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15화 (315/1,497)

〈 315화 〉1부 14장 5

"사실 네가 더 멋지게 기술 못 써서 삐진 거 아니지?"

"......가을, 딸기 먹을래요?"

* * *

킨나라, 격퇴.

원정대의 히어로들이 히어로의 기술명을 외치는 것이 정말로 생산적인가에 대해 백분토론을 하는 동안, 세간은 이제 킨나라의 등장 배경과 부산물 처리의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왜 킨나라는 등장하였는가, 그리고 왜 킨나라는 동쪽으로 미친듯이 달렸는가.

후자에 관한 이유는 사람들이 추측하기에, 아마 본능적으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를 찾았던 게 아닐까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뉴델리는 천만 하고도 집계되지 않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였고, 뉴델리 인근의 위성도시에 사는 인구를 다 합치면 수천 만에 육박했다.

사람들의 의견이 갑론을박 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제법 그럴듯한 가설을 내놓았다.

<프로페서> : 우리가 모르게 야차와 동서의 영역싸움을 하고 있다가, 야차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낮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것 아닐까요?

이전부터 커뮤니티에서 이름을 날리던 프로페서는 괴수가 짐승과 똑같다는 의견을 주장했다.

S급 히어로들이 상주하는 도시에 괴수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 것처럼, 인도 전역이라는 거대한 땅을 두고 두 S급 괴수가 동서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확인할 수 없는 괴수들만의 영토가 있고, 킨나라는 야차의 소멸을 눈치채고 날뛰기 시작한 게 아닐까.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 야차가 죽고 나서야 문제가 생겼으니, 야차 소멸에 따른 나비효과라는 건 제법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 와, 그러면 집행관은 완전 꿀빠는 거네요? 가지지도 못할 야차 코어 버리는 대신에 다른 S급 괴수들 챙겨가고.

시체와 파리때가 들끓는 야차는 불꽃으로 태워버렸다.

하지만 원정대는 백나로 호를 킨나라의 근처에 정박시켜, 코어를 추출하고 괴수의 핵심 부산물을 챙겼다.

단단한 발굽이라거나, 갈기라거나, 자유자재로 채찍처럼 움직이던 꼬리라거나. 배에 실을 수 있는 모든 부위를 임시로 싣고 나서야, 인도 협회의 히어로들이 나타났다.

"킨나라의 후처리를 돕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요."

청화는 흑염룡을 소환했고, 흑염룡은 잘 포장된 킨나라를 발로 움켜쥐어 동쪽으로 날아올랐다.

비록 그 평상시의 속도는 느렸지만 밤이면 인천 영종도에 도착할 것 같았다. 흑염룡은 전선에서 이탈했다.

마하트마는 급히 뉴델리로 돌아왔고, '약속'대로 야차 이후의 괴수를 그대로 챙겨가버리는 원정대의 폭거에 분노했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금도 남겨주지 않고 통째로 챙겨가느냐.

원래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고, 마하트마와 인도 협회는 섭섭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여론은 일부 극단주의자를 제외하면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 원정대 덕분에 야차를 잡았으면 됐지 뭘 또 욕심내고 그러냐. 원정대가 없었으면 지금 뉴델리는 미친 말 때문에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다.

- 그럼 애초에 협의를 그따구로 하지 말았어야지?

- 숟가락도 올리지 못했으면서....

점점 더 인도 협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마하트마에 대한 성토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그리고 정오.

해가 중천을 향해 넘어가는 그 시각. 백나로 호는 뉴델리에 도착해, 마하트마와 불편한 식사 자리를 하게 되었다.

* * *

<오후 12시 12분, 인도 협회 뉴델리 지부.>

"야차에 이어 킨나라까지. S급 괴수들을 무찔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마하트마의 표정은 썩어있었다. 그는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고, 그 불쾌함은 여실없이 집행관에게 향했다.

"별말씀을. 저희는 저희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시민들을 지키는 것은 국적을 불문하고 히어로로서 해야할 일인 걸요."

집행관은 정의론을 내세웠다. 사실상 논파가 불가능한 주장을 하는 집행관의 말에 마하트마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하, 하. 얘, 그렇지요. 히어로라면 시민들의 안전이 우선이지요...."

마하트마는 눈빛으로 말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라고. 하지만 집행관은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시민들을 괴수와 빌런들의 위협에서 지키는 것, 그것이 히어로의 사명 아니겠습니까."

집행관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거짓도 없었다. 하지만 집행관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깃들어있었다.

"단지 저희가 킨나라의 사체를 흑염룡으로 옮기는 것은 한국에서 처리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의 근거는?"

"<프로페서>의 가설을 보셨는지요? 야차가 죽으며 킨나라가 동쪽으로 진격했습니다. 이제 킨나라까지 죽었으니, 또 어디서 무슨 괴수가 튀어나올 지 모르는 일이지요."

나비효과.

균형을 갖추고 있던 괴수들의 영역 싸움에 히어로들이 끼어들며 생태계가 무너진 것.

물론 집행관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위를 가져오기 위한 억측이며 사기였다. 프로페서는 모든 진실을 알면서도, 원정대를 돕고자 거짓 주장을 펼치는 것이었다.

아니면 말고.

프로페서는 어디까지나 '아닐까요?'라는 단서를 내걸었다.

한창 자다가 잠에서 깨어나 화권의 창염개진을 수십 개의 모니터로 보면서 군침을 흘리던 <프로페서>, 히메지 히카리의 공작이었다. 적당한 방어 논리를 커뮤니티에 퍼뜨려달라는 피닉스의 요청도 있기는 했지만.

"그렇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또 다른 S급 괴수가 나타나면 어쩌시겠습니까?"

마하트마는 먼저 집행관을 도발했다. 집행관은 차를 마시며 살포시 웃었다.

"당연히 응전해야지요. 물론 그게 인도 땅에 위협이 된다면 말입니다만."

"다음에도 원정대 소수 정예로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저런. 오해를 하시니 민망합니다."

집행관은 여유롭게 웃으며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저희는 그저 급하게 괴수를 상대하고자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요격할 때 안타깝게도 인도의 히어로들이 없었을 뿐입니다. 전투가 길어졌다면 분명 인도 영웅분들의 도움이 절실했을 겁니다."

집행관은 명백히 선을 그었다. 마하트마 또한 더이상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예. 그러면 계시는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얼마나 계실 지 모르겠지만'."

"그렇네요. 저도 제가 일정을 정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집행관은 너스레를 떨며 공을 넘겼다.

"청화 양이 워낙에 자유로운 사람이라, 어쩌면 한 달 정도 머무르게 될 지도 모르지요. 저희야 청화 양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잖아요?"

급작스러운 방문에 이어, 본국으로의 귀환 날짜도 정해지지 않았다.

마하트마로서는 속이 타들어갔지만, 일단은 그들을 접대해야하는 입장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그 청화 양은 지금 어디에...?"

"청화 양이요? 말씀드렸잖아요,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집행관의 미소는 순수했다.

"오신 김에 여러 곳을 둘러보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저도 곧 합류할 예정이고."

"......."

식당에 따로 차려진 음식들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 * *

<오후 12시 32분. 타지마할 인근 대로.>

"팬텀, 그거 알아요? 타지마할은 사실 무덤인 거."

"알면 뭐하니, 다 타버렸는 걸."

나와 가을은 딸기가 갈려들어간 라씨를 마시며 거리를 거닐었다. 타지마할 인근에는 승복은 아니지만 기도를 하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우리도 그들에 편승해 합장했다.

"나무아미타불."

"이게 그 악어의 눈물이라는 거지? 그렇게 기도해도 돼? 엄청 무서운 살인귀가 나온다고 하더라."

"다들 기도하고 있잖아요? 괜찮아요."

<살법>이라고 했던가. 교인들만 노리는 빌런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타지마할이 불타자 모여든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와 가을은 적당히 변장과 변신을 통해 인파속에 자연스레 숨어들었다.

"얘, 너 되게 여유롭다? 당장 살법이 뛰쳐나와서 여기서 날뛸 수도 있는 거 아니니?"

"대충 예상가는 놈이 있으니까 걱정마요."

너무 노골적이라서 나는 오히려 더 우스웠다.

"그리고 날뛰면 어때요? 고작 빌런이 감당할 수 있을 전투가 아닐텐데."

나는 가을을 데리고 타지마할의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이들이 타지마할 곳곳을 둘러보며 잔불씨가 있나 없나 살피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나는 입구에서 마력을 흘리며 느긋하게 햇빛을 만끽했다. 마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타지마할에는 화기(火氣)가 충만했다.

"가루라가 태어나고, 카르나가 도착할 때 까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가을은 타지마할 내에 바글바글한 인파를 가리켰다.

"이 사람들 어떻게 할 거야? 쫓아낼 거니?"

타지마할에는 순례객들로 가득했다. 눈으로 보이는 수만 족히 수 천을 넘었으니, 밖에 있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만에 육박할 것이다.

심지어 그 수는 점점 더 늘어나리라. 하지만 나는 이들을 쫓아낼 생각은 없었다.

"굳이 뭐하러 그래요?"

"......야, 설마."

가을이 표정을 굳히며 나를 째려봤다. 나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어 가을의 오해를 풀었다.

"제가 미친 학살자도 아니고, 뭐하러 여기 있는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겠어요? 제물로 할만한 건 이미 바쳤잖아요."

나는 발을 세워 바닥을 툭툭 건드렸다. 가루라가 태어나는 조건은 이미 클리어되었고, 이제 한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가루라가 날개를 펼치며 태어날 것이다.

"화속성은 귀족이에요. 무분별한 살상을 할 것 같아요?"

"분별있는 살상은 하던데."

"......그건 어디까지나 필수불가결한 거라. 아무튼 가루라는 안심해요. 걔 비선공몹이거든요."

"뭐?"

가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S급 괴수가 비선공몹이라고?"

"네. 슬슬 시간이 됐는데...."

끼요오오오----옷!

새가 비상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타지마할의 상공에 인간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불의 기운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고, 거대한 알을 만들어냈다.

"으, 으아악!"

"도대체 뭐야?!"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주했다. 나는 굳이 도망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가을은 내게 바싹 붙어 내 뒤로 숨었다.

"이, 이거 장난 아닌데...."

가을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가루라의 엄청난 마력량을. S급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파괴력을 가진 괴수의 알은 족히 지름만 수십 미터를 넘어 보였다.

"가을, 심장 조심해요."

"뭐?"

쩌적, 쩍.

알에 금이 갔다. 불꽃으로 일렁거리는 알의 표면이 사그라들며, 안에 있던 가루라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삐약.

"......헙."

가을이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역시 가루라."

뺘아--

수십 미터 짜리 붉은 병아리가 타지마할에 착지했다. 이미 사람들이 도망친 공터에 발을 디딘 가루라는 주변을 쭉 훑더니 그대로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며 고개를 떨구었다.

스으윽, 푸우우.

"쟤, 쟤 뭐야...!"

"인도에 있는 괴수 중 제일 세기도 하고, 화속성 S급 괴수 삼대장 중 하나인데요."

"저게?!"

가을은 손을 벌벌 떨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미 가을의 마도기어는 영상촬영모드로 들어가 고개를 떨구고 자는 가루라를 찍고있었다.

"얘, 저거 서울로 데려가자. 청화로 와서 테이밍하는 거야."

"저거 키울 공간은 있어요?"

"축사 만들면 되지! 아니면 러버덕처럼 한강에 띄워놓던가!"

"불속성이라 물에 닿으면 위험한데요."

가을은 가루라의 파괴력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아무 소란없이 자리잡고 잠을 자는 가루라의 행동에 다른 이들도 경계를 풀고 헛숨을 들이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원래 잡을 계획이 없던 괴수이니까 데려가도록 하죠. 잠깐만요, 변장을 풀-"

"S급 괴수! 더이상 한국에 넘겨줄 수 없다!"

"아니 저 미친?"

승려복을 입은 이능력자 하나가 가루라를 향해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 자고 있던 가루라의 부리를 때린 검은 베기는 커녕 강철같은 부리에 깨져 튕겨져나갔다.

삐약?

가루라가 눈을 떴다. 붉어진 눈동자에 나는 그만 정신이 아뜩해졌다.

"어떻게 시작부터 트롤링을...."

뺘-----악!

가루라가 흥분해 미쳐 날뛰려 하고 있다. 나는 손가락을 튕겨 혹시나 싶어서 어제 미리 세팅해두었던 작은 태양을 타지마할의 상공에 밝혔다.

화륵!

태양 아래, 푸른 태양이 떠올랐다. 가루라의 고개가 홱하고 푸른 태양을 향해 돌아갔고, 가루라는 고개를 치켜올리며 날개를 사선으로 펼쳤다.

"......저거 흑염룡이 자주 하던 거 아니니?"

"맞아요."

태양을 향해 날개를 뻗은 가루라의 태도는 한없이 진지했다.

"이지를 상실한 괴수가 되었어도 본능은 남아있다 이거죠."

태양을 향한 무한한 충성. 그리고 그 태양은 당연히 나, 창염의 피닉스 말고 누가 있으랴.

"개천광 오기 전에 미리 꿀발라놔야겠죠?"

임프린팅의 시간이다. 나는 가루라의 발치에 다가가 변장을 풀었다.

"안녕하세요?"

가루라는 나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비록 말은 할 수 없지만, 나를 알아보고 충성을 맹새하는-

삐약.

덥썩.

나는 가루라에게 먹혔다.

......

이 새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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