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72화 (372/1,497)

〈 372화 〉1부 16장 7

"아."

가을은 꿈에서 깨어났다. 피닉스는 가을의 옆자리에서 새근새근자고 있었고, 다시 몸에는 얇은 보호막이 펼쳐져있었다.

"......."

망상이 너무 심했던 걸까. 가을은 피닉스가 자고 있는 모습을 봐도 그저 아껴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손을 뻗어 피닉스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했다.

"일어났어요?"

역시, 피닉스는 잠들지 않았다. 가을이 깨어날 때 까지 눈을 붙이고 쉬고 있었고, 가을은 피닉스의 머리칼을 쓸며 아침을 맞이했다.

"얘, 나 꿈을 꿨어."

"...또 꿈?"

"또라니?"

"아녜요. 무슨 꿈인데요?"

피닉스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물었다. 가을은 꿈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고, 이걸 곧이곧대로 얘기해야하나 혼란스러웠다.

"하나부터 끝까지 다 말해도 돼?"

"네, 말해봐요."

"일단 시작부터 가볍게 버드키스하고 가슴을 비볐어. 그리고 그 다음에는 거기를 비비다가, 내가 남자로 변해달라고 부탁했지. 너 바로 남성형으로 바꾼 다음에 나를 뒷치기 하더라."

"......."

실로 경악스러운 꿈이었다. 하지만 가을이 꾼 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내가 위에서 올라타서 허리를 흔들고, 중간에 힘들어서 멈췄어. 꿈에서 처녀 따이는 고통을 맛보니까 진짜 기분은 더러웠는데...중간부터는 그래도 괜찮더라고. 그러다가 다시 정상위로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네가 여자 몸에 남자 성기를 달고 나한테 박더라. 가슴 흔들리는 거 되게 예쁘더라? 그러다가 가슴 다시 붙이고 비비면서 박더라고."

"몽정도 정도가 있지."

"아직 끝이 아니야. 그렇게 내가 한참 박히다가 이제는 나를 위해 봉사하겠다면서 하고 싶은 거 더 없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부탁했지. 이번에는 내가 해보면 안되냐고. 가루라 상대로 하면서 이승형으로 변하면서 느꼈던게 생각이 들었나봐. 너 되게 인상쓰면서 고민하다가 결국 허락했어. 그래서 열심히 박았지. 촉수를 쓰기도 했고, 남자로 변신해서 박기도 했고. 그러다가 내가 마력 다 닳아서 여자로 변신하니까, 다시 네가 남자로 변해서 나한테 일방적으로 찍더라? 그러고 끝났어."

"......."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 구체적이면서도 머리를 아프게 하는 꿈은 왠지 어딘가에서는 있을 것 같은 미래라서 더욱 무서웠다.

"야, 한 번 해볼래...?"

"정중히 사양합니다."

나는 가을의 열린 셔츠 앞섶을 단단히 여몄다. 가을은 내 손길에 아무런 거부반응이 없었지만, 이전보다 부끄러운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또 왜요?"

"꿈에서 이 셔츠 네가 입었었거든."

"솔직히 얘기하세요. 꿈이라는 변명으로 지금 망상하는 거죠?"

"아니거든? 진짜 꿈이었어. ...근데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

"또 뭐요."

나는 절로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뭐라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수가 없었다. 꿈에서 나와 온갖 행위를 했다고 하니 기분이 싱숭생숭하기는 했지만, 그 욕구불만의 근본 원인은 내가 가을과의 행위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 남자 모습보다 여자 모습으로 하는 게 더 섹시하더라. 거기 사이즈는 그대로 두고, 뭐라더라. 부분 괴인화의 응용이니 뭐니, 후...."

"후타나리?"

"아, 그래! 그거야. 그렇게 얘기했어."

"...당신 꿈속의 나는 정말 대단하네요."

정말 온갖 방법으로 가을과 행위를 나누었다. 꿈속의 나는 하랑부터 시작하여 도대체 얼마나 많은 히로인과 하고다니는 걸까.

'백청화 때문이다.'

주인공, 백청화가 지조없이 이 여자 저 여자와 하고다니니까, 그 몸을 되찾은 나도 영향을 받고 함께 침대에서 잠을 잔 상대도 영향을 받는 거다. 내가 스스로를 억제하고 있으니 꿈에서 튀어나오다니. 역시 이계신과 맞수를 둘 성욕의 화신이었다.

'루트 정해지면 지고지순하지만....'

어떤 변태같은 플레이어는 개인루트를 타기 전까지 여러 곳에 씨를 뿌리고 다니다가 루트 선택을 끝까지 미뤄버렸다. 결국 16명 히로인에게 복상사로 게임오버를 당하는 엔딩이 나오기는 했지만, 주인공은 일단 루트 한 명이 정해지면 이전의 관계를 모두 끊고 그 히로인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가을은 그런 주인공의 성격과 정말 닮아있었다. 과거에는 여러 관계를 맺었지만-물론 살아남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행위였으나-, 진실된 사랑을 하게 된 이후로는 주인공만 바라보게 되는 순애보.

"당신에게는 여러모로 참 미안하네요."

"미안하면 꿈에서 있었던 일을 지금 하지 않을래?"

"아뇨. 그건 안 되죠."

그리고 한 명만 바라보는 거라면 나도 지지않았다. 나는 가을에게 이불을 고이 덮어준 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침먹으러 가?"

"아뇨. 그냥 뭣 좀 확인하러 가요. 오늘 안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괜히 저 찾지 마요."

"이번에는 또 어디 다른 여자랑 자러 가는 거 아니지?"

"이상하게 추궁을 하시네. 그런 거 아녜요."

나는 가을에게 다가가 이마를 튕겼고, 날개를 펼쳐 천장의 구멍으로 날아올랐다.

"씻고 부모님한테 인사드려요. 살아계실 때 잘 하라고요."

"...알았어. 매니저도 안하던 잔소리를 여기서 듣네."

"당연하죠."

천가을 루트 엔딩.

온갖 역경을 이겨낸 천가을은 배우로서의 삶을 다시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 때는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발견하여 대배우의 반열에 오르고, 주인공은 천가을의 매니져가 된다.

"그럼 다녀올게요."

"응, 다녀와."

나는 흰 셔츠만 입은 천가을의 배웅을 받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신서울.

[잠깐 시간 되시나요?]

여신의 호출이었다.

* * *

"책임지세요."

"뭘요."

"피닉스 님 때문에 지금 공부가 하나도 안 된다고요."

"그게 왜 제탓이죠?"

여신은 차가운 얼굴로 나를 쏘아붙였다. 여신을 분노케한 원인은 내가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내가 일방적으로 욕을 먹을 이유는 없엇다.

"그러길래 왜 밥먹다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요?"

"밥 먹을 때 아니면 부모님이랑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그건 그렇네."

"아직 방학 한참 남아있는데, 이제 집에서 눈치보여서 공부 못하게 생겼잖아요. 독서실은 지금 북진이니 뭐니 시끄럽고. 조용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여신 왈, 내가 이유나에게 모든 진실을 알려준 이후 유나는 저녁 식사 도중 부모에게 진실을 물었다고 했다.

- 엄마 나 외계인이라던데.

- 누가 그러니. 얘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아니, 친구들이랑 같이 나가서 좀 놀아! 너 방학 내내 공부할 거니?

- 나 저기 서해 바닷가에서 캡슐에 담겨있던 애를 데려와서 출생신고 했다던데? 엄마아빠 딸 아니래. 나 과학실험 할 때부터 이상하다 싶었어. 엄마 아빠 혈액형에서 태어날 수 없는 혈액형이었거든.

- ......잠깐 우리끼리 이야기 좀.

"엄마랑 아빠가 회의하고 얘기하더라고요. 아무리 노력해도 임신이 안 되어서 우울증에 두 분 같이 바다에 빠져 죽으려고 했는데, 마침 제가 거기 있었다고 하셨죠. 우리가 몸 아파서 낳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낳으셨다고."

"그래서 당신은 뭐라고 했어요?"

"딱히 달라질 게 있어요? 16년을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 이제와서 뭐가 달라진다고. 오랜만에 치킨이나 시켜서 같이 먹었죠."

"......."

여신은 어린 시절부터 대범했다. 하지만 그런 여신에게도 짜증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저는 괜찮은데, 자꾸 엄마랑 아빠가 신경을 너무 쓰신단 말이에요. 집에와서 저녁 먹은 이후로는 제 방에서 공부하는데, 엄마랑 아빠랑 두 분이 얘기하는 소리가 너무 잘 들려요.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두 분이 밤에 하시는 것도."

"아. 히어로 각성 초기 증상이네요."

각성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감각에 신체가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당장 청각만 하더라도 청음 가능한 데시벨의 폭이 훨씬 넓어지니까.

"그거 사흘이면 가라앉으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요."

"피닉스 님, 사흘이면 얇은 문제집 하나가 뚝딱이에요."

"그 문제집 하나 안 푼다고 딱히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만약에 그 안 푼 문제집에서 수능 문제가 변형으로 나오면 책임지실 거예요? 아니면 그 사흘동안 미뤄둔 계획 때문에, 수능치기 사흘 전에 풀었던 자료에서 수능 문제가 나오면 책임지실 거냐고요."

"......."

졌다. 나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핵폭탄을 머금은 괴수를 상대로도 이겼지만, 입시가 낳은 괴물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어디 신서울에 조용한 공간이라도 만들어 드릴까요?"

"네."

"잠시만 기다려봐요. 건물 수배해드릴테니까."

나는 마도기어를 눌러 은유하에게서 적당한 매물이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유나는 손을 불쑥 내밀어 내 손목을 붙잡았다.

"왜 굳이 힘든 일을 하려고 하세요."

"......?"

"결계 쳐주시면 되잖아요?"

"결...계? 그걸 어떻, 아니, 무슨 소리실까? 하하."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지만 이미 늦었다. 표정을 굳힌 유나는 내가 얼마전에 줬던 마도기어를 능숙하게 다루며 미리 준비해둔 자료를 모두 꺼내놓았다. 유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내게 연락을 넣은 것이었다.

해운대 D섬, 대 광검전.

카스피해, 삼중결계 돌파.

대 뉴클리언 레이드. 4중 결계.

그리고 당장 우리의 주변에 쳐진 결계.

"최근에 있었던 이 모든 사건들은 그야말로 갑자기 '뚝딱'하고 벌어진 일이죠. 일반인의 시야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일이 지구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거예요. 안에서 온갖 난리가 나도 밖에서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임시로 결계라고 표현은 했는데 맞나요? 인터넷에 물어보니까 사람들이 '크큭, 결계인가'라고 하던데."

"그, 그건 맞아요. 결계라고 칩시다."

"그럼 이러면 되겠네요."

유나는 내 두 손을 꼭 잡으며 활짝 웃었다.

"제 방에 결계 좀 쳐주실래요? 거기서 공부하게요."

"아니."

핵폭발이 터져도 안전한 외부와의 차단성을 고작 공부를 하는데 이용하겠다니. 유나는 정말 미친 게 아닐까.

"그렇게까지 공부를 하고 싶어요?"

"피닉스 님. 저 부모님이 허락만 하셨으면 이거 바로 샀을 거예요."

유나는 마도기어로 작은 공부방을 꺼내놓았다. 뒤주와도 같은, 밖에서 자물쇠를 채우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는 2평도 안 될 작은 공부방이었다.

"와...진짜...."

여러모로 대단했다. 이런 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니 히어로 길을 걷는 과정에서도 그 수모를 견뎌냈던게 이해가 갔다.

"그래서 피닉스 님, 저희 집에 결계 설치해주실래요?"

"음...."

결계를 설치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것을 통해서 유나가 공부가 아닌 초인의 길을 걷게하는 방법이 무엇있을까.

아.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유나에게 뉴클리언 레이드의 영상을 띄웠다.

"이게 그 '공백의 전장'인가요?"

"그건 또 뭡니까."

"히어로 커뮤니티에서 다들 이렇게 부르던데요?"

"...틀린말은 아닌데, 잘 봐요."

나는 핵폭탄급 폭발이 쾅쾅 터지는 전장을 가리켰다. 나를 포함한 SS급 이능력자 넷이 마구잡이로 날뛰는 영상이었고, 스크린을 하나 더 꺼내어 당시 평양의 위성영상을 꺼냈다.

"조용하죠? 결계 효과 좋죠?"

"네. 그럼 이제 이거 설치해주시는 거죠? 히힛."

"네. 설치는 하는데, 혹시 이렇게 해볼 생각 있어요?"

나는 유나가 혹할만한 제안을 했다.

"이거, SS급 되면 다들 기본으로 설치할 수 있는 결계거든요? 당신에게는 그럴 재능도 있고."

"아."

유나는 손뼉을 치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가 SS급이 되면 결계를 칠 수 있겠네요! 원하는 장소 어디든지!"

"네. 그렇죠. 그러니까-"

"다른 정령분들한테 마력 받으면 결계 겹겹이 칠 수 있게 되겠고! 와! 그러면 방음벽이 네 개, 아니 일곱 개! 언제 어디서든 소음 차단하고 공부가 가능하겠어요!"

"......."

오직 이유나만이 가능한 권능이자 궁극기, 7중결계. 여신 이유나는 그걸 최종전의 승리 이후, 이계신의 발악 패턴인 로부터 우주를 보호하는데 사용했었다.

그리고 급식 이유나는 그런 신의 권능을 공부에 쓰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유나가 몹시 두려워졌다.

"유나."

"네."

"...일단 화속성 SS부터 찍고 그런 말을 할래요?"

"아."

나는 유나의 상태를 위아래로 훑었다. 유나의 몸에는 화속성 SSS+급의 마력이 깨어나있었지만, 정작 유나는 공부를 하느라 그걸 전혀 개발하지 않고 있었다.

"음, 잠깐만요. 그러니까.... 음."

유나는 우물쭈물하며 내게 두 손을 모아 부탁했다.

"...조금 가르쳐주시면 안 돼요? 이능력 인강은 너무 비싸서 부모님께 부탁을 드리기가 그래서."

"인강을 왜 들어요? 여기 이 세계에서 원탑인 1타 강사가 눈앞에 있는데."

"오."

유나는 손뼉을 치며 반색했다.

"그럼 저 과외 좀 해주시겠어요? 아, 과외비는-"

"무료."

나는 딱잘라서 말했다.

"무료입니다."

이미 유나는 내게 정말 많은 것을 주었다. 그리고 유나는 눈을 깜빡이며 발그레 웃었다. 화사한 그 미소는 그야말로 여신이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피닉스 쌤!"

그리고 급식이었다.

8월 18일. 나는 종일 유나에게 마력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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