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9화 〉1부 16장 14
8월 23일.
나는 내가 자주 연락과 만남을 취하고 있는 여신으로부터 이상한 연락을 받았다.
- 요즘 분위기 전환을 위해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는데 누군가 자꾸 뒤따라 오더라.
나는 당연히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여신에 대한 스토킹은 중대 범죄 사안으로, 지구 전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였다.
고로, 나는 유나에게는 비밀로 하고 유나의 뒤를 밟았다. 다행히 햇빛은 쨍쨍하여 내 움직임을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옥상을 숨어다니며 유나를 스토킹하는 이가 없나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왠 금발에 태닝을 한 선글라스 양아치가 나타나 어슬렁거리며 유나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검은 정장, 금시계, 금목걸이에 이르기까지 아주 그 행동이 껄렁하기 그지 없었다.
저걸 어떻게 조질까. 백희아에게 연락을 넣어 히어로를 동원할 지, 아니면 은유하에게 연락을 넣어 유성 그룹의 힘을 동원할 지 고민하던 그 때.
'저건 나밖에 못 조지겠네.'
나는 신서울 한복판을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는 금발 헌팅남의 정체를 깨닫고 바로 옥상에서 점프했다.
화륵.
날개를 펼쳐, 인간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속도로, 괴인화로 몸을 바꾸어, 금발 양아치의 머리를 붙잡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큭, 무슨-?!"
나는 빛처럼 날아 금발 양아치를 서해를 향해 집어던졌다. 그는 금빛으로 반짝이며 서쪽으로 멀리 날아가, 이름도 모를 섬 한복판에 처박혔다.
'하여튼.'
나는 유유히 날개를 펄럭이며 금발 양아치가 날아간 곳을 향해 날아갔다. 어느새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금색의 장갑을 꺼내던 금발 양아치는 나를 보고 마력을 해제했다.
"어, 음."
"이보세요."
나는 인간형으로 돌아와 금발 양아치의 앞에 섰다. 선글라스 아래의 금빛 눈동자는 내 눈치를 보느라 좌우로 굴러가고 있었다.
"카르나 씨?"
"......."
금발 양아치, 카르나는 한숨을 푹 쉬고 몸에서 마력을 방출했다. 갈색의 짙은 피부는 여전한 상태에서, 흰 와이셔츠에 검은 핫팬츠라는 과감하기 짝이없는 옷차림의 카르나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피닉스여. 무슨 일인가?"
"스토킹범을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잡은 거죠."
"저런, 우리 사이에 뭔가 큰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군."
카르나는 마도기어를 조작해 내게 뭔가를 튕겼다. 나는 그걸 받아들고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카르나는 내게 명함을 건넸다.
"헌터길드 <유하>?"
"You, Hi. 새로운 헌터, 당신은 언제나 환영! 만나서 반갑다는 의미지."
전자 명함은 연락가능한 이메일이나 SNS ID 등이 적혀있었다. 코드를 통해 접속해 들어가니, 그곳에는 당연히 US그룹에서 운영하는 헌터 길드가 떡하니 나타났다.
"좋아요. 은유하가 헌터 길드 먼저 선점하려는 것 까지는 인정. 그럼 이건 뭐죠?"
나는 명함에 박힌 카르나의 프로필을 가리켰다. 남성형의 모습으로 선글라스를 낀 그는 'US길드 전속 프로듀서 [핫산]'이라는 이름의 명함을 가지고 있었다.
"훗, 유하네 길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이 이름을 추천하더군. 핫산."
"...뭐, 인도계 이름으로 이상한게 아니긴 한데."
이름에서 오는 어감은 뭔가 금발 양아치보다는 비운의 외국인 노동자에 가깝건만, 카르나는 핫산이라는 이름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나보다.
"그래서 싹수 노란 여자 아이돌 낚고 다니셨어요?"
"...흠흠."
카르나는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뭔가 할 말이 있어보이는 눈치였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말해보라고 손을 흔들었다.
"앞으로 헌터 사업이 활발해지려면 많은 이능력자들이 헌터로 각성을 해야하지 않겠나?"
"네."
"그러면 기존에 있던 이능력자들은 제 몸값에 대해 잘 알고 있을터. 그런 경력직은 길드원으로 받으면 괜히 몸값이 비싸기만 하니, 경력없는 신입을 뽑자는게 유하의 제안이었지."
"그래서요."
"이왕 뽑는 거 재능있는 이로 뽑으면 되지 않겠나. 그래서 내가 유하와 전국을 돌며 눈여겨 본 이들이 있었어. 다들 재능이 뛰어난 것 처럼 미모가 출중하더군. 그래서 그들을 꼬셨지."
"뭘로요?"
카르나는 손을 턱에 받치며 씩 웃었다.
"얼굴로. 물론 오해는 마라. 이 여체는 오직 너의 것이니. 나는 오로지 핫산의 몸으로 스카우터 역할을 하고 다녔다. 이미 나와 가계약을 맺은 광속성 이능력자가 A급만 무려 10명이 넘지."
"계약도 맺고 밤의 가약도 맺었겠네요."
"......그건 오해다."
"당신 한국에서 아이돌 먹은 거 제가 다 아는데 어디서 거짓말을 치는 거예요?"
"쳇. 그러길래 빨리 박아주던가 해야지."
카르나는 혀를 차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나는 핫팬츠를 벗어던지려는 카르나를 막아세웠고, 잠시 카르나와 힘싸움을 벌였다.
"미쳤어요? 백주대낮에 어딜 벗으려고 해요?"
"걱정마라! 태양이 반짝이는 동안은 나나 너나 안보일테니! 흐하하, 빛이여!"
"이 비치같은 정령이!"
퍽.
나는 카르나의 배에 주먹을 찔러넣었고, 카르나는 배를 움켜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흐, 흐흐, 피닉스여, 너는 이런 취향인가...?"
퍽. 퍽퍽.
나는 카르나를 때려 기절시켰다. 카르나는 기절한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정신을 차렸고, 겨우 진정한 듯 보였다.
"아쉽도다. 모처럼 여기서 하는가 싶었건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야외 플레이는 싫은가? 햇빛 아래에서 하니까 더 잘 되던데. 사정량도 더 많고."
"...태양빛을 당신의 비아그라로 쓰지 마요. 아무튼, 아무리 취미라고는 해도 너무 많이 박고 다니는 거 아녜요? 그렇게 싸고 다녀서 성과가 있었어요?"
"어. 다들 나와 행위를 하면서 광속성 이능력자로 각성했다. 질내에 사정을 하면서 마력을 넣어주니, 나를 무슨 하늘에서 온 사자를 보는 듯 하더군."
"......."
질내사정을 당하면 이능력자로 각성할 수 있다고 사기를 친 게 분명하다. 카르나도 눈이 있으니 광속성 A급의 자질을 가진 존재만 꼬셨을테고, 그들을 얼굴과 말빨로 낚아서 원나잇에 성공했을 터.
"그래서 영입율은 몇 퍼센트?"
"100%. 네가 아까 방해만 하지 않았어도 딱 17번째였다. 쯧, 한국에 저런 보배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거 여신이에요."
"......."
블라블라.
나는 유나에 관한 사정을 카르나에게도 알렸다. 카르나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굳게 끄덕이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니까 내가 유나 여신님과 싱크로를 하면 너를 이길 수 있다는 얘기인가?"
"이것도 누가 광속성 아니랄까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 보게."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는 거야. 크으, 어쩐지 한눈에 보자마자 아래가 쿵쿵 울리더니 이유가 있었군."
"상대는 미성년자예요."
"음? 1999년에 성주가 떨어뜨리고 간 존재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못해도 스물을 넘었지. 인큐베이터 안에 있던 시기도 따지면 성인이지 않은가? 흐흐흐."
카르나는 음흉한 얼굴로 헤실거렸다. 나는 유나를 노리려는 어두운 손길을 찰싹 때려 제압했다. 카르나는 손등을 비비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유나가 예쁘기는 하지만, 괜히 건드리지 마세요. 만약에 당신이 유나랑 사랑에 빠졌는데, 당신이 다른 여자랑 놀아나서 유나가 상처를 입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떻게 되는가?"
"유나가 눈에서 레이저빔을 쏴서 지구를 사분오열시켜버릴 거예요."
정확히는 유나의 정신적 죽음에 따라 이계신이 강림하는 형태일테지만.
"음.... 아쉽군. 유나 양과 좀처럼 깊은 관계를 맺어보는 건 어떨까 싶었건만."
"당신은 유하랑 이미 깊은 관계잖아요? 개천광이야 유성에 의탁한 히어로라고 쳐도, 핫산이라는 걸로 길드에 들어간 건 사실상 유하를 위해 일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 아녜요."
"그건 그렇지. 뭣보다 우리는 정말 잘 맞다. 네가 일부러 유하와 나를 맺은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카르나는 엄지를 척 들어올리며 내게 활짝 웃었다.
"둘 다 네게 박혀보겠다고 아주 난리다! 으하하."
"당신이라면 몰라도 유하가 설마."
"응? 아닌데? 이미 나와 유하는 서로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있다. 우리는 서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플레이를 연습하고 있지. 그래, 핫산과 은재민의 뜨거운 밤의 플레이도-"
"그만."
못 들을 걸 들어버렸다. 귀가 썩지는 않았을까 나는 몸이 으스스 떨렸다. 다행히 귀는 살아있었다. 빨리 화제를 바꾸어야했다.
"그래도 참 그정도로 잘 맞다니 다행이네요."
"그래. 좋아하는 이도 같아서 난감하지. 그래서 내가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턱.
카르나는 내 어깨에 양 손을 올리며 시선을 마주했다. 키 차이 때문에 내가 올려보던 시선도, 카르나가 허리를 숙이는 덕분에 눈을 마주했다.
"만약에 나와 유하가 싱크로를 한다 치자. 그 경우에 너는 나를 취할 것인가, 아니면 유하를 취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우리 둘 다 취하겠나?"
"그건...."
둘 다 독점욕이 상당한 존재들이었다. 다른 히로인들과 비교했을때, 카르나나 은유하나 주인공의 아래에 그저 깔리는 걸 거부하는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카르나 루트냐, 은유하 루트냐.
내 답은 확고했다.
"저는 피닉스 루트라서."
"뭐?"
"그냥 헛소리예요. 당신 둘을 취할 미래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란 얘기예요."
"...그건 그것대로 화가 나는데. 좋다. 그럼 하나 약속을 하지. 나와 유하가 싱크로를 하게 되면, 그 때 한 번 대련을 해주겠나?"
"아뇨."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저는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 주의라서."
"그 말인즉 우리가 싱크로만 하면 너를 이길 수 있다는 얘기란 말이렷다."
"뭐...싸움이야 이길 수 있겠죠?"
"그럼 됐다. 흐흐흐. 너도 한 번 지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유하와 내가 하나가 되어 네게서 승리를 따낸 그 순간, 너는 우리에게 반하게 될 것이다."
"그러시던가요. ...'우리'?"
"그래."
카르나는 시원시원한 얼굴로 씩 웃었다.
"우리는 너를 공유하기로 합의를 봤다! 네가 여성형을 고집한다면 구멍이 두 개니까 딱 좋고, 네가 남성형으로 하기를 원한다면.... 음."
카르나는 눈을 질끈감았다.
"...순서를 정해서 하면 될 일!"
"당사자는 떡 쳐줄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사발로 들이키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네요."
"갑갑할 정도로 철벽이군. 마음을 바꿔먹는 건 어떤가?"
"당신부터 마음을 바꿔먹는게 어때요? 공유? 합의? 유하가? 푸흐흐, 그게 진심일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간질을 시도했다. 카르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기 가족 이외에는 절대 공짜로 내어주는 일은 없어요. 카르나, 당신은 유하의 가족인가요?"
"......."
카르나는 꽤나 길게 고민을 시작했다. 유하가 여러모로 카르나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과연 유하는 카르나를 진정한 가족으로 여기고 있을까.
"음...."
카르나는 꽤나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뼉을 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본인에게 물으러 다녀오지!"
"뭐요?"
"여기서 밍기적거릴게 아니라, 직접 묻고 오겠다. 잠시만 기다리라, 피닉스여!"
카르나는 빛처럼 신서울을 향해 사라졌다. 나는 혹시나 카르나가 유나를 잡으러 간게 아닐까 걱정되어, 잠시 유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나 양, 지금 통화 가능해요?"
[네. 지난 번에 샀던 문제집 다 풀어서 사러 가는 길이었어요. 왜요?]
"혹시 금발 양아치가 옆에서 얼쩡거리면 발로 아래를 까버리세요. 알았죠?"
[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유나가 서점에 들어가는 것으로 전화는 끝나다. 나는 백사장에 누워 카르나가 돌아오기를 망연히 기다렸다.
"싱크로라...."
카르나, 은유하가 가장 대표적인 파트너.
환룡, 천가을이 베스트지만 지금은 샤오린과도 합이 잘 맞는 상태.
석하랑, 단독으로 싱크로가 가능하다.
'나머지 애들도 각각 한 두명씩은 있어.'
펜릴은 박라온, 지륜은 아르엘, 아지다하카는 김누리.
과연 그들이 모두 메인 파트너와 싱크로를 할 지, 아니면 유나라는 보험과 싱크로를 할지, 그도 아니면 서브 속성을 가진 히로인과 싱크로를 할 지는 미지수.
'나도 빨리 싱크로해야하는데.'
창염은 과연 언제쯤 마음을 열어줄까. 정말로 여섯 정령을 모두 각성시키고 난 다음에야 허락해주는 걸까.
"아, 세 놈 다 그냥 한 번에 처리하고 싶은데."
빨리 아지다하카와 히드라의 위치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 차올랐다. 나는 카르나가 올 때 까지, 태양빛 아래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피닉스여! 유하의 답을 얻어왔다!"
"뭐래요?"
"같은 남편을 둔 아내들이라는 가족은 수용할 수 있다고 하더군!"
은유하, 무서운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