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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14화 (314/1,497)

〈 314화 〉1부 14장 4

킨나라 레이드를 무사히 마친 뒤.

우리는 브리핑 룸에 모여 킨나라 레이드에 대한 반성회를 가졌다.

"잘했어요. 처음에 긴장한 거야 당연한 거고, 이후에 빠르게 공세로 전환해서 맡은 역할을 수행해낸 건 정말 대단했어요. 괄목상대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네요."

나는 개인마다 정리한 피드백을 종이에 적어 건넸고, 칭찬일색에 모두가 입을 쩍 벌리며 굳었다. 그에 외려 내가 더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왜요? 잘한 거 잘 했다고 칭찬하는 건데."

"그러면 오늘 점수는...?"

백희아가 대표로 물었다. 상당히 궁금해하는 눈치여서, 나는 속으로 감점 요인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이승형 때문에 마이너스 1점해서 15점."

"예?"

히어로들의 눈총이 이승형에게 쏠렸다. 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특정 한 명 때문에 점수가 깎였다는 건 분명 아쉬울 것이다.

"제가 뭐 실수라도...?"

이승형은 히어로들과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남들은 별다른 감점 요인이 없는데, 자기 때문에 감점을 당했다면 괜히 신경쓰이는 건 당연했다.

"별 건 아니고, 마지막 일격을 넣을 때 너무 시끄럽게 소리쳤어요. 소음공해로 감점 1점."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승형이 번쩍 일어나서 내 피드백을 거부했다. 어깨까지 쭉 펴며 일어나는게 잘못한 거 하나 없다는 듯 당당하기 짝이없었다.

"히어로의 필살기는 강력하게 외침으로써 더욱 강해지는 겁니다!"

"누가 그래요?"

"제가 그렇게 느꼈습니다! 창ㅇ-"

"한 번만 더 기술 이름을 부르면 묵사발을 만들어줄테니까, 적당히 하세요."

저건 수치심이라는 게 없을까? 나는 다른 히어로들 또한 비슷한 감정인지 파악하기 위해, 아주 빠르게 그들을 훑었다.

".....흐음."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이러는 건 좀."

두 명의 괴인. 아닌척 하고 있지만 이승형을 상당히 부끄러워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가 부끄러웠다.

"다음 레이드에 있어서 주의사항...."

운사는 별 감흥이 없어보였다.

"왼쪽에서 오는 공격에 주의하라.... 음, 심장이 찔리는 걸 주의하라는 말입니까?"

그저 혼잣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피드백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운사는 기술명을 외치면 더 강한 공격력을 낼 수 있다면 외치겠지만, 굳이 멋 때문에 기술 이름을 큰 소리로 떠벌리거나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흠흠."

풍백은 수염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피우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지 않나? 젊었을 때 이러지 않으면 나이 먹어서 못해. 껄껄껄!"

체면을 신경쓰는 양반답게 자신이 소리를 내지르는 건 꺼리지만, 젊은 이들의 혈기로 치부하며 이승형의 편을 들었다. SS급이 되어 반로환동이라도 하면 머릿속에 상상만 하던 온갖 기술들을 술기운으로 내지를 양반이었다.

"기술명을 외치는 건 히어로들 매뉴얼에 있는데?"

우사는 스마트워치를 가리키며 내게 따지고 들었다.

"집정관 지시사항에 따르면, 히어로들이 기술명을 외치는 건 아군이 그걸 듣고 사고를 방지하라는 대처 방안이었지. 괜히 말 안하고 기술 쓰다가 아군에게 휩쓸리기라도 하면 치명적이니까. 합을 맞추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서로 어떤 기술을 쓰는 지 알고, 그 사선에 영향이 가지 않게 싸우자는 거."

우사는 집정관 유영호가 남긴 매뉴얼에 따라 내게 반박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을까?

그 매뉴얼이 만들어진 배경이 히어로들의 안전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유영호가 어떻게든 히어로들에게 기술명을 외치게 만들고 싶어서 머리를 쥐어 짜내어 만든 온갖 변명거리로 점철된 괴짜논리라는 걸.

"창염개진이라니, 풋. 어이가 없네."

템페스트 레이디는 콧방귀를 뀌었다. 창염을 깔보는 말투여서 나도 이승형도 울컥했지만, 템페스트 레이디가 지적하는 부분은 기술을 외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불꽃을 휘두른 주먹을 내지르는 거잖아? 그럼 '화권필살!'이라거나 '업염격!'이라거나, 그도 아니면 영어를 좀 섞어서 '아이올라이트 플레임!'이라거나 그래야지. 푸흡, 창염개진이 뭐야?"

"......."

다음 원정에서 템페스트 레이디는 무조건 불참이다. 설령 본인이 참가하기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불참하게 만들 것이다.

나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창염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내 안의 창염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 손을 들어 양춘자를 없애는데 동의하리라.

"......흠흠."

하지만 나는 넓은 아량으로 템페스트 레이디의 질투를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바꾸는 건 동의해요. 당신도 언제까지고 레이디일 수가 없잖아요? 푸흐흐."

"이런 ㅆ...."

템페스트 레이디가 험한 말을 내뱉으려다 참았다. 나는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는 이상, 템페스트 레이디는 결코 나를 상대로 우세를 점할 수 없다.

"당신 호적 상 나이로 살지만 사실은 그보다-"

"야! 헛소리 하지마!"

가장 민감한 부분을 지적당한 템페스트 레이디는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렸다. 모두가 템페스트 레이디를 바라보는 시선이 미묘해졌다.

"어쩐지, 춘자라는 이름이 그 나이대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지. 껄껄껄! 어이쿠, 미안하네. 어찌 내가 존대를 해야하나?"

"제가 그 정도로 늙지는 않았어요! 씨이, 너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미래의 남편에게조차 숨긴 정보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에 템페스트 레이디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글쎄요...."

여자를 울려버린 것에 마음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창염의 이름이 담긴 기술을 모독한 죄인에게는 마음을 모질게 먹어야 했다.

"아는 건 어지간해서 다 알죠. 당신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재능있는 이능력자라면 내가 까먹을 리 없고, 그 기억은 창염의 두뇌 덕분에 모두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시시콜콜한 배경설정까지도.

"아무튼 여기서 더 부끄러워지기 싫으면 오늘 정오, 태양을 향해 경건한 자세를 갖추고 참회하세요. 그럼 다음."

내 시선이 백희아를 향했다. 우물쭈물하던 백희아는 허벅지 위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내 눈치를 봤다.

"...청화 님은 기술 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백희아가 아니라 지휘관인 집행관으로서의 질문이죠?"

"예. 그렇습니다."

"당신의 의견은?"

기술명의 호령은 언제나 지휘관들에게 크나큰 딜레마였다. 기술명을 외친다는 건 적에게도 히어로가 어떤 기술을 쓴다는 건지 밝히는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집행관으로서도 백희아로서도 기술명을 외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히어로 개인의 정신적인 사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면."

"아, 그러세요."

집정관 유영호나 집행관 백희아나 자기 속내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은 일품이었다.

지휘관이라는 자들은 하나같이 간부진들이 가진 정령감수성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찬양하는 입장이었다.

오죽하면 다크 레기온의 간부들이 읊는 영창을 표절하게 되어, 아지다하카가 격분하여 협회에 단신으로 쳐들어가는 이벤트전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명이나 기술명은 중요했지만, 다들 좀 자중하면 어떨까 싶었다.

"얘, 근데 너 왜 내로남불이야? 너는 아주 신나게 읊어대잖아."

"윽."

조덕배가 코어 형태로 있어서 안심했는데, 가을이 매섭게 찔러왔다. 다른 히어로들도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창염개진은 흑염룡 소환할 때 광장에서 외친 것 아니었나?"

"당장 오늘 전투만 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기술 이름을 외치려고 하던데-"

"그래요!"

나는 손뼉을 치며 말을 이어받았다. 이승형은 도둑질이 들킨 어린아이마냥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나는 사전에 내 기술을 외치도록 허락한 적이 없는데, 왜 당신은 멋대로 내 기술을 외치고 다니는 거죠?"

"그, 그건...!"

이승형은 자신의 편을 찾아 눈알을 돌렸다. 하지만 내가 따지고 드는 것에, 히어로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리를 벌렸다.

"뭐야, 허가 안 받은 거였냐? 그럼 화권 네가 잘못했네. 무릎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쯧.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는 구만. 저 친구가 '창염개진'을 생각하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고민했겠는가? 그런데 그걸 제 것마냥 써대? 에잉, 내가 옹이눈이었군."

"청화 님, 사실입니까? 정말로 허가없이 타인의 기술명을 사용했다면, 그건 같은 히어로로서 넘어갈 수 없습니다."

삼사가 손절했다.

"이승형, 앞으로는 허가를 받고 하거나 아예 기술명을 바꾸자. '플레임 블래스트'어때?"

"생각해보니 이명도 고유의 이명이 아니죠...? 아무리 집정관의 명명이라고 해도, 화권은 김철수 님의 이명이었잖습니까."

템페트스 레이디와 집행관의 지원사격이 이어졌다. 이승형은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그, 그래서 허락을 받기로 했잖습니까?!"

이승형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스승님은 제자가 당신의 기술을 외치는 것이 부끄러우십-"

"아, 나 진짜."

저 새끼 괴인으로 만들어서 입을 막아버릴까.

"스승?"

"제자?"

"아, 아니 그게."

이승형은 식은 땀을 흘리며 굳어버렸고, 나는 절로 머리가 아파왔다. 누가 DLC 주인공 아니랄까봐, 말실수를 아주 입에 달고 산다.

"......그렇게 됐어요."

모두가 각자의 시간을 보내던 그 시각.

나와 화권은 따로 훈련장에서 밤을 지새웠고, 화권은 각고의 노력끝에 정식으로 제자 타이틀을 획득했다.

"어떻게...?"

백희아는 자신의 함선 안에서 자기도 모르는 일이 생겼다는 것에 경악했다. 울상을 짓는 백희아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백희아의 볼에 손바닥을 붙여 빙글빙글 돌렸다.

"진정해요. 잠 자는데 방해 안하려고 결계쳤으니까."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꼼수가 있으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요."

백희아는 눈으로 따지고 들었다.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냐고.

하지만 신경을 안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백희아의 시야가 닿지 않는 사각에서 벌어진 모든 일은 전부 원작에서 그렇고 그런 짓을 저지른 일이었으니.

"나중에 때가 되면 알려드릴 건데, 지금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죠. 화권 이승형, 정식으로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SS급으로 한 번 키워볼려고요."

"미친...."

우사가 코를 찡그리며 분노를 토해냈다.

"같은 화속성이라고 챙겨주는 거냐? 이거 뭐 다른 속성은 서러워서 살겠어?"

"네. 당연하죠. 따지고 싶으면 석하랑한테 따져요. 석하랑이 당신한테 딱 1만 넣어줬으니까."

"뭔 소리야?"

나는 석하랑을 통해 수속성 이능력자들을 S급으로 만들려던 계획이 있었음을 밝혔고, 우사는 석하랑의 실패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석하랑이 물조절 실패해서 당신 S급 안 됐어요."

"으아아아아아아악!!"

고맙지만 왠지 화가나는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를 위로하고자 엄지를 들어올렸다.

"만약에 90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원정을 왔더라면 이번 전투에서 S급으로 각성했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위로가 아니라 불에 기름 끼얹는 거 아니니?"

"한국으로 살아서 돌아가면 바로 부산으로 가면 되잖아요? 다시 1만큼만 넣으면 S급 뚫는 거니까."

우사는 S급을 목전에서 놓쳤다는 것에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무튼 저는 화속성 정령이니까, 직접 챙길 수 있는는 건 화속성 밖에 없어요. 공교롭게도 이 놈이 화속성이라서 그렇지, 다른 속성이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겁니다. 제자는 무슨."

화속성에 재능까지 출중하니까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스승님."

"자기 때문에 들켰는데 이제는 숨기지도 않네. 좋아요, 왜요?"

"스승님은 창염개진이 부끄러우십니까?"

"하. 무슨 개소리예요?"

내가 그걸 부끄러워할 이유가 무어 있다는 말인가. 창염의 이름을 세간에 넓게 퍼뜨리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 지금 기술명 외치는 거 쪽팔려서 계속 따지고 든 거 아니야?"

"쪽팔리죠. 진짜 창염개진은 화권이 내지른 그런 약한 주먹이 아니에요."

나는 주먹을 움켜쥐어 내 얼굴 앞에 놓았다.

"SS급 기술을 S급 주제에 신명나게 외치고 있는데, 어떻게 부끄럽지 않겠어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오해할 거 아녜요. 창염개진은 고작 킨나라 몸만 구워버리는 기술이라고."

"......그럼 원래는 어느정도입니까?"

이승형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 또한 제자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SS급 최대 출력이면.... 아메리카 절반을 구워버릴 정도?"

원작에서 그랬다. 창염의 피닉스는 아메리카의 절반을 푸른 불꽃으로 소멸시켜버렸다. 그게 창염개진이라는 기술이라는 건 내가 삼중결계를 깨뜨리고 난 다음에서야 알게됐지만.

"......미친."

히어로들의 눈에 경악이 내려앉았고, 이승형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정진하겠습니다."

"아니, 뭐, 이제와서 빼앗겠다거나 하지 말라는 건 아니고. 하지 않겠다는 말 대신 정진하겠다며 노력하는 자세, 좋아요. 허락은 할게요, 허락은."

이승형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중에 창염에게 내가 혼이야 나겠지만, 그래도 창염도 재능있는 화속성은 아끼니까 이해해줄거다.

이승형의 1점 감점은 일단락이 되었고, 어느덧 시간은 12시에 가까워졌다.

"그럼 뉴델리로 돌아가도록 하죠. 일단 점심 먹고 쉴까요?"

"잠깐만요."

백희아가 손을 들었다.

"어제 피드백에서는 17점 만점이었는데, 화권이 깎은 건 1점이었잖아요? 그거 더하면 16점 아닌가요?"

백희아의 지적대로 1점이 비었다. 나는 왼쪽의 귀걸이-조덕배의 코어를 움켜쥐며 활짝 웃었다.

"만 점 짜리 싸움은 아니었다 이거죠. 앞으로 더욱 정진하라는 의미니까, 별로 신경쓰지 마요."

1점이 깎인 이유.

화염 거인 이 망할 놈이 내가 창염개진을 외치기 전에 먼저 주먹을 꽂아버렸다. 결국 나는 기술 명을 끝까지 외치지 못하고 우물거리며 주먹을 내지른 형국이 되었다.

'조덕배 이 개-'

그게 제일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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