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45화 (345/1,497)

〈 345화 〉1부 15장 3

북한의 붕괴에 따라 국경을 나누는 의미는 이제 없어졌지만, 당연히 사람들은 한국의 북쪽 국경을 38선-DMZ로 생각하고 있었다.

서울은 완전히 수복이 이루어진지 오래고, 이제는 경기 북부와 강원도까지 완벽히 괴수의 뿌리를 뽑아냈다. 파주, 연천, 철원, 고성 등지에는 군부대 대신 새롭게 각성한 히어로들이 상주하게 되었고, 속초, 춘천, 의정부에도 이제는 사람이 살 수는 있게 되었다.

그 선봉에는 청화단이 있었다.

헌터 길드 청화단은 38선 북쪽에서 내려오는 온갖 B, A급 괴수들을 찾아 쓰러뜨렸다. DMZ 너머 옛 개성과 강원도 북부까지 원정을 나가서 괴수들을 쓰러뜨렸고, 그 사체와 코어는 고스란히 한국 경제의 뿌리로 흘러들어갔다.

그에 따라, 사람들에게는 일확천금의 꿈이 생겨났다.

- 헌터라는 거, 잘만하면 떼돈을 벌 수 있는 거 아냐?

청화단이 만들어지기 이전, 선의철의 정부는 철저히 이능력자들이 관리 외의 장소에서 날뛰는 것을 꺼려했다.

- 이능력을 가진 이들은 당연히 국가와 국민에 헌신해야한다.

무조건 협회에 등록하여 히어로가 되기를 강요했고, 그래서 일부 이능력자들은 자신의 이능을 철저히 숨겼다.

선의철은 그들을 모두 잠재적 빌런으로 규정했고, 실제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능력을 쓴 이들도 모두 빌런으로 잡혀 일부는 소나무 부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선의철의 몰락과 함께 선의철을 지지하던 신서울의 신 토호들은 지지기반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점차 신서울에 밀집되어있던 권력 자체가 서울과 부산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서울은 헌터들의 성지가 되었고,

부산은 히어로들의 집결지가 되었다.

수도이전을 통해 빠르게 성장한 신서울은 점점 쇠락하기 시작했으나 그 누구도 그걸 막지 못했다.

- 정부는 이능력자들의 헌터 등록을 환영합니다.

이능력자의 능력 미등록에 따른 범죄자화 철폐.

이능력자 헌터 등록시, 마력 패턴 상시 노출에 대한 의무 폐지.

헌터 등록 라이센스 취득세 면제.

반 년간 헌터 활동에 따른 코어 및 부산물 판매 이득에 따른 세금 감세.

신서울의 최고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정부에서부터 헌터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정부에서부터 직접 헌터 길드를 만드는 게 아니냐 하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이능력자들은 점점 헌터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결정타를 날린 것이 서울의 주민들.

물가촉천민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에는 물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이능력자 수가 많았지만, 무려 5천명이나 되는 D~B등급 '수속성' 이능력자들의 등장에 전 세계가 까무러쳤다.

<한강방위대>.

직접 개조한 K-2 모델건에 마력의 탄환을 실어 발사하는 물총부대가 직접 DMZ를 넘어가 개성 일대를 평정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헌터가 되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대 헌터 시대의 개막.

그리고 그 새로운 시대의 중심은 서울이었고, 시대의 흐름은 여의도로 집결되기 시작했다.

***

<오후 12시 55분, 청화단 아지트 대회의실.>

'뉴클리언 잡으면 옛 북한 땅에도 더는 괴수가 안 나오지 싶은데.'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모처럼 사람들은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괴수들을 잡는 헌터가 되기를 열망했지만, 그 화수분의 맥을 끊어버리면 헌터들은 크게 실망할 것이다.

괴수 자체가 안 나오지는 않는다.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초소형 차원문을 통해 한 마리, 또는 열 마리도 넘게 테라에서 지구로 넘어오고는 한다.

'애초에 전 지구에 차원문이 열린 셈이나 마찬가지니.'

인간이 닫을 수 없는 곳에 생긴 차원문에서 쏟아지는 괴수들만 하더라도 전 지구에 넓게 퍼져있다. 언젠가 전부 닫기는 해야하지만, 그건 엄청 나중의 일이다.

'여차하면 내가 관리하는 선에서 차원문을 열면 돼.'

아지다하카가 괴인을 매개체로 테라로의 차원문을 열 듯, 나 또한 큐브를 이용하면 차원문을 열 수 있기는 하다.

'됐어, 어차피 나중가면 코어는 쏟아져.'

굳이 지리적 문제 때문에 사고를 일으킬 생각은 없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대회의실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미안해요. 기다렸죠?"

"1시부터 시작이니까 1분 남았지."

가을은 마도기어에서 띄워올린 스톱워치를 손으로 흩었다.

"자, 제 때 왔지? 코어 내놔."

"끄응…. 요즘 일하느라 코어도 없는데…."

간부들은 내 도착 시간을 두고 또 내기를 건 듯 했다. 나는 상석에 앉아 간부들의 면면을 살폈다.

조덕배. 김지화. 천가을.

류천성. 제임스 리. 유이신.

청화단의 원년 멤버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며, 지금 세상에서 가장 바쁜 5명이었다. 누구 대머리 한 명이야 일 안하니까 제외.

딸칵.

마침 시침도 정확히 1시를 가리켰다. 나는 복잡한 의례를 생략한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원탁 회의가 연기됐습니다. 8월 15일 뉴클리어 전 이후, 30일까지 2주간 휴가 기간이 생겼어요. 자, 어서 아이디어를 내봐요. 어디로 휴가갈까요?"

"......."

간부들은 침묵했다. 아이디어를 내랬더니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왜요?"

"단장님, 우선 이것부터 질문하겠습니다."

김지화가 포문을 열었다.

"2주간 휴가라는 말은 2주 동안 어디 휴가를 떠난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2주간 다른 일로 휴가인 척 공작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 애매하긴 했네요."

나는 모두의 앞에 달력을 띄웠다. 8월 16일부터 8월 29일. 정확히 14일간 동안의 기간을 전부 빨갛게 물들였다.

"이 동안 전부 다 쉽니다. 가웨인이 잠적해 준 바람에 시간이 붕 떠버렸어요. 그렇다고 이 때 정령들 찾으러 다녀봐야 지금까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은 애들이 나올 것 같지도 않고."

"......천가을, 혹시 너 이제 분신도 쓰냐? 쉬자는 말이 저 놈 입에서 나올 말이야?"

"무슨 소리야. 저거 진퉁이야."

"이것들이 휴가를 준다고 해도 이러네."

확 휴가를 짤라버릴까 울컥한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넓은 마음으로 참았다.

"진짜로 쉴 거예요. 9월 들어가기 전에 숨 좀 돌리자는 의미에서. 원하면 다들 각자 맡은 장소에서 일해도 돼요."

"정중히 사양하지. 허허."

류천성은 어느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몸을 의자에 눕혔다. 그는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에 늘어난 인구와 행정 업무, 그리고 서울에 자리잡은 헌터들에 대한 관리 책임까지 도맡아서 주도하고 있었다.

"궁성, 휴가 기간동안 강원도로 같이 가주겠나? 이번에 원정 나가면 나도 S급 찍을 것 같은데."

"아, 좀 닥쳐요…."

궁성, 유이신은 조마조마한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뱃속에 깃든 터뷸러스의 힘 덕분에 일시적으로 S급에 올랐지만, 터뷸러스가 마력을 끊임없이 먹어치우는 바람에 지금 일시적으로 A+급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안 그래도 요즘 혼자서 나댄다고 욕먹고 있는데…."

"코어 욕심 부린다고 좀 욕 먹기는 했지."

아직 이명은 받지 못했지만, S급에 잠시 올랐던 유이신은 '코어돼지'라는 오명을 받고 있었다. S급에 오를려고 E급 코어까지 먹어치운 탓에, 청화단 내에서는 함께 전선에 나서기를 꺼리는 존재였다.

"하늘성은 코어 욕심 없으니까 둘이 딱 맞을 것 같은데."

"싫어요. 하늘성이랑 같이 사면 수행 비서들이랑 기자들 따라붙을 거 아녜요. 사람들 앞에서 또 가버리는 거 보이라고요? 그건 싫어요."

"코어에 발정난 돼지 새끼."

"단장님, 저거 제가 죽여도 되나요?"

"조덕배 저러는게 하루 이틀도 아니니까 진정해요. 애초에 남들 앞에서 A급 코어라고 눈돌아간 당신 잘못이니까."

"......하아."

유이신은 두손으로 얼굴을 덮었고, 김지화가 유이신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며 토닥였다. 이미 간부들의 회의장에도 애정행각을 보일 정도로 둘은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서 하늘성은 강원도로 수련 떠날 거고, 다른 사람들은?"

"휴가 기간 동안 그냥 각자 노는 거야?"

천가을이 고개를 갸웃하며 달력을 살폈다.

"단체로 어디 놀러가거나 하는 건 없네?"

"일정짜고 하는 거 귀찮지 않아요?"

"네가 귀찮을 일이 뭐있어? 네가 날짜만 정하면 좋다고 달려올 사람들만 한 트럭인데."

"......그건 그렇네요."

이전에 부산에 내려갔을 때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은유하와 천가을이 주도를 해서 모든 걸 해결했다.

'온천 좋았지.'

새벽에 홀로 온천수에 몸을 담궈 휴식을 취한 날은 이 세계에서 편하게 쉰 몇 안 되는 경험이었다. 아마 그 날 히로인 누구 하나라도 들어왔더라면 분명히 뭔가 일이 생겼을 것이다.

"......흐음."

다함께 여행을 가고, 나 혼자 따로 창염을 불러내어 그 휴양지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결계를 치고 놀면 아무도 모를 터.

"그럼 2박 3일로 26일~28일. 29일은 각자 여독을 풀고, 30일은 원탁 맞이할 준비를 합시다."

"그냥 자기 멋대로 날짜를 박아버리네?"

"네."

"알았어. 아직 2주 남았으니까, 나머지 애들이 일정 알아서 비우겠지."

"나머지?"

나는 가을의 뒤숭숭한 발언에 괜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을은 어깨를 으쓱이며 좌중을 훑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말고도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 많을 걸?"

"......."

설마 진짜로 다 부를 생각인 건가. 나는 괜히 소름이 돋았다.

"이, 일단 간부들 계획은? 단체 워크샵의 장소랑 구체적인 시간은 나중에 정하기로 하고, 각자 뭐 하면서 지낼 거예요?"

류천성과 유이신의 계획은 이미 들었다. 나는 마도기어로 간부들의 휴가 계획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 <하늘성> 류천성, S급에 오르기 위한 괴수 사냥.

# <궁성> 유이신, 안정적인 S급 유지를 위한 코어 확보.

"천가을, 당신은?"

"일단은 가루라랑 놀 거기는 하지만, 신서울에 잠깐 들어가려고 해. 개인적인 용무야. 청화단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어."

"음…. 알았어요. 어련히 알아서 잘 처신할테니까 걱정 안 해요."

# <팬텀> 천가을, 서울에서 지내기를 희망. 도중에 신서울에 방문. 목적은 불명이나 개인적인 용무.

"아키택트는요?"

"......."

제임스는 캔맥주를 홀짝이며 침묵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는 그는 한참동안 나를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분명히 예고하는데 말이야, 내 휴가는 없을 거야. 왜? 보스가 사고치고 어디 파괴하면 또 그걸 복구하러 다니느라 좆뺑이 칠 거란 말이지. 모스크바도 그렇고, 인도 타지마할도 그렇고. 안 그래?"

"......."

유구무언이었지만 아키택트는 그만큼 능력이 되는 사람이었다. 은하대학교가 완공된 이후, 아키택트는 이제 서울을 벗어나 경기 북부, 강원도, 그리고 온갖 장소를 돌아다니며 건물들을 복구하고 다녔다.

"이번에는 괜찮아요. 어차피 평양 땅은 다 파괴되어서 복구할 게 없으니까."

"평양 말고 다른 곳에서 날뛰다가 아차 싶으면 다시 나 부를 거 아니냐?"

"...그런 일 없게 싸울 게요. 알잖아요? 지금 히카리 양이 뭘 만들고 있는지."

"...에휴, 알겠다. 보스, 나 진짜 보스 믿고 쉴 거다? 일정 진짜 타이트하게 잡을 거야?"

그리하여 타이트하게 잡힌 아키택트의 휴가는 간단했다.

# <아키택트> 1일 1드라마 1시즌.

"...참 당신 다운 일정이네요."

"말리지 마, 보스. 나 오늘부터 뭐 볼 지 리스트 작성해야하니까."

"그러세요."

아키택트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중에 사고 치고 불러도 그닥 미안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정 보고 싶으면 성주를 쓰러뜨린 뒤에 마음 껏 보게 하면 되리라.

"보스 지금 이상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맞아요."

"...젠장, 이틀 정도는 비워놔야겠군."

아키택트는 질린 얼굴로 이를 갈았고, 다른 간부들은 그를 향해 애도했다.

"그럼 등대, 당신은요?"

"저야 뭐…. 흠흠."

김지화는 유이신의 눈치를 봤다. 유이신은 실시간으로 깎여나가는 마력에 히스테리를 부리려다가 김지화의 시선을 받고 헤벌레 웃었다.

"어머나, 후흐흐…."

그 표정은 꼭 교미 후에 수컷을 잡아먹는 암사마귀의 표정이었다. 나는 김지화에게 마도기어로 따로 문자를 넣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회전하는 진공청소기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입니다.]

"허허."

터뷸러스의 힘이 그 정도일 줄이야. 하긴 터뷸러스를 제압하고 빼앗긴 힘을 다시 제것으로 만든 운사 박라온도 그런 느낌이기는 했다.

# <등대> 김지화, 서울에서 휴식. 밤에는 섹파인 유이신과 휴식.

'이걸로 얼추 다 됐다.'

"당신 빼고."

"......아. 나?"

팔짱을 낀 채 잠들어있던 덕배는 턱을 긁적이며 심드렁한 얼굴로 되물었다.

"어…. 나 그냥 너 따라다니면서 구경하면 안 되냐?"

"그게 휴가 계획이에요?"

"그게 제일 재미있을 것 같은데."

"......."

어떻게 할까.

"귀걸이로만 데리고 다녀도 괜찮아요?"

"엉."

"그럼 좋을대로 하시고."

조덕배는 휴가기간동안 내 귀걸이가 되기로 했다. 아니, 그냥 깔창으로 쓰자. 귀걸이 달면 또 어디서 난 거냐고 묻는 애들이 있을테니.

그리고 약 세 시간.

간부들은 저마다 구체적인 휴가 계획을 세웠고, 나는 그들의 휴가 계획을 들으며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눕혔다.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 만큼,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면 다들 해산. 오늘은 더 할 일 없으니까 해산하도록하죠."

내 말에 간부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덕배의 후드를 낚아챘다.

"당신 빼고."

나는 덕배를 납치하여 신서울로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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