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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53화 (353/1,497)

〈 353화 〉1부 15장 11

둘만 남겨진 김누리의 부모, 두 부부는 SS급 이능력자를 빡치게 한 것에 전전긍긍했다.

'지가 뭔데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결혼만 5년 일찍했어도 지같은 딸이 있겠더구만.'

'진짜 아니꼽네. 근데 어쩌지? 누리한테 완전 꽂힌 것 같던데.'

'이거 안 받으면 어떻게 우리가 할 방법 없으니까 일단 받는 척이라도 하자.'

두 부부는 스마트 워치를 통해 대화를 나누며 어느정도 의견을 일치시켰다.

'완전 누리한테 빠졌던데?'

'누리 고것이 사람 홀리는 재주가 있단 말이야. 이능력자로 각성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김누리와 하룻밤을 함께 보냈다고 하는 석하랑은 김누리이 상황에 크게 공감하고 있는 듯 했고, 괜히 석하랑의 심기를 거스르면 지금 하고 있는 사업도 말짱 도로묵이 될 확률이 높았다.

'가출해서 이능력자로 각성한 거 아냐? 역시 그냥 방치하기를 잘한 거 아닌가?'

'근데 너무 방치해버렸어. 이제 우리가 거두려고 해도 본인이 싫다고 할 걸? 막말로 우리가 데려가서 키운다고 해도 본인이 좋다고 하겠어?'

두 부부는 이미 자신들의 손을 떠나도 한참 떠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김누리는 이제 물에 내놓은 자식이다. 광검 허윤환이 석하랑을 거두어들였듯이, 석하랑도 김누리를 제자로 들여 키워줄 것이다.

'광검 님이 따로 돈은 요구하지 않으셨으니까, 석하랑도 우리한테 돈을 요구하지는 않겠지?'

'자기가 일체 비용 부담하겠다잖아. 우리가 돈이 어디있어? 빚밖에 없지. 그리고 이제 우리가 누리 못 키워. 옆에서 헛바람 잔뜩 넣어놨는데 우리 말을 듣기나 하겠어? 막말로 A급 이능력자면 당신보다 몇 단계는 더 높아.'

아직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실 김누리의 부친도 물가촉천민으로 각성했다. 고작 D등급에 물줄기 정도 쏘는 정도로 아주 낮은 경지이지만, 이능력자로 각성한 김에 서울에서 아주 뽕을 뽑을 작정이었다.

'로또는 누리가 먼저 맞았네. 원서 합격만 기다리면 됐는데.'

'21000 대 1이야. 가온이랑 나, 당신까지 세명 거 넣었으니 이제 7000 대 1이라고. 훨씬 나아.'

기적의 계산법에 따라, 그들은 은하대학교에 넣은 원서가 제발 통과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잊지마. 당신이나 나나 합격하면 사정사정해서 가온이 넣어달라고 간청하는 거로.'

'누리가 이렇게 된게 전화위복이군. 참, 알아서 잘 한다 싶더라니까. 흐흐.'

부부는 조용히 타자만 두드리며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간신히 내렸다.

'그럼 누리는 석하랑한테 맡긴다?'

'아무렴. 설마 부모인데 나중에 모른척 하겠어? S급 코어 벌면 돈 백만원이라도 보내주겠지.'

'백만원이 뭐야? 설마 누리가 그렇게 통이 작겠어?'

'하긴 그렇지? 연예인들 보면 부모 빚 대신 갚아주고 그런다잖아. 흐흐흐.'

부부는 장밋빛 꿈에 부풀었다.

지직.

설마 자신들의 스마트 워치를 통한 대화가 누군가에 의해 속속들이 들여다보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 * *

[단장님, 이거 계속 보내드려요? 진짜 가서 한 대 때리고 싶은데.]

"때려도 김누리가 때려야죠. 우리는 외인이에요. 가정사에 함부로 개입하는 거 아닙니다."

[그렇긴 한데.... 끙, 알겠어요. 일단 계속 보내드릴게요.]

히카리는 질색을 하면서도 꾸준히 두 부부의 대화를 해킹해서 내게 보냈다.

[아니 그런데 진짜 너무한 거 아녜요?]

"너무한 부모 맞으니까 너무 화내지 마요. 괜히 속만 더 상하니까."

그 과정에서 자연히 자신도 부부의 대화를 읽고 화가 났을 테지만, 내가 선택은 김누리의 몫이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더이상 왈가왈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석하랑, 이제 슬슬 정신 차릴 때 아니에요?"

"좀 닥쳐봐라. 씨, 사람 골치아프다 카니까 더 미치게 만들어놓고...."

석하랑은 울 것 같은 얼굴로 머리를 쥐어 뜯고 있었다. 내가 이유나에 관해 자세히 설명을 한게 아무래도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 듯 했다.

"골치가 아프더라도 피해야 할 사람이니까 그러죠. 정령에게 있어서 이유나는 독이에요, 독. 사람을 한 번에 반하게 만드는 마성의 여자죠."

"죽이면 안 되나?"

석하랑은 석하랑 치고 상당히 독한 발언을 했다. 석하랑의 입에서 누군가를 죽이자는 말이 나온건 나로서도 상당히 의외였다.

"히어로가 살인을 입에 담아도 돼요?"

"사람이 아니라며."

"근데 사람으로 살아왔잖아요, 지금까지.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왔고, 나중에는 불수능에서 전국 1등을 했을 정도로 노력했던 사람이에요. 그 누구보다 인간답게 살아온 아이죠."

"니 억수로 걔를 편드네. 걔가 혹시 니 찐사랑이가?"

석하랑의 마음 속에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질투심 같은게 엿보였다. 하지만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따로 있어요. 당신이나 이유나나 나한테는 다 똑같았으니까. 오히려 제가 더 당황스럽네요. 당신도 유나랑 싱크로 가능한데."

"그 카니까 더 이라는 거 아이가.... 아오, 근데 니 어떻게 걔를 만날 생각을 다하는데? 여태까지 무서워서 피했다면서?"

"예. 근데 이제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잖아요?"

말그대로의 의미다.

"유나를 각성시키고, 그릇을 준비해서, 언제든지 누구랑도 싱크로를 할 수 있도록 해야해요. 나나 당신은 단독으로 싱크로가 가능하지만, 은유하나 샤오린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원작 후반부에는 서로 마음이 잘 맞아서 싱크로가 끝까지 유지되었지만, 원작까지 5년-어쩌면 그보다 더 짧을 수 있는 시기까지 인간과 정령의 관계가 끝까지 유지되지 않을 수 있다.

20년 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도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는데, 인간과 정령은 오죽할까.

"다행히 은유하랑 카르나는 죽이 정말 잘 맞아서 괜찮아요. 환룡쪽은...솔직히 샤오린보다는 천가을이나 히카리가 더 잘 어울리죠."

"내는?"

"이유나, 박라온, 김누리. 거기에 은유하나 백희아, 거기에 천가을도 수속성 마력 조금만 올리면 싱크로 가능한 수준까지 올릴 수 있을 걸요?"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내 너무 쉬운 여자 아이가?"

석하랑은 무려 여섯 명이나 싱크로 가능하다는 것에 질색을 했다.

"걱정마요. 당신은 당신 홀로 싱크로를 하는게 메인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서브."

폭주 석하랑의 각성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부산 학살의 죄책감에 정신적으로 자살을 하고, 서브로 수속성을 가진 히로인이 설야의 힘을 이어받기는 하지만 그건 싱크로가 아니니까 논외.

"유나 관련해서는 걱정마요. 각성시키고 만나면 우리가 홀릴 일은 없으니까. 그냥 사람으로서도 좋은 아가씨에요. 괜히 이명이 만인의 사람을 받는 <성녀>인 줄 알아요?"

"......내가 들은 바가 있어서 그 '성'이 뭘 의미하는 건지 헷갈리는데."

"아. 그거야...."

[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함?]

김누리가 먼저 문자를 날렸다. 졸지에 나는 말이 끊긴 셈이 되었지만, 김누리가 문자를 날렸다는 건 더이상 참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신호였다. 나는 김누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고프죠?"

[넹.]

"히어로 협회가 밥은 그래도 괜찮게 하는데, 어떻게 지금 밥 먹을래요?"

[아, 단장님. 그거 때문에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김누리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나는 그 목소리의 편린에서 <야황>의 기시감이 느껴졌다.

[...점심은 부모님이랑 같이 먹으면 안 될까요? 이번 한 번만. 마지막은 아니겠지만...그래도 저 가기 전에 한 번만요.]

"라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는지?"

"내가 뭐라 막을 일이 뭐 있음? 먹으라 카지 뭐. 누리야, 식비 가지고 뭐라하는 놈들 있으면 무시해라. 내가 낼게."

[그럼 제일 비싼 거 시켜도 됨?! 히어로 협회 코스 요리 인당 5만원 하는 거!]

"......."

석하랑의 표정이 굳었다. 김누리는 석하랑의 굳은 얼굴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협회 식당 코스 요리.... 그게 5만원밖에 안 한다고? 제일 비싼게? 내가 협회 식당에서 밥 먹은 적은 없지만 그게 비싼 건가...?"

석하랑은 건어물이기는 하지만, 츄리닝에 샌달 질질 끌고 호텔에 밥먹으러 가는 브루주아였다.

"그거야 네가 맨날 유성 호텔로 가서 그런 거고요."

비싸고 돈 값 못하는 호텔에서 식사를 하니 지금까지 몰랐을 수밖에.

"그럼 다녀와요. 청화 앞으로 달아도 되고, 설화령 앞으로 달아도 됩니다. 원하는 거 마음껏 먹고 와요."

[아.... 감사합니다, 단장님! 언니도 감사!]

김누리는 활짝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본인 말마따나 그대로네."

"뭐가?"

"김누리."

자기는 6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하던 야황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설마 인격적으로 이미 중학생 시절부터 완성되어있을 줄이야.

"석하랑."

"왜."

"이제 김누리 급식어만 벗기면 됩니다. 할 수 있죠?"

"당연하지. 니 내 무시함?"

"......."

"뭐, 뭔데? 나를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데!"

나는 김누리에게 부산 사투리가 옮을 줄 알았는데, 석하랑이 점점 급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 * *

식당가는 조용했다.

애초에 사람들이 찾는 시간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청화가 미리 언질을 준 덕분에 협회에서도 미리 식당을 비워뒀다.

"...집행관, 이건 월권 아닙니까?"

박라온은 주방에서 조리원 모자를 쓴 채 옆에 있는 백희아에게 물었다. 백희아 또한 평소의 정장과 베레모는 벗은 채, 조리복을 입고 부엌에서 숨어있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하룻밤만에 튀어나온 A급 이능력자가 헌터가 될 지, 히어로가 될 지."

쉐프들이 요리를 하는 사이, 두 명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식당에는 김누리와 두 부모밖에 없었다.

"엄빠."

"응, 왜 누리야?"

"뭐 할 말 있니?"

부모의 목소리는 사근사근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전말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백희아로서는 주먹이 울 정도였다.

가증스럽다. 하지만 김누리 때문에 참는다. 들은 바에 의하면 암속성 SS급으로도 성장 가능한 초유의 인재니까.

그리고 그 인재는 한 마디로 부부의 가증스러운 가면을 벗겨버렸다.

"언니는?"

"......."

"......."

부부는 침묵했다. 김누리 '가족'은 3인 가정이 아닌 4인 가정이었고, 엄연히 또 한 명이 존재했다.

"언니 지금 서울에 있지?"

김누리는 다 안다는 얼굴로 담담히 스파게티 면을 포크로 돌렸다. 부부는 얼굴이 벌게져서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언니한테 잘해. 나야 호적에서 파인 내놓은 자식이니까 그렇다 치고, 언니는 그래도 속 썩인 적 없잖아."

"누리야, 그건...."

"앞으로 자주 못 볼 거야. 하랑 언니 집에서 지낼 것 같은데, 그 언니 교육 따라가려면 나도 엄청 노력해야 할 것 같더라고. 학교는...협회에서 알아서 해준다고 하니까, 나중에 통지서 날아오면 그거대로 해줘."

일방적인 통보였지만 부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나이는 15살이지만 이미 누리는 어지간한 어른보다도 더 성숙했다.

"누리야. 설화령 님 집에서 머무른다는 거는...."

"히어로 할 생각이냐?"

부친이 성급하게 언성을 높였다. 이곳이 히어로들의 본거지라는 것도 잊고, 헌터를 하라고 주장하려다 아내의 눈총에 말을 삼켰다.

"......."

누리는 한참동안 컵을 들고 눈을 끔뻑거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히어로?"

"......히어로 한다고 설화령 님 밑으로 가는 거 아니었어?"

"맞는뎅? 근데 그냥 할 생각은 없음."

누리는 입꼬리를 씩 비틀며 포크로 피클을 찍었다.

"5년동안 양쪽으로 뽕을 뽑은 다음에, 더 전망 좋은 쪽으로 갈 거임. 일단 히어로 등록 해놓고 헌터로 겸직 신청 해두려고. 암만 그래도 엄빠가 벌려놓은 빚을 대신 갚아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 내가 그래도 돈 벌면 빚까지는 해줘야 하지 않겠음?"

두 부부는 미래를 내다보는 김누리의 혜안에 감탄했다. 그리고 이미 자신들이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빚'까지'는.

"......아무렴 내가 이제 몇 십억은 넘게 벌텐데 거기까지는 해야지."

김누리는 명백한 선을 그었다.

* * *

"......니 이렇게 될 거 알고 있었제?"

"당연하죠. 김누리가 누구 딸인데. 쟤 아닌 척하면서 돈 다 챙기는 돈귀신이에요. 자기 몸값 올리는데에는 아주 도사라니까?"

<야황> 김누리.

내가 SS급 암속성 이능력자로도 각성할 수 있다고 언질을 준 순간부터 짱구를 굴렸으리라.

자기 몸값을 최대한 불리면서 이미지는 다 챙겨가는 방향으로.

"내한테서 기술 몽땅 빼먹고 헌터 하겠다 이거 아이가!"

"아무렴 누가 요즘 세상에 히어로만 한다고. 그래도 히어로를 메인으로 두고 겸직하겠다고 하잖아요. 애가 부모 빚 갚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어요?"

"씨...."

석하랑은 좌절했다. 김누리는 내가 넌지시 제안한 길을 정확히 캐치하여 모든 명분과 실리를 챙겼고, 그건 모두에게 있어 외통수였다.

성인이 될 때까지, 김누리는 히어로와 헌터를 양립하며 스스로의 재능을 갈고 닦을 것이다.

"그냥 당신, 김누리한테 가르쳐주는 대신 살림살이나 배워요. 걔가 어렸을때부터 요리며 빨래며 도맡아 했으니까."

"......니, 니 두고봐라. 내가 살림 여왕이 되어서 돌아올테니."

"살림 여왕이 되기 전에 이제 다른 문제부터 해결하도록하죠, 대마도 여왕님."

"쓰벌."

석하랑은 진심으로 짜증을 부렸다. 협회의 밖에는 흰 머리띠를 두른 이들이 석하랑을 부르며 광기를 보이고 있었다.

[오 직 석 하 랑]

[아 름 답 다 !]

[하랑국의 초대 국왕님! 부산으로 돌아와주세요!!]

"아아, 존나 짱난다...!"

"......생각해보니 얘 나이 학식이지, 참."

석하랑, 21세.

대학을 갔다면 아마 지금쯤 개학을 앞두고 밍기적거리고 있을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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