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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24화 (324/1,497)

〈 324화 〉1부 14장 15

전투는 끝났다.

나는 날개를 접고 카르나의 옆에 내려와, 변신을 해제했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손을 휘저어 바람을 일으키니 연기가 물러났고, 크레이터 한 가운데에 대자로 뻗어있는 금발의 소녀가 나타났다.

"......졌군."

카르나는 시원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궁극기까지 사용했지만, 내가 궁극기로 맞대응을 하여 패배하고 만 것이다.

"당신이 개천광으로서 싸운게 아니라 카르나로서 싸워서 그래요."

"큭, 그도 그런가."

카르나-였던 소녀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렇군, 너는 이미 세뇌가 풀려있는 건가?"

"반은요. 세뇌는 풀려있지만 이 상태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손을 부분괴인화 하여 건틀릿으로 개천광을 위협했다. 개천광은 내 위협에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성주를 상대로 그런 무서운 말을 읊는 이유가 있었군. 세뇌가 풀렸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쵸. 당신이 지금 세뇌가 풀린 것 처럼."

엄밀히 따졌을 때, 카르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개천광의 의식이 떠오르는 조건만 클리어했을 뿐.

"'바사비 샤크티. 그건 카르나의 기술이 아니라 '개천광'으로서의 기술이죠. 무기가 아닌 투창기술."

"그렇군. 나는 그걸 무구로 착각했던 건가."

투둑. 툭. 개천광은 자신의 품에서 떨어지는 금빛의 다섯 코어를 집어들었다. 전부다 빛이 바랬고,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았다.

"제자들로 여기고 있던 무구들이 아니라, 이것들은 내 정신이 깨이지 않도록 하는 구속구였던 거군."

"그렇죠? 괴인들이 딱 달라붙어있으니, 정령으로서의 자신이 계속 억눌려있는 거예요. 그걸 이제."

나는 어깨너머로 손을 넘기고 창을 던지는 시늉을 했다.

"궁극기로서 투창하는 것으로 몸에서 떼어냈고, 저한테 아주 댓발 깨졌죠. 그리고 패배를 인정한 카르나는 기절했고, 그 속에 잠들어있던 개천광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습니다. 환영해요, 개천광. 지구에 온 걸."

"......고맙군."

나는 개천광에게 손을 내밀었고, 개천광 또한 내 손을 맞잡았다.

"그럼 이제 거기, 싸움 끝났으니까 쉘터에서 나와요. 이승형, 가루라. 둘 다."

"......!"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인간과 괴수가 쭈볏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눈물을 글썽거리는 가루라는 한걸음에 중앙으로 달려와 개천광을 끌어안았다.

"흐어어어엉! 흐으우어엉!"

가루라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서럽게 울었고, 개천광은 가루라의 등을 토닥였다.

개천광의 키가 가루라보다 훨씬 작음에도 불구하고, 개천광은 어린 아이처럼 우는 가루라의 등을 토닥였다.

"고생했구나."

"저, 저...!"

"말 안해도 안다. 얼굴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구나. ......미안하다, 내가 힘이 약해서."

"속성 카운터 맞았으니까 어쩔 수 없죠. 아지다하카가 두번째로 잡혀버린 걸요."

감동적인 모녀 상봉의 산통을 깨는 말이었지만, 나는 개천광과 가루라의 해후를 나누게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아직 당신,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게 아니에요. 당신도 알잖아요? 속에 누가있는지."

"...카르나."

개천광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내 말대로 개천광의 속에는 패배로 인해 의식을 잃은 카르나가 잠들어있다.

"마력이 회복되면 기절한 카르나도 다시 정신을 차리겠죠? 간부를 정화하는 방법은 아직 적용하지 않았으니까."

"무엇이지?"

"사랑."

"푸웁!"

이승형이 마른 기침을 토해냈다. 하지만 나는 넓은 마음으로 이해했다. 정령 각성의 마스터피스가 사랑이라니. 한 번 듣고 두 번 보고도 믿기지 않을 것이다. 이승형은 오죽할까.

"스승님이 사랑하시는 분도 계셨...아, 혹시?"

"천가을 아녜요."

"......가을 누님한테 꼭 사과하십쇼."

"매일매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아무튼."

나는 이승형에게 손사레를 쳤고, 다시 개천광에게 집중했다. 가루라는 개천광이 또다시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당신을 데려가서 조치를 취할 거예요. 카르나가 싸움에 질릴 때 까지,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는 상황을 만들도록."

원작에서는 카르나와의 각성 전투가 무려 7연전이었다.

E급으로 1:1 대결을 이겨라.

D급으로 1:1 대결을 이겨라.

C급으로 1:1 대결을 이겨라.

B급으로 1:1 대결을 이겨라.

A급으로 1:1 대결을 이겨라.

S급으로 1:1 대결을 이겨라.

SS급으로 1:1 대결을 이겨라.

미친 임무였고, 카르나는 각각의 격에 맞추어 자신의 레벨을 조정했다. 순서는 상관없었지만, 역시 SS급으로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SS급은 내가 이겼고, 이제 역순으로 차근차근 내려가봐요. 이제 6번만 싸우면 될 것 같으니까."

"...음,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네?"

지금 개천광은 무슨 말을 한 것인가. 원작에서의 해결방법말고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카르나의 몸에 있어서 그런지, 나는 카르나의 기억을 이어받았다. 기억을 공유하는 건지, 아니면 인격이 나뉜 건지 나는 자세히 몰라. 하지만."

가루라를 떨어뜨린 개천광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숨을 크게 내쉬었다.

"너는 이렇게 말했지. 카르나는 죽을 거라고. 그건 카르나의 존재가 소멸하고, 개천광인 내가 전면에 드러난다는 말인가?"

"네. 루살카나 혼돈에게서 설야와 환룡을 빼낸 것 처럼."

다크 레기온의 간부 카르나를 죽여서 빛속성 정령 개천광을 부활시킨다.

그것이 다른 정령들이 겪은 전철이며, 앞으로도 있을 다른 간부들이 겪을 미래였다.

"걱정마요. 당신의 원래 인격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는 거니까-"

"아니. 싫다."

개천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부활하는 순간부터 곤조를 놓는 걸까? 나는 주먹이 울었다.

"......이제는 가루라라는 이름을 받았으니, 가루라라고 불러야겠지. 가루라야. 내가 싸움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좋다고 했느냐."

"예. 전투가 항상 능사가 아니며, 언제나 또다른 해결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선각자예요? 도닦아요? 대괴수시대에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지금?"

얘들은 지금 RPG 기반의 세계의 법칙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나는 나의 제자, 이승형에게 물었다.

"이거만큼 좋은 해결 방법이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주먹부터 내지르는 건 좀."

제자가 배신했다. 개천광이 내 주먹을 살포시 손바닥으로 눌렀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해결 방법이지. 그...."

"피닉스라고 불러요. 성주를 죽이기 전까지, 피닉스라는 이름으로 살기로 했어요."

"그런가. 음. 이름으로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그 의지, 존경스럽군."

사실은 창염이 있기에 내가 창염을 지칭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거지만, 개천광이 오해를 하든 말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카르나를 어떻게 해결하려고요?"

"대화가 통하는 상대다. 정확히는 대화가 통하게 되었지."

개천광은 내 주먹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웃었다.

"이미 만족할만큼 싸웠다고 하는 구나. 세계 최강과 싸웠으니, 이제 자기는 여한이 없다며."

"네?"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와 유감없이 풀파워로 싸웠으니, 당분간은 그 싸움의 여운을 즐기고 싶다고 하더군."

"자, 잠깐만요."

나는 당황해 카르나, 아니 개천광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당신 정령 샤오린이잖아요? 졌으면 다음번에는 이기겠다고 칼을 갈면서 다시 덤비려해야지! 발려놓고 만족한답시고 자버리면 어떻게 해요?!"

"...그걸 나한테 따지면 뭐하나? 그러니까 따질 수 있는 상태로 만들겠다는 거다."

개천광이 오히려 나를 진정시켰다. 옷매무새를 정돈하는 개천광의 몸집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마력이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카르나는 20년 가까이를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인간 사회에 상당히 많은 적응을 했다. 적어도 다른 간부들 보다는 가장 '인간'답다고 할 수 있지."

"싸움꾼이요? 마음에 안 들면 패죽이는 깡패가?"

"......자기 욕망에 충실한 건 인간의 덕목 아닌가? 그래.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손 동작 그만."

개천광이 손을 말아쥐고 위아래로 흔들길래, 나는 바로 개천광의 손목을 붙잡았다.

"왜 그러나."

"제자 교육에 불건전하니까 그만두죠."

가루라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승형은 눈을 껌뻑이며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당신말은 인간답게 나랑 싸워서 만족하고 들어간 카르나가 이제 다시는 나올 일이 없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개천광의 전망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라고요."

"...아니, 너 지금 내 말을 뭔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개천광은 양손을 들어 두 개의 빛을 꺼냈다. 하나는 보라색이 섞인 금빛, 그리고 하나는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순수한 금빛.

"'카르나'가 내 괴수로서의 인격이라면, 그것 또한 나다. 비록 성질은 조금 괴팍할지 몰라도."

"......그래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은?"

척.

개천광은 두 개의 빛을 하나로 모았다. 구체는 희마하게 보라색이 섞여있기는 했지만, 선명하고 밝은 자수정같은 빛깔이었다.

"인간들의 세상이니 인간으로서 살아야겠지. 그렇다면 나도 '이름'이 필요할 터. 하지만 이름이라는 게 참 짓기가 어려운 거란 말이야. 머리 쓰기도 복잡하고."

개천광은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건 어떠느냐. 이제 나도 간부가 아니니, 그 '히어로'로서 한 번 살아보려고 하는데."

"...히어로요?"

설마. 그건 아니겠지.

하지만 언제나 내 불안한 예상은 이상하리만치 딱 맞아 떨어졌다.

"<개천광> 카르나. 개천광은 히어로의 이명으로서, 카르나는 지구에서 살아갈 한 인간의 이름으로서 제법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뭣보다."

개천광은 가루라를 끌어안으며 머리에 볼을 비볐다. 어느새 개천광은 궁극기를 쓰기 직전의 키까지 커졌고, 나나 가루라는 개천광을 올려다봐야했다.

"가루라의 이름과 어감이 비슷하구나. 그래, 아니면 너의 이름과 똑같은 느낌으로 아예 이름을 카루라로 정하는 것도-"

"아뇨, 카르나하세요."

가루라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아니 무조건 카르나 하세요, 그냥. 카루라는 생각도 하지 마시고."

"......카루라가 어감이 이상한가? 아니면 캬루나는-"

"안 돼요!"

가루라와 카르나의 입씨름이 이어졌고, 결국 가루라는 카르나의 이름을 사수하는데 성공했다.

성주의 승리였다.

* * *

피닉스가 이승형과 가루라를 데리고 무언가 흉계를 꾸미는 듯했다.

<개천광> 카르나는 정령임을 자각하기 이전, 카르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더듬었다.

싸움꾼.

카르나의 20년 인생은 오직 싸움과 전투 뿐이었고, 그 이외의 다른 것은 없었다.

있다면 오직 하나.

'순례'.

카르나는 자신의 여섯 괴인들을 데리고 순례를 다녔다. 타지마할에 적을 두고 인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괴수들과 싸웠다.

'사람들은 그걸 히어로 등록을 하지 않은 괴짜 이능력자의 자선 활동이라 생각했지.'

<라크샤사>.

이름 조차 밝히지 않은 카르나와 여섯 괴인을 향해 칭하는 사람들의 명칭이었으며, 사람들은 카르나의 활동을 조금 괴팍한 자의 활동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 손에는....'

카르나는 주먹을 들어올렸다. 카르나의 주먹은 괴수 뿐만 아니라 인간마저도 때렸다.

비록 그 과정에서 '살해한 인간'은 없었으나, 카르나는 분명 무수한 악행을 저지른 빌런이었다.

"히어로라."

카르나의 시선이 피닉스와 '화권'을 향했다. 피닉스가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며 화권의 무릎을 걷어찼고, 화권은 웃으며 엄살을 피웠다.

"세계를 구하는 자라면, 응당 히어로라고 할 수 있는가...?"

모르겠다. 카르나도 개천광도 결국에는 싸움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라고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면, 카르나도 개천광도 피닉스의 강함을 존중하고 그를 따른다는 것.

다크 레기온의 간부 카르나든, 정령 개천광이든 피닉스의 뜻에 따라 인류의 편에 설 것이다.

과거 자신의 고향, 테라가 무참히 짓밟히는 전철을 지구가 밟지 않도록.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끄덕. 속에 잠들어있던 투귀가 동감했고, 카르나의 한쪽 눈에는 자색의 기운이 물들기 시작했다.

'카르나여.'

<개천광>, 카르나는 주먹을 불끈 말아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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