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19화 (319/1,497)

〈 319화 〉1부 14장 9

카루라가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모든 깃털이 열리며 드러난 포문에서 미사일, 레이저, 빔포가 사방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타다닷!

히어로들은 기어이 화망의 빈틈을 찾아 카루라를 향해 다가왔다. 원거리 술사들이 힘으로 위험한 마포를 쳐내고, 그 빈틈을 근접계 히어로들이 파고들었다.

그 최전방에는 화권이 있었다. 나는 급히 조종간을 당겨 화권에게 개틀링을 겨눴다.

두두두두두!

적과 청의 마탄이 화살비를 뿜어내듯 화망을 펼쳤다. 아무리 화권이라도 직격으로 얻어맞으면 견디기 어려울 터.

하아아!

화권은 카루라의 부리를 2m 남겨둔 지점에서 주먹을 회수해 위협사격을 피했다. 조금만 더 들어왔어도 벌집이 되어 결계밖으로 내던져졌을 것인데, 화권은 망설임없이 물러섰다.

'정면에서 얻어맞고 난 뒤로 철저히 회피하네.'

누가 S급 아니랄까봐 맷집 하나는 상당했다. 가루라가 신명나게 쏘는 마포를 한 번 정면에서 제대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화권은 아직 살아있었다.

'마음같아서는 기절한 틈에 그대로 밟고 가고 싶었지만.'

팬텀과 집행관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막은 거니까,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 기회는 없다. 그 때는 가차없이 밟고 지나가리라.

"가루라! 11시 방향 대공 화기!"

"네, 네!!"

가루라가 급히 지시대로 포문을 돌렸다. 유일하게 공중을 날듯 뛰어다니는 풍백은 혀를 차며 카루라의 포격을 피했다.

두두두두!

벌처럼 요리조리 피하는 풍백을 향해 쏜 마포는 전부 풍백의 옷자락을 스쳤다. 가루라는 조종간을 탕 내리치며 으르렁거렸다.

"쥐새끼 같은게!"

"......."

아직 테라의 영향이 남아있는게 아닐까 싶었지만, 나는 군말없이 조종간을 움직여 방향을 전환했다.

"좌현에서 히어로 다섯."

"아, 네!!"

풍백에 시선이 쏠린 가루라는 왼쪽에서 달려드는 적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가루라는 왼쪽을 향해 화기를 겨눴다.

"네? 없-"

콰앙!

땅이 크게 흔들리며 폭발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시야를 가리는 먼지에 가루라는 당황했고, 조준도 없이 아무렇게나 포격을 해버렸다.

"충격 대비."

"네? 꺄아악!"

콰앙, 콰앙!

카루라의 좌현이 피탄되었다. 진하게 뭉쳐진 압축수탄들이 깃털 장갑을 때려 파괴했다. 나는 흔들리는 차체 내에서 상황을 주시했다.

"과연. 팬텀을 요격에 쓰시겠다?"

집행관은 운사에게 안겨있었다. 팬텀은 집행관의 곁에 없었고, 땅굴을 만들어 카루라의 옆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땅개의 능력이었던가.'

"그리고 그 땅굴에 우사가 포격. 좋네요. 그냥 쏘면 도탄될 수 있으니."

팬텀은 다시 땅굴 속으로 들어갔다. 우사는 지하로 연결된 땅밑으로 수도없이 압축수탄을 쏘았고, 그중 일부는 연이어 카루라의 차체를 때렸다.

"아이디어 좋네요. 지하로 사격이라."

"주인님! 지금 적을 칭찬하실 때가-"

"충격 대비."

사가가각!

손톱이 철판을 긁는 소리와 함께 우현이 크게 긁혔다. 가루라가 수탄을 신경쓰는 바람에, 계속 상황을 주시하며 공중을 제압한 풍백을 놓치고 만 것이다.

"집중하세요. 벌써 두 번이나 당했습니다."

"주인님...!"

"검은 옷을 입은 것들이 이 세계의 내 부하들이기는 한데, 설마 이렇게 쉽게 당하는 건 아니죠? 명색이 삼대장 중의 한 명인 가루라가."

"......흣!"

가루라는 치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저, 저런 잔챙이들은 제가 본체만 드러내면-"

"에이, S급 딱 두 명 있는데 SS급 본체 드러내는 건 아니다."

"무, 무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숙달된 솜씨인데요. 인간으로 따지면 당신, 특급 화기 관제병이에요."

가루라의 변명은 조목조목 내 반박에 논파되었다. 가루라는 나를 향해 잠깐 눈을 흘겼다가, 쭈뼛거리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주인님.... 예전처럼 명령을...."

"어디로 이동해서 무슨 기술로 누구를 공격해라. 미안하지만 이건 당신에게도 과제예요."

창염의 지시에 따라 싸우는 것에 익숙해져있는 건 화속성 괴수들이 가장 심했다. 까딱하면 병력을 잃거나 세뇌를 당하는 전장에서, 창염은 괴수들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제 명령에만 따르는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이제는 당신 스스로 판단해서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낼 것. 그게 당신에게 주는 과제입니다."

"너무 어려운데요!"

물론 그 덕분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 이 세계는 다르지 않은가. 울상을 짓는 가루라의 어깨를 토닥이며, 나는 가루라의 의욕을 내기 위한 삼단계의 과정을 밟기로 했다.

1단계, 논리적 설득.

"잘 생각해봐요. 나중에 제가 성주 뚝배기 깨러 갈 건데, 만약에 당신이 지상에 남겨져서 따로 싸워야하는 순간이 온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그 때도 당신은 내 지시를 기다릴 거예요? 나는 성주랑 싸우느라 정신없을텐데?"

"네? 주인님 성주랑 드디어 싸우실 수 있어요?"

이해를 하랬더니 지가 묻고 있다. 나는 인자한 얼굴로 가루라의 어깨를 두드렸다.

"방법은 찾아냈어요. 아직 하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두 번째."

2단계, 실례 보여주기.

"내가 하는 거 잘 봐요."

"앗!!"

가루라가 정신이 팔린 동안, 단말을 조작해 내가 직접 화기를 제어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공중을 거니는 풍백에게는 맞추진 못해도 예상 경로를 사격해 풍백이 특정 경로를 선택하게 만들었고, 풍백이 내가 만든 활로를 따라 움직이는 끝에 주포를 발사했다.

콰--앙!!

풍백은 주포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홀로 제공권을 장악하느라 힘들었을테지만, 이제 편히 쉴 때다. 나는 조종간을 잡고 쓰러진 풍백을 향해 카루라를 진격시켰다.

딸칵딸칵딸칵

"버튼 눌러도 소용 없어요. 화기 제어권 전부 나한테 있으니까."

"히잉...."

나는 처음에는 사격하지 않았다. 집행관은 망설임 없이 풍백을 버렸다. 이미 템페스트 레이디가 당한 것을 보았으니, 풍속성이 화속성 마탄을 맞은 이상 더는 전력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빠르게 패를 버린 것이다.

'죽지 않는 모의전이니까 가능한 선택이지.'

"그럼 그 기회를 살리려면 공격을 해야겠죠?"

우우웅!

바닥에서 압축수탄이 터져나왔다. 가루라는 의자에 쪼그려앉아 겁에 잔뜩 질렸지만, 나는 조종간을 옆으로 꺾었다.

끼이이익---!!

차체가 갸우뚱 기울었다. 수평으로 달려가던 카루라가 오른쪽으로 기울며 왼쪽 바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콰아아앙!

압축수탄이 바퀴가 지나가던 곳을 향해 떨어졌다. 나는 카루라를 비스듬히 세운 상태에서 오른쪽 날개를 들어올렸다.

철컥, 철컥!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포구가 불을 뿜었다. 날개 끝에 달린 화염방사기는 지하로 향하는 구멍을 향해 불을 뿜었고, 곧 다른 구멍을 통해 불꽃이 화산처럼 치솟기 시작했다.

화르륵!

불꽃이 터져나온 구멍은 한 두개가 아니었다. 팬텀이 모든 구멍을 하나로 이은 모양인지, 불꽃은 모든 구멍으로 퍼져나가 십 수개의 화산 폭발을 일으켰다.

꺄아아아악!!

팬텀, 격퇴. 불기둥이라는 트램펄린 위에 수 차례 튕겨지던 팬텀을 향해 나는 카루라를 천천히 몰았고, 팬텀은 카루라 속으로 빨려들어왔다.

"에잇."

나는 팬텀을 내가 직접 조심스럽게 포장했다. 마력을 잃지 않도록, 겉에 보호막까지 씌워 포신에 실은 다음 결계 밖으로 사출했다.

"주인님? 걔는 왜...?"

"S급이니까요. 아끼는 거죠. 당신처럼."

"...히힛."

가루라는 실실 웃으며 아무 기능도 없어진 버튼만 딸칵딸칵 거렸다. 조종간을 움직여 차체를 바르게 세운 나는 다음 타깃을 향해 조종간을 겨눴다.

"가루라. 지휘권자가 있는 전투에서 가장 우선시 해야할 덕목은?"

"적 지휘권자의 모가지를 날리는 거예요!"

"...그렇죠. 하지만 오늘은 그냥 지휘봉을 꺾는 정도로만 합시다."

아무래도 나중에 따로 인성 교육을 해야겠다. 괴수를 상대로 무슨 인성 교육일까 싶었지만, 이대로 가루라를 내버려뒀다가는 큰 사고를 칠 것 같았다.

부릉, 부르르릉!

엔진이 불을 내뿜었고, 히어로들은 집행관의 명령에 의해 산개했다. 하지만 그건 실책이다.

"가루라! 무차별 포격 개시!"

"네!"

타다다다다닥!

오락실 버튼을 연타하듯한 가루라의 손길에 포격이 전방위적으로 쏟아졌다. 히어로들은 다급히 포격을 피했지만, 유감스럽게도 피해야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두 개 패턴이 동시에 나오는 것도 신경 쓰셔야지!"

나는 카루라를 전속력으로 밟았다. 상대적으로 화망은 얕아졌지만, 히어로들은 급발진하는 카루라에 맥을 추리지 못했다.

카루라를 피하다가 포격에 얻어맞거나, 포격을 피하다가 카루라에 치이거나.

질주 패턴과 무차별 포격 패턴의 혼합.

"이대로 지면 나중에는 또 어쩌시려고!"

지휘관-백희아를 집중적으로 노리는 포격에 히어로들이 나가떨어졌고, 운사는 집행관을 안고 도망치느라 공격에 가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심으로 히어로들이 30분을 견뎌내기를 바랐다.

* * *

"아, 이거 무리네요."

집행관은 허탈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새대가리 뱁새 전차는 이미 우사를 먹어치워 주포로 발사했고, 인도의 히어로들을 전부 먹어치워 순차적으로 쏘았다. 운사는 주포를 밟고 뱁새의 부리를 찔렀지만, 공격력이 부족해서 잡아먹히고 발사되었다.

남은 사람은 화권, 그리고 집행관. 단 둘 뿐.

그리고 남은 시간은 4분.

"아니, 아직입니다...."

화권은 몸을 비틀거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집행관을 지키느라 벌써 두 번이나 포격을 얻어맞았지만, 아직 그의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

하지만 화권의 기동성은 집행관 본인에 의해 제약되고 말았다. 운사가 사망 판정을 받고 쫓겨난 뒤, 발이 느린 집행관을 안고 달리는 사람은 화권이었다. 결국 집행관은 마지막 수단을 선택했다.

"...화권. 마지막 명령입니다."

"예!"

"버티세요. 4분, 무조건 버티세요. 알겠습니까?"

"예?"

탓. 집행관은 달리는 화권의 몸에서 뛰어내려 바닥을 굴렀다. 화권은 관성으로 인해 질주하던 그대로 결계에 부딪혔고, 이미 멀찍이 떨어져버린 집행관을 보고 경악했다.

"집행관!!"

"후후."

집행관은 베레모를 벗고 화권에게 고개를 숙였다. 집행관의 뒤에서는 뱁새가 부리를 벌린채 크럭션을 울리고 있었다.

뺙뺙--

"마지막을 부탁합니다."

"아, 안 돼!"

화권이 망연히 손을 들어올렸지만, 그에게는 힘이 없었다.

콰득.

카루라는 집행관을 치고 달아났다.

카루라가 떠나간 자리에는 바람에 날려 떨어진 집행관의 베레모만이 남아있었다.

* * *

한창 전투가 지속되고, 밖에서는 결계를 뚫지 못해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던 그 시각.

"이건 도대체...?"

타지마할에 텐트를 치고 숙박을 하다가 잠시 외유를 나섰던 금발의 소녀는 눈앞의 참상에 헛웃음이 나왔다.

콰앙, 콰앙!

포격소리와 함께 결계에서 사람이 튕겨나왔다. 이능력자들은 마력을 전부 소진한 채로 바닥을 굴렀고, 결계 밖에 있던 이들에 의해 급히 수습되었다.

"스승님,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제자 하나가 양해를 구하고 히어로 한 명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물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여기는 위험합.... 아! 당신들은! 마침 잘 오셨습니다!"

히어로는 다행히 소녀와 그 일행의 모습을 눈치채고, 상황을 소상히 알렸다.

S급 괴수 가루라가 나타나 그걸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하던 찰나, 가루라가 카루라가 되어 포격을 하더라. 그리고 첫 포격 이후 결계가 쳐저 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안에 갇힌 히어로들은 포격으로 사출되고 있는 것 같다.

"그나마 가장 먼저 눈을 뜬 저희 지휘관, 님 께서 상황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분은 누구보다 먼저 결계를 탈출하여,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푸슝!

결계에서 또 한 명의 히어로가 튕겨져나왔다. 검은 머리칼의 한국인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차세대 유망주 지휘관, 백희아였다.

"음."

소녀는 제자리에서 뛰어 백희아를 낚아챘다. 백희아를 품에 안은 소녀는 바닥에 살포시 착지해 평평한 바닥에 그를 내려놓았다.

"A급들 조차도 상대하기 버거운 괴수인가...?"

소녀는 백희아의 마력을 훑고 혀를 내둘렀다가, 제복에 흐르는 마력의 잔재를 느끼고 표정이 굳었다.

"......음. 한 비쟈야 여, 이 여인을 살피거라."

"예."

소녀는 제자-비쟈야에게 백희아를 맡긴 뒤, 뚜벅뚜벅 걸어가 결계의 정문 앞에 섰다.

"과연."

예상대로, 그가 자신을 부르는 결계였다.

소녀-개천광 카르나는 결계안으로 손을 뻗었고, 카르나의 손은 불쑥 들어갔다.

"오오오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던 결계에 손을 집어 넣은 이가 라니.

"제자들아, 이리로 오너라."

"예!"

비자야를 제외한 다섯 명의 제자가 카르나의 곁에 모였다. 백희아를 보살피던 비자야는 주변인의 눈을 경계하며 카르나에게 진언했다.

"...스승님, 여기서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렴. 들어가서는 할 수 없으니, 여기서 해야지. 자, 호법을 서라."

카르나는 가운데에 서서 마력을 끌어모았고, 다섯 명의 제자는 터번과 목도리를 풀어 카르나의 곁에 섰다.

"아니...!"

자신이 잘못봤나? 사람들은 카르나를 막아선 제자들의 얼굴이 꼭 '인간이 된 괴수'같다고 느꼈고, 무언가 반응할 틈도 없이 환한 빛이 터져나왔다.

■■■■■■!!

그저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

제자 괴인들이 마력으로 변해 카르나에게 달라붙으면서, 카르나의 작은 몸이 큰 키의 여인으로 변했다는 것.

저벅, 저벅.

황금 갑옷과 창을 쥔 여인은 결계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귀에 걸린 귀걸이는 마치 태양을 형상화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