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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34화 (334/1,497)

〈 334화 〉1부 14장 25

서울.

내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곳은 단순히 내가 터를 닦아 놓았기에 중요시하는 곳이 아니다.

최종전.

성주가 방주를 몰고 지구에 왔을 때, 서울의 여의도가 방주까지 닿을 수 있는 최단거리에 해당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다소 안일하게 생각하기는 했다.

석하랑이라면 부산에서 5분만에 서울까지 도착할 수 있겠지만, 그 5분이면 히드라 펜릴이 날뛰고도 충분히 남을 시각이었다.

그래서 경계를 강화했건만, 유감스럽게도 간부들이 작정하고 들어오는 건 막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지다하카....]

아지다하카는 내가 변신을 하자 겁을 먹은 듯 했다.

"흐, 흥! 그렇게 위협해봐야 아무 소용없거든! 이건 본체가 아니라 이 말이야!"

설마 내가 백나로 호 바로 위에서 변신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고, 갑판으로 뛰쳐나온 히어로들도 내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피닉...?!"

"잠깐만요!"

우웅.

팬텀은 청화로 변신한 상태로 나왔다. 이미 내가 갑판에 나와있다가 변신을 하는 바람에 조금 늦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 일대의 영상장치는 모두 백희아가 통제하고 있다.

"......결국."

백희아가 다른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적어도 내가 피닉스라는 걸 대중에게 들키지는 않는다.

[카르나, 여기를 부탁한다.]

"알겠다. 저 년은 내가 본체까지 떨어뜨리도록 하지."

[죽이지는 말도록.]

"죽기 직전까지만 쏘도록 하마."

카르나는 비쟈야를 수직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나는 흠칫 놀란 히어로들을 한 번 쓱 훑은 뒤, 등 뒤로 날개를 펼쳤다.

[양동이다. 서울이 위험해.]

"......굳이 저희의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여기에 '청화 님이 걱정 돼서' 오신 거 아닙니까?"

백희아가 먼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고, 나는 백희아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간다.]

"예."

뒷 말은 필요 없었다. 나는 히어로들에게 아지다하카와 차원문을 맡겼고, 백나로 호에서 뛰어내려 서울로 날아올랐다.

키에에엑!!

차원문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이 우후죽순으로 지상을 향해 떨어진다.

중간중간 곤충형이나 조류형같은 날개 있는 괴수들이 튀어나오고 있지만, 대부분은 지상에 자유낙하하고 있었다.

'저래서 차원문이 지상에서 생기기 마련이건만.'

마침 딱 가는 길에 하나가 있다. 나는 전방에 마력을 둘렀고, 괴조들은 내 마력을 느끼고 겁대가리 없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일일이 싸워줄 시간은 없다.

그러니 지나간다.

일직선으로.

□□□□----!!

푸른 날개의 뒤로 막대한 마력을 방출했다. 추력을 얻은 나는 전방을 향해 그대로 날았고, 코어를 펌핑하여 날개에 추진력을 더했다.

콰드드득!

내게 부딪힌 괴조들이 육편이 되었다. 동시에 내 몸을 감싸는 보호막의 불꽃에 재가 되어 소멸했다.

[하나 닫고 가도록 하지.]

직선코스에 하나가 있다.

나는 날개의 각도를 조정해 차원문을 빗겨가듯 위로 날아올랐고,

딱.

손가락을 튕겨 화염구 하나를 차원문 안으로 집어던진 뒤, 다시 서울로 부리나케 비행했다.

수 초 뒤.

화수분마냥 터져나오던 괴수들 뒤로, 그들을 모두 집어삼키는 푸른 불꽃이 폭발하며 차원문이 불타올랐다.

'이제 알아서 하겠지.'

이제 남은 것은 내가 서울로 돌아가는 것. 거리가 거리인 만큼 지금 날아가도 어쩌면 늦을 수 있겠지만-

'둥지의 포탈을 쓴다.'

압록강에 있는 미니피닉스의 둥지.

서울에 있는 한 두 마리가 아니라 수 십 마리의 미니피닉스라면 충분히 인도까지의 거리라도 내가 삽시간에 전이할 수 있을만한 숫자일 것이다.

인도에서 중국을 가로질러 한국까지 가기에는 늦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허공에 나타난 푸른 불꽃의 고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 * *

피닉스가 떠났다.

개천광은 여전히 비쟈야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고, 히어로들은 집행관을 중심으로 모여 사태를 주시했다.

"...저게 다크 레기온의 간부입니까?"

"그렇다. 아지다하카. 분신으로 농락중이지."

카르나는 말을 하는 도중에 비쟈야의 시위를 당겼다. 금빛의 레이저가 또다시 아지다하카의 분신을 저격했고, 아지다하카는 어둠속에서 흩어졌다.

"분신 아니야? 그러면 뭘 굳이 또 쏘고 있어?"

"실체가 있는 분신이다. 그래, 피닉스 식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카르나는 피닉스와 이야기를 나누며 들은 간부들에 대한 주의사항을 상기했다.

"저 분신 하나하나가 S급 초입이다. ...90? 대충 그렇게 말했는데."

"이런 미친."

우사가 욕지기를 내뱉었다.

허리까지만 쏙 내밀었다가 저격을 당해 계속 죽어나가는 저 간부가 분신인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게 S급을 갓 넘긴 단계라니.

"가만히 놔두면 어떻게 됩니까?"

"공격해오지."

피융!

카르나가 비쟈야를 반대로 쐈다.

집행관의 베레모를 스치고 날아간 화살은 집행관의 바로 뒤에서 단검을 들고 있던 아지다하카의 미간에 박혔다.

사락.

"......."

집행관은 자신의 어깨춤에서 흩날리는 머리칼에 침을 꿀꺽 삼켰다. 짙은 검은색의 머리칼은 분명 자신의 것이었고, 카르나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분명히 죽은 목숨이었다.

"걱정마라. 내가 있는한 너희는 아지다하카에게 다치는 일이 일절 없을지니."

카르나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비쟈야를 들어올렸다.

"......믿음직해!"

"적어도 그 자 보다는 훨씬 그럴 듯 하군."

"...동감이야."

히어로들은 보았다.

피닉스가 울상을 짓는 가루라에게 밟으라는 명령을 내려 화권을 들이받은 뒤, 카르나가 한 손으로 카루라를 멈춰세우는 것을.

"좋습니다, 개천광. 아지다하카는 당신에게 맡겨도 되겠습니까?"

"바라던 바. 하지만 중요한 게 있다."

운사의 허벅지를 노리던 아지다하카의 손톱이 네일째로 박살이 났다. 갑판에 빛으로 된 화살이 박혔으나 운사에게는 아무 피해도 없었다.

"나는 아지다하카에게만 집중할 것이기에, 다른 괴수들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 피닉스가 있었다면 모를까."

"끙."

막상 자리에 없으니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행여나 싸우다가 중간에 겁을 먹지 말아라. 멈추면 오히려 다치게 될 것이다. 나를 믿고 싸워라. 그럴 수 있나...?"

개천광의 눈빛은 진지했다. 집행관은 한 번도 함께 전투를 하지 않은, 그리고 불과 하루 전에 간부에서 정령-아군이 된 자를 전적으로 믿어야 할 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믿어보겠네. 거 외계인 누님이 말씀하시는대로 따라야지, 껄걸."

"믿겠습-피융-니다...."

히어로들이 신뢰를 하건 말건, 카르나와 아지다하카의 신경전은 실시간으로 이어졌다.

"야! 너 자꾸 그럴래?!"

"그럼 본체를 들고 오던가. 분신으로 자꾸 귀찮게 굴지 말거라, 벌레같은 년."

"너 진짜 가만히 안 놔둘 거야!!"

"난 아까부터 가만히 있었다. 활만 쏠 뿐."

...유치하지만 살벌하기 그지 없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아지다하카는 분신이 사라지기 무섭게 카르나를 공격했고, 카르나는 비쟈야를 휘두르고 활을 쏘며 아지다하카를 쉬지도 못하게 괴롭혔다.

"개천광 님, 그 기술은 지금 쓰시지 못하십니까?!"

"시간이 필요해. 아지다하카가 막고 있다."

카르나는 비쟈야에 아지다하카의 분신을 죽일 수 있을만큼의 마력밖에 싣지 못했다.

"브라흐마스트라를 쓰려면 집중이 필요해. 하지만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군."

템페스트 레이디의 겨드랑이 사이에 금빛의 레이저가 날아갔다. 템페스트 레이디의 옆구리에 독침을 박아넣으려던 아지다하카의 분신은 눈에 구멍이 뚫려 소멸했다.

"나는 아지다하카를 맡겠다. 너희들은 차원문을 맡아라. 그럴 수 있나?"

"맡으라고 해도, 이 상황에서는-"

"개천광 님."

가루라가 쭈뼛거리며 카르나의 옆에 섰다. 우물쭈물 하면서도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은 분명히 강단이 있어보였다.

"......당신으로부터 태어나서 이런 모습이 된 걸 부디 용서해주세요."

"용서는 무슨. 내가 힘이 부족해서 그리된 것이거늘."

카르나는 궁성의 다리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아지다하카의 뒷통수에 구멍을 낸 뒤, 가루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록 그 얼굴은 조금도 닮지 않았지만, 둘이 풍기는 분위기는 분명 모녀지간의 것이었다.

"자, 가라. 이 세계에서도 너의 아름다운 날개를 펼처거라."

"......네!"

가루라는 붉은 불꽃에 휩싸이며 서서히 몸집을 불렸다. 하얗게 물든 몸은 인간의 형태에서 서서히 새의 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두부와 날개는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몸을 뒤덮는 붉은 깃털은 금색의 마력을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 눈동자는 푸른색으로 물들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러면 이제 저기까지 닿을 수 있죠?]

"......충분합니다."

[그런데 한 명밖에 못 태워요.]

가루라는 난감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럿을 태울 수 있을 것 처럼 등은 넓었지만, 가루라의 등에는 안장이 딱 하나 뿐이었다.

[원래 개천광님이나 ㅊ.... 흠흠, 그분을 모시는 자리예요. 두 명 이상 태우면 제 몸이 다시 불탈 거예요.]

가루라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

집행관이 인선을 고르는 사이, 팬텀이 화권의 등을 찰싹 때리며 밀었다.

"너밖에 없네. 집행관, 어때요?"

"......확실히 화권밖에 없군요."

"제, 제가요?"

"예. 당신이 적임입니다."

집행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히어로들을 빠르게 배치했다. 카르나를 원형으로 둘러싸는 진을 구축했고, 그곳에 화권의 자리는 없었다.

"근접전은 풍백과 팬텀이 있으면 됩니다. 당신의 화력은 백나로 호 위에서 싸우기에는 적절하지 않아요."

S급 권사가 갑판 위에서 날뛰면 백나로 호는 차원문이 아니라 화권에 의해 침몰할 것이다. 집행관은 빠르게 임무를 나눴다.

"화권과 가루라는 별동대로서 차원문을 닫습니다! 우리는 차원문의 바로 앞에 백나로 호를 정박해서 차원문을 닫습니다!"

허공에 열린 차원문 네 개.

백나로 호는 차원문을 향해 돌진하고, 가루라는 화권을 안장에 태워 하늘로 날아올랐다.

"오호호호! 한 번 놀아보자꾸나, 이 어리석은 인간들아!!"

원정대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서울 도착까지 남은 시간, 3시간 하고도 33분.

* * *

그 시각, 여의도 유일 카페 Padre Juan.

"정했다냥."

펜릴은 입에 민트초코 파운드리 케이크를 한 가득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달콤한 초코의 향기와 알싸한 박하의 향기가 적절히 어우러져 코를 자극하고, 초코 크림에 살짝 눅눅해진 스펀지 케이크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혀를 꾸덕꾸덕하게 만들었다.

"아ㄹ.... 가씨, 여기 메뉴 제패하기 전까지는 서울 떠나지 말기로 하는 거다냥."

펜릴은 검지를 입술에 붙이며 윙크했다. 졸지에 아ㄹ가씨라고 불리게 된 아르엘은 고개를 끄덕였고, 미리 이야기를 나눈대로 아가씨와 메이드 행세를 하기로 했다.

"그러자. 그럼 비행기 티켓은 취소하는 거야?"

"그렇다냥. 아까전에 하던 말의 연장선인데, 몇 년도인지 얘기안했잖냥. 그럼 2025년 7월 25일로 하는 거다냥. 냐하항."

"5년 뒤잖아."

"연도를 말 안한 아지다하카 잘못이다냥. 그리고 나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펜릴은 비워버린 다음 케이크의 접시를 앞에 놓았다. 방금 전에 먹은 것과 마찬가지로 민트초코가 들어가있지만, 이번에는 민트초코에 크림치즈가 한가득했다.

"하움."

펜릴은 입에 들어가지도 않을 양을 입안에 욱여넣었다. 결국 하얀 크림과 검은 초콜릿이 입가에 흘렀고, 아르엘은 손수건을 꺼내 펜릴의 입가를 닦았다.

"아, 그거 내가 혀로 핥아먹으로 했는데."

"보기 흉해. 그건 둘이 있을 때만."

"음.... 하긴, 저 분을 지금 없앴다가는 남은 5년 동안 이 맛을 잃게 될테니. 인정한다냥."

펜릴은 후안을 향해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며 윙크했다. 후안은 녹발의 고양이귀 미소녀 메이드가 자신을 향해 하트를 날리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 안 놀라시나요?"

"여기 있으면 온갖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지."

후안의 얼굴은 어딘가 해탈한 표정이었다.

"사족 보행 B급 괴수가 커피 심부름을 받으러 오는 곳이라네. 서울에서 보통 정신으로는 살아남을 수는 없지."

"......."

아르엘과 펜릴은 침묵했다. 갑자기 문이 열리며, 사이즈에 맞지 않는 검푸른 제복을 입은 소년이 나타났다.

"사장님, 아아 한 잔...?"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울에서 못 보던 여인들-심지어 한 명은 녹색 고(이하생략)-의 모습에 의아함을 내비쳤다.

"뭘, 손님일세. 언제나 그렇듯 피닉스의 손님 아니겠나."

"......."

펜릴은 먹던 케이크를 뿜을 뻔 했다. 아르엘도 케이크를 뜨려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아, 단장님 손님이셨어요? 전 또."

"금방 내려주겠네. 기다리시게."

후안은 빛처럼 빠른 속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었다. 소년은 후안에게서 커피를 받은 뒤, 손목을 들이밀었다.

"...?"

후안 또한 손목을 교차하듯 내밀었고, 홀로그램으로 된 화폐 뭉치가 후안의 스마트 워치-처럼 보이는 무언가로 넘어갔다.

"조심히 가시게."

"안녕히계세요. ...아 참, 인도에 차원문 다섯 개 열렸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단장님 날뛰시고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음, 그런가. 알겠네. 또 신메뉴 개발을 착수해야겠군."

후안은 인자한 미소로 소년을 떠나보냈다.

"히야, 영국 다녀왔을 때는 민트초코 레시피를 알려주더니, 이번에는 또 무슨 레시피를 알려주려나...."

방금 전까지 맛있게 먹던 아르엘과 펜릴은 포크를 내려놓은 채 굳어있었다.

"저, 저기 하나 묻고 싶은게 있다냥?"

펜릴은 그 어느때보다도 침을 꿀꺽 삼키며 질문했다. 긴장한 그 모습은 여왕이 가웨인을 침실로 몰래 끌어들이던 때에 벽 사이에 숨어있던 때보다 더 긴장했다.

"레시피를 알려준다는 말이 무슨 말이냥...?"

"아, 그거? ...자네들 피닉스의 손님 아닌가?"

후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 피닉스가 나한테 가르쳐 준 레시피인데? 크흐, 건물주가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다행이야. 덕분에 나도 영감이 솟아나거든."

"......."

펜릴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았다.

펜릴이 서울을 파괴하기까지, 앞으로 5년하고도 18시간이 훌쩍 남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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