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6화 〉1부 17장 4
아지다하카와의 싱크로는 백희아가 맡아서 하기로 합의를 봤다. 본인이 과연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속성적으로는 암속성은 백희아가 제격이었다.
그리고 지속성, 히드라.
나는 펜트 하우스로 돌아와 히드라에 관해 누구를 싱크로의 대상으로 삼을지 이야기를 나누고자했다. 마침 적당한 대상이 있었고, 나는 덕배를 소환했다.
"야, 이건 나 각이다."
덕배는 상황을 전해듣자마자 자신을 어필했다. 나는 기가차서 바로 반박했다.
"조덕배 머리에서 털 나는 소리 하시네."
덕배는 얼굴로 쌍욕을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덕배와 히드라를 싱크로 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왜에에에?! 싱크로는 마음만 맞으면 된다며! 나 그래도 속성 맞고 등급도 높잖아! 괴인이라서 그러냐?!"
"괴인이 싱크로 가능 불가능을 따졌으면 천가을부터 환룡이랑 싱크로 안 됐죠. 당신은 히드라 취향이 아녜요. 뭣보다 내가 싱크로를 안 시킬 거예요."
싱크로는 정령과 히로인이 하는게 국룰이다. 괜히 덩치 큰 남정네를, 그것도 빌런이나 다름없는 괴인을 히드라에게 넘겨주기에는 히드라가 무척이나 아까웠다.
애초에 히드라는, 지륜은 덕배같은 스타일을 싫어한다. 히드라와 지륜이 합의점을 본게 있다면 잘생긴 쇼타거나 잘생긴 거근이거나. 셋 다 해당 사항이 되지 않는 덕배는 히드라도 지륜도 설득하지 못할 외모였다.
"그럼 누구랑 싱크로 시킬 건데? 지속성 메인은 그 아르엘인가 뭔가하는 영국 공주라며? 지금 가출했다가 이제 영국에 돌아갔다고 하잖냐. 가택 연금 상태인데 어쩔 거야?"
"그걸 지금부터 생각해야죠."
아르엘.
후에 영국 여왕이 될 왕가의 일원이자 단일 지속성 S+급까지 성장 가능한 히어로이자 빌런. 지금은 공주 신분으로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다가 아지다하카 게이트로 인해 멘체스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서 어떻게 활동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무능력자로 알려져있던 아르엘은 자신의 이능, 지속성 A급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가웨인과 함께 멘체스터의 암마룡을 죽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웨인은 SS급 이능력자로 각성. 아르엘은 캐트시 경과의 관계와 지금까지 가출한 것에 대하여 추궁을 받다가 왕성에 유폐됨."
"완전히 사로잡힌 공주님이구만! 공주님이 히드라 만나러 가는 것보다 내가 가는게 더 빠르겠다."
"히드라 만나러 가는 건 내가 다 안내해주고?"
"그런셈이지. 무기라도 좋다, 꼭 데려가라. 알겠지?"
지속성 지속성 노래를 부르더니 이제 완전히 미쳐버린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덕배가 더이상 김칫국을 마시지 못하도록 그릇을 깨버렸다.
"그렇게 히드라랑 싱크로 하고 싶어요?"
"그래!"
"솔직한 심정은?"
"싱크로고 뭐고 나도 SSS급 찍어서 네놈 얼굴에다가 똥칠을…. 흠흠."
덕배는 머리 끝까지 붉어져 고개를 돌렸다. 예전에는 죽일 것처럼 달려들더니 이제는 조금 사람이 순해졌다. 양심에 털은 나기 시작했어도 머리는 안 나고 있지만.
"좋아요. 당신이 히드라랑 싱크로해서 강해지고자 하는 욕구는 잘 알겠어요."
"오, 나 드디어 SS급 찍냐?"
"근데 유나가 할 거임. 푸흐흐."
덕배가 또 얼굴로 쌍욕했다.
"이유나는 여신이라며! 이계신 화신이라며! 그런데 히드라랑 싱크로는 왜 하는데 왜!"
덕배의 지적은 타당해보이기는 했다.
"애초에 유나 역할이 그건데요? 누구든지 싱크로가 가능한 존재. 여섯 정령 중 누구라도 유나랑 싱크로가 가능한 동시에, 지금은 파트너 없는 정령을 위한 보험이라고요."
석하랑, 절풍, 지륜, 개천광, 마암룡, 그리고 환룡.
데미우르고스, 사탄, 얄다바오트, 사타나엘, 사마엘, 그리고 아이온.
유나가 다른 여섯 정령과 싱크로했을 때의 <이명>이었다. 지속성인 지륜과 싱크로를 하면 유나는 얄다바오트라고 불리는 지속성 SSS급 이능력자로서 활약하게 될 터.
"그러니까 보험말고 나를 강하게 만들어야지!"
"만기 환급형 보험이랑 상폐 확정인 주식이랑 비교하면 당연히 보험을 들어야죠."
당연히 히드라는 제 것이라고 착각에 빠진 덕배는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무리 내가 똥오줌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죽어도 덕배만큼은 정령과 싱크로를 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아오, 열받네. 이유나랑 싱크로하면 이계신 빙의는 안 이루어지냐? 어? 그럼 이유나랑 싱크로 하는 이유가 없네!"
"말했다시피 싱크로한 정령은 유나에게서 튕겨나가죠. 정령은 제정신을 유지하지만, 유나는 성주에 의해 의식의 제물이 되겠죠. 유나는 몰라도 지륜은 괜찮을 거예요. 유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오, 창염개진!!!"
조덕배는 정체불명의 영창을 외치며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 나는 마력으로 테이블 위의 간식들을 간신히 사수하는데 성공했다. 다행히 딸기잼 토스트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너 더럽게 웃기네. 뭐 내 전 여친끼리 가위치기 하는 건 봐줄 수 있지만 다른 남자랑 비비는 건 못 보겠다 이거냐?"
"유나 지금 미성년자인데요."
"...전 여친들끼리 쌔쌔쌔거리면!"
덕배는 황급히 말을 정정했다. 나는 토스트를 한입 크게 베어물며 마도기어를 두드렸다.
[꼭 그런 것만 아니더라도 유나가 히드라랑 싱크로 하는게 위험 부담이 오히려 덜 해요.]
"왜?"
나는 덕배에게 눈치를 줬고, 덕배는 주변을 눈으로 흘기며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의 주변에는 소음을 차단하는 결계가 있었지만, 언제나 주의할 필요는 있었다.
[아르엘 한국에 데려다 놓으면 문제 될 거 있냐?]
[유럽에서 제 3차 대전 발발?]
[왜?]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조용히 마도기어를 두드렸다. 그리고 유럽 어딘가에 있을 또 하나의 중요 물건에 대해서도 덕배에게 간략히 언급했다.
[히틀러의 유산이 저장된 곳에 큐브가 섞여들어갔어요.]
그리고 그 유산을 발견하는 이는 다름 아닌 가출이라는 명목으로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던 아르엘.
[아르엘, 저지예요.]
[자ㅈ]
나는 덕배를 죽였다. 그리고 덕배의 머리통 위에 딸기잼으로 글을 썼다.
[의적, <괴도 저지(Judge)>.]
정의를 위해 땅굴을 파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미래 영국 여왕의 정체에, 금방 부활한 덕배는 거울에 비친 제 머리의 글자를 보고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 * *
그래도 부하 2호를 강하게 만들어달라. 남들처럼 최대 레벨을 확장시켜 주기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덕배의 끈덕진 구애아닌 구애에 나는 구토감을 참고 본인의 허가를 받고자 유나를 찾았다. 마침 유나는 기숙사에서 홀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괴수 전집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왠 괴수 공부예요?"
"그냥 새로운 지식이 늘어나는게 재미있어서요. 앞으로 블루오션이잖아요? 명왕성이 날아와서 지구에 부딪히지만 않으면."
유나는 태연자약했다. 당장 3개월 뒤에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임이에도 불구하고, 유나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지식을 쌓는데 여념이 없었다.
"전 당신이 수능 공부할 줄 알았는데."
"피닉스 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수능도 지구가 온전히 살아있어야 칠 수 있다고. 수능은 2년 뒤에 있지만 세계 멸망은 코앞이니까요."
유나의 표정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갓 고등학교 교복을 입었던 여고생이 세계 멸망을 막아야한다는 중압감에 벌써부터 히어로 길을 걸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단 세계부터 구하고 수능 치르도록 하죠."
"좋은 생각이예요, 그럼 조금 더 직접적으로 구하러 가보는 건 어때요?"
나는 정령과 유나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유나는 자신의 연습장에 내 설명을 꼬박꼬박 정리해 적으며 경청했다. 유나는 금방 내 설명을 이해했다.
"제가 히드라라는 분이랑 싱크로하면 머릿수는 채워진다 이거죠?"
"네."
유나가 거절한다면 나는 아르엘을 설득하러 가야했다. 아마도 캐트시 경인 김펜릴과 20년동안 소꿉친구였을 공주님에게 히드라와 싱크로하여 펜릴과 척을 져야 한다고 부탁을 해야하는 처지였다.
"좋아요."
그리고 유나는 시원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피닉스 님. 저도 혹시 청화단에 들어가서 히드라를 잡으러 가야하나요? 저 아직 D급 훈련도 통과 못했는데."
유나가 자신의 훈련 결과표를 꺼냈다. 7속성 전부 올 E. 이능력자로 각성한 이들을 대상으로 무조건 수료하도록 한 훈련의 최저치만 완료해놓았다.
"잘했어요. 아직은 당신의 진면목을 보이면 안 되니까. 히드라와 아지다하카까지 전부 다 잡고 난 뒤에는 밝혀도 괜찮을 것 같네요."
화속성 SSS+, 101.
수치상으로는 나 이상의 스펙을 가진 여신은 현재 화속성 마력 수치 '01'이라는 괴랄할 수치로 등록되어있다. 유나에 대해 학부생들이 쉬쉬거리기는 하지만, 다행히 유나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딱히 안 밝혀도 되는데."
"당신 꼽 준 애들 콧대를 밟아줘야하는 거죠. 감히 여신을 상대로 잘난 척을 하고."
"그러면 그 분들 무안해 할 것 같은데…."
유나는 난처한 미소로 책을 덮었다.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겠다는 말인 동시에, 미쳐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공부를 내려놓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 사람들 신경쓸 건 없죠.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면 돼요."
"그 사람들한테 폐급이라고, 운만 좋은 년이라고 욕 들어쳐먹고도 안 죽는 거요?"
"...10대라서 조금 거칠긴 하네요."
"이 정도는 양반이죠. 저보다 더 욕을 많이 먹고 있는 중학생도 있는데."
유나는 자신이 질시어린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도 본인보다 훨씬 더 상황이 나쁜 사람을 걱정했다.
"중2가 세계 최강의 헌터 길드에 특채로 들어갔으니 사람들이 질투할 수밖에 없죠."
"...걔는 걔 나름대로 잘 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마요."
미래에서는 시작부터 같은 팀이었어도 지금은 일면싣 없는 관계이건만, 아무래도 스타팅이라고 할 수 있는 셋의 관계는 뭔가 특별한 인연같은 것이 있나보다.
"그럼 유나양. 당분간은 이능력 사용하는 방법 잘 익혀두세요. 화속성이나 지속성이나 사용하는 방법은 똑같을테니까."
"네? 교수님은 속성마다 친화율이 달라서 마력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하던데요? 이중속성이 그래서 한 쪽으로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둘 다 같이 오른다고…."
"당신은 여신이니까 괜찮아요."
진짜로 괜찮다. 유나는 당황하면서도 자신의 마력을 가다듬고 손가락을 튕겼다.
딱.
내 푸른 불꽃의 결계 안쪽에 유나 특유의 병아리같이 밝은 노란 색의 결계가 생겨났다. 그 겉면은 노란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쓰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생각보다 성장속도가 엄청난데요."
개인적으로 따로 만났던게 2주도 전이건만. 나는 멸망을 막기 위해 히어로 길을 선택한 진심 유나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낯설기도 하면서도 고맙고 그리웠다.
"모처럼 온 김에 공부 도와드릴게요. 궁금한 거 있어요?"
"진짜요? 그럼 저 이거 묻고 싶었는데, 수속성 A급 괴수인 <맨티스 쉬림프>의 앞 발이 형태에 따른 공략 환경은…."
나는 유나의 괴수학 공부를 멘토링해주는 것으로 히드라와의 싱크로 허가를 따냈다.
조덕배는 삐치더니 창가에 서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창가로 흘러들어온 햇빛이 선명하게 덕배의 머리 위에 비쳐 반짝였다.
아마도 자력으로 S급에 오르면 머리가 자라지 않을까 싶었지만, 나는 그냥 위로하지 않기로 했다.
* * *
은하대학교라는 아카데미를 통한 이능력자의 양성.
나는 히어로들과 헌터들의 양성에 전념하며 히카리의 연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약 3주 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만갔고 명왕성은 막 해왕성을 지나 천왕성의 궤도에 이르렀다. 중간중간 멈추기도 하고 다시 가속을 하기도 하며 속도는 제멋대로였지만, 비틀거리면서도 궤도를 중간중간 수정하는 것을 보아 목적지는 지구였다.
아지다하카가 닷새에 한 번 꼴로 전세계를 누비며 아지다하카 게이트를 여는 가운데, 드디어 나는 두 간부 중 한 명의 위치를 특정해냈다.
지륜의 히드라.
대마도 어택 이후 단 한 번도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던 히드라로 추정되는 마력 패턴이 히카리에 의해 검출되었다. 전세계에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괴인 반응 중에서도 유독 이질적인 패턴은 아지다하카 아니면 히드라의 반응이었다.
로마.
지륜으로 각성하는 전투가 있는 파르테논 신전으로부터 약 1000km 떨어진 곳.
그곳에서 히드라의 마력으로 추정되는 반응이 검출되었다.
나는 핵심 멤버들을 소집한 뒤, 그들에게 선언했다.
"백나로 호, 출격합니다."
"멕시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