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26화 (326/1,497)

〈 326화 〉1부 14장 17

S급 괴수, 가루라 격퇴.

다른 두 괴수와는 달리 청화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가루라는 사람이 되었다.

괴수가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몹시 놀랐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이 된 가루라가 청화와 똑 닮은 외형이 되었다는 것에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금발, 적안을 한 청화.

청화의 외형만큼은 적어도 세계 어디를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었고, 사람들은 색다른 모습의 청화에 혹했다.

- 가루라 삽니다.

- 사람이니까 혹시 파견같은 것도 가능하지 않겠어?

- 가루라에 대한 관리는 청화가 아닌 협회가 해야한다! 그리고 협회에서는 우리 나라로 가루라를 배정해야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 청화가 오지를 않으니 가루라라도 파견을 받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그 중에는 무언가 어두운 욕망을 가진 이들도 있기는 했으나, 기절한 청화를 수습한 원정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 가루라는 인도에서 태어난 괴수이며, 인도에서 관리를 해야하는 자이다!

마하트마가 가장 적극적으로 가루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하트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원정대가 백나로 호를 타고 곧장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할 뿐이었다.

- 이러다 우리 S급도 놓치는 거 아니냐?

인도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히어로 <라크샤사>. 이제는 <개천광> 카르나로서 정체를 드러낸 그는 아무렇지않게 백나로 호에 승선했다.

결국 인도 협회가 얻은 것은 야차의 S급 코어 뿐.

킨나라의 코어는 청화의 손에 있었고, 그 사체는 흑염룡이 챙기고 서울로 돌아갔다.

가루라는 코어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사람이 되었고, 매우 높은 확률로 청화의 아래에 들어갈 존재였다.

마지막으로 카르나.

만약 그가 협회에 등록된 히어로였다면, 협회는 카르나를 상대로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르나는 협회에 등록되어있지 않은 자유인이었고, 오히려 그 바람에 협회에서는 빌런으로 임시 구분되어있던 존재였다.

결국, 그 누구도 야차를 제외한 모든 것이 인도 국경을 빠져나가는 상황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청화가 약간의 자비를 베풀어주기를 바랄 뿐.

* * *

<오후 6시 16분, 백나로 호 브리핑 룸.>

"킨나라의 코어는 남겨두고 가죠? 지파룡의 코어가 있으니까, S급 지속성 코어는 굳이 하나 더 필요하지는 않아요."

내 말에 히어로들, 특히 백희아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S급 코어를 무상으로 주자는 내 의견에 대하여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크르르...."

가루라는 천가을의 품에 인형처럼 안겨있었다.

예전에 내가 저런 식으로 몇 번 안겨있던 적이 있기야 했지만, 나는 창염과 대화를 한 이후로 딱히 가을에게 몸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얘 너랑 거의 똑같이 생겼다?"

"사람들 오해하는 것처럼, 제 몸을 복사하여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 존재같은 거예요. 거의 비슷하죠."

일부러 그렇게 오해하게 만들었다.

"왜 똑같냐고 사람들이 시비걸까봐?"

"네. 원래는 제 마력이 너무 많이 깃들어서 제 외형을 따라하게 된 거지만, 사람들한테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확실히 그런 설명보다는 이쪽이 더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는 군."

우사는 이를 딱딱거리며 으르렁거리는 가루라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봐도 사람인데. 괴수가 사람이 되었다면 그만큼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 제법 그럴듯 하네."

"그 성스러운 '의식'이 있어야만 가능하도록 한 것도 아주 의도가 귀엽고 말이야, 껄껄껄!"

천현택은 굳이 내가 언급하지 않으려했던 부분을 지적했다. 나는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지만,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흠흠, 아무튼 사람들이 청화에 대해서 부르는 빈도는 잦아들 거예요. 자칭 마도공학 석학사들이 온갖 추측을 정설로 만들어놓을테니까."

가령, 청화는 '창염'을 기리는 의식을 통해 괴수를 수하로 만들 수 있다더라.

가령, 청화는 창염이라는 신적인 존재의 힘을 얻게 된 성녀라더라.

가령, 청화는 창염에게 진심을 다한 의식을 통해 괴수를 지성을 가진 인간으로 변신 시킬 수 있다더라.

가령, 청화는 흑염룡이나 가루라처럼 '불'을 사용하는 화염 괴인들만 수하로 만들 수 있다더라.

가령, 흑염룡이 인간이 되면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한 청화라더라.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 거죠?"

유이신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흑염룡의 실체를 알고 있던 다른 이들-특히 우사와 풍백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음.... 본인이 S급으로 각성해봐야 알텐데."

과연 이전의 남자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내 마력의 영향으로 가루라처럼 팔레트 스왑만 이루어진 채 여체가 될 것인가.

"뭐, 본인은 신의 은총이라고 좋아라하지 않을까요?"

"...아, 예. 그렇겠죠.... 신의 은총...."

유이신은 고개까지 돌리며 쿡쿡 웃었다.

무엇이 그리 웃긴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아마 장신의 남자가 청화와 똑같은 모습이 된다는 것을 상상하고 웃고 있는게 아닐까.

"그럼 다시 청화의 문제로 돌아가서. 이번 인도 행으로 인해 우리가 얻은 것과 얻을 것, 그리고 잃은 것을 한 번 정리해봅시다."

나는 먼저 우리의 수확에 대해 차례대로 읊었다.

"킨나라의 사체, 가루라, 카르나. 그럼 얻을 것이 뭐가 있을까요?"

내 물음에 히어로들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먼저 손을 든 사람부터 지명했고,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기탄없이 이야기했다.

"청화는 상당히 독특한 존재라는 인식?"

"청화가 오면 뭔가 무조건 사고가 터진다는 기현상?"

"남의 나라 숨은 자원을 알짜배기만 쏙쏙 빼먹고 사라지는 약탈자들?"

"...다 맞는 말이네요. 악명을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음모론자들에 의한 거짓 정보들이 커뮤니티에 준동하고 있지만 어떻게 막을 방법은 없다. 한국이야 은유하가 네트워크를 조절하고 있어도, 외국에 서버를 둔 곳이나 히어로 커뮤니티 같은 공적인 곳에서의 토론까지 조절할 방법은 없었다.

하물며 블랙마켓같은 뒷세계 커뮤니티는 더더욱 그러했다.

대신 오히려 뒷세계 커뮤니티에는 제법 생산적인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S급 셋을 불과 이틀 사이에 다 잡아버렸죠. 원정대는 거의 용병단 취급을 받고 있어요. 보수는 엄청 높지만, 당장의 위협은 확실히 제거해주는 존재들로 여겨지고있죠."

"헌터 길드의 본질 아닙니까. 국가 단위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어서 그렇지."

"안전을 돈으로 사는 거잖아? 아마 이제 로비 장난 아니게 들어올 걸? 제발 우리 나라에 와주시길 바랍니다! 하고."

"맞아요. 슬슬 본격적으로 뒷돈을 찔러주려는 이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할 거예요."

원작에서도 로비 시스템은 잘 구현되어 있었다.

특히 중반부부터 흘러들어오는 검은 돈은 성장 자금으로 엄청나게 효율이 좋지만, 그건 모두 나중에 큰 반동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괜히 돈을 받았는데 입 싹 닫았다가, 그들이 큰 피해를 입거나 미쳐 날뛰면 어떻게 될까요? 최악의 경우에는 라스푸틴처럼 다 미쳐서 괴인이 되겠죠?"

"그럼 아예 안 받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정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백희아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돈 문제는 내가 쉽게 선택을 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 분야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해요. 이미 받고 있는 자들도 있을테고, 돈 문제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있으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뒷 돈 벌려고 인형으로 블랙마켓까지 만들어 장사를 하는 돈귀신과 상의를 하지 않으면 분명 나중에 더한 뒷탈이 생긴다.

차라리 전쟁을 일으키고 말지, 은유하랑 돈 문제로 싸우기는 싫다. 나는 손뼉을 쳐서 원정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 그러면 우리가 얻은 것 중에 가장 보배가 여기있네요. 정식으로 인사할까요?"

내 말에 내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카르나가 몸을 일으켰다. 중세 농가의 마을 처녀같은 차림의 카르나는 천가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었다.

"<개천광> 카르나. 앞으로는 이리 불러주기를 바란다."

"......카르나라고 함은?"

이미 다크 레기온의 간부들에 대해 전해들은 바가 있는 이들이니, 카르나라는 이름에 조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카르나 또한 그걸 알기에 쓰게 웃었다.

카르나는 보라색으로 물든 동공을 가리켰다. 금빛의 눈동자에 보라색 띠가 둘러진 색은 쉽게는 볼 수 없는 이국적인 색이었다.

"개천광과 카르나가 하나로 합쳐진 존재라고 생각하라. 세뇌된 간부였다고 해도 카르나의 삶은 분명 내가 살아온 삶. 그러니 카르나의 이름을 이어가는 것이 당연할 터."

"그냥 이름이 '카르나'인 정령이라고 생각하세요. 이명은 개천광. 이해하기 쉽죠?"

히어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문제에 대해 골머리를 썩히느니, 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면 편하게 여기는 게 응당 나았다.

"그럼 돌아가면 호적 만드시겠습니까?"

백희아는 그새 카르나의 국적 문제를 따지고 들었다. 나는 백희아의 행동력에 감탄사가 나왔고, 카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세었다.

"간부 적으로 이야기하면 1999년 12월 25일 생이군. 그럼 나는 오늘로 21살인가?"

"......."

나는 숨이 턱턱 막혔다. 히어로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험악해졌고, 심지어 괴인들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뭐.... 은연중에 언급은 지나가면서 했지만 맞아요. 전세계 인구의 1/10을 날려버렸던 <피의 일주일>. 그 원흉이 우리라는 거죠."

삽시간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말로 하는 거야 무척 쉬웠지만, 막상 애써 외면하고 있던 문제가 이렇게 수면 위로 떠오르니 절로 불편한 감정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원해서 했던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승형이 가장 먼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까지 서려있었다.

"굳이 그 일이 아니더라도, 차원문을 비롯해 지난 수십년 간 온갖 위험이 있었습니다. 스승님을 비롯한 간부...들이 날뛰며 생긴 그 사건은 그저 그 중 하나일 뿐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누군가는 공감을, 누군가는 외면을, 누군가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승형이 대표로 말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말은 모두의 공감을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건 네 생각이고요."

그래서 나는 이어지려는 이승형의 말을 끊었다.

"결국 달라지는 건 없어요. 간부들에 의해 각각 1억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건 불변의 팩트니까. 그 사건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사람도 있는 반면,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사람도 있죠."

나는 괜히 목이 타들어갔다. 이미 히어로들의 이목은 내게 쏠려있었다.

"복수를 하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하세요. 20년 가까이 지났어도 원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대신 일단 성주를 쓰러뜨린 뒤에. 악의 근원을 제거한 다음에, 그 뒤에 복수를 하든 싸우든 지지고 볶고 하자는 겁니다."

복수도 복수를 실행할 사람과 복수할 대상이 살아있어야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나는 손뼉을 다시 쳐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칙칙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래서 우리에게는 <개천광> 카르나가 합류했고, 가루라도 동료가 되었어요. 이제 나머지 간부들을 찾아서 조지기만 하면 돼요."

카르나야 소재를 파악하고 있었으니 문제가 없지만, 다른 간부들은 어디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한 군데 의심가는 곳은 있어요."

"어디입니까?"

"궁금해요? 벌써부터 가시려고? 푸흐흐. 펜릴 아니니까 풍술사들은 김칫국마시지 마요. 얘기야 해줄건데...."

나는 히어로들을 쭉 가리켰다. 그들의 마력은 어느정도 회복되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이만 쉽시다. 다들 생각할 것도 있는 모양이고, 저도 따로 해야할 일이 있어서 말이죠. 집행관, 오늘도 어제처럼 완전 차단을 부탁드립니다. 모처럼 인도까지 왔는데 호텔에서 숙박 못하게 해서 미안해요."

나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가루라가 심하게 으르렁거리기는 했지만, 가을이 가루라의 허리에 몰래 감아놓은 촉수 때문에 가루라는 이를 세우기만 할 뿐 별다른 반항이 없었다.

"그럼 오늘은 해산. 피드백은 따로 없습니다. 다들 푹 쉬고, 자질구레한 문제들은 내일 해결하기로 하죠."

한국으로 귀환하는 시각은 넉넉잡아서 내일 해가 떨어질 즈음, 오후 6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연락하고 찾아와요. 선객이 없으면 바로바로 들어줄테니까."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급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누구보다 빠르게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그리스에 관한 정보들을 모아둬야겠다.

"카르나 다음이...히드라였으니."

타지마할은 카르나와 정령 각성 전투를 벌인 곳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륜의 히드라 또한 정령 각성 전투를 벌인 곳에서 뭔가 단서가 발견되지 않을까?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다음 행선지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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