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16화 (316/1,497)

〈 316화 〉1부 14장 6

괴수이기는 하나 눈에 보이는 외형만큼은 귀여워서 상대하기 껄끄러운 것들이 몇몇 있다.

그리고 그 괴수들은 귀여운 외형과는 달리 아주 흉악한 성능과 공략 난이도를 자랑하는 S급들이며, 화속성의 정점에는 가루라가 있다.

내장을 뚝뚝 흘리는 야차.

말대가리를 단 사족보행 거인인 킨나라.

둘을 보고 나서 크기만 한 병아리인 가루라를 보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안식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귀여운 외모 뒤에는 흉악한 공격력 또한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루라는 '동료로 영입할 수 있는 괴수'이며, S급까지는 평범한 병아리 모습을 하고 있다가 SS급으로 성장하는 순간 본래의 모습으로 변하는 성장형 괴수였다.

'그러니 원정대로서 전투는 킨나라와의 전투에서 끝났어.'

만약 가루라가 야차나 킨나라처럼 반드시 싸워야 하는 적이라면 타지마할에 모인 사람들을 소개시켜서 전장을 비워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루라를 <비스트 테이머>로서 테이밍 할 계획이었고, 시간이 되자마자 가루라의 앞에 나섰다.

그런데 먹혔다.

나는 가루라의 몸속-흐르는 불꽃 속에 누워 잠시 고뇌했다.

'왜 먹은 거지?'

가루라는 비선공 몹이다. 나를 먹을 이유가 전혀 없다. 내 마력도 느꼈을테니, 복종을 하면 복종을 했지 나를 잡아먹고 자신의 몸속에 넣을 이유는 하등 없는 것이다.

우우웅, 우우웅.

[괜찮아?! 이거 아가리 찢고 꺼낼까?!]

[연락을 보면 말씀해주십시오.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난 뒤 총공격 하겠습니다.]

마도기어가 신명나게 울린다. 천가을과 백희아로부터 온 연락은 나에 대한 걱정과 함께 살벌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 이어졌다. 나는 일단 내 안전을 알렸고, 따로 공격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렸다.

'근데 인도 놈들이 또 공격할 것 같다는 말이지.'

가루라의 외형을 보고 귀여워하기는 커녕 공격을 하다니. 그 놈은 분명 살법이거나 살법이 심어놓은 첩자가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가진 이 귀여운 뱁새를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병아리랑 뱁새랑 중간 즈음이란 말이지.'

털이 불꽃처럼 붉다는 것과 그 크기가 킨나라에 육박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반려동물로 여겨도 손색이 없는 괴수다. 실제로 경우에 따라서는 동료 괴수로 활용할 수도, 마스코트 동물로 사용할 수도 있는 녀석이다.

'그래서 왜 나를 먹었냐 이건데....'

나는 몸속을 헤엄쳐 가루라의 심장부로 향했다. 엔진처럼 뜨거운 코어의 주변에는 막대한 마력이 몰아치고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손을 올려 가루라의 생각을 읽었다.

이 놈 그냥 멍청해서 나를 먹은게 아닌-

"와."

기특한 것. 감동이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뵙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주인님.]

내가 도착한 곳은 가루라의 코어 바로 앞. 가루라는 나를 자신의 코어 앞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설마 자아를 유지하고 있을 줄이야.

* * *

삐야아악!

가루라가 거칠게 날개를 퍼덕이며 사방을 위협했다. 눈을 치켜뜨고 부리로 땅을 콕콕 찌르는게, 자기 영역을 침범당한 것에 분노하는 것 같기도 했다.

"......크흑!"

멀찍이 물러선 히어로들은 가슴을 쥐어뜯었다. 제자리에서 가만히 뒤뚱뒤뚱 앉아서 주변을 위협하는 모습은 아기새가 공포에 질려 바둥거리는 것 같았다.

"저거 괴수인가...?"

"괴수 반응은 확실한데."

히어로들은 레이더에 나오는 반응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분명 반응은 괴수, 그것도 야차에 준하는 S급-그중에서도 거의 최상급의 괴수였다.

그런데 생긴 것은 동물원 기념품 판매점에서나 볼법한 앙증맞은 외형이 아닌가. 차마 그 크기 때문에 작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가능만 하다면 히어로들은 공격 하기를 원치 않았다.

삐야악, 삐야악!

가루라는 날개를 뽈뽈뽈 퍼덕이며 주변을 위협했다. 날개짓 덕분에 거대한 바람이 불었고, 히어로들은 포근한 바람을 만끽하며 지시를 기다렸다.

"퇴치하겠습니다!"

"안 돼요!"

마하트마와 집행관의 지시가 갈려버렸기 때문에, 히어로들은 이도저도 못한 채 두 지휘관의 의견 불일치가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무조건 공격해야합니다! 저건 다 속임수예요! 사람들을 기만하려는 외형입니다!"

"기다리세요! 청화 양이 직접 안으로 들어갔잖아요! 곧 소식이 올겁니다!"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청화 양이 잡아먹혔잖아요! 괴수의 안에서 고통스럽게 불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구출해야합니다!"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좀 믿어요!"

마하트마와 집행관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렸다. 연이은 실책에 가루라를 사냥하여 체면이라도 세워보려는 마하트마는 고집을 부렸고, 집행관은 마하트마를 경계하며 그와의 연계를 거부했다.

"만약 저 괴수를 자극해서 미쳐날뛰기라도 하면 어쩌실 겁니까?! 마하트마 님의 말대로 야차에 준하는 외형으로 변신해서 타지마할 뿐만 아니라 인도 전체를 불태우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그 때는 원탁의 도움을 받겠습니다!"

"이 사람이 진짜!"

집행관은 마하트마가 광적으로 싸움에 대하여 갈망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청화에 대해 구출하는 건 원정대의 측이 더 급하다면 급했지, 마하트마가 이렇게 발벗고 나설 일은 아니었다.

"...칫!"

스마트 워치로 어딘가와 연락을 주고받은 마하트마는 집행관에게 엄포를 놓았다.

"10분! 10분만 기다리겠습니다! 그 뒤에도 청화 님이 나오지 않거나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저희는 저 괴수를 타지마할을 불태운 적으로 생각하고 퇴치하겠습니다!"

"뭐...라고요?!"

미쳤다.

마하트마는 무언가에 미쳐있었다. 집행관은 비상식적인 지휘를 하는 마하트마의 얼굴에서 광기를 느꼈다.

10분.

청화가 10분 안에 무언가 수를 쓰지 않는다면, 가루라를 향해 타지마할에 모인 이능력자들의 집중포화가 떨어질 것이다.

* * *

나는 가루라의 코어에서 가루라의 자아를 일깨워냈다.

투둑, 툭. 코어를 감싸고 있던 보라색 쇠사슬이 내 창염에 의해 불타 사라졌고, 가루라는 자유를 되찾았다. 내 마력을 느낀 가루라는 그제서야 자신의 코어에서 의식을 빼내어, 내 앞에 형체를 갖추어 부복했다.

"주인님?"

"......."

창염과 비슷하게 생긴, 그러면서도 체모나 눈동자의 색은 적색과 금색이 섞인 미소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금발, 갈색피부, 붉은 눈동자. 그러면서도 나-창염과 똑닮은 외모. 나는 예상치 못한 모습에 먼저 질문부터 할 수 밖에 없었다.

"왜 인간형이죠?"

"아.... 주인님께서 인간형으로 계시길래. 바꿀까요?"

"아뇨. 그대로 있어요."

창염의 외형 그대로 나와 똑같은 눈높이로 있는 적색의 소녀라니. 창염보다 눈꼬리가 살짝 쳐져 순해보였고, 흉부는 창염보다는 작지만 봉긋하게 돋아나 있었다.

"일단 옷부터 입을까요?"

"옷이요?"

"......."

나는 마력을 짜내어 가루라의 위에 옷을 입혔다. 가루라는 옷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어서 그런지, 제 위에 입혀진 옷을 만지작거리며 감탄했다.

"이건 주인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보호구인가요...?"

"예."

벌레와 찰과상으로부터 보호는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가루라는 수녀같은 차림새가 되어 내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주인님."

"그러게요. 그럼 잠시."

나는 가루라의 가슴을 향해 손을 집어넣었다. 가루라는 아무 망설임없이 내 손을 받아들였고, 나는 가루라의 심장부에 자리잡은 창염의 흔적-푸른 불꽃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창염이 마지막에 부하들한테 힘을 나눠준게 남아있구나.'

창염은 성주와의 전투에서 버틸려면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다만 그건 정령인 창염만이 가능한 일이었고, 최후의 최후까지 살아남은 부하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있었다.

마지막 임무의 9시간은 '타임 오버'로 끝났다. 하나 둘씩 죽어나가고 미쳐버리는 부하들의 고통을 보다못한 창염이 자신의 힘을 부하들의 속에 나누어 부여했고, 그 힘 덕분에 가루라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환룡처럼. 아마도 겉으로는 테라에서 광기에 물들어 온갖 싸움을 해댔겠지만, 내가 이 세계로의 소환을 앞당기면서 제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괴수의 잔재 때문에 그 크기는 킨나라만하게 되었더라도.

5년 뒤에 소환했다면 아마 진짜 미쳐서 원작처럼 모든 걸 불태우는 괴수가 되지 않았을까.

"고생했어요. 지금까지 미친 척 하느라."

"......흑!"

가루라는 얼굴을 두 손으로 덮으며 눈물을 왈칵 터뜨렸다. 이렇게 연약하고 감수성 깊은 아이가 테라에서 모진 시련을 겪었으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법도 했다.

"일단 마음 좀 추스리고. 지구에 온 지 얼마 안됐으니까, 상황을 얘기해줄게요."

나는 간단히 지구의 현상을 읊었다. 창염의 피닉스는 성주의 세뇌를 자력으로 해제하였으나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상황이었고, 다른 정령들의 세뇌를 풀고 다니지만 아직 네 명이나 남아있다는 것.

"곧 있으면 개천광이 이쪽으로 올 거예요."

"윽."

가루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내가 할 명령을 짐작하고 걱정하는 눈치를 보였다.

"저...싸워야 하나요?"

가루라는 개천광 카르나와의 전투를 망설이고 있다. 창염의 아래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장본인이지만, 누적된 전투의 피로로 인해 가루라는 싸우기를 꺼려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외형이 새끼 때의 형태로 크기만 커졌고, S급으로 그 힘을 되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전투를 바라지 않아 형태가 여전히 뱁새같은 형태인 것이다.

"싸우기 싫어요?"

"...명령이라면 싸울게요."

가루라는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창염과 똑 닮은 얼굴에 남아있는 개천광의 흔적이 보여,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마요. 옛 주인을 상대로 싸우라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

"...아니예요, 제 지금 주인은 주인님이세요. 싸워야 한다면, 흐끅."

가루라는 울먹이며 손등으로 눈을 훔쳤다. 나는 괜히 기시감이 들어 착잡했다.

'변신하면 개깡패면서.'

아직도 기억난다. 마지막 임무에서 세뇌당해 미쳐버린 펜릴을 1:1로 때려잡던 그 광경을. 상성의 힘과 무한에 가까운 경험치 파밍도 있기는 했지만, SS급으로 변신-원래의 모습을 갖춘 가루라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괜찮아요. 싸우기 싫으면 안 싸워도 돼요. 하지만...."

가루라가 자리잡은 이 넓은 타지마할 광장은 전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전장에서 가루라는 아군으로서 나와 함께 싸울 것이다.

물론 가루라를 억지로 싸우게 하면 전력을 내지 못하니, 가루라가 싸우지 않고는 베기지 못할 당근을 제시해야했다.

"개천광 카르나의 세뇌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번뜩.

* * *

9분이 지났다.

남은 시간은 1분이었고, 마하트마는 시간이 빛처럼 달려나가라 기도하며 전열을 정비했다.

[집행관. 정말 괜찮습니까?]

담벼락 곳곳에 배치되어있던 원정대의 히어로들이 우려를 표했다. 51초.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만 갔고, 아직까지도 청화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설마.'

집행관은 아직 가루라를 어떻게 공략하면 되는지 전해듣지 못했다. 피닉스가 어영부영 넘어간 것도 있지만, 싸울 필요가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기에 안심해버린 것이다.

'생각 바뀌어서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걸까?'

가능성이 높았다. 42초. 팬텀이 한숨을 내쉬며 캘리펠라를 꺼내드는 걸 본 순간, 집행관은 눈앞이 아뜩해졌다.

'괴인들이 상태가 양호한 걸 봐서는 문제가 없어 보이기는 한데.'

피닉스에게 귀속되어있는 팬텀, 궁성은 뭔가 특별한 이상이 없어보였다. 37초, 오히려 모종의 사태를 대비해 전투를 할 준비밖에 하지 않았다.

30초. 집행관은 하는 수 없이 히어로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총원, 전투준비. 일단 저희는 상황을 지켜봅니다."

팬텀이 '비선공몹'이라고 전해들은 이야기를 보고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야차의 경우처럼 반격기라도 날리면 치명적이지 않은가. 집행관의 지시에 히어로들은 자세를 바로잡았고, 특히 우사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제 내가 활약할 차례군.]

"...예. 속성적으로."

21초. 우사는 킨나라 레이드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화염거인의 어깨에서 지원사격을 날리기는 했지만, 아무도 그걸 신경쓰지 못했다.

15초.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집행관은 베레모를 고쳐썼다.

그 순간, 히어로들의 워치에 메세지가 도착했다. 피닉스로부터 전해진 문자는 단 네 마디가 적혀있을 뿐이었다.

[전투준비].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팬텀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양 이죽거렸다. 다른 히어로들 또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착잡한 얼굴로 마력을 끌어모았다.

'혹시 피닉스에게 문제가...?'

[집행관. 보통 이런 경우는 본인에게 문제가 생긴게 아니에요.]

10초. 불안감으로 가득찬 집행관에게 팬텀의 위로가 전해졌다.

[본인이 날뛰고 싶어서 개수작 부리는 거니까, 그냥 적당히 싸우면 돼요. 훈련이라는 셈 치고.]

"......."

그런건가. 집행관은 뭔가 새로운 진리를 깨달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3초.

2초.

1초.

땡.

약속된 10분이 지났다. 마하트마가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전 히어로들은 지금부터 S급 괴수, <가루라>에 대하여 포격을 개시! 공격!"

타지마할의 한가운데를 점령한 괴수 가루라를 향해, 히어로들이 무차별 포격을 감행했다.

위잉-

철컥. 철컥. 우우웅.

뿌연 폭연 속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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