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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25화 (325/1,497)

〈 325화 〉1부 14장 16

<개천광> 카르나를 각성시켰다.

나는 이제 결계를 해제해야했고, 카르나가 들어오기 전의 상황에 대해 상기했다.

"그러니까 황금갑옷을 입고 들어왔다?"

"그렇다."

카르나는 하필 결계를 들어오기 전부터 제자들을 무구로 바꾸어버렸다.

그건 분명 전세계에 생방으로 전달되었을 것이고, 여러모로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는 변수였다.

"끄응, 뭐 괜찮아요. 조금 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면 되니까. 화권!"

"예, 예!"

내게 조인트가 까인 화권은 한쪽 다리를 절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카르나를 향해 애매하게 고개를 숙였고, 카르나는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해해라. 내가 피닉스와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었거든."

"예, 예. 이해합니다. ...그래서 한 방에 날려버리셨죠."

화권은 담담히 자신의 실태를 밝혔다.

아무리 카르나가 나와의 대결에 고팠다고 하더라도, 내가 스케쥴을 재조정할 시간도 벌지 못하고 둘은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저, 저...."

가루라는 화권의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내가 화권의 정강이를 걷어찬 것을 경계하는 건지, 인간이 싫다면서 인간의 뒤에 숨은게 참 우스웠다.

"당신은 안 때려요."

"......."

"내가 당신 때려서 뭐해요?"

"......."

가루라는 좀처럼 경계를 풀지 않고 있다. 내게 경계를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

"아."

나는 손뼉을 쳤다. 하얀 손이 괴인의 건틀릿으로 변했다.

"이것 때문에 그래요?"

"힉."

가루라는 비명을 지르며 움츠러들었다. 검은 갑주는 '간부'로서의 아이덴디티 같은 것이니, 가루라가 충분히 공포를 느낄 법도 했다. 하물며 내 괴인체까지 보지 않았는가.

"이해하세요. 지금 제약이 걸려서 괴인형으로라도 살고 있는 거니까."

"......'진신(眞身)'은 꺼내지 못하는 건가?"

카르나의 물음에 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쵸. 본체를 꺼낼 수만 있다면 아주 난리를 피울텐데. 괴수로서의 피닉스가 아니라."

나는 괴인의 검지로 관자놀이를 툭툭 건드렸다. 머리를 가리키는 내 행동만으로도 카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다. 너도 참 고생이 많군."

"그쵸? 저도 빨리 해결하고 싶은데, 참 상황이 여의치 않네요."

여섯 명의 정령 중에 이제 절반.

나머지 세 간부들을 찾아다니는데 시간도 걸리겠지만, 그래도 카르나가 아군으로 합류하는 것은 지극히 희망적인 일이었다.

겸사겸사 가루라도.

"가루라."

"...네."

가루라는 내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나도 괴인으로의 모습을 꺼내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당신이 이 모습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건 이해해요."

"......."

펜릴부터 루살카까지. 가루라가 상대했던 여섯 간부는 전부 괴수형과 괴인형을 번갈아가며 날뛰었다.

"이건 테라가 패배했다는 산 증거기도 하죠."

최후의 보루인 창염이 무너지고, 피닉스로서의 구속구가 이 검은 갑주였다. 신화에 이르면 떨쳐낼 수 있는 족쇄이며, 패배의 상징.

"...죄송해요."

가루라는 순순히 사과했다.

"...주인님께서 가장 쓰기 싫으실텐데, 제가 바보같아서 그랬어요. 용서해주세요."

"당연히 용서하죠. 자, 이리로 오세요."

가루라는 종종걸음으로 내게 걸어왔고, 나는 가루라의 등을 토닥여 내 마력을 불어넣었다.

"어때요? 그들의 마력이 느껴지나요?"

"...아니요."

마력이 근원인 존재들인 만큼, 가루라는 내 속에 있는 마력을 느끼고 안도했다. 비록 몸은 괴인의 것일 지언정, 이 몸의 근원은 마력이기에 가루라도 안심한 것이다.

"가루라가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해요. 이거, 밖에서도 공포의 상징이니까. 그렇죠, 제자?"

"...예. SS급 빌런이시죠."

"푸흐흐."

다크 레기온의 간부이자 빌런 피닉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인간형과 괴인형으로서의 이분법적인 면으로 대중을 속이고 있음을 알렸다.

"역시 주인님! 인간들을 기만하는 고도의 책략! 존경스러워요!"

가루라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두려움이 사라지니 다시 부담스러울 정도의 존경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과연. 히어로 협회를 믿지 못하기에 그러는 거군. 테라를 이용해먹으려는 놈들이니."

"...어? 그거 아직 말 안했는데?"

나는 내가 아직 말하지 않은 부분을 먼저 언급하는 카르나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

역시 이승형이 입을 쩍 벌리며 경악했다. 카르나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말이다...."

"나중에 설명할게요. 이승형, 일단 진정하세요."

"스승님, 아니, 그, 협회가 테라를 이용한다는 건 무슨-"

"빠른 설명을 원해요, 아니면 장황한 설명을 원해요?"

내 말에 이승형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참동안 눈을 깜빡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한 줄로 설명해주시고, 다음에 제대로 듣겠습니다."

"음. 알겠어요."

협회의 '높으신 분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잠시 말을 고르고 골라 이승형이 이해할 법한 수준으로 말을 정제했다.

"높으신 분들은 테라에 민주주의를 배달하려고 하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이해가 잘."

"그들은 큐브를 가지고 있고, 이능력자들의 힘을 키워서 언젠가 차원문을 열고 테라를 역으로 침공하려고 하는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오케이?"

이승형은 굳어버렸다. 내가 이래서 굳이 설명을 하지 않으려했건만. 협회의 이면을 알게 되었으니 이승형은 어떻게 반응할까.

"...집정관 님은 알고 계십니까?"

의외의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형은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해하지 마요. 그 사람 몰랐다가 내가 알려줘서 자의로 들어간 거니까."

"예?"

"원래는 미래에서 그들이랑 한 패가 되는데, 내가 다 얘기해줬으니까 걱정하지 말라 이거예요. ...아씨, 자꾸 이야기가 딴 길로 흐르네. 한국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줄게요. 지금은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어요."

슬슬 결계가 무너질 시간, 해가 산을 넘어갈 시간이다.

"햇빛이 사라지면 결계가 모습을 드러낼 거예요. 지금이야 임시 태양으로 버티고 있는데, 결계가 드러나면 푸른 불꽃을 사람들이 보고 말 겁니다. 그럼 또 음모론자들이 음모를 펼치겠죠? 청화랑 피닉스가 혹시 같은 존재가 아니냐면서."

"팩트 아닙니까?"

"달라요. 이거 중요하니까 잘 기억해두세요. 청화는 피닉스가 아닙니다. 알겠죠?"

"...알겠습니다."

내 고집에 이승형은 두 손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승형의 입을 막은 나는 기존에 계획했던 플랜대로 하기 위해 셋을 불러 모았다.

"잘 들어요. 우리가 지금부터 해야할 것은...."

비스트 테이머 청화의 이능력 공개.

화권 이승형의 영웅화.

S급 괴수 가루라의 동료화.

그리고 거기에 추가된 변수, <라크샤사>로 알려진 이능력자의 <개천광> 카르나 각성.

그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첫 번째 스탭, 그것은-

"전천후 포격기동요새 , 재기동!"

"꺄아아악!!"

가루라는 카루라가 되었다.

* * *

"...전 히어로들은 언제든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합니다. 잊지마세요, 카루라가 다시 뛰쳐나올 수 있습니다."

정신을 차린 집행관 백희아의 지시에 따라, 히어로들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굳건히 세우고 타지마할 담벼락에 섰다.

"이건 미친 짓입니다! 다들 마력이 없다고요! 지금이라도 물려야합니다!"

마하트마는 피를 토하며 퇴각을 요구했다.

"미쳤습니까?! 여기 있는 9할이 그 미친 전차에 포격당해 마력을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지금 다들 E급 만도 못한 상태라고요! 그런데도 여기서 막겠다고요? 자살 행위입니다!"

"...<라크샤사>가 들어갔다고 하지 않습니까.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하, 협회에 등록도 하지 않은 자입니다! 고작 A급 아닙니까! 빌런이나 마찬가지예요!"

"...정말로 A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모습을 보셨으면서도?"

집행관은 초라한 행색의 여인이 휘황찬란한 황금갑옷을 두르고 결계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상기시켰다. 마하트마 또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 불가시의 결계를 들어갈 수 없었고, 오직 라크샤사만이 결계를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아마도 그는 S급, 아니 그 이상이었을 겁니다. 협회에 등록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그럴 이유가 있었겠죠."

"큭...!"

마하트마는 침음성을 흘렸다. 원정대의 히어로들 뿐만 아니라, 인도 협회의 히어로들도 마하트마에 대해 불신을 보내고 있었다.

히어로들의 전부가 자신의 지휘가 아닌 집행관의 지휘를 듣는다. 마하트마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

"나, 나는...!"

마하트마의 눈에 음울한 기운이 맴돌던 그 순간.

지----잉!!

타지마할의 정중앙에서 금색과 하늘색의 빛이 터져나왔다.

"경계!"

집행관의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히어로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하늘을 꿰뚫을 것처럼 치솟는 빛무리는 분명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두 사람'의 마력이었다.

"30분하고도 엄청 시간이 걸렸잖아! 성공한 건가?!"

"믿고 있었다고, 젠장!"

파스스.

결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빛무리는 점점 사그라들었고, 참혹한 타지마할 정원의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핵...터졌나?"

원형의 크레이터. 그 한 가운데에는 30m가 훌쩍 넘는 크기의 붉은 조인(鳥人)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저건...?!"

마치 전설 속 불사조가 거인이 된 것만 같은 모습. 히어로들은 흉흉한 살기를 내뿜는 거대 조인의 정체를 깨달았다.

"가루라의 마력이다!!"

"저게...본체?"

히어로들은 입을 쩍 벌렸다. 포격 전차였던 CAR루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흉악한 모습과 위용에, 그들은 CAR루라가 오히려 청화에 의해 약화된 상태인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은?"

"저기다!!"

무릎을 꿇은 가루라의 정면.

오른쪽에는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듯 몸이 갸우뚱 기울어진 <화권>이 있었고,

왼쪽에는 군데군데 찌그러진 황금갑옷에 거창을 바닥에 꽂은 <라크샤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한 가운데.

저벅, 저벅.

푸른 머리칼의 여인이 가루라의 앞으로 걸어가 손을 들어올렸다.

"청화가 간언합니다. 창염의 이름을 빌어 부디 간청하오니."

청화의 목소리는 마력이라도 실린 것 마냥 타지마할 전체로 퍼져나갔다. 청화의 전신에서 푸른 불꽃이 흘러나왔고, 가루라를 중심으로 점차 에워싸기 시작했다.

"어미를 잃은 아기새에게 새로운 안식처를. 상처입은 영혼이 쉴 수 있는 새로운 보금 자리를 간청하오며."

가루라의 살기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가루라의 거체를 감싸는 푸른 불꽃은 마치 알처럼 변했고, 히어로들은 그 불꽃이 '성스럽다'고 한순간이나마 느꼈다.

"태양이 굽어살피는 이 땅에, 부디 새로이 날개를 펼치도록 허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짝.

청화가 합장했다. 인도의 히어로들이 흠칫했지만, 그 누구도 청화를 막지 못했다.

"창염개진."

청화가 어느때보다도 낮게 영창을 읊은 그 순간, 푸른 불꽃의 알은 점차 그 크기가 줄어들어가기 시작했다.

"후우-"

청화는 핼쓱해진 얼굴로 심호흡을 크게 내뱉은 뒤.

"지구에 온 걸 환영합니다, 가루라."

불의 알이 깨지며, 청화와 똑 닮은 소녀가 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청화는 자신과 똑 닮은 소녀-가루라를 보며 뒤로 쓰러졌다.

"화권!"

"예!"

라크샤사의 외침과 함께 화권은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라크샤사는 청화를 뒤에서 부축했다.

하늘색 불꽃을 뿌리며 날아오른 화권은 가루라를 공주님처럼 끌어안고, 지상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임무 완료했습니다."

화권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헤프게 웃었다. 약간 바보같기는 했지만, 그 누구도 그 미소가 우습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휴우."

집행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베레모를 벗었다.

"작전을 종료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와 함께, 히어로들은 새롭게 탄생한 소녀를 축복했다.

* * *

그 시각, 모 처.

"후우."

집정관 유영호는 담뱃재를 재떨이에 떨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되었고, 유영호는 긴장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보게, 신입이.

일어나려 했다. 유영호는 다시 의자에 주저앉아, 급히 자신을 부른 노인에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저 화장실 가려고 했습니다만."

- 기다리시게. 지금 아주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중요한 문제요?"

설마. 아니겠지. 유영호는 책상 아래에 내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설마 들킨 건-

- <라크샤사>가 A급이 아니었네. S급, 아니 어쩌면 또 SS급일지도 몰라! 젠장, 인도 협회는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지금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명을 지어야 하지 않나!

"아, 중요한 문제네요."

유영호는 담뱃재를 비벼 껐다. 맘 같아서는 노인의 스크린도 꺼버리고 싶었지만, 유영호는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꾹 참았다.

"이명이라...."

삐빅.

유영호의 마도 기어로 문자가 날아왔다. 소리도 없었고, 중간에 도청을 당하지도 않는 직통 신호. 유영호는 슬쩍 고개를 숙이며 문자를 확인했다.

"...라크샤사의 빛이 하늘을 열었지요. 화권도 함께하기는 했습니다만."

[오, 그래! 역시 신입이야! 아이디어가 팍팍 솟아나는군! 그래, 뭔가?!]

유영호는 눈을 질끈 감고 어깨를 으쓱였다.

"새로운 세상의 하늘을 열어갈 빛. <개천광(開天光)> 어떠십니까?"

[.......]

노인은 침묵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그는 아주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네.]

"예."

[내가 올해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자네를 우리 '서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야, 으하하!]

"...영광입니다."

[개천광! 개천광! 으하하,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자네가 없었다면 우리는 또 일주일을 이명을 정하는 데 사용했을 걸세! 흐흐흐, 장하네, 신입이!]

뚝. 노인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졌다. 유영호는 다시 담배를 물고, 꺼진 스크린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굴비다 이 개새끼야. ......어후, 이건 내가 생각해도 아닌듯."

유영호는 자신의 방에 누구도 없다는 것에 감사하며, 컴퓨터를 껐다.

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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