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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52화 (352/1,497)

〈 352화 〉1부 15장 10

김누리의 정체에 대해서는 금방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드러났다.

가정불화로 가출을 한 소녀가 부산까지 내려갔다가 순찰중이던 석하랑과 만나게되었고, 석하랑은 김누리의 부모를 만나기를 희망하여 부산에서 신서울로 상경했다.

왜?

히어로가 가출소녀를 부모에게 인계하는 것은 응당 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석하랑이 직접 신서울로 올라갈 필요가 있는가?

사람들은 혼란스러웠고, 가장 궁금증이 심했던 이들은 응당 김누리의 부모였다.

그들은 누리가 어떻게 부산까지 내려갔는지, 왜 부산까지 내려갔는지, 어쩌다가 석하랑을 만나게 됐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석하랑이라는 히어로에게 질책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고, 그들은 석하랑의 초대를 받아 석하랑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석하랑은 그들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따님을 제게 맡겨주시겠어요?"

여러모로 오해를 하게 만드는 대화의 시작이었다.

* * *

<8월 14일, 오후 1시 30분. 여의도 청화단 아지트 회의실.>

"난리났네. 가출 소녀인 내가 A급 이능력자?! 라면서 네트워크 지금 난리야."

"원래는 C등급이었는데 말이죠."

석하랑이 너무 많이 넣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15세에 A급으로 각성한 새로운 파도술사의 등장에 환호성을 질렀다.

"부산에 갔던 이유도 설화령에게 끌려서 내려간 거라고 하고 있습니다만."

"석하랑이 거둔 이유도 재능을 알아보고 거둔 거라고 말이지."

"어느 쪽이든 다 틀렸지만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말이네요. 그럼 이제 사람들 여론은?"

"물가촉천민이 횡재했다고 난리지. 석하랑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애를 거뒀을까부터 시작해서, 애가 왜 가출했을까 난리야 정말."

질투에 따른 음해와 공작들이 판을 친다. 그 중 일부는 은근히 진실을 품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어린 아이를 상대로 쏟아지는 무수한 관심과 질시 가득한 악의는 어른들인 청화단 간부들이 보기에도 다소 심각해보였다.

'20살 김누리는 이것보다 더한 것도 견뎌냈지.'

하지만 성인이 되기 전의 김누리는 어떨까. 자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정도는 견뎌낼 수 있다면서 멘탈이 단단하다고 자랑했지만, 실제로 어떨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상황이야 미래보다 훨씬 낫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석하랑의 제자로서 히어로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부모의 강요에 따라 헌터 길을 걷게 될 것인가.

어느쪽이든 김누리가 결정할 일이었다.

"꼭 문과 이과 선택하는 것 같네."

"...그걸 그렇게 비유하면 무게감이 확 떨어지지 않아요?"

어느쪽이 문과고 이과인지 가을에게 따지지는 않았다.

"저는 먼저 가볼게요."

"어딜?"

"협회.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갔다와서 알려드릴게요."

청화단 간부들이 다른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신서울로 날아올랐다.

* * *

"그러면 우리 딸이 지금 A급 이능력자란 말씀이십니까?"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김누리의 부모는 석하랑의 설명에 어안이 벙벙했다.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던 이능력자로 각성한 것도 모자라, 그 능력이 한국에서만 300여명이 채 되지 않는 A급 이능력자라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협회의 공증에 따른 마력 패턴 검사는 김누리의 이능력이 각성했음을 분명히 알리고 있었고, 석하랑은 김누리가 마력을 사용하며 협회의 검사를 거치고 있는 영상을 증거로 내밀었다.

"김누리 양은 A급이 맞습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아뇨, 안 믿는게 아니라…."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부모는 자신이 경사라도 난 것 처럼 기뻐했다. 석하랑은 눈물까지 흘리는 두 부부의 모습에 마음이 살짝 풀어졌지만, 마음을 독하게 다잡았다.

"그래서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따님을 제자로 맞이하여 협회에 히어로로서 등록하였으면 합니다."

석하랑은 선수를 쳤다.

"두분께서 동의만 해주신다면, 제가 김누리 양의 성장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석하랑 본인은 보호자가 없었기에 광검이 후견인이자 보호자로서 협회에 히어로로 등록을 하였고, 성인이 되지 않은 미성년 이능력자가 히어로가 되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갑작스럽게 말씀을 드려서 혼란스러우실 거라고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김누리 양의 재능을 그냥 두고보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이렇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누리 재능이…어느정도길래요?"

"어쩌면 S급으로 각성할지도 모르죠. 제가 S급으로 9년을 살았다가 올 해 SS가 된 것 처럼, 누리 양도 잘하면 제 경지에도 오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누리가...SS…."

두 부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구나 이능력자가 되기를 바라는 시대에 딸이 전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존재가 된다는 생각에 입이 바싹 말라왔다.

그 말도 안 되는 장밋빛 꿈을 제시하는 이가 다른 이도 아닌 <설화령> 석하랑이라는 것에 두 부부는 가슴이 설레였다.

그러나 그들은 석하랑의 제안에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다.

"요즘 이능력자들 히어로가 되면 그냥 썩는다던데...."

"설화령 님 앞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곤란하지만, 요즘 대세는 헌터 아니겠습니까...?"

딸의 재능을 알고 나니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두 부부는 은근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석하랑은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럼 두 분께서는 누리 양을 헌터로 키우실 생각이십니까?"

"크흠, 그거야 집사람과 논의를 해봐야하겠지만 아무래도 그 쪽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히어로로 사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그래요. 똑같은 A급, 아니 SS급이라고 한다면 더 많은 부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게 더 낫지 않겠어요? 히어로로 얻을 수 있는 건 본인의 보람과 명예밖에 없는데."

두 부부는 석하랑의 제안을 서서히 거절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하지만 석하랑은 굴하지 않았다.

"돈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현재 한국 협회에서도 히어로들의 활동에 대해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헌터 처럼 자유롭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세금도 지금 헌터로 등록하면 당분간 면제에 감세고.... 미성년이라고 해도 히어로로 활동하는 것처럼 헌터도 가능할 거 아녜요? 청화단이라는 곳에서도 A급 이능력자라면 받아줄 것 같은데."

빠득.

석하랑이 이를 갈았고, 방 안의 온도가 아주 약간 내려갔다. 평정을 잃은 석하랑이 마력을 슬쩍 내보낸 일종의 시위였으나, 두 부부는 잠시 겁을 먹었을 뿐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히, 히어로가 지금 일반인들을 겁박하시는 겁니까?"

"아무리 누리의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리의 미래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논의를 해봐야...."

"제일 중요한 건 안 물어보시네요."

석하랑은 피닉스조차 가장 중요시했던 것을 정작 부모가 신경쓰지 않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석하랑은 둘을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누리 본인이 뭘 원하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게 먼저 아닐까요?"

"......15살 애가 뭘 알겠습니까?"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아이에요. 아직 스스로 판단하기에는 어린-"

"그런 아이를 2주 동안 집에 스스로 돌아올 때 까지 방치합니까?"

석하랑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서려있었다. 두 부부는 애써 모른척하고 있던 부분을 석하랑이 짚자 얼굴이 벌게졌다.

"이능력자인 걸 모를 때는 집에 스스로 돌아오지 않으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찾지도 않았던 분들이, 이제와서 누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아니, 크흠, 그걸 여기서 말씀하시면...."

"저희도 몰랐죠. 누리가 그 정도로 고집이 강할지. 그래도 저희 나름대로 누리를 찾으러 다닌...."

쩌적, 쩌적.

벽에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석하랑의 머리칼이 나풀거리며 휘날렸고, 그건 꼭 백발의 마녀가 성질을 부리는 것 같았다.

"당신들, 설마 딸이 뭘했는지도 몰라요?"

"......딸?"

"서울 시청에 매일같이 글 올리면서 동생 찾아달라고 난리였어요. 언니는 동생 찾으려고 갖은 애를 썼는데, 정작 그 부모는 언니를 우는 사진을 찍어서 은하대학교 원서에 넣어요?"

"......."

두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이도 고작 누리와 6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훨씬 높은 자리에 위치한 이의 정론에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리 양이 지금 제일 바라는 게 뭘 것 같아요?"

석하랑은 기가 막힌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나름 히어로라고 마지막까지 사람을 믿었지만, '피닉스가 이미 예언한대로'그들은 누리를 신경쓰지 않는, 이른바 자식을 '물건'처럼 생각하는 괴물같은 부모였다.

"일단 집에서 나오는 거예요. 본인이 그걸 희망하고, 저는 그걸 들어주려고 제자로 들이겠다고 말한 겁니다."

"...우선 저희도 누리와 얘기를 좀-"

"선택하세요."

석하랑은 굳은 얼굴로 두 부부를 협박했다.

"당신 두 부부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세상에 전부 알려지는 걸 바라세요, 아니면 그냥 누리의 선택을 존중하는 부모로 남고 싶으세요?"

상담은 끝났다.

* * *

잠시 뒤, 신서울 히어로 협회 지부.

"진짜로 괜찮은 거 맞나? 내 너무 악독하게 말한 것 같지 않나?"

"전혀요."

석하랑은 괜히 걱정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누리를 위해 일부러 악역을 자처하였지만, 정작 그 역할을 하고 나서도 석하랑은 신경이 쓰여 좀처럼 자리에 앉지를 못했다.

"누리 엄빠가 나 완전 못된 년으로 생각하면 우야지? 암만 그케도 나이 21살짜리 얼라가 어른들 상대로 막 뭐라 카는거 싹퉁바가지 없는 짓 아이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시고."

"암만 예비 범죄자라케도 사람이 우예 그라는데. 아, 씁. 너무 말을 막했나...?"

석하랑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에 쪼그려앉았다. 나는 석하랑이 두 부부에게 했던 말들을 영상으로 되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보다는 훨씬 약하게 뭐라고 하네.'

미래에서 석하랑은 김누리 부모에 대해 거의 죽일듯이 달려들었다.

오죽하면 그 정도가 심하여, S급으로 각성한 김누리가 석하랑을 상대로 '패드립은 쳐도 내가 치지 언니가 왜 침!'이러면서 한 판 제대로 붙으려고 했었다. 석하랑이 했던 말들은 미래의 말에 비교하면 지극히 정중하고 신사적인 담화였다.

"아무튼 당분간 누리 잘 부탁해요. 당신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으니까."

"...내 하나만 물어보자. 니 누리한테 잘 해주는 거 봐서는 누리도 그거 맞제?"

"네."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다. 석하랑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도 그렇고 누리도 그렇고.... 니랑 엮인 사람들은 다 이 모양이가? 요즘 세상에 안 그런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서도, 다들 어디 하나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힘든 사람들 밖에 없는데."

"그런 셈이죠?"

다들 무언가 결핍된게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결핍은 주인공과의 사랑을 통해 채워졌다.

"...여러모로 고맙기는 하네. 심정적으로는 확 엎어버리고 싶지만, 다들 이런 사람들이면 내가 뭐라카기에도 애매하고. 쯧. 니, 빨리 더 말해봐라. 이제 몇 명 남았는데? 혹시 걔들도 누리처럼 고생하고 있는 거 아이가? 퍼뜩 말해봐라. 내 구하고 올게."

"그럴지도 모르는데 당장 구할 방법은 없네요. 한 명은 지금 한국에 있는지도 모르고, 한 명은 애초에 한국에 있을 리가 없고. 마지막 한 명은...."

이것까지 말해줘야하나. 하지만 석하랑이 정령인만큼, 석하랑은 알 필요가 있었다. 다른 정령들도 그렇고.

"...지금 한국에 있기는 한데, 이게 좀 애매하거든요?"

"뭔 소리야?"

"아니, 그, 뭐라고 해야하나, 음...."

진짜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내일있을 뉴클리언 레이드라는 큰 전투를 눈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옳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석하랑은 모든 걸 파토내고 누리를 데리고 부산으로 돌아갈 기세였다.

"지금 '미각성'상태일 거예요. 본인은 인간인 줄 알고 자랐을 테니까. 누리 부모랑 다르게, 주워온 아이인데도 사랑으로 키웠으니."

"......그게 무슨 말이여 방구여. 알아듣게 쉽게 설명하지 못해?"

"그게 한 번에 설명하기가 어려우니까 그러죠! 아, 진짜. 설명하기 더럽게 복잡한데...."

"야. 어영부영 자꾸 시간끌지말고, 딱 한줄로 요약해. 내 지금 누리 문제만 하더라도 정신사나워 죽겠거든? 오빠야새끼까지 이카면 내 진짜 돌아버릴라 카니까."

석하랑은 코를 찡그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한줄. 한줄이라.

"알았어요. 후우."

나는 석하랑이 원하는 대로 한줄로 간단히 요약하기로 했다. 이제 혼란스러워지는 건 모두 전적으로 석하랑의 책임이리라.

"마지막 한 명은 여신이에요. ...이계의 여신."

줄여서, 이계신.

...

진짜 본인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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