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2화 〉1부 16장 17
푸른 하늘의 데스디나스에서 정령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첫번째, 간부 상태에서 전력으로 활용하는 방법.
대표적인 예가 초장부터 아군으로 합류하는 김펜릴이 있으며, 스팟 참전을 통해 간부들은 자신의 힘을 어필하고 주인공의 설득-여러 방법-에 의해 동료가 된다.
물론 이 상태로 계속 나아가면 성주에 의해 세뇌될 것을 알기에, 간부들은 창염의 피닉스처럼 소멸을 선택하고 아군 동료의 무기가 되거나 마력을 각성시키는 코어가 된다.
간부로 계속 존재한다면 한 명의 인격체로서는 소멸하게 된다.
그리고 두번째, 정령으로 각성시켜서 전력으로 활용하는 방법.
정령으로 각성하고 난 이후에도 진엔딩에 돌입하지 않는다면 순수한 전력으로는 활용이 가능했다.
간부때에는 성주와 만나면 바로 세뇌되었지만, 정령으로 각성한 덕분에 성주의 세뇌빔으로부터 어느정도는 버틸 수 가 있었다.
난이도에 따라 N분 이상 경과시 정령들이 적으로 돌아선다는 조건이 붙어있었고, 엄연한 히로인이었던 정령들이 적으로 돌아서는 것은 그 누구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간부들을 정령으로 각성시킴과 동시에, 파트너가 되는 히로인과 싱크로하도록 만들었다.
싱크로를 하면 세뇌를 피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히로인을 아군으로 영입하고, 간부들을 정령으로 만드는 조건을 거친 진엔딩에 들어서면서 왜 싱크로를 그리도 권장했는지 깨달았다.
이유나가 싱크로하지 않은 정령들을 흡수하더라.
진엔딩에서 성주는 최후의 발악으로 이유나를 납치하여 제물로 삼았다.
신화에 이르지 못한 정령들은 유나에게 흡수되었고, 성주는 그 불안정한 에너지를 매개체로 이계신을 소환하는 포탈을 열었다.
- 정령들이 진엔딩에서 전력외로 이탈한다고? 장난하냐? 그러면 무조건 싱크로 해야한다는 거잖아?
많은 유저들은 공분을 일으켰다. 열심히 키워왔던 정령 히로인들이 단독으로는 살아남지 못하고, 무조건 다른 이들과 싱크로를 해야만 살아남는다니.
하지만 싱크로를 했을 때 합법적으로 1:2 쓰리썸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고 분노는 수그러들었다.
- 어떻게 2인 이상과 할 수 있냐! 우리는 순애계다!
1:1 순애를 주장하는 이들은 유나가 정령들을 위해 싱크로 '해줬다'.
자신의 몸을 육체를 포기하고 정령을 위해 기꺼이 내어줬으며, 이 경우에는 마지막 순간에 신화에 이른 정령이 유나의 몸에서 제정신을 유지한 채 튕겨나왔다.
고로, 진엔딩에 돌입하는 유저들의 암묵적인 룰은 '전원 싱크로'였다.
10명의 히로인과 6명의 정령.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데 많은 플레이어들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제작사 측에서 최적의 파트너로 지정한 조합을 모두 발견해냈다.
그리고 유일하게 조합에서 배제된 정령, 창염의 피닉스는 어떤 식으로 싱크로를 하는가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했다.
- 피닉스 루트는 진엔딩 조건이랑 뭔가 연관이 있는 거 아냐?
관련은 있었다. 피닉스 루트를 타고 진엔딩을 밟으면 트루 엔딩, 여신 이유나 전투가 나오니까.
- 피닉스랑 싱크로하려면 뭔가 특별한 조건이 있는 거 아냐?
후안의 카페 레시피를 딸기로 가득 채우면 피닉스가 직접 찾아오더라.
적어도 원작에서는 그랬다.
* * *
"뭔가 엄청 난잡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잠깐만. 그러면 정리해보자."
내 설명을 들은 덕배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담배가 있었다면 바로 담배에 불이라도 지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성주가 이유나를 폭주시켜서 정령들을 흡수한다?"
"네."
"기껏 간부에서 정령으로 각성시켰는데 살아남지 못해?"
"예."
"싱크로 해야만이 이유나에게 흡수를 안 당하고 살아남을 수 있어?"
"그렇죠."
덕배는 떫은 얼굴로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그럼 씨■ 이유나라는 애를 어떻게 처리해버리면 안 되냐? 아무리 걔가 여신이고 뭐고 해도 네 목숨보다는 중요하지 않을 거 아냐."
"살아가는 걸 포기하는 순간 바로 꼴까닥. 그릇으로서의 이유나가 작동하기 시작하고, 그러면 바로 정령들을 흡수하게 돼요."
그래서 지금까지는 일부러 모른척,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신서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괜히 다른 히로인들이나 간부들, 중요 인사들에게 내가 유나를 신경쓰고 있는 걸 들키면 뭔가 문제가 생길까봐.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려고 했던 거죠."
"그럼 지금은 왜?"
"슬슬 안전장치가 마련되었으니까."
제 1 요인, 선의철 몰락.
제 2 요인, 모택평 몰락.
제 3 요인, 뉴클리언 퇴치.
2020년 시점에서 유나를 흔들 수 있을만한 요인은 국내 현황이나 국제 사회의 문제밖에 없었다. 그 모든 불안 요인들이 제거되었기에 나는 유나에게 접근하여 유나에게 모든 진실을 밝혔다.
제발 살아달라고.
"그러다가 이유나가 콱 죽어버리려고 하면?"
"유나는 그 정도로 비점이 낮지 않아요. 1년동안 멸시받고 천대받아도 끝까지 버티고 버텼던게 유나예요. 정신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답니다."
그러니 유나가 외적으로 죽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신서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였고, 그때문에 나는 모든 이목을 서울로 집중시켰다.
"유나가 죽으면 전부 멸망, 리셋. 오케이?"
"오냐. 그런데 이해 안 가는게 하나 있어."
"뭔데요."
"니들 일곱 명이 전부 싱크로하면 끝난 거 아니냐? 그런데 왜 여신인가 뭔가 하는게 튀어나와."
"밸런스 때문이죠."
나는 일곱 불꽃을 적절하게 회전시켰다.
"이계신을 담을 그릇은 일곱 정령의 마력이 밸런스를 갖추고 있었어요. 그게 깨진 순간, 이계신은 유나에게 온전히 빙의를 하지 못합니다. 외계의 존재를 불러오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만 불안정해도 마력이 폭주해버려요."
나는 붉은 불꽃을 가운데로 옮겼다. 유나의 얼굴이 붉은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미래에서 창염의 피닉스가 소멸하고 창염의 힘을 얻은 신관은 최후의 전투를 벌여요. 하지만 유나에게 힘을 일시적으로 빼앗겨요. 창염의 힙을 흡수당한 거죠."
그리고 나는 다른 여섯 불꽃을 유나의 주변에서 떨어뜨렸다.
"하지만 다른 속성의 정령들이 싱크로를 한다면? 하나라도 신화에 이르러 이계의 여신인 이유나와 동격을 이룬다면? 흡수되지 않겠죠. 그러면 그릇을 유지하고 있는 일곱 속성도 무너지지 않고. 그런데."
나는 유나의 몸에서 붉은 불꽃을 빼내어 그 크기를 키웠다. 다른 속성을 알리는 불꽃과 똑같은 크기까지.
"7명 모두가 싱크로를 해버렸어요. 그게 오히려 화근이 됐죠. 창염의 힘을 빼앗지 않은 덕분에, 유나의 그릇은 안정된 원형을 유지한 상태로 남아요."
"거기에 이계신이 빙의를 하는 구만."
"정답."
웃픈 이야기였다.
그리고 창염의 피닉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희생하여 스스로 싱크로를 포기하고 힘을 주인공에게 넘겼다.
유나가 이계신으로 각성하지 못하도록 밸런스를 망가뜨리는 역할.
그게 창염의 피닉스가 죽음으로써 부여받은 플롯 상의 운명이었다. 나는 살렸지만.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너 살아남는 김에 모든 정령들을 싱크로 시키겠다 이거냐? 언제는 너 목숨 하나만 건사하면 된다면서 난리치더니."
"...겸사겸사죠?"
천가을부터 그랬던 것처럼, 창염은 불행한 운명이 확정된 이들이 모두 행복하게 되기를 바랐다. 모든 정령들을 각성하고, 최후에는 싱크로하는 미래.
그 결론에 이르면 창염은 나와의 관계를 바꾸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맨 마지막에 신관이라는 놈 만나러 갈 생각이냐?"
"......?"
"아니, 순서상 너 마지막에 싱크로 한다며. 그러면 일단 다른 애들 싱크로 시켜놓고 너는 마지막에 신관이랑 싱크로 하려는 거네. 혹시나 다른 정령들이 신관이랑 싱크로할까봐."
"그게 그런.... 아니, 어찌보면 맞나."
싱크로하려는 대상이 주인공이었던 '나'라는 점에서 미묘하게 다르지만, 덕배의 말은 어찌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럼 그 신관이라는 놈부터 찾아! 그리고 삽질하지 말고 싱크로 해, 싱크로! 그럼 다 끝나겠구만! 싱크로하면 지구 멸망급의 힘을 가진다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알아요? 유나랑 달리 걔는 어디있는지 몰라요. 미국에 있는 거 말고는."
"그럼 당장 미국으로 날아가지 그러냐. 너 이상하다? 꼭 걔 만나기 껄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 걔가 네 이거냐?"
덕배는 음흉한 얼굴로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나는 절로 짜증이 치밀었다.
"누가 그렇대요?"
"그럼 이렇게까지 삽질할 이유가 없는데.... 뭐 됐다. 또 구질구질한 이유 붙여가면서 땅파고 들어갈테니까. 흐흐, 아. 이유 알겠다. 루프인가 뭔가 돌면서 맨날 여자애들이랑 희희덕거리다가 마지막에는 남자애한테 푹 빠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구만!"
"...태양이 당신 머리를 저주할 거예요."
"콱 여자애들 속에 파묻혀서 복상사나 해버려라."
나와 덕배는 서로 덕담을 주고받은 뒤,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그래도 얘기를 하니까 속이라도 편하네요. 여전히 머리는 더럽게 아프지만."
"네가 알아서 하면 되는 일 아니냐. 원하는대로 여섯 정령 모두 싱크로하고, 너도 마지막에 싱크로하고, 그러고 이유나라는 애도 구하고. 그럼 만만사 오케이겠네."
"그게 말처럼 쉬워요?"
"그럼 처음부터 그런 길을 걷지 말던가."
"한 번 난이도 설정하면 중간에 바꾸지 못하는 똥겜이라서 안 됩니다."
"그럼 처음부터 깝죽대지말고 난이도 설정을 제대로 했었어야지. 괜히 다 살리겠다고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어놓고는. 쯧, 그래. 알았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라. 네가 얼마나 전 부인들 아끼는 지 잘 알겠으니."
덕배는 손사레를 치다가 의자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래서 이렇게 계속 밍기적거릴테냐? 응?"
"어차피 원탁에서 공식 선언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못해요. 한국 내에서 해야할 일도 있고. 백희아 아가씨네 섬에 가서 2박3일 바캉스 갈 거니까, 일단 내일부터 계속 휴식."
"누구누구 오는데?"
"음...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성주만 아니면 돼요."
내 말에 덕배는 뜨악한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그 냥냥거리는 김펜릴인가 뭔가하는 것도 오냐? 어휴, 지난번에 보니까 아주 소름끼치더라. 그, 뭐라더라...쑥덕?"
"...어디서 주워들어도 이상하게 주워들어먹네. 뭐, 본인이 적의를 가지고 오는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오히려 환영이네요. SS급이 족히 넷하고도 더 모일텐데, 그 장소에 혼자서 올 자신이 있으면 얼마든지 오라고 하죠."
"그러다가 성주까지 받을 기세네."
"성주는 패스. 성주 참가한다고 하면 그냥 바캉스 엎어버리지 뭐하러 성주를 받아요."
성주가 바캉스에 온다? 그러면 전부다 세뇌되어서 지구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
"쉴 때는 쉬자고요. 마음껏. 앞으로 엄청 바빠질테니."
"그런데 나는 왜 못 쉬게 붙잡아서 이런 얘기하고 그러냐."
"그거야 당신은 내 이야기 들어주는게 당신 역할이니까요. 오늘 한 이야기는 어디가서 이야기하지마요. 안그러면 애들 유나 신경쓴다고 오히려 유나한테 스트레스 줄게 뻔하니까."
현재 유나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지극히 한정되어있다. 유나와 직접 마주할 일이 없거나, 혹은 알더라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원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바캉스가 끝나고 나면 바로 다시 움직일 거예요. 은하대학교랑 북한 땅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난 뒤에, 정령 잡으러 가는 거죠."
"그게 그렇게 쉽게 될까? 원탁에서 선언하고 나면 더 숨어들 거 아냐."
"바퀴벌레는 결국에는 약뿌리면 튀어나오게 되어 있어요. 죽이지는 못해도 직접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그럼 그 때, 쾅."
원탁에서 전세계를 들쑤셔놓는 순간, 양지로 나온 간부들을 잡으러 다니면 그만이다.
"그러냐. ...그러면 이번에야말로 그거 잡으러 가냐?"
"그거 뭐요? 고래요?"
"아 씨. 장난치지 말고."
덕배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경멸했지만, 나는 덕배의 그런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예. 잡으러갑니다."
나는 일곱가지 색깔의 불꽃 중, 갈색의 불꽃을 집어들었다.
"지륜의 히드라, 다음 타깃이에요."
"으아아아! 드디어 지속성!!!"
"근데 히드라 각성시킨다고 당신 강화시켜준다고는 안 했는데."
"야 이 ■■■■■!!"
덕배는 눈을 희번득 뜨며 나를 죽이려고 들었다. 나는 절로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고 손사레를 쳤다.
"알았어요, 알았어. 근데 히드라가 당신 마음에 들어할 지 모르겠네요. 워낙 취향이 확고한 애라서."
"왜? 스킨 헤드는 싫다냐?"
"대머리가 싫은 건 아니고, 걔가 지륜 시절부터 취향이 독특해서 말이죠."
덕배와는 정반대의 속성을 선호하는 지속성 정령, 지륜의 히드라.
"혹시 오네쇼타라고 들어봤어요? 푸흐흐."
"......."
덕배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날 심야.
나는 덕배를 잡고 온갖 이야기를 나눴고, 아침해가 뜨고 나서야 이야기가 끝났다.
그리고 백희아로부터 연락이 왔다.
백영도.
백가의 개인 소유 섬이자 지도에도 없은 섬.
25일은 모두가 그곳으로 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