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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64화 (364/1,497)

〈 364화 〉1부 15장 22

창염은 그릇을 전부 비웠다. 접시를 치우는 서버가 없으니, 그 대신 접시를 불태워 식탁에서 없애버리는 것으로 대체했다.

호로록.

창염은 아까부터 계속 딸기 우유만 홀짝이며 나를 능멸했다. 자기 딴에는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를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나를 골려먹는게 아닐까.

나는 본래의 화제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래서 석하랑이 서울과 신서울에서 있는 동안, 루살카가 부산에 잠깐 들려서 바다를 밀어버릴 계획이야."

"그냥 밀기만?"

"어. 아주 천천히 후쿠오카를 향해 넘어가는 거지."

하루에 10km 정도의 속도로 섬이 꾸준이 이동하기 시작하면 과연 대마도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마도 땅을 줄테니 제발 특별자치도로 받아달라고 하던게 그들의 입장이었는데, 이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었지."

"북한 땅을 손에 넣었으니까?"

"물론."

영토를 가지고 협박을 했다가 아주 호되게 당하게 되리라. 북한 전체를 먹을 수만 있다면 대마도 쯤은 버려도 상관 없었다.

"그럼 이제 북한 땅에 나오는 괴수는 없을텐데, 헌터들은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세요?"

"괴수야 차원문을 통해 언제든지 튀어나오게 되어있어."

"그럼 차원문을 열겠다는 말씀?"

"아니. 관악 게이트같은 대규모 차원문이 아니라,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소규모 말이야."

"아하. '던전화'를 일찍 시작하시려고요?"

"그래. 뭐...꼭 내가 시작하려는 건 아니고."

원작에서는 높으신 분들이 이계, 테라로의 침공을 시도했다가 크게 혼쭐이난다.

당장 마룡들 조차도 제대로 잡지 못하면서 그들은 괜히 이계로 가는 문을 열었고, 전 세계에는 괴수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게 된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를 할 것 없이 괴수 하나 둘 오다니게 될 차원문이 열리게 되고, 그곳은 곧 괴수들의 둥지가 될 것이다.

"아직 폐쇄하지 못한 차원문도 많고, 테라의 괴수들은 아직까지도 한참 남아있지. 어차피 나중에 성주가 오면 차원문을 지구 전체에 개방할 거야. 미리미리 제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높으신 분들의 헛짓거리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죠."

"그래."

나와 야합을 한 집정관 유영호는 아직 '중추'까지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신뢰를 계속 얻어가면 높으신 분들의 어전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 괴수들에게 침략당하는 지구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간다는 계획."

"...결국 테라였죠. 이미 성주에게 멸망당한 세계."

유토피아로 떠나는 상상을 했지만 정작 도착한 곳은 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더라. 하지만 그 삽질 때문에 인류 최후의 전투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여튼 운이 좋은 사람들은 뭘 해도 잘 돼요. 솔직히 그 사람들 하는 거 아무것도 없잖아요."

"왜. 제일 힘든 거 하는데."

"이명 정하는 거요? 푸흐흐, 지금 당신이 집정관 통해서 다 스포해주면서 무슨."

"어차피 사나흘 회의해서 정하는 거, 집정관이 신뢰도 쌓고 월급도 오르고 좋지."

높으신 분들이 백날동안 고생해서 붙인 이명들을 현재 유영호가 열심히 미리니름하여 신뢰를 얻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다들 유영호가 이명을 붙이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것 모두 미래의 자신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만들어낸 이명들이었다.

"몇몇은 오마쥬라는 이름의 표절이잖아요."

"...나한테 따지지 말고 제작사한테 따져."

"나중에 기회가 되면. 푸흐흐, 그럼 저 2번째 갑니다~"

창염은 신난 발걸음으로 그릇들을 챙기러 떠났다. 시간은 제법 지나기는 했지만, 아직 음식들에는 온기가 서려있었다.

내가 마력을 사방으로 방출하여 음식들의 열기를 유지했다. 덕분에 창염은 따뜻한 음식은 식지 않은 상태에서 먹을 수 있었고, 차가운 음식은 차가운 상태 그대로 먹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중식 조지네.'

그나마 괜찮다 싶은 건 후르츠 탕수육에 딸기가 들어간 정도였지만, 그래도 나는 속이 올라올 것 같아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작하네.'

구구구.

동해 바다의 해류가 서서히 격해지기 시작했다.

* * *

대마도에 남아있던 난민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던 신세가 되었다.

- 지금 대마도가 중요하냐! 북한이 넘어오게 생겼는데!

땅의 크기만 당장 비교해봐도 차이가 몇십 배는 되었고, 9년 가까이 인간의 손길이 사라진 땅은 그야말로 천혜의 터전이었다.

물론 그거야 한국인들의 입장이었고, 대마도에 남은 난민들은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젠장...!"

대마도 난민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난민으로 있어서 각자 생각은 달랐지만, 평양이 안전하게 정복된 것에 대한 생각은 같았다.

이대로 가다가 우리는 쩌리가 된다.

그게 대마도 난민들의 지배적인 생각이었고, 결국 그들은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되었다.

첨벙, 첨벙!

"으아아!"

"시벌, 죽이려면 죽여라!"

난민들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얼음장벽의 옆으로 넘어온다고 해도, 대마도 뭍에서 해운대 백사장까지의 거리는 불과 5km가 되지 않았다.

"이, 이 미친 새끼들이!"

해운대 해수욕장에 진을 치고 있던 이들은 바다를 헤엄쳐오는 난민들의 웨이브에 분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이 개새끼들! 공주님 평양가신 틈을 타서!"

차마 그들은 석하랑에게 당장 부산으로 돌아와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석하랑의 증언에 따르면 평양에 있던 괴수는 SS급 괴수 혼돈보다도 더 강하여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젠장! 올라오려고 하기만 해봐! 아주 그냥 대가리를 깨버릴 테니까!"

성난 군중들은 야구 배트같은 것들을 챙겨 바다를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누구 한 명은 장사를 하다가 국밥 뚝배기 그릇을 들고나와 백사장에 올라오려는 이의 머리에 집어던질 기세였다.

"오지마, 오지 말라니까!"

"지, 진짜 찌른다! 느그들 땅으로 돌아가, 이 미친 놈들아!"

그러나 그 누구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괴수가 판을 치는 시대. 당연히 압도적인 힘을 가진 이능력자가 상주하는 곳으로 오고싶어하는 건 백사장에 진을 친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 또한 한 때는 난민들이었다.

석하랑의 각성 이후, 경남, 울산, 경북 등지에 있던 이들은 12살 어린 아이에게 몸을 의탁하고자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부산에 들어와 쪽잠을 잤었다.

국적은 다르지만 저들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그래도 오고 싶으면 난민으로 신청해서 정식으로 오라고 이 새끼들아---!!"

누군가가 절박한 심정으로 바다를 향해 외쳤다.

그리고 그 순간.

구구구구.

얼음장벽이 서서히 무너졌다.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바스러지기 시작한 얼음 장벽은 본래의 해수가 되어 형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아재들, 일났소!"

회칼을 들고 있던 앞치마 중년이 스마트 워치로 속보를 전했다.

"공주님 기절했다고 합니다!"

"이런 미친!"

속보.

석하랑, 기절. 인근 호텔로 급히 이송.

SS급과 전투에서 피로를 호소하던 석하랑이 결국 쓰러졌다. 장벽을 친 장본인이 쓰러졌으니, 자연히 장벽 또한 무너지는게 어찌보면 당연했다.

"지금이다!"

"끼요오옷!"

대마도의 난민들은 얼음장벽의 파도를 타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사람의 쓰나미는 해운대 백사장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으, 으아악! 도망쳐!"

진을 치고 있던 사람들은 해안선을 가득 메운 검은 머리들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절반 이상은 제자리를 지키며 눈을 부라렸다.

"오지마! 시발, 돌아가라고!"

"지, 진짜 찌른다?! 아오, 시발 한국오고 싶다면서 한국말 못 들어처먹냐!!"

감정이 격해지고 충돌이 빚어지려는 가운데, 뚝배기 그릇을 든 남자가 결국 참지 못하고 발을 크게 내딛었다.

"꺼져!"

그가 포문을 열려했다. 그는 돼지국밥 냄새가 솔솔 풍기는 뚝배기 그릇을 바다를 향해 집어던지려고 했다.

덥썩.

그리고 누군가가 남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뚝배기 그릇은 힘없이 모래밭에 떨어졌다.

"아재, 그라지 마입시다."

미청년의 목소리였다. 남자는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미, 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팔에는 붉은 손자국이 짙어져있었다.

"뭐야?"

귀신에 홀렸나. 남자가 소름이 돋았던 그 순간.

쏴아아----

동해 바다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빠른 해류와 함께 해운대 해수욕장의 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서해도 아니건만, 빠르게 사라지는 해수는 쓰나미까지 잠재우며 바다로 헤엄쳐오는 난민들을 집어삼켰다.

"으아아악!!"

"뭐야?!"

해류는 마치 난민들을 부산에서 쫓아내듯 사람들을 밀어버렸다. 그들은 헤엄을 쳐온 5km를 파도와 함께 고스란이 쓸려가 대마도에 다시 떨어졌다.

"이, 이게 무슨."

폭주하기 직전으로 몰렸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혹시 석하랑이 이런 신위를 펼쳤나? 하지만 기절했다고 하던데?

"어, 어어? 저거 좀 이상하지 않소?"

누군가가 수평선을 가리켰다.

섬이, 아주 약간 움직였다.

구구구구.

거대한 지진이 울리며, 동해 바다가 서서히 그 영역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눈으로 보고 있는게 꿈인지 생시인지 긴가민가했다.

"섬이...떠내려가고 있다고?"

구구구.

대마도는 처음 한반도를 향해 넘어왔던 것보다는 느리지만, 명백히 일본 쪽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바다를 헤엄쳐 한반도에 상륙하려던 난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섬에 실은 채.

그리고 해운대 인근의 D섬.

금발과 백발의 젊은 부부가 마력을 펼치고 있는 것을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대마도가, 다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이야, 잘 떠내려가네요. 저기다가 창염개진 한 방 박으면 진짜 활활 타오르겠는데."

"아서라."

창염은 킬킬 웃으며 딸기 국수를 김치에 말아먹었다. 먹는 방법은 맞지만, 국수의 면부터 잘못됐다. 나는 그리 단언할 수 있다.

"아 참, 이번 전투는 제법 잘 했어요. 무리하지 않고, 애들 잘 시키고."

"총질이야 내가 했지만, 카르나 다친 건 조금 그렇지 않냐?"

"그거야 지가 그렇게 나댄게 잘못이죠. 어딜 저를 두고 최강을 논해요. 흥, 지가 말할 것 이지. 해치웠나? 푸흐흐."

창염은 접시까지 들어올리며 호로록 마셨다. 현재, 내 품에는 SS급 풍속성 코어가 앞주머니에 들어있었다. 밖에 보이지는 않지만.

"스승님은 어쩌지."

흠칫. 창염의 손이 멈췄다. 나는 말실수를 했음에 눈앞이 아뜩해졌다.

"... 김철수? 당신 쌈박질 스승? 지금 저를 두고 다른 사람을 스승이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 잠깐만. 그냥 표현일 뿐이잖아. 이런 거로 그러기야?"

"네."

"알았다. 미안. 안 부를게. 됐지?"

나는 두 손을 들어 항복했고, 창염은 그제서야 만족한 듯 케이크에 손을 올렸다. 드디어, 창염이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입에 대기 시작했다.

"그럼 이건 어디에 쓰지? 영혼 불러내는 거 아니면 그냥 SS급 코어에 불과한데."

"글쎄요. 그냥 장식품으로 간직하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석하랑한테 줘서 뉴클리언 공략의 증거로 전시하거나."

"...그랬다가 아르엘이 훔치러 오면 어쩌려고?"

"훔치게 냅둬요. 영국맛이랑 프랑스맛이 반반씩 섞여서 남의 것 훔치는 건 아주 예사로 아는 애니까."

"야, 그래도 걔 서브로 화속성 달고 있어."

"어차피 지속성 메인에 화, 풍 서브잖아요. 흥, 화속성 메인 아니면 취급 안 할 거예요."

"그럼 슈리는?"

"네 다음 올 A. 짝퉁 안 받습니다."

창염은 케이크를 퍼먹으며 나를 향해 포크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행여나 CCTV에 나올까봐 걱정되었다.

"하움. 그래서 이제 뭐하실 생각이세요? 저 이제 슬슬 들어가봐야 할 것 같은데."

"더 있으면 안 되냐? 여기 호텔이라서 위로 가면 바로 스위트룸 있어."

"어머, 수작부리는 거 봐. 지금은 안 된다니까. 하고 싶으면 나아아아중에 찾아요. 저는 빵빵하게 배 채웠으니까."

딱.

창염은 손가락을 튕겨 그릇을 모두 불태웠다. 딱 하나, 내가 처음 가져온 쇼트 케이크만 남겨둔 채.

"잘 먹고 갑니다. 서비스는 다음에 드릴게요. 푸흐흐."

콕. 창염은 포크에 딸기를 찍고 입에 넣었다.

콰득.

창염이 딸기를 씹는 것과 동시에, 내 몸이 창염의 속으로 들어갔다.

"......아오."

나는 입안에 창염이 씹던 딸기의 맛을 느끼며 분을 삭혀야했다.

"......."

창염은 나를 놀리듯, 내 눈앞에 새로 받아놓은 딸기우유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홀짝.

나는 대마도가 떠내려가는 것을 눈으로 보며, 딸기우유를 아주 천천히 음미했다.

과연 이 맛일까.

* * *

삐비비.

"잘 먹었어요. 그런데 그냥 이 뷔페, 문 닫는게 낫겠네요."

[예?! 왜요?!]

은유하는 자신이 직접 검수한 회심의 아이템이 나에 의해 반려되었다는 것에 큰 상처를 입은 듯 했다.

8월 15일 오후.

나는 창염과 데이트를 했고, 큐브 하나를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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