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56화 (356/1,497)

〈 356화 〉1부 15장 14

오랫동안 이 날만 학수고대했다.

한반도에 있는 마지막 큐브.

한반도의 불합리한 상황과 몰락을 만들기 위한 장치였던 '평양 사태'를 일으킨 주범, <뉴클리언>을 드디어 공략하는 날이 되었다.

2020년 8월 15일 새벽 6시 30분 경.

아직 태양은 밝아지지 않았지만, 평양의 상공에는 네 명의 SS급 이능력자가 공중에 두둥실 떠있었다.

검은 갑주 속에서 푸른 불꽃의 몸체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나, <창염의 피닉스>.

흑백의 태극무늬가 들어간 회색의 전포에 최강의 무인 샤오린에 깃든 <환룡>.

황금빛 갑주를 입고 찬란한 금발을 흩날리는 <개천광>.

그리고 선녀처럼 나풀나풀 거리는 하얀 날개옷을 입은 <설화령>.

"......진짜 영상 생중계 안할거제?"

[당연하지.]

애초에 결계를 치고 싸울 계획이며, 외부와의 연결을 완전히 차단하는 전장을 가정하는 싸움이다. 그러므로 석하랑의 정령감수성이 넘치는 날개옷은 외부에 유출될 일이 전혀 없다.

'어차피 나중에 전세계 생중계로 나올 테지만.'

성주와의 싸움은 전세계인의 이목이 쏠리는 전투다. 그러므로 석하랑이 지금 자신의 옷을 부끄러워한다고 해서 이 비밀이 영원히 간직되는 것은 아니다.

"부끄러워하지마라, 설야의 딸. 너는 예쁘다."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정령들에게는 호평. 나도 워낙 익숙한 모습이니 그닥 나쁘지 않았다. 저기서 본인의 색이 더 강해지거나 유나의 색이 깃드는 싱크로 전단계의 색이나 다름 없으니.

[그럼 모두 준비는 끝났지?]

잡담은 여기까지. 다른 셋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전투를 머릿속으로 그려오던 나로서는 최고의 레이드원이 갖춰진 것에 큰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환영이었다.

화륵.

나부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손가락을 튕겼다. 서서히 동쪽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햇빛 아래에, 푸른 불꽃의 결계가 돔형태로 펼쳐쳤다.

"다음은 나다."

개천광이 비쟈야를 들고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화염의 결계 아래에 금빛의 막이 덧씌워졌고, 결계는 청색과 금색의 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음, 역시 너와 나는 가장 잘 맞는군."

[헛소리 말고. 환룡.]

"응."

환룡은 팔을 넓게 펼쳤다. 한 손은 하늘을 향해, 한 손은 땅을 향해. 두 손으로 태극을 그리는 손길에는 환룡 특유의 회색 마력이 뒤따랐고, 곧 결계 아래의 공간이 회색 안개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시야 가리지 않나?"

[조금 있으면 가라앉을 거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개가 사라졌다. 석하랑은 주변을 훑으며 이상을 직감했고, 환룡은 숨을 골라쉬었다.

"샤오린 특성 덕분에 안 보일 뿐이야. 결계 안의 공간을 '채웠어'."

"아, 그래서 그렇구나...."

주변에는 환룡의 마력이 가득했다.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가시의 결계는 나와 카르나의 결계까지 닿는 뉴클리언의 공격을 완화하는 완충제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제 네 차례야."

"후우, 후...."

석하랑은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한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뻗어올린 손에는 하얀 빙정들이 맺혔고, 빙정들은 석하랑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우리를 중심으로하는 두꺼운 얼음 장벽을 만들어냈다.

짝!

석하랑이 두 손으로 박수를 침과 동시에, 얼음장벽은 사방으로 확장되며 그 크기를 키웠다. 얼음 장벽은 마치 이글루처럼 사방으로 펼쳐졌고, 넓게 펼쳐진 환룡의 마력을 압축하며 결계끝까지 확장되었다.

네 명의 정령에 의한 4중첩의 결계.

내가 최외곽에 친 결계는 태양빛 아래에서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시야를 차단할 것이며, 그 아래에 층을 이루고 있는 카르나의 광결계가 내부에서 보호막 역할을 할 것이다.

가장 안쪽에 있는 석하랑의 얼음 장벽은 뉴클리언의 물리적 공격을 막아낼 것이며, 환룡의 마력이 압충된 공기층은 물리적 방벽을 뚫고 나갈 '방사능'을 결계 내부에 가두게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사중결계는 콘크리트 지붕마냥 방사능이 유출되는 걸 철저히 차단할 것이다.

[결계를 최대한 강하게 치기는 했지만 잊지마. 조금이라도 유출되어서는 안 돼.]

"당연하지, 후우."

석하랑은 오한에 떨었다. 내가 밤 사이 뉴클리언에 대한 공략방법과 그 특징을 설명하고 난 뒤로, 석하랑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감을 보였다.

"으으, 괴수면 그냥 괴수답게 지낼 것이지 뭐 그딴 걸 처먹어?"

"괴수니까 아무거나 먹어치운거지. 큐브도 먹고, 핵폭탄도 먹고."

환룡은 무기를 꺼내들었다. 회색의 기류가 감싸인 언월도였고, 환룡은 그 무기를 '환룡언월도'라고 이름까지 붙이며 제법 마음에 들어했다.

"피닉스여, 이번에는 말리지 말거라. 나의 브라흐마스트라와 뉴클리언의 브레스, 어느쪽이 더 강한지 시험해볼테니."

[결계를 쳤으니 마음껏 써.]

카르나가 비쟈야를 손에 들고 시위를 당겼다. 금빛의 마력이 화살 형태로 굳어졌고, 카르나는 언제든지 화살을 쏠 준비를 마쳤다.

"지, 진짜 밖에 아무 문제 없제? 우리 잘못하다가 동아시아 쑥대밭 만드는 거 아니제?"

[동아시아가 아니라 지구 전체가 문제가 될만한 양이다. 걱정마. 우리가 망하면 지구도 망해.]

백희아가 괜히 정보를 최소화한게 아니다. 체르노빌 대폭발보다 몇 배는 더 큰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며, 그러면 결국 지구는 이계신이 오기도 전에 방사능 낙진으로 멸망할 것이다.

결계를 네 겹이나 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뉴클리언이 뿌려대는 방사능을 막기 위한 것.

그리고 SS급 이능력자들은 그 방사능 피폭을 마력으로 막아낼 수 있다. 석하랑이 S급 시절이었다면 어느정도 피폭의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정령의 힘을 각성한 SS급의 경지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 모두 준비 됐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리 준비해 온 TAT를 꺼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총이야?"

"신호탄이라도 쏘려고?"

[잠을 깨우는데에는 총소리만큼 요란한게 없지.]

권총 주제에 소음 하나는 확실한 무기다. 나는 한손에 총을 쥐고 다른 한손에는 마력을 모아 코어같은 구슬로 만들었다.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화염구는 막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 화염구를 총열의 안으로 밀어넣어 장전했다.

"야, 너...!"

"피닉스여, 쏠텐가?"

[당연하지.]

쿨타임 긴 기술은 스킬 콤보에서 먼저 사용하는게 진리. 나는 총열에 장전한 '소태양'을 결계 정중앙의 바닥을 향해 겨눴다.

[케프리 익스플로젼, 파이어.]

나는 담담히 방아쇠를 당겼고, 총구가 말 그대로 불을 뿜었다.

새애액---!!

나의 화염구-궁극기는 탄환이 되어 빠르게 지상으로 떨어졌고, 낙하에 의한 흔들림에 따라 점점 내부가 불안정해졌다. 그리고 탄환은 바닥을 뚫고 땅에 박혔다.

[나온다.]

땅에서 푸른 불꽃이 명멸하는 순간, 지진이 일어난 것 처럼 땅이 흔들렸다.

[뉴클리언을 깨우는 방법은 딱 하나지. 대가리 위에 핵폭발을 일으키는 것.]

대부분은 카르나의 브라흐마스트라를 통해서 깨우지만, 나는 깨우는 김에 일격까지 날릴 속셈이었다.

과연 '핵폭발을 집어삼킴으로써 등장하는 괴수'는 내 궁극기를 삼키고도 무사할 것인가.

"...온다!"

샤오린 특유의 기감으로 무언가를 느낀 환룡이 언월도를 쥐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석하랑도 사방에 얼음 나비들을 뿌리기 시작했고, 카르나도 미소를 지운 채 시위를 놓기만을 기다렸다.

구구구구.

거대한 흙먼지가 일어났다. 땅에 박힌 궁극기가 이제 폭발하기 직전까지 몰렸고, 푸른 빛을 사방에 뿌리며 폭발하기 직전-

덥썩!

땅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거대한 입의 등장에 셋은 경악했다. 크기도 크기거니와, 그 형태는 가히 압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피, 피닉스여! 저게 진짜로 지구 최강의 괴수인가?!"

[물론.]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괴수는 내 궁극기의 탄환을 집어삼키고 맛있는 먹이를 먹은 양 꿀떡 삼켰다.

그리고.

□□□□□----!!!

괴수의 뱃속에서 푸른 폭발이 일어났다. 연녹색의 배가 갑자기 훅 늘어나더니, 괴수는 몸을 까뒤집으며 까무라쳤다.

"으...."

"좀 그런데...."

환룡과 석하랑의 표정이 애석해졌다. 두 명의 마력은 분명히 흔들렸고, 잠시 움직임이 굼떠지기 시작했다.

[긴장 늦추지 마라.]

외형 때문에 더 무서운 괴수다. 차라리 마룡들처럼 형태가 괴이하다면 생리적 혐오감에 따라 마음껏 패죽일 수 있지만, 우리가 상대해야할 <뉴클리언>은 도저히 그런 외형이 아니었다.

뀨으으....

큰일이다. 뉴클리언이 특유의 울음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뱃속에서 폭발한 내 궁극기 때문에 괴로워 앓는 소리가 명백했다.

[다행이군, 데미지가 제대로 먹혀들었어.]

"...꼭 죽여야하는 적인가?"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던 카르나마저도 화살을 쏘기를 주저했다. 언제든지 브라흐마스트라를 날리겠다며, 내가 신호탄을 쏘기 전에도 백 발은 쏘겠다며 자부하던 손은 망설임으로 떨리고 있었다.

[죽이는 방법 말고는 없어! 다른 생각 하지마, 이것들아!]

"니, 니는 피도 눈물도 없나!"

[없으니까 마력 돌려!]

뀨아앙....

뉴클리언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렀다. 환룡은 아예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석하랑은 얼음 나비들을 흩뿌리다가 마력을 사용하기를 멈췄다.

[시작부터 조졌군.]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그리 일렀건만, 막상 보고 나니 다들 마음이 여려진 모양이다. 인간도, 정령도 모두 공격을 주저하는 건 분명 저 놈의 외형이 가진 패시브 스킬 때문이 아닐까.

귀여움.

뀨으응.

뱃속에서 일어난 폭발을 꺽꺽거리며 눈물과 침을 뚝뚝 흘리는 모습은 분명 사람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나조차도 첫 도전 때는 그 외모에 혹해 공격 명령을 내리길 주저했지만, 뉴클리언의 흉악한 파괴력을 직접 겪어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속지마, 저거 다 방사능이야!!]

투명한 눈물과 끈적한 침은 세슘이 농축되어 액체 상태로 흐르는 것이다.

원작에서 기어이 S급까지 키운 동료들이 저 눈물 샤워 공격에 당해 방사능 피폭으로 강제 은퇴를 하여 게임오버되었고, 그로 인해 세이브 파일을 지운 이후로 도저히 뉴클리언을 곱게 볼 수가 없었다.

[브레스, 온다!]

마룡은 아니지만 큐브를 먹음으로써 마룡급의 체구를 가지고 일부 기술이나마 흉내내는 괴물.

유저들은 그를 두고 오직 한 개체만 존재하는 괴수의 왕이라는 경외심을 담아, '유일왕'이라 불렀다.

뀨륵, 뀨르륵.

연녹빛의 털이 빠짝 선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형상의 꼬리가 하늘을 향해 길게 솟아오른다. 그리고 강아지를 닮은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보고 있는 곳은 나.

[시발.]

뉴클리언은 나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뀨아아아아아아앙!!!

형용할 수 없는 울음소리와 함께, 방사능 브레스가 나를 덮쳤다.

***

그 시각, 서울 여의도 피닉스 펜트하우스.

백희아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인공위성 영상을 스크린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스크린 오른쪽 아래에는 10시 00분 까지 스톱워치가 빠르게 흐르고 있었고, 백희아는 이불을 둘러싸고 온몸을 떨고 있었다.

"으으…."

지옥같은 세 시간의 시작이었다. 작전은 이미 진즉에 시작되었지만, 백희아는 10시까지 서울에서 꼼짝없이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화권…!"

"걔 입방정 떠는 거 신경써봐야 아무 소용없어. 자."

천가을은 새벽부터 갓 구워진 에그타르트를 백희아에게 내밀었다.

"단 거 먹고 진정해."

"감사합니다…. 어, 진짜 맛있네요."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가 만드는 디저트라나 뭐라나."

"...? 바리스타면 커피지 왜 디저트죠?"

"헬조선 건물 임대료 내려면 커피만 팔아선 안 되겠다고 하던데?"

"......."

백희아는 에그타르트를 포크로 자르며 골머리를 썩혔다.

"이게 제 인생의 마지막 식사가 될 수도 있는 거네요…. 하아."

"진짜 너 장난아니구나. 왜 그렇게 비관적이야?"

"걱정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작전이 실패하고 세계가 멸망한 다면 기록에 다 남을 거라고요. 집행관 백희아, 무리한 평양 정벌 시도로 전세계를 멸망시키다…. 라고."

"그건 그렇겠네. 축하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적어도 인류사의 페이지에 네 이름 석자 올라갈테니까."

성공하면 핵폭발을 막은 구세의 결단을 내린 영웅이 될 것이며,

실패하면 방사능 유출에 따른 지구 멸망의 스위치를 누른 장본인이 되리라.

"너도 참 대단하네. 나같으면 그런 거 못했을텐데."

"칭찬인가요?"

"칭찬이야. 너 정말 대단하다고."

캬랴멜마키아토를 빨대로 휘휘 젓는 천가을의 목소리에는 질투가 약간 서려있었다. 백희아는 천가을이 자신을 질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 너도 나름 이능력자지. 그냥 그래. 누구는 옆에서 같이 싸워주고, 누구는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누군는 정치적으로 방파제가 되어주고. 그에 비해 나는 하는 게 별로 없어서."

천가을은 피식 웃으며 빨대를 다시 물었다. 백희아는 뭐라 위로를 해야할 지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팬텀은 크시잖아요."

"내가 가슴 하나는 빵빵하지. 그런데 그럼 뭐해? 넘어오질 않는데. 어휴, 이번에 휴가 어디 섬으로 가야겠어. 수영복 입고 옆에서 살사라도 춰야하나?"

"...수영복에 휴가라."

백희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숨을 크게 골라쉬었다. 걱정만 하는 것 보다는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이었다.

"...남해에 저희 가문의 섬이 하나 있는데, 혹시 그곳은 어떠십니까? 백사장도 넓고 별장도 제법 큽니다."

"자세하게 말해봐."

인류가 핵폭발에 멸망할지 아닐지 그 결과가 드러날 세 시간. 백희아는 천가을과 함께 어떤 휴가를 보낼 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인생에서 가장 긴 카운트 다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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