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0화 〉1부 15장 18
4중결계에 뉴클리언이 펼친 결계까지.
SS급 다섯이 펼친 결계 속에서 발생한 핵과 핵의 대결에서 승리한 이는 카르나였다.
파사삭.
형광색의 벽이 사라지고, 뉴클리언은 기절한 상태로 바닥에 옆으로 누웠다. 맞은 편의 카르나도 가히 상태는 좋지 않았다.
"흐하하."
카르나는 바닥에 대자로 누운 채 웃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뻗어올린 비쟈야를 통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윽."
석하랑과 환룡이 카르나의 몰골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카르나는 전신이 성한 곳이 없었고, 죽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백린탄에 정통으로 맞은 사체가 살아 움직이고있다면, 아마 지금의 카르나가 이 상태일 것이다.
"이래서 내가 한다고 했는데."
"피닉스여. 아쉬워 말라. 흐흐. 나는 만족하고 있는 중이니."
카르나는 엄지까지 척 들어올리며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석하랑과 환룡은 더는 못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하여튼 핵쟁이들."
나는 기절한 뉴클리언에게 바로 걸어가 이마에 부착된 코어를 뽑아냈다. 강력한 마력이 담긴 코어는 에메랄드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풍속성…."
랜덤으로 나오는 SS급 코어가 풍속성이라니 상당히 기분이 언짢아졌다. 하지만 지금 급한 건 카르나의 회복.
딱.
나는 뉴클리언의 몸에 불을 붙였다. 푸른 불꽃이 형광색의 뉴클리언을 금방 숯검댕으로 만들었고, 나는 그 속에서 뉴클리언을 이지경까지 만들어낸 원흉을 뽑아냈다.
큐브.
한반도에 마지막 남은 큐브를 드디어 손에 넣었다.
끼아아아악.
큐브를 쥐자마자 악의가 흘러나온다. 나는 바로 손에 큐브를 쥐고 사이한 기운을 태워버렸고, 정순해진 큐브를 들고 걸어가 카르나의 머리 위에 들이밀었다.
"마력 전환해줄테니까 알아서 먹어요."
"나는 네가 직접 넣어줘도 괜찮은데."
"이 꼴로 그런 말이 나와요?"
"이 꼴이 아니면 넣어주겠다는 말인가? 하하."
"하여튼 말이라도 안 하면 밉지라도 않지."
나는 카르나의 이마에 큐브를 붙였고, 큐브에 내 마력을 밀어넣었다. 카르나는 눈을 감고 큐브를 통해 여과된 내 마력을 조금씩 몸속으로 흡수했다.
"내도 할란다."
"나도."
석하랑과 환룡은 내 손위에 자신들의 손을 겹쳤다. 세 정령의 마력이 큐브에 집약되었고, 각기 다른 속성의 마력은 카르나가 큐브의 힘으로 자신의 속성인 광속성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피닉스여, 큐브 하나를 얻을 때마다 이고생을 하는 건가?"
"아뇨. 이게 최고 난이도. 나머지는 그냥 가서 주워오면 돼요."
그리고 얼마 남지 않았다. 숯검댕이 되었던 카르나의 피부는 점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데까지 약 20분이 흘렀다.
"그러니까 왜 나한테 그걸 시켜요."
"시키다니. 네가 한 게 아니냐."
"아무도 안 하니까 내가 나선 거 아녜요. 석하랑이랑 환룡이 둘, 당신이 셋, 그리고 내가 뉴클리언 상대하면 되는 거였는데."
구역마다 배정되는 수는 고정일지라도, 분신들의 구성은 랜덤으로 정해진다. 그리고 뉴클리언은 레이드 구성원 중 가장 강한 이와 1:1로 대결을 하기를 바란다.
'해치웠나'를 말한 이를 제외하고. 약하다고 오해한 거다. 망할 놈.
"뭐...결과적으로는 잘 됐어요. 다음번에는 이러지 마요. 알겠죠?"
"알겠다."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창염이 왜 나보고 몸 성히 쓰라는 지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갔다. 죽지 않는 건 알지만, 고통을 감내하는 건 보기 상당히 그랬다.
"그럼 인제 뭐하면 되는데?"
"하나죠. 지금 몇 시예요?"
"9시."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은 훌쩍 남아있다. 석하랑이 망설이는 바람에 질질 끌지만 않았어도, 정령들이 서로 싸워보겠다고 하지만 않았어도 8시 전에도 잡았으리라.
'그냥 다들 살아있는 거로 만족해야겠다.'
"환룡. 샤오린 상태는 괜찮아요?"
"응. 영체 상태로 빙의 해제해서 피폭은 전혀 없었어."
빙의를 풀고 뉴클리언의 분신에 깃들었을 때는 진심으로 조마조마했다. 환룡이 뉴클리언에게 깃들지 않을까, 샤오린이 방사능에 피폭되지 않을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럼 슬슬 작업하도록 하죠."
"작업?"
"네."
지금부터는 내가 날 뛸 시간이다. 나는 괴인형으로 육체를 바꾸었고, 정령들에게 내 바로 옆을 가리켰다.
[날개 속으로 들어와라.]
나는 날개를 최대한 크게 펼쳐 셋을 품에 안았다. 뉴클리언에게 쫓기지도 않는데 뭐하러 이러느냐 다들 의아한 얼굴이었….
"와, 3:1 할라꼬? 한 시간 안에 되겠나?"
"4:1이지. 샤오린이랑 나는 2명으로 쳐야하잖아."
"흠흠. 나는 1:1을 선호하건만…."
정령들이 하나같이 은근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최대한 그들을 안전하게 끌어당기는 바람에 셋 다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오빠야...지금 딱 기회 아이가?"
"결계도 1시간 남았다며? 여럿이서 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 지금이라면 여기있는 이들만 입 싹 닫으면 그만이다. 빨리 남성형 꺼내라. 남성형."
[......이것들이 진짜.]
나는 허리를 휘감은 손으로 카르나와 석하랑의 옆구리를 꼬집었고, 은근슬쩍 다리를 비비려는 환룡의 발을 짓밟았다.
[내가 지금 너희들이랑 어떻게 해보려고 이러는 줄 아냐.]
"...아니었어?"
[작업한다고 했잖아. 뭘로 알아들은 거냐.]
화륵.
나는 날개속의 공간에 창염을 지펴 오염물질을 태워버렸다. 제법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적어도 날개 안의 공간은 오염물질 없이 깨끗했다.
"아…. 이제 밖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나밖에 없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시키는 방법 뿐.
[결계안의 모든 것들을 다 파괴시켜버린다.]
오염물질도, 흙도, 대기도.
큐브에 의해 제어되고 있는 방사능 필드 전체를 없애버리는 것으로, 이 레이드는 끝난다.
"그, 그럼 내가 궁극기를 한 번 더…!"
카르나는 내게 몸을 밀착하며 애원했다.
[울어도 소용없다.]
"하, 한 번만 더 쏘게 해다오! 제발!"
[내가 쏠 거다.]
나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작은 태양들을 사방으로 뿌렸다. 세상이 온통 푸른 빛으로 물들었도, 나는 예정된 시각까지 정령들을 내 날개속에 품고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쾅! 콰앙, 콰앙---!!
4중 결계 안은 푸른 태양들이 터져나가며 모든 것을 불살라버렸다.
***
<잠시 뒤, 신서울 히어로 협회 기자회견장.>
9시 58분.
사람들은 협회에 진을 치고 있었고, 백희아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야, 백희아 어디있어?"
"몰라. 잠적했나보지."
"국외로 튄 거 아냐? 아나 미치겠다."
"지금 김해공항 마비다. 사람들 다 해외로 도망치려고 난리야."
백희아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대한민국 전체, 아니 동아시아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누군가는 직접 평양에 가서 전황을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38선을 지키는 히어로들에 의해 제지되었다.
9시 59분.
작전의 '결행' 시각까지 불과 1분이 채 남지 않은 시각. 대한민국 어디에도 석하랑이나 백희아를 찾을 수 없었다.
-피닉스라도 나와서 저것들 말려야하지 않나?
사람들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
삑.
검푸른 베레모를 쓴 백희아가 모든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서 촬영하는 지도 모를 장소에서, 전국의 네트워크를 탈취한 백희아의 얼굴은 차분하기 그지 없었다.
"......."
모두가 숨을 죽였다.
협회의 히어로들도, 정부 부처의 관계자들도, 일반 시민들도, 청화단도, 서울 등지에 기어들어온 난민들도, 대마도의 주민들도, 녹색머리 고양이귀 메이드 소녀도 숨을 죽인 가운데, 백희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금일 10시 00분 00초. 평양 정벌 작전을 시작하며….
힐끔.
백희아는 고개를 살짝 내려 무언가를 확인했다. 타이밍을 재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망설이는 것 같기도 했다.
...금일 10시 00분 07초. 평양 정벌 작전을 종료합니다.
???????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백희아의 스크린이 작게 줄었고, 영상은 평양 상공을 찍는 인공 위성 카메라로 대체되었다.
"허미 씨벌."
아무 언질도 못 받고 전전긍긍하던 백 총리가 놀라 나자빠졌다.
지름 1km를 훌쩍 넘는 거대한 크레이터.
그 한가운데에, 선녀같은 복장을 한 <설화령>이 있었다.
국민 여러분.
백희아의 담담한 목소리가 전국에 울려퍼졌다.
평양에 있던 SS급 괴수 <뉴클리언>은 소멸했습니다.
이제 한반도는 우리 땅입니다.
2020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확장되었다.
***
<10시 30분, 여의도 청화단 펜트하우스.>
"고생했어요. 평생 들을 욕을 한나절 만에 다 들으시고."
"...이제 장수하겠네요."
백희아는 내 침대에 대자로 뻗어 누워있었다. 평생 들어먹을 욕을 들었다는 내 말마따나, 10시 이전의 백희아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이 가득했다.
그리고 10시 이후의 백희아는 구국의 성녀가 되었다.
"오죽하면 백희아, 당신보고 평양특별시 특사 하라고 아주 난리예요. 축하해요."
"평양에 그 난리가 났는데요?"
"그거야 땅 좀 메꾸면 그만이고."
짜르 봄버만 10개가 넘게 터졌을 연쇄폭발이 고작 지름 1km 넘는 공간만 소멸시킨 걸로 끝난게 다행이다. 나는 나름 피해를 최소화시킨 입장이지만, 녹화된 전투 영상을 시청하는 백희아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슨 전투가…. 하아, 이런 거 지휘하라고 해도 못해요."
"딱 한 번만 고생해요. 이 정도 난이도가 아마 마지막 전투가 될 테니까."
"반대로 얘기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 그 이계신으로부터 이길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물론."
2회차 전용 숨겨진 히든 보스를 잡았으니 백희아의 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보통 진최종보스인 이계신과 전투에 돌입하는게 2~3회차이니, 뉴클리언과 이계신의 난이도는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정령적으로 공략할 수 있냐 없냐는 차이가 크지.'
게임으로서의 난이도와 실제는 다르다. 정령은 성주의 세뇌빔에 쪽도 못 쓰고 세뇌당하고, 신화에 이르지 못하면 데미지를 넣지도 못한다.
단적으로 말해 뉴클리언의 레벨은 99, 이계신의 레벨은 100.
1차이기는 하지만 그 명백한 차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있다.
"아무튼 집행관, 신서울로 돌아가면 아마 집에서 나오지도 못할 거예요. 어떻게 지금 데려다드려요? 저 지금 신서울 갈 생각인데."
"그거야 감사하지만…. 어떻게 들어가시려고요?"
"날아서."
"하아. 네. 저는 알아서 돌아갈게요."
백희아는 모든 걸 포기했다. 긴장이 탁 풀려서 T자로 침대에 누워 일어날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속옷 보이는데요. 검정색."
"보던지 말던…."
백희아는 다리를 슬쩍 교차했다.
"거짓말이에요."
"장난해요? 속옷 색깔은 어떻게 알고?"
"당신 검은색 말고 안 입는 거 다 아는데 무슨. 긴장 좀 풀어요.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어디서 새 한 마리가 저를 납치해가면 당신인 줄 알게요."
백희아는 손을 들어올려 반지를 가리켰다.
"하아, 이제 어쩌면 좋죠. <피닉스>가 설화령이 평양을 공략한 것에 가만히 있는게 백희아가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던데."
"음모론이네요. 우리가 그렇게까지 깊은 사이는 아니잖아요?"
"제가 그러기를 바란다면?"
"......."
아무래도 한반도 전체의 영토를 확장시켜 준 것에 백희아는 감명이 깊어진 모양이다. 다소곳이 침대에 앉아있는 백희아는 무언가를 굳게 마음을 먹은 듯 했다.
"피닉스 님."
"왜요."
"혹시 '백청화'가 되실 생각 있으신가요?"
"백희아 아가씨."
나는 역공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당신 사실 백가의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너무 백씨 가문에 연연하지 마요."
"네?"
"당신 어렸을 때 인큐베이터에서 옆에 아이랑 바꿔치기 당함. 그럼 안녕히!"
백희아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유리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와장창!
나는 서울을 떠났다.
* * *
"...아니 그냥 가문의 일원이 되어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피닉스는 듣지 못했다.
* * *
"흠, 흠흠~"
나는 신서울의 대로 한복판에서 거울에 비친 내 옷매무새를 단정히 정돈했다. 사제복과는 다른 복장이었고, 나는 영 어색하지만 이 복장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꼭 창염의 피닉스가 주인공 코스프레 하는 것 같네.'
온통 검은색만 가득한 셔츠와 팬츠 위에 흰 코트를 입은 모습은 지극히 단촐한 정장 스타일이었다.
'온통 검은 옷이 아닌게 다행이지.'
코트라도 백색이라서 다행이다. 나는 어색하지만 익숙한 복장으로 '그녀'가 자주 출몰할 지도 모르는 곳의 편의점에서 딸기 우유를 쪽쪽 빨아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야, 저거 청화 아니냐?"
"이 시국에 여기서 딸기 우유를 쪽쪽 빨아마시는게 청화라고? 차라리 5년 뒤에 세계가 멸망할 거라는 오라클의 예언이 사실이라고 말해라. 그보다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 진짜 최전방 개마고원 가는 거임?"
"어, 큭큭. 나 지금 너랑 나랑 백두산에서 보초 서는 상상함. 큭큭큭."
미안한데 그거 100% 현실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의 슬픈 최전방 생활에 애도를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깃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편의점을 빠져나가 학원가의 한 복판을 향해 달렸다. 타깃은 서점에서 수능용 수험 서적을 고르고 있었다.
"공휴일에도 공부하면 안 힘들어요?"
"네?"
성인의 시절과 별반 다를게 없는, 조금은 어린 여신이 교복을 입고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손에는 [대헌터시대, 우리는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책이 들려있었다.
"헌터하시려고요?"
"아, 아뇨. 그냥 알아보는 거죠."
"이능력자세요?"
"...아뇨, 미래 산업의 발전을 생각하면 그와 관련된 직종이 블루오션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제가 이능력자는 아니더라도 그들을 서포트하는 일에 종사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갈색 단발의 여고생은 내 무례한 질문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처음보는 이가 막 이것저것 물으면 난감할 법도 하건만, 소녀는 나를 오래전부터 봐온 사람마냥 친절하게 대했다.
나는 여름용 조끼에 달린 명찰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 유 나.
"반가워요, 유나 양."
여신. 나는 유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청화'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하나만 물어보면 안 되요?"
유나는 내 손을 잡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태양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여름인데...안 더우세요?"
"......."
너무 기분을 냈구나. 이 모습으로 유나와 만나는 첫 만남이 겨울이었던 걸 잠시 잊었다. 그리고 내가 침묵하는 동안, 학생들은 호들갑을 떨며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야, 야! 지금 서울에서 사람들 개성으로 진격한다더라! 북진 오졌다!"
"그럼 진짜 저기 다 우리 땅 되는 거임?"
"백희아! 백희아! 백희아!"
학생들은 광기마저 엿보이는 열망에 휩싸여있었다. 그 와중에 미래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며 진로를 찾는 유나는 여러모로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타이틀 히로인이자, 내가 여태까지 위치를 항상 알고 있으면서도 찾기를 꺼려했던 존재.
"유나 양. 혹시 이능력자 되고 싶으세요?"
"......저 각성하지도 않았는데요?"
"걱정하지 마요. 제가 각성시켜드릴테니까."
".....?"
유나는 미심쩍어하면서도 손을 내밀었고, 나는 유나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화륵.
내 손에서 창염이 유나에게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유나의 몸속에 깃든 '창염'이 내 마력과 만나 서서히 불씨를 키우기 시작했다.
"어...?"
유나는 자신의 몸을 충만하게 채우는 힘에 의아해했고, 나는 그 사이 유나의 손을 잡아당겨 와락 끌어안았다.
두근, 두근.
유나의 전신에 퍼진 마력이 온전히 느껴진다. 나는 눈을 감고 유나의 신체에 퍼진 마력의 근간을 겉에서부터 차근차근 살펴나갔다.
두근, 두근.
느껴진다. 유나의 몸속에 깃든 창염이 나를 인지하고 유나의 안쪽으로 인도하는 것이. 창염으로부터 복제된 마력의 일부가 나라는 뿌리를 통해 유나의 몸 전신을 돌며 유나에 대해 알려왔다.
두근, 두근.
모든 속성의 마력이 느껴진다.
그리고 모든 '정령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건 비단 창염뿐만 아니라, 창염을 비롯한 일곱 정령의 기운이 한 곳에 모여있었다.
심장.
유나의 심장에는 일곱 정령의 기운이 담긴 핵이 서려있었다.
"유나 양."
"네...."
"이제서야 이렇게 만나러 와서 미안해요. 당신을 만났을 때 제가 어떻게 될까봐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으면 진작에 유나를 만나러 왔을 걸. 나는 다음 기회가 있다면 유나부터 만나러 오리라 다짐하고, 유나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모시러 왔습니다, 여신님."
나는 여신을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이유나.
타이틀 히로인.
모든 속성의 마력을 그 몸에 담고 있으며, 전속성의 정령과 싱크로 가능한 천재.
그리고.
성주가 일곱 정령의 마력을 복제하여 만들어낸 인공 정령임과 동시에,
이계신을 지구에 불러내어 이계신의 혼을 담아내려고 했던 그릇이라는 설정을 가진,
이계신의 화신체(化身體),
<이계의 여신>이자,
진최종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