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51화 (351/1,497)

〈 351화 〉1부 15장 9

김누리를 부산에 맡기고 난 뒤.

어련히 석하랑이 알아서 잘 할 것이라 맡긴 나는 밤하늘을 날아 서울로 돌아왔다.

이제 종로도 제법 구색을 갖춰나가기 시작했으며, 서울 주민들도 어색하게나마 야밤에도 아무 문제없이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사락.

아직 서울 시청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나는 옥상에 날개를 접고 내려갔고, 남들이 보이지 않는 루트로 잠입하여 시장실을 습격했다.

"예. 정말로 다행입니다. 아무쪼록 따님을 잘 다독여주시길 바랍니다. 예. 시정에 전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침 전화통화도 한창 마무리되는 단계였다. 류천성은 일부러 시장실에 놓인 내선 전화를 통해 통화를 했고, 간신히 마무리를 하여 수화기를 놓았다.

"고마워요."

"연장자가 할 일이 이런 거지. 휴우, 정말 대단하군."

류천성은 넥타이를 풀어내렸다. 정장바지에 흰 와이셔츠는 전형적인 공무원의 옷이었지만, 지금은 넥타이를 잠깐 풀고 열을 삭혀야했다.

"살다살다 이리도 답답한 부모는 처음일세."

"여러모로 특이한 부모죠.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부모고."

"일단 언니라도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으니 망정이지, 그도 아니었으면 정말 답답해서 미쳐버릴 뻔 했어."

부모와 연락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누리의 한살 터울 언니, 김가온이 시청 게시판에 올린 글에 류천성이 직접 답을 하는 것으로 간신히 연락이 되었다.

가출 소녀 김누리. 서울에서 방황하다가 신서울을 거쳐 부산으로 내려감. 우연찮게 지나가던 석하랑이 이를 발견하고 석하랑이 보호중.

서울에서 흑염룡이 김누리를 보호했다거나, 내가 김누리를 석하랑에게 데려다주고 각성시켰다거나 하는 건 적당히 날조가 이루어졌다. 그들 부모에게는 김누리가 이능력자로 각성했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

"부모가 부산으로 내려가서 누리를 인계받으면서 석하랑이 넌지시 얘기할 거예요. 애가 이능력자로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럼 냅다 마력 패턴 검사를 할테고, 마력이 활성화되어 이능력자로 각성한 걸 알게 되겠죠?"

"내일 아침에 신서울에서 바로 부산으로 내려간다고 하더군. 그런데 괜찮겠나?"

"뭐가요?"

"아동학대로 어떻게 해보기에는 난감해.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김누리 양은 부모에게 갈 수밖에 없어. 설령 이능력자로 각성했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여러모로 문제였다.

"만 14세는 넘기기는 했어도, 아무렴 주거까지 어떻게 할 방법은 없지."

"그거는 이렇게 해결하기로 했어요."

나는 석하랑과 김누리, 두 명을 상대로 합의한 내용에 대하여 류천성에게 밝혔다. 류천성은 진지한 얼굴로 내 계획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 치고는 생각보다 견실한 계획이군. 그런데 제대로 되겠나?"

"제대로 되어야죠. SS급 원탁의 히어로가 제자로 들이겠다고 제안하는데 설마 안 받겠어요?"

우리의 계획은 단순했다.

김누리 부모가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고는 못 베길 거래를 제안하는 것. 그게 석하랑과 김누리의 사제지간이었다.

"나이 차는 고작 6살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등급으로보나 히어로 경력으로보나 석하랑은 충분히 김누리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어요. 차고 넘치죠. 적어도 겉으로는."

"그래…. 그런데 말이야."

류천성은 여전히 복잡한 얼굴이었다. 뭔가 켕기는 부분이 있는 눈치였다.

"왜요?"

"아니. 내가 직접 통화를 하면서 은연중에 느낀건데 말이야…."

류천성은 긴가민가한 얼굴로 자신의 예상을 말했다.

"돈문제를 걸고넘어진다거나 하진 않겠지?"

"재워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다 하는데요?"

"아니. 뭐 내 딸이 석하랑 제자니 뭐니 하면서 호가호위 한다거나…."

"그건 충분히 가능성 있겠네요."

오히려 가능성이 차고 넘쳤다. 김누리 부모는 원작에서도 김누리가 신관의 팀원이라는 걸 이용해 빚을 내고 사업을 벌렸고, 결국 점점 그 정도는 심해졌다.

결국 괴인들에게 손을 벌렸다가 그 반동으로 괴인이 되기까지하는 양반들이다.

"어떻게 방법 없을까요? 살인멸구는 좀 그런데."

"그거야 당연하지. 입을 닥치게 만들고 싶은 건 동감하네만…. 음, 단장. 자네만 괜찮다면 그 방법은 어떤가?"

"뭐요?"

류천성은 손으로 입에 지퍼를 채웠다.

"돈으로 입을 닥치게 만드는 거지."

"......"

돈 문제로 가정이 파탄나게 될 가정에 돈으로 닥치게 만들자?

"그거 참 좋은 생각이네요."

"아무렴."

"그런데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생각한 거죠?"

"재개발 지역에 알박기하는 사람들이랑 말하는게 별반 다를 게 없던데?"

정확한 비유였다.

"좋아요. 그럼 두 번째 문제."

"또있나?"

"당연하죠. 류천성, 당신은 어떻게 하실래요? 만약에 당신 아들이나 딸이 같은 상황에 놓이면. 예를 들어서...."

나는 긴장으로 굳은 류천성에게 각기 다른 불꽃을 피웠다.

"박봉에 보람은 넘치는 히어로 길을 걸으라고 하겠어요, 아니면 황금빛 미래가 보장된 헌터 길을 걸으라고 하겠어요?"

류천성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밤이 깊었고, 나는 시장실을 빠져나와 내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모든 선택은 김누리의 몫.

나는 그저 김누리의 선택을 응원할 뿐이다.

* * *

<8월 14일 오전 10시.>

석하랑은 부산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부산을 벗어나는 경우도 몹시 드물었고, 신서울로 올라가는 것도 상당히 드물었다. 더욱이 그게 개인적으로 혼자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버스를 이용해 신서울로 올라가는 것이라면 더욱 드물었다.

- 석하랑이 왜 버스를 타?

- 오늘 신서울에서 무슨 일 있나? 협회에서 뭐 행사 있음?

- 옆에 있는 쟤는 누구야? 그냥 우연히 앉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고속버스 안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앞좌석까지 울렸다. 혼란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 맨 뒷 좌석에 앉겠다고 한게 오히려 더 화근이었다. 승객에 더불어 운전수까지 뒤를 흘깃거리고 있었다.

- 뭐라 말 하는 거 같은데? 소리는 안들려?

- 큿, 결계인가.

누군가의 말마따나, 석하랑은 진짜로 자신들이 앉은 자리에 보이지 않는 결계를 쳤다. 가까이 다가가면 얇은 수막이 펼쳐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겠으나, 당연히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 사람들은 안전벨트를 채우고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내 앞 자리 대머리 아저씨 존잘!"

"너 앞에 분 못 듣는다고 막말할래?"

"결계라는 거 잘 되는지 테스트 해본 거임. 언니 대박이네? 피방가면 개쩔겠다. 흐흐."

그러므로 둘은 기탄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던 김누리도 자신의 소리가 전혀 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껏 누리며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언니, 근데 면허 없음? 차는?"

"그냥 날아다니면 되는데 뭐하러 면허를 따겠어. 차도 그렇고."

"언니 뚜벅이임?"

"...얘, 나 부산에서 북경까지 30분이면 날아가는 사람이거든?"

석하랑은 울컥했지만 김누리를 이길 수 없었다. 애초에 15살 아이를 상대로 말로 싸운다는 것 자체가 어른으로서 패배했다는 거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김누리는 천가을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기 센 아이였다.

"그럼 날아가지 뭐하러 버스 탐?"

"...야, 너 배려하는 거야. 내가 너 서울까지 이렇게 안고 갈까?"

"극혐. 암만 스승이랑 제자가 될 관계라도, 우리 선은 지키자. 남들이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음?"

석하랑은 고개를 창가로 돌리며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그나마 서울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게 석하랑으로서는 심적 위로가 되었다.

"너 신서울 가면 부모님께 잘 말씀드려야한다? 잊지마, 괜히 신나서 이능력 쓰지 말고."

"히히. 당연하지."

김누리는 의자에 가려진 아래에서 작은 물방울을 만들어냈다. 밤새 물의 정령이 직접 코치를 통해 마력을 제어하는 법을 터득한 김누리는 제법 이능력자 티가 나는 정도로 마력을 조정했다.

"야...!"

그에 석하랑은 없던 가슴도 철렁내려앉을 것 같았다. 김누리가 복도쪽에 앉아있던 만큼, 혹시나 누군가가 봤을까봐 전전긍긍했다.

"네가 창가쪽 싫다고 해놓고 거기서 이능력 쓰면 어떡해...!"

"창가쪽 앉으면 맘껏 쓸 수 있는 거임?"

"그런 말이 아니잖아! 얘 진짜 골때리네."

"언니, 그게 하나밖에 없을 제자한테 할 소리임? 스승이 심보가 고약해."

김누리는 석하랑의 속을 살살 긁었다. 하지만 석하랑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옷장이 그모양 그꼴이지."

"야!"

석하랑이 오히려 빽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붉혔지만, 김누리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나 15년 살면서 그런 더러운 옷장은 처음봤다. 그게 옷장이야? 옷무덤이지. 단장님이 왔을 때 뭐라 안했어?"

"......금마, 크흠. 걔가 옷장 안쪽까지는 안 건드리거든?!"

"안 건드리는게 아니라 못 건드리는 거겠지. 하도 더러워서. 내가 진짜 어제 토할뻔. 웁."

김누리는 구토하는 시늉을 하며 궁시렁거렸다. 석하랑은 주먹이 울었지만 차마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언니 그래서 시집은 제대로 갈 수 있겠음?"

"나 아직 21살이거든?"

"나이가 중요함? 살림살이가 개판인데."

"얘는 꼭 누구처럼 말하네?"

석하랑은 모른다. 피닉스가 석하랑에게 하는 모든 잔소리가 실은 김누리(20세)의 입에서 먼저 튀어나왔던 것이라는 걸. 그러나 사람의 성정이 크게 변하지 않듯, 김누리(15세)가 내뱉는 촌철살인도 미래와 그닥 다르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모르지만.

"살림은 돈으로 커버하면 돼! 나 돈 많아."

"그 많은 돈으로 맨날 음식 배달시키는데 쓰고 다른 데 안 쓰잖아."

"남자한테 집안일 시키면 되지! 괜찮아, 걔 집안일 엄청 잘함."

"내가 보기에는 언니 땜에 그 남자 집안일 잘하게 된 걸걸? 아, 이 여자는 도저히 답이 없다 싶어서 자기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거지."

석하랑은 침묵했다. 김누리는 석하랑의 집에서 챙겨온 블루베리 음료를 홀짝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휴, 남자가 얼마나 여자를 사랑했으면 이런 사람을 데리고 살 생각을 다 할까. 언니 진짜 그 남자한테 잘 해. 언니 창고도 그 남자가 정리해줬다며? 나였으면 평생 모시고 살았겠다. 쯧쯧."

"......어후, 여기 왜 이렇게 덥니?"

석하랑은 괜히 목덜미까지 열이 올라 손부채질을 했다. 말을 돌리려함에도 김누리의 핀잔은 이어졌다.

"음식도 냉장고에 다 해주고 반찬거리라고 집어넣어 주고가, 화장실 청소까지 다 해줘, 옷까지 코디 맞춰서 챙겨줘. 아, 근데 언니 맞춰준 코디 그대로 얼음 마네킹에다 하는 거는 좀 그렇더라. 마네킹 언니 몸이랑 똑같아서 소름. 근데 언니 남친 누구임?"

"......."

석하랑은 진심으로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누리의 오해를 확실히 정정했다.

"남자친구 아니야."

"그러면?"

"미래의 남편이지."

"아...."

김누리는 복잡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자취하는 여자 집에 얹혀사는 거 개민폐인데. 언니, 돈 많으니까 혹시 방 하나 구해줄 수 있음? 나 언니 집에 등하교하게."

"안 돼."

짜증은 나지만, 석하랑은 김누리를 집에서 쫓아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제자는 스승이랑 같이 생활하는 거 국룰이야."

"어휴, 알았음. 내가 얹혀사는 입장에서 뭐라 말은 못하겠으니 조용히 할게. 대신."

김누리는 고속버스가 신서울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을 계산하며, 석하랑의 마도기어를 조종해 쇼핑몰 사이트를 열었다.

"언니 살림살이 너무 없어서 그런데 필요한 거 좀 사도 됨? 언니 돈으로."

"...마음대로 하렴."

석하랑은 속으로 나쁜 마음을 먹었다. 불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과소비를 하겠다 싶으면, 당장 어른으로서 절제하는 미덕을 가르쳐주기로.

"언니, 울샴푸 뭐쓸래? 니트 다 올이 망가졌더라."

"언니, 호일 그냥 쓰면 환경 오염되는 거 모름? 종이 호일 쓰셈."

"언니, 이거 방향제인데-"

"너 사고싶은 대로 사렴."

석하랑은 순순히 항복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마력으로는 석하랑이 압승을 거두었어도, 살림력에 있어서 석하랑은 김누리를 이길 수 없었다.

"......."

그리고 석하랑은 은연중에 김누리를 위아래로 훑고, 추한 질투감을 기반으로 하여 속으로 승리감에 고취되어 있었다.

버스가 신서울에 도착하기까지, 둘의 쇼핑은 계속되었다. 석하랑의 잔고는 그의 마력처럼 마르지 않았다.

* * *

그 시각, 서울.

간부들은 아침을 맞이한 즉시 회의실로 모였다. 나 또한 회의실에 자리를 잡고 한창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다들 어때요?"

"어렵습니다. 히어로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더 높습니다."

"그냥 쌩까고 헌터로 받아들이면 안 돼? 우리 굳이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있나?"

나와 청화단의 간부들은 현재 절찬리 네트워크에서 게시글을 올리고 댓글을 쓰며 사람들은 선동하고 있었다.

- 석하랑 옆에 있는 애 뭔가 엄청난 재능있는 애 아니냐!!

사실에 근거한 음모론이었지만, 석하랑이 버스를 타고 신서울로 올라가면서 지핀 장작은 모든 커뮤니티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누리 양 정체를 찾은 이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중학교 학생들인듯 합니다만."

"게시글 좌표 모아서 히카리한테 보내요. 그거 해킹해서 삭제하도록 하면 되니까."

"보스, 새로운 헌터는 언제나 환영이라면서 길드원으로 모집하고 싶다는데?"

"김누리는 헌터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청화단이 찜한 아이니까 절대로 안 될 말이죠."

개인정보는 온전히 차단. 그리고 적당히 불씨를 지핀 음모론은 두 명이 신서울에 도착해 김누리가 협회에 이능력자로 등록한 순간, 캠프파이어처럼 활활 타오를 것이다.

석하랑이 직접 발굴해낸 15세 A급 이능력자.

김누리가 헌터가 되느냐, 히어로가 되느냐에 따라 다른 이능력자들의 선택도 크게 갈릴 것이다.

"잊지마요. 우리는 아주 '정당한' 방법으로 인재들을 영입하는 거니까."

"...그런데 너, 그건 어쩔 거야."

천가을이 가장 빠르게 타자를 두드리다가 내게 물었다.

"석하랑이 누리네 부모들 설득해서 진짜 제자로 삼으면? 누리 히어로 되는데?"

"에이, 그럴리가."

나는 확신했다.

"설득하려다가 죽이려고 안 들면 다행이죠."

"확신해? 내기해 봐?"

"좋아요. 만약에 석하랑이 누리네 부모 설득하면...."

나는 간부들을 한 번 쓱 훑으며 공언했다.

"내가 은유하한테 부탁해서 한 명당 바이오로이드 한 대씩 지급할게요."

간부들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고, 천가을은 아홉 촉수까지 동원해 타이핑을 했다.

"...당신들 지금 혹시 석하랑 응원하고 있는 건 아니죠?"

간부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