예언에 대해 해석했다. 덕배는 돌침대가 되었고, 나는 그 위에 누워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 부하 2호, 이 세상에서도 과연 내가 온전히 정령으로 각성할 수 있을까요."
창염을 설득하여 싱크로를 할 수 있을까.
일단 창염을 설득하기에 앞서, 세계를 설득해야했다.
삐리리.
마도기어가 울렸다. 석하랑의 연락이었고, 짧은 문자였다.
[지금 간다.]
그 문자로 충분했다. 나는 덕배돌침대의 위에서 손가락을 튕겨 괴인의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내 목소리를 조정했다.
"아아. 음."
백청화, 주인공의 굵고 선명한 목소리가 분명히 울렸다. 창염을 제외하고는 들은 적 없는 목서리가 이제 세상에 널리 퍼질 때였다. 환룡도 카르나도 눈치채지 못한 목소리였지만,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생겼다.
"천가을한테 좀 미안한데."
이성애자를 양성애자로 만들어버렸지만, 사실 내 성정체성은 처음부터 이쪽에 가까웠다. 너무 오랜 시간을 창염의 몸에서 지내왔기에 이제는 어느쪽도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
'오랜 시간?'
사색이 짙어지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괴인형으로 백영도에 올 손님을 기다렸다.
쏴아아아.
바다가 반으로 갈라지며 얼음배가 백사장에 다다랐다. 백희아, 석하랑, 김지화.
그리고 백세준.
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남자가 백영도에 유배당한 내게 한국이 대표로, 세계의 대표로, 그리고 인류의 대표로 앞에 나타났다.
현 시점에도 미래에도 유일하게 살아있는 주인공의 혈육인 조부.
백희아가 제 손녀가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으로 키웠지만 선의철의 과도한 견제로 인해 성범죄자로 은퇴했던 원작의 또다른 피해자.
"만나서 반갑소, 창염의 피닉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에게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상기해냈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피닉스인 것을.
"......혹시 뭔가 말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설화령?"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백세준은 당황해 석하랑을 찾았다. 그는 일부러라도 백희아에게 묻지 않았고, 석하랑은 머뭇거리며 마도기어를 가리켰다.
"문자로 대화는 가능하지 싶은데…."
"난감하군. 지금 전 세계가 보고있을텐데."
그 말대로.
현재, 청화단의 단장인 등대에 의해 나와 이들의 만남은 전세계에 생중계로 송출되고 있었다. 마도기어에서 전해져오는 정보는 수많은 관심사를 자아내고 있고, 동시에 고인돌같은 바위 위에 앉은 내 모습에 모두가 우려와 걱정을 담고 있었다.
[현재 1억명 돌파>☆<]
히카리 다운 이모티콘이었지만 내용은 살벌했다. 아마 한 시간 전에 발표가 되었을텐데, 우리의 만남을 실시간으로 보는 이들만 무려 1억이 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1억-을 넘어 60억 조금 안 되는 인구를 향해 인사를 해야했다.
그 인사는 당연히 하나. 햇빛은 선명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튕겨 날개를 펼친 뒤, 날개를 하늘을 향해 펼치며 두 팔을 벌렸다.
"영원불멸의 푸른 불꽃-창염의 종복, 나의 주는 나를 피닉스라 명명하시었도다. 만나서 반갑다, 일국의 수장이여. 나는 창염의 피닉스라고 한다."
아.
방금 2억을 돌파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