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화 〉1부 14장 10
부아아앙!!
화권만 남으니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나는 다른 A급 이능력자들을 배려하여 속도를 어느정도 제한했지만, 이제는 화권 뿐이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풀악셀--!!"
"꺄아악!!"
나는 가루라의 코어에 내 마력을 왕창 집어넣었다. 탱크가 가득차서 연료가 더이상 들어가지 않음에도, 나는 마력을 꾸역구역 밀어넣으며 엔진을 불태웠다.
"F-1 좋아해요?!"
"몰라요 그런 거!"
"이제부터 좋아하게 될 거예요!"
"꺄아아악!"
나는 아예 조종간을 핸들로 바꿨다. 역시 스틱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보다, 핸들을 꺾으며 직접 운전하는 편이 더 편하고 빨랐다.
그렇다. 빨랐다.
300km에 이르는 속도로 카루라는 타지마할 공원 안을 누비며 질주했다. 화권은 담벼락을 타고 도망쳤고, 나는 담벼락을 부수며 화권을 향해 미사일을 날렸다.
[흐아아압!]
화권은 남은 마력을 쥐어짜내 미사일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직접 미사일을 요격하지 않고 불덩어리를 주먹에 모아 던지는 공격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거 아직 안 가르쳐줬는데."
콰---앙!!
화권이 주먹으로 날린 연하늘색 불덩어리가 붉은 미사일과 맞부딪혔다. 두 마력의 불꽃은 서로 마주한 순간 크게 폭발했고, 화권은 그 폭발을 반동삼아 달아났다.
'근접이 원거리 공격을 스스로 체득하다니.'
"이제 슬슬 S급 티가 나네요."
원래의 화권이 싸우던 영상을 보고 몰래몰래 연습하던 건지, 아니면 포격전차를 상대로 싸우며 스스로 깨달은 기술인지 당장은 알 수 없다.
나중에 물어보기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를 칭찬할 때.
"제법 잘 싸우네요! 하지만 아직 3분 남았습니다!"
[좀 살살해주세요!]
외부 스피커로 떠드는 덕분에 대화가 통했다. 가루라는 나와 화권을 번갈아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째서 주인님께서 인간 따위에게 존대를?!"
"그런 캐릭터예요!"
역시. 가루라 덕분에 정보를 하나 얻었다. 역시 창염의 존댓말은 컨셉이었다. 하긴 창염이 자기보다 하등한 것들한테 존대를 할만한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를 깔보기 위해서 일부러 존대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루라가 혼란스럽건 말건, 나는 화권을 향해 다시금 소리쳤다.
"한 번 더 풀악셀로 갑니다!!"
[운전 너무 험하게 하시는데요!!]
"말 할 여유도 있고 편하네요! 그래서야 어디 쓰러뜨릴 수 있겠어요?!"
집행관은 호기롭게 외쳤지만 어디 첫트만에 카루라의 패턴을 깰 수 있다면 내가 다 슬플 것이다. 카루라는 내가 즉석에서 만들어낸 패턴이기에, 공략 당한다면 내가 백희아와 히어로들에게 패배한다는 것이므로.
[이걸 쓰러뜨리라고요?! 설화령 불러주세요!!]
"원군은 없습니다!!"
남은 시간은 2분. 나는 결계에 박을 기세로 엑셀을 밟았다. 가루라는 결계에 부딪힐 것을 직감하고, 눈을 질끈 감으며 좌석을 꽉 붙잡았다.
"히이이익!!"
카루라의 부리가 화권과 닿기 일보직전이었다. 이제 화권만 잡으면 전투는 끝-
덜커덩!
주포가 내려앉았다. 화권은 제자리에서 뛰어 주포에 착지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핸들을 꺾었다.
"쳇!"
역시 저 놈은 재능이 있다. 설마 카루라의 맹점을 눈치챌 줄이야. 나는 주포를 타고 '달려오는' 화권을 떨어뜨리기 위해 핸들을 쭉 꺾은 상태에서 엑셀을 밟았다.
"비, 빙빙 돌아요…?!"
"내 차에 토하지 마요!"
"여기 제 몸인, 우웁!"
가루라는 멀미를 일으켰다. 육체이자 차인 카루라는 화권을 떨어뜨리기 위해 가든의 정중앙을 기점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젠장, 너무 좁아!"
지그재그 주행을 하며 떨어뜨리기에는 공간이 협소했고, 속도를 줄이자니 화권이 주포를 타고 달려올 것 같았다.
[역시 부리 안쪽은 사각지대군요!!]
화권은 상쾌한 미소로 주포에 달라붙어있었다. 팔과 다리를 주포에 휘감아 떨어지지 않게 찰거머리처럼 붙어있었고, 화권은 아주 조금씩 팔다리를 움직이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요. 거기가 포격이 닿지 않는 유일한 곳이죠."
부리에 의해 주포가 보호되고 있다. 그것은 즉 부리에 가려진 주포의 안쪽 부분은 이 타지마할의 전장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임을 뜻했다. 설마 진짜로 눈치채고 들어올 줄이야.
"꺄아악! 더러워! 인간이 제 몸을?!"
마개조 된 몸에 화권이 달라붙자 가루라는 질색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가루라 적으로는 달팽이가 몸에 달라붙어 기어오는 느낌일테니 이해는 갔다.
이제 남은 시간은 1분 30초. 나는 먼저 핸들을 풀어버리는 것으로 벽에 한 번 크게 들이박았다.
"꺄아악?!"
[크흑!!]
결계에 부딪힌 카루라의 깃털이 박살났다. 차로 치면 범퍼가 찌그러진 수준일테고, 가루라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아파요!"
"엄살부리기는!"
나는 주먹을 들어올려 가루라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가루라는 내게 정수리를 얻어맞고 고개를 푹 숙이며 침묵했다.
" "
보라. 이제서야 아파서 아무 말도 못하지 않은가.
[크으….]
하지만 화권은 버텨냈다. 나와 가루라가 앉은 차체가 크게 흔들릴 정도로 충격이 컸음에도, 화권은 주포를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남은 시간, 70초. 나는 화권이 주포를 스스로 놓도록 하는 마법의 문장을 읊었다.
"제자. 그거 가루라 혓바닥이에요."
[...?! 예?!]
화권은 기겁하며 손을 놓으려했다. 자기가 괴수의 혓바닥을 잡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란 눈치였고, 나는 한 손이 떨어진 틈을 타 가루라의 어깨를 붙잡았다.
"푸흐흐, 당황하기는!"
나는 가루라의 몸을 잡고 마력을 움직여 급히 마개조를 시작했다. 부리를 번쩍 들어올리고, 주포에 이어진 마력의 연결을 해제했다.
[이, 이런?!]
화권은 흩어지는 마력에 허우적거렸다. 나는 가루라의 팔을 잡아당겨, 가루라가 잡고 있는 스틱의 버튼을 꾹 눌렀다 떼었다.
"브레스 준비!"
위이잉-
카루라의 부리 속에 붉은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발-"
딸칵!
내 엄지를 포개어 누르는 가루라의 엄지에 의해, 버튼이 다시 한 번 꾹 눌러 졌다. 그리고 당연히-
□□□□□□!!
벽력같은 소리와 함께 카루라의 입에서 붉은 화염의 브레스가 말그대로 불을 뿜었다. 화권은 부리 밖으로 튕겨져나갔고, 100m하고도 조금 더 튕겨져 나가 바닥을 굴렀다.
"하아, 하아…."
마력이 한 번 크게 빠져나간 가루라는 고개를 뒤로 꺾으며 숨을 헐떡였다. 지금까지는 감질나게 플레어나 빔포만 쏘다가, 체내에 모여있던 마력을 한 번 크게 발사하는 브레스를 쏘았으니 만족한 눈치였다.
"좋았어요…."
가루라의 얼굴에는 홍조가 피어올라 있었다. 창염과 똑같은 얼굴로 저러니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했지만, 히로인에게 잠시 흔들릴지언정 나는 가루라에게 흔들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애완동물이 애교를 부린다고 이성으로서 사랑을 느끼는 주인이 이 세상에 어디있다는 말인가.
"아무튼 이제 남은 시간 40초."
부릉.
엔진이 다시 불을 뿜는다. 아직 카루라가 완전히 망가지지 않은 것처럼, 화권도 쓰러지지 않았다.
[하아, 하아.]
화권은 타지마할 공원, 전장의 한 가운데에 두 다리로 굳건히 섰다. 비틀비틀거리면서도 주먹을 들어올리는게, 꼭 하루 종일이라도 싸울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흥, 인간 주제에 제법 강단은 있네요."
가루라는 정면에서 몸을 피하지 않는 화권을 칭찬했다. SS급 괴수가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이었으니, 아마 화권이 들었다면 영광으로 생각했으리라.
"역시 주인님이세요. 저런 자를 제자로 들이시다니. 인간인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여러가지로 마음에 안드는 거야 저도 마찬가지긴 해도, 재능 하나는 차고 넘치니까요. 그럼 이제 마무리 짓죠."
남은 시간, 30초. 화권도 나도 마지막 일격을 준비할 때였다.
화륵.
화권은 더이상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주먹을 얼굴 앞에 들어올리며 마력을 하얗게 불태웠다. 순수하게 힘과 힘으로 대결하겠다는 듯한 모습에, 가루라가 울컥하여 버튼을 연타했다.
"마포 발사!"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루라는 버튼을 연신 달칵거리다 나를 향해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봤다.
"주인님?!"
"왜요?"
나는 마력을 모아 엔진을 공회전시키고 있었다. 내가 엔진, 가루라의 코어는 끊임없이 들어가는 내 마력에 서서히 과열되기 시작했고, 나는 페달에 살포시 발을 올렸다.
"여기서는 집중 포격을 할 때가 아닌가요?!"
"테라에서는 그렇게 했죠. 여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주먹질을 하는 권사에게는 심장에 마탄을 박아넣어라. 창염이라면 응당 그렇게 말을 했을테고, 가루라는 창염의 전투 마인드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 상대가 내가 반드시 쓰러뜨리거나 죽여야 할 적이라면 모를까, 눈앞에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남자를 상대로 그런 짓을 저지르기에는 미안했다.
"지금은 여유가 있으니까, 힘대 힘으로 부딪히는 거죠."
"......주인님."
가루라는 씁쓸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제가 그 때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아니, 당신 지금도 충분히 강하니까 그렇게 좌절하지 마요."
98레벨 화속성 괴수 삼대장 중에 하나가 이렇게 울먹거리니 내 마음이 다 아팠다. 세뇌당한 펜릴과 1:1로 붙어서 승기를 잡는 아이가 힘이 부족하다고 좌절하다니. 아마 인간형으로 화권과 붙어도 1:1로 이길텐데.
남은 시간 20초. 나는 가루라의 어깨를 두드린 뒤, 마력을 끌어모으는 화권에게 소리를 질렀다.
"준비됐나요?!"
[예! 오십시오!]
나는 일부러 화권의 도발에 응했다. 이 싸움의 목적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히어로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주어 성장시키는 게 아닌가.
카루라에 부딪히더라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이들처럼 잡아먹혀 밖으로 사출될 것이며, 카르나가 도착할 때 까지 나는 여기서 시간을-
찌직.
결계가 찢어졌다. 기어를 바꾸어 엑셀을 밟으려던 내 발이 굳었다.
절그럭. 절그럭.
타지마할의 정문에서 휘황찬란한 금빛이 반짝거렸다. 황금갑옷을 입은 금발의 여인은 투기와 마력을 휘날리며 정문으로 들어섰다.
"아, 개천광 님!"
가루라는 카르나를 보자마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인간의 몸으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루라는 카르나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잔향을 통해 본질을 금방 깨달은 것이다.
남은 시간 17초.
"뭐예요. 나랑 볼 때보다 더 반가운 것 같은데?"
"그, 그야 개천광 님은...."
"아, 그렇죠. 당신이 딸이고 개천광이 어머니인 격이죠."
"그, 그런 관계라기 보다는...."
가루라는 혼란스러워했지만 인간적인 관점이나 정령적인 관점이나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맞았다. 개천광 카르나는 정령 시절에도 여성형의 인격을 가지고 있었고, 가루라는 본디 개천광에게서 태어난 하위 정령이었다.
"지금이야 내 부하지만. 맞죠?"
"...네, 주인님. 흑!"
창조주가 세뇌를 당한 이후, 창염은 가루라를 위시한 수많은 부하들에게 자신의 마력을 부여하여 화속성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가루라에게는 화속성과 광속성 마력이 섞여있었지만, 그 겉모습 만큼은 나-창염의 피닉스를 닮아있었다.
남은 시간 12초.
"가루라."
나는 의자에 몸을 뉘이고 손을 수평으로 깍지를 꼈다. 가루라의 좌석 앞에 페달하나가 생겼고, 나는 가루라에게 명령했다.
"밟아요."
"바, 밟으라고 하셔도 정면에는 개천광 님이...."
"대로가 넓잖아요. 밟아요."
"그, 그치만 제자 분이...."
남은 시간 9초. 화권은 정문으로 나타나 걸어오는 카르나의 모습에 넋이 나가있었다. 이쪽이 더 빛나건만, 감히 이쪽을 보지 않고 카르나에게 시선이 빼앗긴 죄는 죄질이 몹시 나빴다.
"상관없어요. 밟아요."
남은 시간 7초. 가루라는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페달을 밟았다.
부아-----앙!!!
엔진이 거친 굉음을 울리며 카루라가 직선으로 달렸다. 가속구간 따위는 없었고, 내 마력에 의해 한계속도 마저 넘어섰다.
남은 시간 5초.
화권은 그제서야 카루라의 진격을 눈치챘다. 하지만 카르나에게 넋이 나가있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고, 화권은 카루라의 부리 끝자락에 붙잡혀 안으로 쑥 들어왔다.
나는 마력을 일으켜, 카루라의 몸속을 헤엄치는 그를 콕피트 안으로 잡아당겼다.
"스, 스승님?!"
"꺄아악!"
"아, 아니 똑같은-"
화권이 가루라의 가슴에 얼굴을 박은 채 바둥바둥 거리고 있지만 알게 뭔가.
남은 시간 3초.
나는 내 앞에 페달까지 만들어 세게 밟았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는 법."
오늘 하나는 터진다.
남은 시간 2초.
나는 브레이크 따위 없이, 정면에서 카르나를 들이받았다.
끼익.
카루라가 제자리에 멈췄다.
카르나는 맨손으로 카루라의 부리를 잡아 세웠다.
씨익.
입꼬리를 비틀며 웃고있는 카르나는 예상대로 단 1mm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데 인사가 과격하기 짝이 없군. 피닉스여."
씨익.
나는 덕배트를 움켜쥐고 카루라의 콕피트에서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