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5화 〉1부 17장 3
히카리의 연구실에 처박힌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사로잡힌 피닉스를 찾는 정재계, 또는 외국의 주요 인사들은 많았지만 그 누구도 백영도에 펼쳐진 석하랑의 결계를 뚫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 히카리에 의해 온갖 실험을 당했다.
"후후후! 단장님의 괴인형 마력 패턴을 분석해서 그 안에 있는 오염된 마력의 데이터를 뽑아내는 거예요! 그리고 이전에 발생했던 환룡 님의 괴수체, 혼돈과 카르나 님의 마력 일부의 데이터를 대조해서 괴인형의 마력 파장을 읽어내는 거죠! 같은 조직의 괴인들이고 성주에 의해 세뇌된 이들이라고 한다면, 분명 같은 작용을 일으키는 특정한 에너지가 있을 거예요!"
[간단히 말해서 간부들이 가진 공통 패턴을 뽑아낸다는 거군.]
나, 카르나, 그리고 석하랑이 잡았던 혼돈.
루살카의 데이터는 이미 없다. 그건 내가 광검을 죽이면서 완전히 소멸시켰고, 그 반동으로 석하랑이 각성했으니.
그리하여 세 가지 마력 패턴에서 간부들 특유의 파장을 찾아내, 그 파장을 전세계에 스캔하여 간부들의 위치를 특정한다.
그게 나와 히카리가 찾아낸 방법이었다.
그리고 전기톱에 갈리고 염산이 부어지고 코어웨폰에 갈려나가고 영하 273도의 냉동고에 보내지고 코어 프레스기에 갈려나가는 캡슐 생활을 보낸 끝에, 드디어 히카리는 나의 마력 패턴을 완벽하게 파악하는데 성공했다.
"...99%!"
[100%는 역시 무리인가?]
히카리는 내 인체의 데이터를 홀로그램으로 정밀 스캔했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약 99%의 파장을 완벽히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99%만.
"1%는 도저히 안 되네요. 그래도 이것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어요."
히카리는 홀로그램 속 내 몸에 손을 집어넣었다. 내장이 훤히 보이도록 피부와 근육이 불투명해지고, 히카리의 손은 내 심장 부근에 자리잡았다.
"이게 단장님의 코어입니다."
히카리는 홀로그램에서 내 심장을 뽑아냈다. 나는 괜히 아픈 것 같아 가슴이 시큰거렸다. 히카리는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점심 때 사용하고 세척한 돈가스 나이프로 내 심장-환상-을 잘라내며 코어를 뽑아냈다.
[여러모로 이렇게 보니 이상한데.]
"그쵸? 이상하죠? 다른 코어들이랑 다르게 색부터 이상하잖아요."
[아니. 내 핵이나 다름없는게 너한테 들려져있다는게 이상한 거다. 가짜지만.]
홀로그램이라도 심장에 해당하는 물건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려지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히카리는 히히덕거리다가 코어를 가운데 놓고 좌우로 손을 벌렸다.
우우웅.
주먹보다 작던 코어가 축구공, 농구공처럼 커지더니 이젠 연구실을 꽉 채울 것 만큼 커졌다. 나는 내 코어의 내부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7개의 층?]
"E등급부터 SS급까지 열려있어요. 단장님 덕분에 드디어 인류가 어떤 식으로 마력을 쌓고 그걸 사용하는 지 알게 되었네요. 지구가 층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마력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이게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높은 경지에 이르면서…."
[알고 있다. 내가 놀란 건 그게 아니야.]
"미래의 저한테 들으셨죠?! 네 이년, 히메지 히카리!!"
히카리는 히카리에게 분노했다.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나는 내가 알고있던 정보와 다른 상황에 코어 층의 내핵으로 손을 뻗었다.
마지막 한 겹.
그 한 겹의 층이 검은층으로 뒤덮여있다. 나는 그 위에 손을 올렸지만, 홀로그램 자체가 사라질뿐 내부의 구조가 보이지 않았다.
"코어 내부의 심층까지는 확인이 불가능해요. 코어의 내핵을 그, 테라의 오염된 마력이 감싸고 있어서."
[이 안에 창염이 있는 건가.]
"네? 창염이요?"
[나의 진신(眞身). 정령으로서의 근원.]
적당히 얼버무리는데 성공했다. 히카리는 미심쩍은 눈초리였지만, 내가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창염은 내가 사랑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화속성 마력의 근원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히카리가 분석하지 못한 마지막 1%.
창염은 저 코어의 내핵에 갇혀있었다. 그리고 그 내핵을 감싼 검은 막은 마치 큐브처럼 기괴한 형상이었다.
저러니 큐브가 있어야만이 창염이 나올 수 있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진작에 너한테 해부당할 걸 그랬군. 그러면 이렇게 확실히 알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단장님. 아시잖아요."
히카리는 내 마력 데이터를 내 앞에 들이밀었다. 협회의 뒤떨어지는 싸구려 검사기와 달리, 나를 직접 해부하여 찾아낸 마력 패턴은 이제 세상에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제가 이거 뿌리거나 해킹 당하면 지금부터 단장님의 일거수 일투족이 스캔당할 거예요. 심지어 어디서 결계가 펼쳐지는 지도 파악당할 걸요?"
[네가 이걸 세간에 공개한다면, 말이지.]
온리 화속성 100. 거기에 약 1정도 오염성분이 섞여있는 괴랄한 패턴. 이 세상에 화속성 SSS급 괴인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이 고유 패턴은 오직 나만의 것이었다.
[그래서 히카리. 너는 빌런이며 다크 레기온의 간부인 내 정체를 까발릴 셈이냐?]
"......."
히카리는 한참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안경을 치켜올렸다.
"미래의 는 정의의 편이라고 하셨죠?"
[그래. 악의 소굴로부터 벗어나 정의의 편에 선 히어로였지.]
"그럼 2024년까지는 계속 악의 조직 하수인 하죠! 다크 레기온 피닉스 군단의 지능 담당! 저는 천재 교수 히카리입니다!"
히카리의 말은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손을 뻗으려다가 간신히 멈췄다. 히카리는 볼을 부풀리며 내 손에 제 머리를 들이밀었다. 스스로 내 손바닥에 정수리를 비볐다.
"직속 부하에게 이 정도도 못 해주세요?"
[요즘 세상에 이러면 성희롱으로 잡혀가던데.]
"당사자가 괜찮으면 괜찮아요. 히힛."
히카리의 시위 아닌 시위에 나는 결국 언제나처럼 히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히카리는 유독 이런 스킨십을 좋아했다. 한참동안 내 손의 온기를 느끼던 히카리는 표정을 바꾸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단장님. 지금부터 광역 스캔 들어갈게요. 찾으면 바로 가실 건가요?"
[아니. 사전 작업을 해야지.]
아지다하카든 히드라든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두 명.
[잠깐 집행관을 만나고 오지.]
먼저, 백희아와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
선의철의 하야 이후.
백세준 총리는 빠르게 대선을 진행했고, 총리의 자리에 있으면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선의철이 종신 대통령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총리와 대통령을 번갈아 할 수 있도록 했던 개헌은 백세준에게는 호재로 작용했다.
사실 백 총리, 이제는 백 대통령이라고 불러야 할 그는 원래 대통령은 커녕 권력의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게 되는 스캔들의 주인이었다.
청송에 의해 조종당해 손녀에게 욕정한 변태.
그럴 사람이 아니었지만 청송, 문신사가 그렇게 만들었다. 큐브나 이능이나 그런 걸 전혀 몰랐던 그는 그렇게 백희아에게 욕정하여 물러난 변태로 생을 마감했다.
그 청송은 지금 감옥에 갇혀있다. 백세준을 경계한 선의철도 감옥에 갇혀있다.
그에 따라 백세준은 대통령이 되었다. 떠밀리듯.
나는 신서울 협회, 백희아의 개인실에 몰래 잠입하여 침대에 누워 그를 맞이했다. 백희아는 나를 보자마자 바로 문을 닫고 들어와 잠금장치를 걸었다.
"손녀딸 잘 둔 덕분에 대통령도 되시고. 축하드려요. 이제 진짜 나라의 실세가 되셨네요."
"...친손녀는 아니잖아요."
백희아는 툴툴거리며 도끼눈을 떴다. 아무래도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듯 했다.
"다 확인해봤어요. 그리고 왜 여아였던 제가 남아인 그 사람의 자리를 꿰차게 되었는지."
"선의철."
선의철의 마수는 여기에도 뻗쳐있었다.
"백씨 가문의 적자는 구국의 영웅이 될 것이다. 선대 오라클의 예언이었죠? 백통령 스스로 예전부터 해댔던 말이기도 하고."
테이블에 마주앉은 백희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백씨 가문에서도 백희아의 친족만이 알게된 출생의 비밀에 대하여. 그리고 선의철이 수작을 부린 것에 대하여.
"...알아보니까 산부인과의 이들을 전부 포섭했었더라고요. 산후조리원의 이들까지. ...바꿔치기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제 생물학적 친모..라고 해야 할까요. 바꿔치기에 가담한 이들은 다들 얼마 안 가서 죽었죠. 번개탄을 피웠다거나, 교통사고가 났다거나. 남아를 여아로 바꾸는 것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백가의 인원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죽었다.
"아무렴 독재 권력에 취해있는데 어련하겠어요? 선의철은 누구보다도 남성성을 중시하는 자예요. 이승형을 그렇게 영웅으로 만들려고 했던 이유도 뭐겠어요. 다 구국의 영웅으로 만들어서 막후의 실세가 되려고 했던 거지."
선의철이 자식이 없었던게 정말로 다행이다. 선의철은 자식을 낳기에는 어려운 몸이었으니.
선꼬삼.
쇼윈도부부라도 아내 한 명 없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래서 피닉스 님. 제가 다 알아보고 왔는데요."
백희아가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모처럼 숨을 돌릴 겸 다른 용무로 방문한 나는 백희아의 질문 폭격에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백청화."
"윽."
"혹시 피닉스 님은 그의 유지를 잇는 사람인가요?"
"......?"
이거 설마?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백희아는 베레모 아래로 살짝 삐친 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베베꼬며 쑥쓰러워했다.
"그...미래에서 오시면서 제 원래의 자리를 가지셔야 했을 분. 그 분이 당신을 과거로 보내신 분인가요? 그 신관?"
"......."
사람들의 오해는 깊어만 갔다. 여전히 다들 내 정체에 대해 일정 정보를 공유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추측을 하는 것에 나는 여러모로 난처했다.
모든 (왜곡된) 진실을 아는 건 환룡 뿐.
대부분 크싸레 피닉스가 회귀한 걸로 알지, 그 피닉스에 빙의한 신관격의 존재가 회귀했다고-그조차도 거짓이지만-알지는 못했다.
"그런 셈이라고 생각하세요. 한 가지 말해주자면, 그는 당신과 인생을 바꿔치기 당했다고 복수를 하겠다거나 자리를 되찾겠다거나 하는 사람은 아녜요. 당신도 피해자라고 생각을 하고, 또 바뀐 인생으로 인해 제법 즐겁게 살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호구예요?"
"네. 호구. 상병신."
플레이하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백청화는 전형적인 영웅설화에서 나올 법한 천사표 주인공이었다. 외모도 빼어나고 성격도 착하고 능력도 좋으니 주변에 수많은 사람-특히 여자가 꼬일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런 분이 지금 미국에 가 계신다고."
"......."
백희아의 추궁에 나는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백청화가 현재 미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나만이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런 과거를 알고 있었다. 나는 유나라면 모를까, 창염의 피닉스에게 있어서는 성주보다 더한 사망 플래그 덩어리인 주인공을 아예 신경쓰지 않았다.
'유나 찾는 것도 바로 걸렸는데 주인공 찾아나서면 오죽할까.'
내게 있어서 백청화는 여러모로 불편한 존재였다. 백희아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에게 갖는 감정은 달랐다.
나는 마음이 혹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을 홀라당 바쳐버릴 수 있다는 경계심이 가득했고, 백희아는 인생이 뒤바뀌어버린 것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미국에 간 사람 안 찾아도 돼요. 당신 성격 그 사람도 알아서 그런 말도 했고요. 어차피 자기는 좁은 한국에서 사느니 미국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면서."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세상이니 백청화에게도 한국보다는 미국이 더 나았다. 하지만 백희아는 그걸 곡해하여 들었다.
"...그럼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으시겠네요. 그렇게는 안 되죠. 이 나라가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데. 그깟 미국 쯤이야!"
내 의견은 아니었다. 백희아의 의견이었다.
"그 분이 다시 이 나라로 돌아올 수 있게 하겠어요! 세계도 지키고, 제 자리를 돌려드릴 수 있도록!"
공공연히 한국 최고를 외치고 다니기에, 특히 미국 플레이어들의 공공연한 적이 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리얼 금발서양남 플레이를 하며 백희아 루트를 타던 변태들도 있기는 하지만.
"흠흠."
마침 딱 화제를 돌리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여 백희아의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백희아 아가씨. 정치인으로서, 지휘관으로서는 잘 성장하고 있지만 이능력자로서는 어떠신지?"
"윽."
한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어있던 백희아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나는 백희아를 위에서 아래로 쭉 훑어내렸다.
"A."
"...왜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시죠?"
백희아는 손을 앞으로 교차하며 나를 째려봤다. 안 봐도 사이즈는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백희아는 여러모로 신경을 쓰고 있는 소녀였다.
"당신, 아지다하카랑 싱크로해야할텐데 S급 빨리 찍는게 좋지 않겠어요? 그럼 아지다하카 몸 정도는 될텐데."
"제가 가슴은 작아도 그런 세계구급 범죄자와 물아일체가 되기에는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거든요?"
"아지다하카를 마암룡으로 각성시켜서 당신이랑 싱크로하잖아요? 그러고 애 낳으면 당신 딸이나 아들, S급 암속성 이능력자로 태어날텐데."
"......."
백희아의 눈에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백희아의 고민에 쐐기를 박았다.
"뭐…어차피 각성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 될텐데 걱정하지 마요."
"다른 사람이라는게 어떤 의미죠?"
"세상에서 제일 참한 츤데레랍니다."
츤데레인건 간부일 때나 정령일 때나 마찬가지이지만 성적으로 문란한 정도다 다르다. 간부 아지다하카는 속된 말로 괴인들의 공공재라고 불리울 정도로 문란하지만, 정령 마암룡은 고귀하고 순수한 처녀.
원래 메인 파트너는 단연 김누리지만, 과거 시점으로 온 이상 서브 파트너인 백희아가 그 역할을 대신해줘야 한다.
'미성년자를 야황으로 만들 수는 없잖아.'
백희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역할을 대신 해줘야 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야황, 아니 밤의 대통령 하세요."
"...다른 건 차치하고 저 S급은 무조건 찍어야 하잖아요. 어떻게 올라가요? 운사나 다른 분들도 못 올라가고 있는데."
"당신은 제일 쉬워요. 그냥 현대 문명의 고도로 발달된 비행체와 동기화하면 끝이니까. 유성에서 지금 열심히 제작중이니까 기대해요."
"...그리고 나중에 우주선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정답."
나는 백희아가 혹할만한 제안을 했다.
"세계를 구할 우주선으로 거북선 어때요?"
"유성과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나는 백희아를 가슴으로 설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