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36화 (336/1,497)

〈 336화 〉1부 14장 27

<동작구, 노량진 옛 고시촌 터.>

"정말 이런곳에서 살아야겠어요?"

"아, 글쎄 여기 맞다니까! 이 근처에 분명 대학이 들어선다고! 확실한 정보야!"

"아니면요?! 청화단인가 뭔가 하는 것들의 기반이 다 여의도에 몰려있다면서요! 그럼 여의도 근처로 갔어야지!"

"대출 끼고도 돈이 모자란 걸 어떡해?! 지금 서울에 있는 집들 부르는 게 값인 거 몰라?! 그나마 집값 낮을 때 사야지!"

중년 부부는 티격태격했다. 그들이 언성을 높여 싸우는 곳은 투룸의 거실이었고, 부부의 두 딸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고 있었다.

둘은 쌍둥이처럼 닮아있었으나, 한 명은 서럽게 울고 있고 또 한 명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어떡해.... 흑, 우리 진짜 이제 여기서 살아야 해...?"

"살아야지."

키가 조금 더 작은 소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키가 조금 더 큰 소녀는 울먹거리며 물었다.

"우리 예전처럼 신서울에서 왜 못살아?"

"아빠가 엄마한테 말도 없이 급매로 집을 팔았어. 그리고 그 돈으로 전부 여기에다가 꼴아박았어."

"무슨 소리야...?"

"우리는 이제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는 얘기야."

"흑, 흐끅, 흐으-"

"울지마. 울면 엄마 더 빡쳐, 언니."

소녀, 동생이 언니를 다독여 겨우 언니는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어머니는 언니의 울음을 들은 지 오래였다.

"이제 어떻게 여기서 살 거예요?! 가구는?! 음식은! 아니, 허리띠 졸라메고 여기서 산다고 쳐! 애들 학교는 어떻게 할 건데!! 얘들 아직 중학생이라고!"

"아, 내가 다 생각이 있다고 했잖아!!"

부부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불확실한 미래의 가능성만 생각하고 제대로 상의도 없이 서울로 상경한 무책임한 가장이 문제였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더이상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것.

계약서는 작성되었고, 모든 재산은 처분되었다. 대출마저 끼고 있는 이상 돌이킬 방법은 없다.

중학생 두 딸을 둔 4인 가족은 서울, 노량진의 10평짜리 아파트에 이사를 왔다.

비록 그 건물이 갓 새로 지어진 건물처럼 보였어도, 토지대장과 등기부등본에는 30년이 훌쩍 지난 건물이었다.

"아이고, 내가 못 살아! 결혼 할 때는 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하겠다면서! 이게 뭐야!"

"헌터인가 뭔가 하면 되잖아! 너도 나도 이능력자 아니야!"

"씨발, 그게 할 소리야?! 당신이나 나나 널리고 널린 물가촉천민 아냐! 대한민국에 손가락에서 물총 못 쏘는 사람이.... 흡."

어머니는 입을 닫았다. 감정이 격해지는 바람에 말 실수를 해버렸고, 방 안에서 서로 껴안고 있던 자매 중 동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누, 누리야!!"

"어디가! 여기 서울이라고!"

쾅!

소녀, 누리는 집에서 빠져나왔다.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지만, 누리는 이상하리 만큼 밤눈이 밝았다.

이능력자인 가족 세 명을 따돌릴 정도로.

"흐, 흐아, 하아...."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

여러모로 민감한 시기의 중학교 2학년 여중생은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견뎌보려 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내 인생 조지는 각...."

그리고 지금의 상황도 조졌다. 누리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달렸고, 물소리만이 고요하게 흐르는 한강에 도착했다.

"와...."

여의도의 불빛이 비친 한강은 아름다웠다. 누리는 그 광경을 보며 마음이 동했다.

"......서울 이거 딱 하나는 오지네."

앞으로 자주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았다. 누리가 몸을 돌리려던 순간.

화륵.

하늘 높이, 63빌딩의 위에서 푸른 날개가 펼쳐졌다. 누리는 뜨거운 기운이 자신을 뒤덮는 기운에 깜짝 놀랐다.

"깜짝이야...!"

무언가가 자신을 훑고 지나간 건 착각일까. 누리는 멍하니 하늘을 다시 올려다봤으나, 푸른 날개 말고는 달리 보이는 게 없었다.

휘---잉!!

푸른 날개는 다시 어딘가로 빠르게 사라졌다. 누리는 허탈감과 함께 고개를 떨구었다.

"......저건 존나 강한 이능력자겠지?"

그에 비해 그 흔한 물을 다루는 이능력마저 각성하지 못한 자신은 무능력하고 아무짝에도 쓸모도 없는 쓰레기-

"......?"

어디선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리는 조심스레 한강 둔치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서울의 명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박."

흑염룡은 푸른 날개가 사라진 쪽을 향해 날개를 사선으로 펼치고 있었으나, 곧 시무룩한 상태로 고개를 떨구었다.

크르르.

흑염룡은 울었다.

그리고 누리는 그 목소리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인생 시발 좆같다...?"

크륵?!

흑염룡의 길게 눈동자가 누리를 주시했다. 누리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지만, 곧 주먹을 불끈쥐고 눈을 희번득 치켜떴다.

"......뭐, 뭘 야려요?! 여기 전세냈어요?!"

......크르르.

흑염룡은 이 건방진 여중생의 태도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 * *

<부산>

"하아, 하아."

석하랑은 무릎을 꿇었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으로 바다를 '고정'시키려했지만, 상대의 무자비한 공격에 두 가지를 동시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어머. 그래서야 어디 SS급이라고 할 수 있겠니? 겨우 그 정도 힘을 쓰려고 우리 루살카 언니의 힘을 훔쳐간 거야?"

"시끄...러워!"

석하랑은 발을 크게 굴러 마력을 터뜨렸다.

부서진 얼음벽의 조각들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상대를 향해 날아갔고, 날카로운 가시처럼 바다로 뻗어져있는 절벽 위에 서있던 갈색 머리칼의 여인은 그저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소용없다고 몇 번을 말하니."

절벽의 아래에서 수 십 마리의 지룡이 튀어나와 날뛰기 시작했다. 지룡들은 석하랑이 날린 얼음창을 허공에서 물어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진작에 공략할 걸 그랬네. 괜히 귀찮다고 넘겼나봐. 세계 최강이라는 애가 이렇게 약해서야 어디 성주님까지 필요 있겠어?"

"하아, 하아, 상성빨로 이기는 주제에...!"

석하랑은 마지막 자존심을 세웠다.

"네가, 비겁한 짓만 하지 않았어도 지금쯤!"

"비겁?"

갈색의 여인, 히드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뭐?"

히드라는 절벽에 한가득 묶인 배들을 가리켰다. 고기잡이 어선부터 회색으로 된 군함까지, 히드라는 절벽에 배를 묻었고, 석하랑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패로 삼았다.

"왜? 안에 있는 사람들 혹시라도 찌를까봐? 어머나, 히어로라는 것들은 정말 어이가 없네. 고작 사람 한 둘 죽을 것 가지고 그러기야? 어차피 5년 뒤에 다 죽을 텐데?"

"와, 얼굴은 늙은 티 엄청 내는게 못하는 말이 없네."

빠득. 히드라는 이를 갈며 입술을 핥았다. 석하랑은 땀을 흘리면서도 히드라를 비웃었다.

"아주머니, 어디가서 화장 더럽게 못한다고 욕 안 먹어? 부두술사야? 우리 동네 초딩 여자애들도 그거보다는 화장 잘 하겠다!"

"이, 이게!"

히드라는 지룡들을 석하랑에게 쏘았다. 석하랑은 지룡들을 향해 얼음창들을 쏘아 요격했으나, 지룡들은 얼음창이 박힌 상태로도 머리를 들이밀었다.

"큭...!"

석하랑은 바닷물을 끌어다가 지룡들의 목을 요격하려 했다. 하지만 히드라는 지룡들 사이사이에 배들을 집어넣었고, 석하랑은 공격을 주저하고 말았다.

'당한-'

화륵.

푸른 불꽃의 날개가 석하랑의 눈을 가렸다.

[너도 훈련이 필요하겠어.]

무언가가 하늘에서 내려와 석하랑의 허리를 낚아챘다. 석하랑은 자신의 허리를 감싸안는 딱딱하고 뜨거운 감촉에 순간 놀랐지만 안도했다. 그리고 역정을 냈다.

"내, 내 혼자서 다 할 수 있다! 10분만 있어봐라!"

[그래, 10분은 커녕 5분만 있으면 공략방법을 알아내겠지.]

피닉스는 석하랑을 끌어안고 허공에 멈춰섰다. 함선들을 먹은 지룡들의 일격은 애꿎은 허공만 스쳤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 여기 정리하고 인도까지 다시 가야하거든.]

"......어머, 네 짓이었구나? 인간에게 루살카를 집어넣은 건."

히드라는 피닉스를 올려다보며 이죽거렸다. 피닉스는 주변을 훑다가 석하랑을 허공에 내려놓았다.

[펜릴은 없군.]

"......."

[역시 떠보기도 통하지 않나. 쯧.]

히드라는 애매모호한 얼굴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피닉스는 떠보기가 실패한 것에 짜증을 부렸다.

[석하랑.]

"어."

[마력을 끊어내겠다. 사람들을 구해.]

"알았다. 오...가 구해도 되지 않겠나?"

[나랑 저건 서로 무상성이니까 이쪽이 더 낫다.]

피닉스는 석하랑에게 사람들을 맡기고 히드라와 눈을 맞췄다. 히드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어머, 화났어? 나도 아직 등이 아파서 욱씬거리는데."

[시덥잖은 양동은 소용없다. 이미 서울을 다녀오는 길이니.]

"......."

히드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래? 그거 안 됐네."

다시 눈을 뜬 히드라는 두 팔을 벌리며 뒤로 넘어갔다. 피닉스가 급히 날개를 접어 지상으로 낙하했지만, 히드라는 흙속으로 사라지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나는 한반도 전체를 날려버릴 생각이라서."

사르륵.

히드라의 몸이 땅속으로 사라졌다. 피닉스는 급히 화염구를 집어던졌으나, 애꿎은 땅에 크레이터만 만들 뿐이었다.

"야, 야! 사람들 다 구했다!"

히드라의 견제에서 벗어난 석하랑은 빠르고 정확하게 배들을 구해냈다. 경상을 입은 자들은 있어도, 중상자 이상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럼 이제 마저 더 구해야지.]

"...응? 뭔 소린데?"

[히드라 주특기다.]

피닉스는 히드라가 도주한 곳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섬 부딪히기. 준비해, 대마도가 부산으로 진격할 거다.]

구구구.

피닉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마도가 바다 위에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