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94화 (394/1,497)

〈 394화 〉1부 17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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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오전 9시, 여의도 카페 Padre Jaun.>

빌런 피닉스가 귀양살이를 하게됨에따라 서울의 상황도 여러모로 변했다.

석하랑은 자신이 대외적으로는 최강이라고 입증을 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S급 이상의 존재들에 대해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 이거, 까딱 잘못하면 차원문 열리는 제물이 되는 거 아냐?

공익이라는 이름하에 S급 이상의 이능력자들-특히 남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민간에 공유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혹시나 괴인으로 타락하지는 않을까. 혹시나 아지다하카가 몰래 와서 몸으로 유혹하지 않을까.

전 세계의 S급들은 졸지에 사생활 자체가 없어져버렸다. 그들이 화장실을 가는 순간 마저도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런만큼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서울과 부산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석하랑은 여전히 부산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있으면서도, 피닉스가 서울에서 난동을 부리자마자 1초도 되지 않아 바로 한강에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는 둘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음모론을 펼쳤지만 금방 삭제되었다. 피닉스와의 야합을 주장하기에는 석하랑의 위세가 너무나도 강했다.

따라서, 피닉스는 대외적인 활동이 모두 제한되었다.

하지만 '청화'는 안전하다. 천가을이 변신을 하고 장기간 돌아다녔던 만큼,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온전히 피닉스와 청화가 분리된 만큼 내가 본격적으로 청화로서는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나와서 활동할 수 있다는 거죠."

나는 후안의 카페에서 딸기스무디를 퍼먹으며 사장인 후안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카페가 개점하기 전인 만큼, 나는 카페 문이 열리기 전에 미리 와서 일용할 양식을 먹고 가고는 했다.

"어느쪽이든 자네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유명인이니 어쩔 수 없죠. 행여나 아지다하카가 히드라를 구하러 오는게 아닐까 하고."

히드라는 아직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리고 펜릴은 나와 빅 벤에서부터 싸우며 그 괴인형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인해 사람들의 뇌리에는 이상한 오해가 하나 박혔다.

"다크 레기온의 총수 아지다하카는 여인. 그리고 그 아래에 갑주 괴인이 셋. 푸흐흐. 실상은 이런 상황인데."

"아침부터 건물주가 와서 횡포라니, 사장님. 노동부에 신고하는 거다냥."

츄리닝 차림으로 나온 김펜릴은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왜요? 제 건물에 제가 오면 안 되나요?"

"백영도에 유배된 사람이 이렇게 밖에 나와서 활동해도 되냥?"

"피닉스라면 몰라도 청화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히어로 겸 헌터니까요."

"완전 제멋대로다냥."

"아무렴 당신만 할까."

김펜릴은 메이드 차림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동하기 편한 녹색의 츄리닝 차림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집근처 편의점이라도 오는 것 마냥 자유분방했다.

"그래서 나온 이유는 뭐냥?"

"당신 감시할 겸, 겸사겸사 나온 거죠. 활동을 아예 안 할 수 없으니까."

"완전 사기꾼이다냥."

"이미 시작부터 전세계에 사기를 치고 시작한 사람이예요. 그럼 김펜릴, 혹시나 아지다하카나나 히드라가 와도 괜히 문제일으키지 마요. 위에서 누군가가 당신 예의주시하고 있으니까."

나는 천장을 가리켰다. CCTV와는 달리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또다른 눈은 여의도의 상황을 일거수 일투족 감시하고 있었다.

"흐흥, 그거 별로 쓸모 없을 걸?"

하지만 펜릴은 전혀 개의치않았다. 그냥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분명 등대의 감시하에 놓여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호록.

나는 후안에게 시선을 보냈지만, 후안은 커피만 마시며 내 눈을 피했다. 분명 뭔가 숨기고 있는게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후안을 닥달하거나 협박한다고 해서 정보를 캐내거나 할 수는 없었다. 후안은 외골수답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건물주보다 아르바이트생을 더 많이 챙기는 사장님이라니. 세상에 이런 사장님이 어디있어요?"

"내리사랑인게지. 자네가 여기를 공짜로 내어준 만큼, 나도 그 사랑을 내 아래로 전해주는 걸세. 껄껄."

"그런 사랑이라면 정중히 사양한다냥."

"이쪽도 마찬가지거든요."

스무디를 전부 퍼먹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의 분량은 모두 채웠으니,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움직일 차례다.

"이제 어디로 갈텐가?"

"은하대학교요."

"...지금가면 늦지 않았나?"

"어차피 입학식부터 모든 강의는 가을이 대신 들어가고 있어요. 화장실로 불러내서 바꿔치기 하면 됩니다. 어차피...."

나는 카페 창문에 햇살이 비치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햇빛 덕분에 내 손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러고 갈 거라서."

"과연."

나는 캬라멜마키아토 한 잔을 테이크 아웃으로 챙겨 카페를 벗어났다.

* * *

<오전 10시 55분, 은하대학교 강의동 2층 휴게실.>

"대학 생활은 재미있어요?"

"이제 2일 지났어. 너 대학 다닌 것처럼 얘기한다?"

"그냥 재미있냐고 물은 건데 또 정체를 캐물으려하시네."

나는 청화로 변신한 가을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에 따라 가을은 청화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나는 가을이 입고있던 코디 그대로 옷을 입었다. 직접 갈아입지는 않고, 마력으로 직접 변환시켰다.

"이거 너무 파인 거 아닌가…."

"대학생이잖아. 나이도 어리고. 새내기에 걸맞는 옷인 거지. 유하한테 얘기하니까 백화점 털라던데?"

가을은 몸에 딱 달라붙는 OL 복장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변신을 해제할 일이 생기면 대학의 직원인 척하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복장이었다. 단추가 터질것처럼 부풀어 올라 가을의 상냥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옷은 유성산하의 메이커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는 유성의, 은유하의 옷으로 치장했다.

"안 그래도 유성 스폰받는다고 뒷말 나오는데 아주 쐐기를 박으시네요."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런 유언비어 신경쓰는 일도 없고."

"맞는 말이니 인정합니다."

인정은 하지만 V자로 깊게 파인 흰 나시 덕분에 가슴 골이 살짝 보였다. 그리고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코트를 건넸다.

"날씨가 춥습니다."

"고마워요, 라온."

"별말씀을."

<운사> 박라온. 청화와 마찬가지로 은하대학교 신입생 1학년으로 들어온 히어로 새내기였다. 대학생이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어색한 감이 없잖아 있기는 했지만, 시국의 혼란과 은하대학교의 목적을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이능력자 전용 커리큘럼은 할만해요?"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습니다."

박라온의 눈에는 피곤함이 묻어있었다. 아직도 S급을 넘기지 못한 상황에서, 이능력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특수 훈련 프로그램은 라온에게 큰 피로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디까지 잡았어요?"

"...화속성 케르베로스 솔플까지는 성공했습니다. 이걸로 7속성 전부 B등급까지는 클리어했습니다."

라온은 손목의 마도기어를 눌러 우리에게 자신의 업적을 과시했다. 라온의 성적표는 입학한지 2일만에 7개 속성 개인 임무를 전부 B등급까지 클리어했고, 화속성은 A등급을 받는데 성공했다.

"어제 저녁까지 훈련 돌았어요?"

"네. 시설이 워낙에 좋아서. 처음보는 괴수도 있어서 잡는데 재미가 있었습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교수님께 감사를."

라온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훈련시설을 만든 히카리도 기뻐하지 않을까싶었다.

"홀로그램이라서 진짜같은 맛은 없었을텐데."

"......."

라온은 침묵했다. 뭔가 눈치를 보는 듯 볼을 긁적였고, 나는 그제야 라온의 상태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가을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너 혹시 S급 도전했니?"

"...흑염룡은 강했습니다."

화속성 S급 괴수. 현재 흑염룡이 그 역할을 맡아 훈련의 상대역을 하고 있다. 개인전이든 집단 레이드든 흑염룡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신입생들을 상대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혼자서 잡기에는 역시 어려웠습니다. 거의 잡을 뻔 했지만, 마지막에 일격을 맞은 나머지 지고 말았습니다."

"굳이 1:1 아니어도 다른 애들이랑 같이 하면 되잖아."

"가을. 1:1이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이건 저에 대한 시련이기도 합니다."

"... 좋으실대로 하셔요. 나는 어차피 관계 없으니까."

가을은 한 발 물러섰다. 히카리가 만든 홀로그램 괴수 체험 훈련 프로그램은 청화단 간부들이 솔선수범하여 검증을 마친 커리큘럼이었다. 협회에서조차 그 기술을 공유받고 싶다고 바로 컨택을 취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피...청화님은 오늘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학교 잘 돌아가는지 확인할 겸, 그리고 가을이 대학 생활 잘 하고 있는 거 확인할 겸. 사고 치지 않는지 보러왔어요."

"...내가 애야?"

가을은 콧방귀를 끼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나로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하대학교에 있는 히로인만 무려 여섯이었으니.

박라온.

천가을(청화).

은유하.

히카리.

그리고 이유나, 정슈리.

'벌써부터 난민으로 들어와서 입학까지 할 줄이야.'

혼자서도 척척 잘 해내는 타입이라 그닥 신경은 쓰지 않고 있었는데, 설마 한국에 난민으로 들어와 신분세탁에 입학까지 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너 지금 우리 말고 따로 신경 쓰는 사람 있지?"

"무슨 소리실까."

천가을은 귀신인가. 나는 괜히 뜨끔해서 마음이 찔렸다.

"아니, 그 왜. 너 맨날 보고싶다고 이름 부르짖던 애 있잖아. 이유나. ...본인인 것 같던데? 동명이인은 아닌 것 같고."

"...."

가을의 촉은 귀신보다 더했다. S급의 기감과 추리력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맞아요. 그 여신님.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네가 이런 시설을 만들면서 안 데려왔을 리가 없지. 내가 이미 한 번씩 다 둘러보면서 여자는 다 스캔했다구. 또 누구야? 그 연예인? 아니면 유나처럼 어린애?"

"...그냥 자유롭게 지내도록 내버려둬요. 내가 굳이 여기에 부른 이유는 여기가 가장 안전한 곳이니까 그런 거죠. 지난 번에 얘기 했잖아요?"

나는 두 손을 쫙 펼친 뒤, 손과 손을 겹쳤다.

"한 정령에 한 명. 싱크로를 위해서는 최소 5명이면 가능하다고."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설명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라온의 말에 절로 내 입이 근질근질해졌다. 하지만 내가 설명을 하려고 하기도 전에 가을이 라온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 우리는 이제 다른 여자나 찾아보러 가자. 가면서 내가 설명해줄게. 쟤한테 붙잡히면 분명 3시간은 넘게 떠들거야."

"하지만 저렇게 원하는 얼굴인데."

"너 그러다 오후에 훈련 늦는다?"

"죄송합니다, 청화 님. 다음에 기회가 되면 부탁드립니다."

"......."

가을은 라온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졸지에 나는 말그대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가을은 진짜로 유나 이외의 다른 히로인을 찾으러 가려는 걸까.

'찾아도 뭐 딱히 문제될 건 없지.'

개인적 호불호가 있다면 내 입장에서는 슈리는 안좋은 이미지가 있었다. 험하게 자란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내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엄청 맞았지.'

여자에게는 안 그러면서 남자 상대로는 손이 험하게 나가더라. 그렇다고 손찌검을 하는 정도가 아니고 진짜 주먹을 휘두르기에, 여러 남자 동료들과 트러블을 자주 일으켰다.

그리고 그 트러블은 소위 '맞다이'라는 형태로 구현되었다. 슈리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자기보다 체구가 두 배는 되는 거한을 상대로도 얼굴을 맞아가면서도 주먹질을 해대는 악다구니였다.

'일단 피하자.'

양아치같은 아이지만 환경이 그러했을뿐 심성이 나쁜 건 아니다. 성격이 불같이 지랄맞기는 하지만 쓰레기는 아니다. 나중에는 폭력 전과가 쌓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뭐하세요?"

"당신 생각."

"아닌 것 같은데요."

유나는 자연스럽게 내 맞은편에 마주앉았다. 나는 유나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싶어 자세를 바꿨다.

"뭐 궁금한 거 있어요?"

"교수님 마력속성론 강의 듣고나서 청화 님 말씀이랑 비교해보니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서요. 성주는 그럼 테라의 마력을 쓰는 건가요, 아니면 그도 아닌 별개의 초능력을 쓰는 건가요?"

"...후자에 가깝죠? 마력이라는 건 결국 테라의 고유 에너지니까. 또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가 자기가 쓰기 편하게 마력을 오염시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해했어요, 감사합니다."

유나는 노트에 내 설명을 끄적이며 수첩을 집어넣었다.

"용건은 그걸로 끝?"

"궁금한 거는 해결했고, 어떻게하면 좋을 지 몰라서 부탁할 거 하나 있어서요."

유나는 마도기어를 통해 뉴스 영상을 하나 꺼냈다. 그곳에는 미국 펜타곤의 기자회견장 앞에 선 오라클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올해 11월 말. 세계가 멸망할 지도 모릅니다.

소행성 충돌. 천문대와 나사에서 관측한 내용에 따르면, 명왕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었다.

"이거 세계 멸망의 신호탄 같은 거죠?"

"......네."

역시 여신이다. 유나는 성주가 오기 시작했다는 걸 은연중에 깨달아버린 듯 했다.

"그래서 부탁드리려고요. 꼭 세계를 구해주세요."

"원래 여신이 세계 평화 임무를 부여하는 건 용사님에게 하는 건데."

"누구든 히어로가 될 수 있죠. 설령 악의 조직 간부였다고 하더라도. ...그렇죠?"

유나는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유나의 어깨를 꾹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히어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계를 구해볼게요."

나와 창염, 그리고 이 세계를 살아가는 모두를 위해.

그리고 나는 유나를 떠나 보낸 뒤, 내 진짜 목적지에 도착하여 결계를 쳤다. 사전에 약속을 했던 교수님, <프로페서> 히메지 히카리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두 팔을 벌렸다.

"어서 오세요, 단장님!"

"네, 네. 바로 연구 시작할까요?"

"지금 바로 해도 되나요?"

[물론.]

나는 괴인형이 되어 히카리가 마련한 캡슐의 안으로 들어갔다. 이걸로 내 마력패턴이 히카리에게 모조리 읽혀지겠지만,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럼 시작할게요."

위잉, 철컥.

캡슐의 문이 굳게 닫혔다. 나는 전신을 감싸는 보호막을 해제하고 전신의 긴장을 풀었다.

이 연구가 끝나는 그 날.

지구상에 숨은 히드라와 아지다하카의 본체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바로 알게 되리라.

"흐흐, 드디어 단장님을 직접 연구한다, 흐히힛, 흐헤헤헤헤헷! 냐하하하하하핫!!"

위이이이이이이잉.

전기톱 소리가 연구실에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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