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9화 〉1부 14장 30
영웅의 귀환이었다.
S급 괴수, 야차 격퇴.
S급 괴수, 킨나라 격퇴.
거기에 S급 괴수, 가루라의 사도화.
귀국길에는 빌런 <마하트마>의 차원문 테러에서 무사히 살아남고, 오히려 차원문을 키워서 잡아먹기까지 성공.
킨나라의 코어를 타지마할 재건을 위해 헌사했던 기부 덕분인지, 원정대는 돌아오는 길에 막대한 코어 이득을 얻었다.
비록 S급 코어는 없었지만,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
솔직히 빈손으로 돌아와도 좋았다.
최저 A급으로만 편성된 정예 히어로들이 타국에서 무사히 돌아오는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였고, 그들이 S급 사도와 S급 이능력자를 함께 데리고 오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가루라와 카르나.
서울과 신서울에서 극성인 자들은 인천까지 나가서 그들을 맞이하려 했다. 하지만 한국은 위아래로 난리가 나서 순수하게 원정대의 귀국을 반길 상황이 아니었다.
대마도가 부산에 딱 달라붙어버렸다.
설화령은 부산에서 섬을 막아내는데 성공했으나, 어디까지나 섬의 진격을 막아세우는데 성공했을 뿐이었다.
'언제든 다시 또 대마도가 움직일 수 있다.'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정부는 영토 분쟁에 사활을 걸었으며, 대마도의 주민들 또한 혼란에 빠졌다.
'배를 타고 넘어갈 생각이었지, 섬을 타고 한국에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으나 그들은 대마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석하랑이 만든 얼음성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 1차적 이유였고, 감히 바다를 헤엄쳐 부산 땅에 디딜 엄두가 나지 않는게 2차적 이유였다.
"마! 디디기만 해봐라! 뼈를 분질러 버릴끼다!"
한순간에 바다를 빼앗긴 부산 사람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그 중에는 부산 토박이인 SS급 이능력자도 있었다.
- 무단으로 한국땅에 들어오는 자는 내가 직접 일본 땅에다 던져놓을 것이다.
석하랑의 경고를 무시한 한 남자가 얼음 상자가 되어 후쿠오카까지 떠내려갔다. 남자는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땅에 닿은 즉시 해동되었으나, 200km되는 바닷길을 얼어붙은 상태로 떠내려 가는 경험은 이루 말로 못할 공포였다.
그렇게 부산과 인천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중, 피닉스는 중요 인물을 데리고 신서울로 잠입했다.
"어서오세요, 고객님. 우선 저부터?"
신서울, 유성 일가 저택.
은유하는 밤을 지새운 눈으로 피닉스와 카르나를 맞이했다.
* * *
<신서울, 유성 일가 저택.>
"드디어 이 날이 왔군요. 오매불망 기다렸어요."
은유하는 정장까지 갖춰입고 나와 카르나를 맞이했다. 그 모습은 은재민이나 은하수 회장으로서 외국의 협력업체 사장단을 만날 때보다 더 진지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개천광 님."
"카르나라고 불러도 좋다. 그것 또한 나의 이름이기도 하니."
"예, 카르나 님."
은유하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리가 없다. 카르나는 은유하의 두 가지 꿈을 이루게 해줄 장본인이니까.
"당신의 PMC 대장이며, 당신을 S급으로 만들어줄 광속성 정령입니다."
"......우흐, 흐흐흐."
은유하는 귀에 걸리는 입꼬리를 숨기지 않았다. 카르나는 내 말을 바로 이해하고 은유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은유하는 곧장 카르나의 손을 두 손으로 맞잡았다.
우웅.
금빛의 마력이 둘 사이에서 일렁거렸다. 카르나의 색이 훨씬 더 짙기는 했지만, 은유하의 색 또한 옅다고는 할 수 없었다.
'본체네.'
인격을 인형들에 나눈 상태도 아닌, 모두 본체로 합친 퍼펙트 은유하였다. 망나니 기질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분명 이능력자로서의 향상심과 소녀의 감성이리라.
움찔.
한참동안 은유하의 속을 훑던 카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등을 두드렸다.
"...상당히 특이한 이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능력자군."
"지속성과 환속성이 서브니까요."
"네? 저 그 쪽으로도 재능있어요?"
내 말에 카르나는 긍정했고, 은유하는 깜짝 놀랐다. 카르나야 직접 느꼈을테니 내가 하는 말을 바로 이해했고, 은유하도 이제는 슬슬 내 화법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네. 둘다 아슬아슬하게 평균에 걸친 수치지만요."
지속성 56 , 환속성 49.
광속성 84 A라는 수치까지 모두 포함하면 은유하의 모든 마력 수치는 7의 배수까지 올라가는 특이한 존재였다.
"이제 카르나가 있으니 광속성만큼은 최대한으로 올라갈 수 있어요."
"저, 흠흠, 그럼 고객님."
은유하는 카르나의 눈치를 보며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나는 마도기어를 건드렸고, 은유하는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죄송해요. 지금 좀 카페인이 안 돌아서."
은유하는 바로 커피메이커로 달려가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한 번에 털어넣었다.
아무리 이능력자라도 식도가 뜨거울 법도 했지만, 은유하는 카페인 주사라도 있다면 당장 팔뚝에 찌를 기세였다.
"후우, 후우."
알싸한 커피향이 방안에 감돌았고, 카르나는 내게 작게 속삭였다.
"상당히 개성이 넘치는 여인이로군."
"그냥 또라이같다고 하세요. 맞으니까."
"......."
카르나는 정곡이 찔렸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은유하가 개망나니 기질을 꽁꽁 숨기고 이지적인 여인인 척 살아가듯, 카르나 또한 전투광 기질을 꽁꽁 숨기고 현자인 척 코스프레를 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은유하와 카르나는 제작사 공인 베스트 콤비다.
"카르나, 잠깐 앉아서 쉬고 있을래요? 은유하랑 잠깐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알겠다. 기다리지."
카르나는 소파로 떠나 명상에 빠졌고, 나는 마도기어로 은유하가 보내는 메세지를 확인했다.
[개천광 님이 광속성 정령이라면 제가 개천광 님과 싱크로도 가능한가요?]
[ㅇㅇ]
짝! 은유하는 손뼉을 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못본 척 고개를 숙였지만, 은유하는 오히려 개의치 않았다.
"후, 후후, 개천광 님!!"
"왜 그러나?"
"고객 님의 허락을 얻었어요! 자, 어서 저를 S급으로!"
"만들어놨는데?"
은유하가 대접한다고 내놓은 커피를 마시려던 카르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했잖아?"
"네?"
"이거요, 이거."
나는 손을 가리켰고, 은유하는 카르나와 맞잡았던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봤다.
"악수하자마자 바로 넣었다. 피닉스가 아끼는 이능력자라 하길래, 서비스로 조금 더 넣어줬지."
"당신, 그런 말도 알아요?"
"20년 동안 인간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무시하지 마."
카르나는 엄한 눈으로 내게 눈을 흘겼다. 개천광과 카르나가 적절히 섞인 성격은 내게도 생경했고, 여러모로 종잡을 수 없는 상태기도 했다.
"알았어요, 주의할게요. 그래서 어디까지 넣은 거예요?"
"......딱 우리보다 한 단계 낮은 정도?"
카르나는 손을 수평으로 세워 위아래로 움직였다. 은유하는 입맛을 다셨지만, 그래도 감지덕지하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카르나 님 덕분에 S급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어요."
"......? S급인가? 음?"
은유하의 인사에 카르나가 오히려 더 의문을 표했다.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은유하의 몸에 손을 올렸다.
"꺅, 고객님, 여기서 그런 일은...."
"아니."
나는 허탈함에 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등급적으로 한 단계를 낮추라고 했지, 누가 마력적으로 한 단계까지 낮추라고 했어요?"
"......내가 혼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광속성 이능력자라 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렇게 해줬는데."
"아끼는 광속성...."
은유하는 나를 은근한 눈빛으로 내려다봤고, 나는 은유하에게서 손을 떼어 거리를 벌렸다.
'젠장, 큐브 두 개 있었으면 각이었다.'
은유하와 카르나에게 동시에 쥐어짜이는 건 사양이다. 이능력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둘 다 내게 박아넣을 수 있는 수단이 분명히 있었다.
"크흠. 아무튼 은유하 아가씨, 축하해요. 여러모로."
"고객님. 지금 대화의 흐름상, 제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유추해보자면...."
은유하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올렸다.
"고객님과 카르나님의 단계, 99에서 1 낮은 단계인 걸 말씀하시는 거죠?"
"......은유하 똑똑해서 좋네요. 하하."
<인형술사> 은유하.
현재, SS급 98까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후후."
은유하는 나사가 빠진 것 마냥 헤실거리더니.
"꺄아아악! 사랑해요, 여러분!"
카르나의 볼에 뽀뽀를 하고, 나를 끌어안고 볼을 비비적거리는 기행을 펼쳤다.
"......이런 기습이 있을 줄이야."
"그거 싸우자는 거 아니니까 진정, 잠깐, 나한테는 하지마요!"
나는 은근슬쩍 입술을 박치기하려는 은유하를 떼어냈다. 은유하는 숨까지 헐떡이며 흥분해있었고, 좀처럼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 SS급이에요, 이제?!"
"아뇨. 그냥 길만 닦아놓은 거예요. 당신도 이제 다른 이능력자들 처럼 다음 단계로 각성을 두 번 거쳐야 SS급으로-"
"저 아카데미 등록할게요!"
"야."
나는 은유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너 이사장한다며요."
"......이사장은 바지사장 내세우면 돼요!"
아, 안 되는데.
"어차피 이런 일에 써먹으려고 인형을 만들어놓은 거잖아요? 후후, 22살 여자애가 이사장인 것 보다는 아무렴 노년의 회장이 나서는게 그림적으로 적절하죠! 진짜 사랑합니다, 고객님! 뭐 원하는 거 있으세요?!"
개망나니가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기를 원했다. 나는 은유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은유하의 가슴을 가리켰다.
"일단 사이즈 안 맞는 브라부터 빼고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
은유하는 벌써부터 C컵의 브라를 차고 있었다. 내 지적에 은유하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나와 개천광을 훑더니,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언젠가 자랄 거니까 미리 사놓는 겁니다!"
"다이어트 하는 여자들이 한 치수 적은 사이즈 사놓고 항상 저렇게 얘기하던데."
"걱정마세요! 자, 여기 카르나 님 걸 보시라고요! 저도 저만큼 커질 수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던 카르나는 제 가슴을 향한 노골적인 시선에 팔로 가슴을 가리며 난색을 표했다.
"이건 전투에 방해만 될 요소일 뿐이다. 비록 이게 편해서 두고 있지만, 사이즈는 줄일수도 있어."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내가 카르나에게 줄 모든 스킨은 카르나의 평상시(거유) 버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일이 사이즈를 재조정하기는 몹시 귀찮았다.
"...고객님? 혹시 그쪽이신가요?"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닌데요."
주인공 놈이라면 모를까, 나는 딱히 크기를 따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흥, 저도 이제 커질 수 있다고요...."
은유하는 입을 댓발 내민 채 투정을 부렸다. 나는 은유하가 SS급에 이르면 본인의 바람대로 C컵까지 자랄 것을 알고 있지만, 은유하를 위해 진실을 숨기기로 했다.
"이 불편한 걸 뭐하러 좋다고 키우려는 건지 모르겠군. 끙."
...SS급에 이르러서야 C컵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은, 반대로 얘기하면 카르나의 버프를 끝까지 받아도 C컵까지밖에 성장하지 못한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마력으로 커버할 수 없는 은유하의 태생적 한계였다.
어쨌든, 은유하는 SS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자질이 생겼다. 이제부터는 본인이 노력하면 될 터.
"그럼 은유하 아가씨?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네, 후후. 기다리고 있었어요."
은유하가 마도기어를 조작해, 테이블 위해 넓은 홀로그램을 펼쳤다.
"여자 기숙사에 대한 문제. 1인실은 죽어도 안 돼요. 2인실로 해야지. 고객님이 1인실에 몰래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할 지 누가 알아요?"
"...쳇."
너무 티났나.
나는 부산이 난리가 나건 말건, 일단 서울에 집중했다.
8월 말. 서울 은하대학교의 개교를 위하여.
* * *
<그 시각, Padre Juan.>
"...그러니까 그렇단 말이지."
"이, 이해해 준거예요?...냥."
스스로를 '김펜릴'이라고 소개한 녹발의 여인은 제복으로 갈아입은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후안은 눈썰미로만 봐도 S급, 어쩌면 그 이상으로 보이는 존재가 애써 이상한 컨셉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냥 편한대로 말하시게.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
"...감사합니다."
"그보다 공, 크흠. 그래서 자네는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설마 진짜로 여기에 눌러앉을 생각은 아니겠지?"
후안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김펜릴은 입술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자네가 처한 상황은 이해하겠네. 하지만 이렇게 무턱대고 가출을 해버리면 어찌되겠나.... 하아."
"괘, 괜찮아요. 딱 1년만 세계를 돌아보고 온다고 했으니까, 어머님도 이해하실 거예요. 어머님도 예전에 세계 여행 하시다가 아버님을 만나셨고."
"...? 그 분의 부군은 분명 귀족가의 장남으로 알고있네만?"
"아, 아아아!! 그랬죠! 하하하, 아하하.... 망했다냥."
김펜릴은 다시 둘로 나뉘어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덮은 영국의 공주 아르엘과 고양이 메이드 펜릴으로.
"사장님, 그래도 이건 좋은 기회다냥. 지금이라면 딱 한 번 찬스가 있다냥. 어디...."
펜릴은 녹색의 눈을 번뜩이며 씩 미소지었다.
"세계 최강 준 SSS급 메이드, 어디 아르바이트로 써 볼 생각 없느냥?"
"......주급 협상부터 하지."
하루를 꼬박 지새우는 길고 긴 협상 끝에, 아르엘과 펜릴은 표준근로계약서에 서명했다.
김펜릴.
숙식제공, 알바 중 민트초코 1일 3개 섭취 가능이라는 조건에 홀라당 넘어간 김펜릴은 그렇게 카페의 메이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