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0화 〉1부 16장 15
8월 24일.
대한민국이 드디어 옛 북한 땅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하여 국제기구에서 인정을 하게 되었다.
협회의 요직에 앉은 집정관의 공이 컸고, 뉴클리언의 존재가 오라클에 의해 공언되면서 석하랑의 공적이 확실시 되었다는 것이 컸다.
사실, 그 누구도 석하랑이 증언한 SS급 괴수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백희아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던 이들은 백희아가 기습 작전을 펼친 것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며 그 공적을 깎아내렸고, 실제로 작전 개시 시각에 대하여 사기를 친 대국민 기만에 대하여 사과하라고 연일 압박을 넣었다.
물론 그런 자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북한 땅을 확보한 것에 대하여 열광하고 있었고, 축제의 분위기를 꺼트리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축제의 한 가운데.
드디어 사고가 터졌다. 한국이 한반도 전체에 대하여 주권을 행사하는 것 이상으로 더 큰 가십거리가 대한민국 전체를 휩쓸었다.
섹스 스캔들.
연예인들이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는 것 만으로도 검색 포털에 하루종일 오르락 내리락 하건만, 그것이 섹스 스캔들-하물며 연예인 이상 가는 존재인 S급 히어로들이라면 사태는 심각할 것이다.
나는 북한 땅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자원과 가치 활용을 전부 억누르고 모든 뉴스에 얼굴을 띄운 망할 제자놈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승형.
<괴수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명이 붙었고, 이승형의 섹스 스캔들 상대는 다름아닌 S급 사도 가루라였다.
나는 둘이 잠적해있는 이승형의 오피스텔을 습격했다.
* * *
"죄송합니다, 스승님."
이승형은 나를 보자마자 바로 오체투지하며 죄를 시인했다. 비겁한 변명을 하지 않은 건 좋았다. 적어도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니."
"...죄송합니다."
인간들 틈바구니 속에서 살면서 조금은 정숙해진 가루라가 이승형의 옆에 꿇어안자 조신한 자세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모습은 나를 판박이 닮은 금발갸루지만, 이승형의 영향 덕분인지 옷은 상당히 젊잖은 복색이었다.
"그래서 일단 확인해봅시다."
나는 그들에게 얽힌 섹스 스캔들의 전말에 대해 자세하게 파헤친 기사를 꺼냈고, 그들의 면전에서 기사를 요약해 읽어내려갔다.
"8월 23일, 대전 인근 국도에서 무인 모텔로 들어가던 스포츠카 한 대를 파파라치가 발견. 마침 가지고 있던 마도기어로 차를 확인해보니 이승형의 차였고, 그 뒤를 쫓아 옆방으로 들어갔더니 아힝응헹한 소리가 들리더라. 그런데 벽에 송곳으로 구멍이 뚫려있었고, 거기를 마도기어로 촬영을 시도하니 이승형이 가루라를 상대로 침대 위에서 허리를 흔들고 있더라. 맞죠?"
"예...."
"쯧."
나는 절로 한탄이 나왔다. 내가 혀를 차니 둘은 더 기가 죽어서 고개가 움츠러들었다.
"먼저 질문. 파파라치가 어떻게 마도 기어를 가지고 있었대요?"
"그...러시아 가면서 뿌렸던 시제품 마도기어 10개 있지 않습니까. 라스푸틴 전이 있던 전 날, 특사단 자격으로 모스크바로 날아가면서 이목을 끈다고 방송을 했던 때. 그때 이벤트로 뿌렸던 걸 받은 게 하필 저희를 뒤쫓던 파파라치였습니다."
"마도기어 홍보는 엄청 잘 되겠네요. 어쩐지 은유하가 별반 간섭을 안하더라."
은유하는 이승형의 이미지를 보존하기보다 마도기어의 촬영 성능 홍보에 더 열을 올렸다. 나는 잠시 은유하에게 문자를 보내 사건의 전말에 대해 어떻게 되었는지 파악하고자 했다.
[한국 국내 서버에 올라온 영상들은 제가 다 지우고 있어요. 그런데 해외 서버나 딥웹으로 들어간 영상들은 지우는데 시간이 좀 걸려요. 솔직히 이런 영상, 완전히 지우는 건 무리예요.]
나는 히카리에게 자문을 구하려다 말았다.
'동경하던 연예인 오빠가 연애설만 터져도 돌아서는게 빠순인데 하물며 섹스스캔들이니.'
나는 히카리에게 심심한 위로의 메세지를 전했고, 히카리는 그저 이모티콘 하나만 달랑 보낸 것으로 제 심사를 표현했다.
ㅠ.
"어쩔래요? 당신 덕분에 지금 한 소녀팬이 눈물을 폭포수처럼 흘리고 있어요."
"어, 저한테 아직 팬이 있습니까? 선의철 몰락한 이후로 제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었습니다만...."
"적어도 한 명은 골수팬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네요."
"...정말 송구한 마음밖에 없습니다."
이승형은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영상을 다시 돌려보며 몇 번이고 확인했다.
이승형과 가루라가 확실했다.
"마도기어 성능이 너무 좋게 제작해서 미안해요. 화질이라도 안 좋으면 본인이 아니다고 잡아떼기라도 하는데, 이건 뭐."
실제로 기사에 첨부된 영상은 진즉에 삭제되었지만, U튜브에 19금으로 올라온 둘의 영상은 송곳만한 구멍으로도 안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하악! 더, 더 세게!]
[크읏, 쌀게!]
[저, 저 죽어요! 아하악!!]
둘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다 보일 정도로 화질은 선명하고 깨끗했다.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컨셉 촬영을 하는 블루레이 카메라라고 의심이 될 만큼.
"엄청 열심히 했네요. 그럼 다음 질문. 가루라, 당신 옆방에 사람 있는 거 못봤어요?"
"그, 그게, 너무 좋아서 그만...."
"떡치다가 가버리면 충분히 못볼 수 있지. 인정합니다."
영상 속 잠깐 스친 가루라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해보였다. 하필이면 또 렌즈를 향해 혀를 내민 얼굴은 아헤가오의 정석이었다.
'보고 치고 있는 놈들 많겠는데.'
나는 가루라가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싶어서 더 놀랄 지경이었다. 나중에 창염도 이런 표정으로 가버리지는 않을까 잡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 스승님."
"왜요?"
"저희 혼내러 오신 거 아니셨습니까?"
"갑자기 무슨?"
이승형은 쭈볏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저희를 혼내러 오신 것 같지는 않으셔서."
"아무렴. 제가 왜 당신들을 혼내요? 아, 혼낸다기보다는 조언을 하러 온 거죠. 흠흠."
이승형과 가루라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노하우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많이 걸려봤다.
'주인공과 히로인들 따라다니는 파파라치가 오죽 해야지.'
집행관의 함선이자 기함 데스디나스의 침실 이외에서 하는 행위는 거의 절반 이상이 파파라치들의 카메라에 걸릴 정도였다.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람들이었으니.'
그 대부분 유나랑 하는 행위였고, 간혹 야외 플레이를 선호하는 히로인과 하다가 지금처럼 영상까지 찍히기도 했다.
"일단 법적으로는 당신들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문제가 있다면 남의 행위를 찍은 파파라치가 잘못한 거죠."
"예. 법적조치는 취한다고 했습니다."
"그건 백희아 아가씨가 여러모로 도와줄 거예요. 유성에서도 도의적인 책임감으로 도와주고 있고. 문제는 이제 당신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인데."
히로인들이 AV배우도 아니고, 자신의 성행위가 담긴 영상이 바깥에 퍼져나가는 건 상당히 정신적 충격을 유발하게 된다.
"죄, 죄송해요, 주인님. 제가 잘못, 제가 죽일, 흐으윽, 흐끅."
사도인 가루라마저도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괴로워하지 않는가.
이미 몰래카메라를 퍼뜨린 자는 청화단에 의해 검거되어 서울에 억류되어 있지만, 그가 퍼뜨린 영상으로 인한 충격은 고스란히 둘에게 전해지고 말았다.
"저, 저 어떻게 해요? 저 때문에 주인님이 지금 욕보기에 생겼, 흐끅!"
"아, 그쪽을 신경쓰는구나."
가루라는 자신이 내 몸과 거의 똑같은 몸이 외부에 유출된 걸 신경쓰는 것 같았다.
나야 이미 천가을의 변신, 은유하의 인형 등으로 별 신경은 쓰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가루라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이런 미래는 예견하고 있었지만, 가루라는 그런게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이참에 그 부분을 가루라에게 확실히 언급하고자 했다.
"애초에 당신이 저와 거의 똑같은 얼굴과 몸으로 이승형이랑 천가을이랑 쓰리썸 할 때 부터 글러먹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그건...."
"외부에 유출되는 거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따지고 들거나 질책을 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이 몸은 당신과 확연히 차이가 나니까."
나는 허리를 펴며 가슴을 열어젖혔다. 이승형은 불편한 듯 고개를 돌렸고, 가루라는 고개를 숙이면서도 내 가슴을 향해 눈을 흘겼다.
"제가 하고싶은 말은 이거예요.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유출 한 놈이 잘못이지 결코 당신들이 잘못한게 아니니까 죄지은 사람처럼 살지 말라."
파파라치들에 의해 가장 많이 유출을 당했던 샤오린(원작)이 다른 히로인들에게 언급했던 말이었다. 그 말을 꺼낸 이가 샤오린이라는 게 조금 어불성설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시라 그 말이예요."
"스승님은 만약에 이런 상황이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이승형이 반대로 내게 물어왔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노출된 것보다 가루라가 노출된 것을,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간접적으로 입을 피해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푸흐흐, 가루라 때문에 청화까지 그렇게 될까봐 걱정하시는 건가?"
"저희가 잘못하는 바람에...."
"그러니까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정 신경쓰이면 이렇게 하면 되죠."
나는 원작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연히 누구인지는 떠올랐지만, 나는 고개를 두어번 가로젓고 일단 말을 이었다. 이들에게 누구에게 했는지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결혼한다고 하세요. 저는 그 때 그렇게 했는데."
"스승님?"
"주인님?"
둘은 동시에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 다 결혼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으면서도 왜 저런 반응인 걸까.
"왜요? 뭐 문제있어요?"
"혹시 이미 그러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주인님, 말씀만 해주세요. 제가 본체로 잠깐 돌아가서 다 태워버릴게요."
"...말실수. 저라면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였어요. 일단 그 문제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당신들의 문제로 돌아가도록 하죠. 결혼하라는 말은 좀 오버고, 그래서 이제 평생 숨어다닐 것도 아니잖아요?"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숨어 살기에는 여러모로 이슈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대중들의 앞에 얼굴을 비춰야 할 몸들이었다.
"그러니까 오히려 당당하게 앞에 나서버려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하면서, 호감을 가지고 만나가는 과정이었으니 예쁘게 봐달라. ...뭐, 이미 영상을 본 사람들은 끝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당당하게...."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이승형은 뭔가 큰 결심을 한듯했고, 가루라도 이제는 조금 진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 제 말은 여기까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열었다. 반대편에서 대포같은 카메라로 우리 쪽을 촬영하고 있지만, 결계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둘이 알아서 잘 이겨내겠지.'
악의 가득한 미연시 기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지간한 멘탈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부디 둘이 강한 정신력을 가지기를 바라며, 나는 서울로 귀환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신서울에서 날아오른 나는 금방 서울의 청화단 아지트에 도착했고, 아지트의 옥상에는 문제의 유포범을 구속된 채로 붙잡혀있었다.
"수고했어요. 하기 싫었을텐데."
"아무렴 가루라한테 그랬는데 용서할 수 없지."
청송으로 변신했던 가을은 변신을 풀었다. 파파라치의 아랫배에는 가을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기하학적 하트 문장이 분홍빛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놀랍게도, 둘의 영상을 처음 퍼트린 사람은 여자였다.
영상의 최초 유포자를 역추적하여 거슬러올라간 결과, 나는 바로 눈앞의 여자가 범인임을 알아낼 수 있었다.
"단장님, 보고드리겠습니다."
지화는 유출범으로부터 뽑아낸 정보를 정리해 내게 간략히 읊었다.
"파파라치는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이며, 영상을 가지고 협박을 할 지 아니면 팔아버릴지 다투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파일을 업로드 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U튜브 개인 채널에 올린게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조회수는 엄청나게 빨아당겼겠네요."
"영상 내려가기 전에만 4천만 조회수를 찍었으니까. 그대로 뒀으면 1억뷰는 훌쩍 넘겼을 걸?"
불법으로 퍼져나간 영상의 조회수만 하더라도 족히 지구의 1/4는 봤을 법한 재생수였다.
"뭐.... S+급 이능력자들의 성행위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일반인도 알 수 있는 교본같은 영상이니 다들 궁금해하는 건 인정하지만...."
"너 엄청 드라이한 반응이다? 나같으면 당장에라도 모두 엎어버렸을텐데."
가을은 소름이 끼친다는 듯 온몸을 떨었다. 유출범의 전신에 닿은 촉수들까지 오들오들 떨었다. 가을은 그리 싫어하는 촉수까지 꺼내며 유출범을 위협해댔었나보다.
"뭐.... 미래에서 저한테는 익숙한 일이어서?"
히로인과 행위한 동영상이 퍼지는 순간 정신적 디버프가 걸리기도 하고 버프가 걸리기도 하는 미친 미연시덕분에 나는 이제 무덤덤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