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화 〉1부 14장 3
킨나라가 달리는 속도는 어지간한 고속전철이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목적이 무엇인지, 목표가 무엇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경로를 그리며 달리는 킨나라의 움직임에 누군가는 안도했고 누군가는 당황했다.
- 파키스탄 애들 십년감수했네.
이능력자의 절대적인 수도 인구에 비례하는 만큼, 한국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히어로 전력은 대게 인구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 파키스탄에 S급은 커녕 A급도 두셋밖에 없잖아.
파키스탄은 지금까지 이렇다할 괴수의 위협을 받지 않았으나, 그 바람에 S급 괴수를 쓰러뜨릴만한 전력이 없었다.
- 킨나라 날뛰었으면 나라 멸망 각이었는데 다행이네 정말.
그래서 그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땅에서 솟아나온 괴수가 동쪽으로 진격하는 것에 그러면 안 되지만 안도했다. 비록 모헨조다로로부터 인도 국경까지의 수 백 km 땅에 킨나라 발자국으로 된 도로가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 그런데 킨나라는 왜 인도 쪽으로 오는 거지?
그리고 킨나라가 인도 국경을 넘어온 순간, 인도의 협회는 비상이 떨어졌다.
이미 서쪽으로 달리고 있던 백나로 호는 차치하고, 당장 전력으로 활용가능한 이들은 야차 레이드의 지원에 나서 동쪽에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다음 날 아침부터 S급 괴수가 튀어나오겠는가.
마하트마는 상식적인 판단에 따라 지휘를 했고,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비상식의 온상이었다.
꾸어어엉
괴수는 물결처럼 흔들리는 루트로 땅을 달렸다.
희안하게 민가는 지나치지 않고 오직 평야나 숲만 달리는 게 산책이라도 하는가 하는 억측도 있었다. 마하트마는 급히 서부의 히어로들을 한 데 모아 킨나라에 응전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 우리가 어떻게 저걸 막아요?!
인도 협회는 주력이 빠진 상황에서 S급 괴수에 응전할만한 전력이 없었다.
음속에 가깝게 땅을 질주하는 괴수를 상대로, 달릴 때마다 4.0에 이르는 지진을 일으키는 괴수를 상대로 저지할 방법이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막아야 했다.
- 히어로들은 뭐하는 거야?! 지금 괴수가 뉴델리로 오고 있다고!!
킨나라의 예상 경로에는 당연히 수도이자 가장 사람이 많은 도시, 뉴델리가 있었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도시는 내버려두고, 천만이 넘는 도시를 먼저 습격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으려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킨나라는 식욕에 헉헉대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뉴델리에 긴급 대피령이 내려진 시각, 뉴델리 상공을 한 배가 지나쳤다.
백나로 호.
동쪽의 야차를 쓰러뜨린 영웅들이 이제는 서쪽의 위협을 막기 위해 하늘길을 달렸다.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S급 괴수들을 여럿 상대한 이들이라고 할지라도, 수십 미터가 넘는 괴수의 돌진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 큭큭큭, 이제 흑염룡의 봉인을 풀 때.
상황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개드립을 펼쳤다가 뭇매를 맞았다. 수도가 박살이 나서 천만 인구가 몰살당할 위기에 우스갯소리가 나오냐고 사람들은 핀잔했지만,
쿠-----웅!!
흑룡의 갑옷을 입은 화염거인이 등장해, 킨나라의 진격을 막았다.
그리고 화염 거인의 머리 위에는 고고하게 팔짱을 낀 채 킨나라를 내려다보는 푸른 소녀, 청화가 있었다.
- 젠장! 믿고 있었다고!
야차의 레이드에서도 멀찍이 화력 지원만 하던 흑염룡이 화염 거인이 되어, 히어로들과 '함께' 킨나라의 레이드를 시작했다.
* * *
"킨나라를 제압하려면 우선 사지부터 잘라야해요. 그건 풍술사들이 하나씩 맡으면 돼죠."
나는 화염거인의 투구 위에서 전장-킨나라의 몸 위를 내려다보며 히어로들의 상태를 살폈다.
"화염거인이 대가리와 등을 누르는 사이, 넷이서 각각 하나씩 맡아서 사지를 자르는 거예요."
"S급 괴수인데 어렵지 않을까?"
가을은 기형적으로 꺾인 킨나라의 사지를 가리켰다. 팔꿈치와 무릎에서 기괴하게 꺾인 팔다리는 각각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히어로들을 압박했다.
푸슈슉.
긴 손톱이 팔뚝을 쓸었고, 운사는 슬라이딩을 하며 공격을 피했다. 발바닥이 허벅지를 때리는 순간, 풍백은 허벅지에서 뛰어내려 허공을 박차고 스틱을 휘둘렀다.
우우웅---!
템페스트 레이디는 자신을 밟으려는 킨나라의 발을 상대로 질풍을 쏟아내며 마력으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궁성은 허벅지를 화살로 꿰뚫어 만든 수많은 구멍으로 클라이밍을 하며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사지를 맡은 히어로들은 처음에는 몸이 둔했지만, 확신을 가지고 난 뒤부터는 자신의 전력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맡은 부위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난 뒤부터.
"각각 사지는 A급 수준이에요. 보시다시피 압도하고 있죠."
일부러 풍술사 넷을 동원한 보람이 있다.
킨나라가 대가리를 굴리며 몸을 들썩여도, 풍술사들은 기본적으로 민첩하기에 흔들리고 경사진 킨나라의 몸 위에서도 자세가 무너지니 않았다.
구구궁!
킨나라가 배를 바닥에 튕기며 전신을 흔들었다. 자신의 위에 날뛰는 네 풍술사를 견제하는 진동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킨나라를 억누르고 있는 화염 거인에게서 탈출하려는 발악이었다.
"좀더 쎄게 눌러요. 아가리 벌리지 못하게."
나는 화염 거인의 투구 위에서 담배를 비벼끄듯 뒷꿈치를 문질렀고, 화염 거인 또한 내 행동과 비슷하게 킨나라의 말주둥이를 밟고있던 뒷꿈치를 지긋이 즈려밟았다.
꾸엉, 쿠르륵!
킨나라의 가장 위협적인 무기, 주둥이는 입마개가 씌워진 것 마냥 꼼짝도 못했다. 거대한 입은 킨나라의 가장 큰 무기였고, 그 입을 제압한 순간부터 킨나라의 사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투두두두--
킨나라의 위에서 날아다니는 백나로 호에서 포격이 떨어졌다. 비행괴수를 상대로 쫓아내기 위해 장착된 함포가 불을 뿜었고, 포격은 정확히 킨나라의 손과 발을 맞췄다.
콰과광!!
푸른 폭연이 일었다. 일반 화기라면 괴수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없었으나, 백나로 호에서 쏘아진 포격은 내 마력이 깃든 '마탄'이었다.
끼에에엑!
킨나라는 손과 발에 포격을 맞자 비명을 질렀다. 풍술사들은 이미 집행관의 지시에 따라 등에 올라타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가을은 비행정에서 쏜 포격에 S급 괴수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네. 정말."
"마도포격이에요. 지금은 포탄에만 마력이 실려서 그렇지, 나중에는 진짜 비행 괴수 상대로도 이길 수 있을 걸요?"
실제 포탄 사이즈로 만들어 준 덕분에, 집행관은 히어로들이 위험하다 싶은 순간마다 적극적으로 포격을 퍼부었다.
"역시 백희아. 잔소리 폭격만큼 포격도 잘 하네요."
"잔소리는 네가 더 잘 하지 않았어?"
"누구한테 배운 거 그대로 써먹는 거죠."
원작 게임에서 지휘관에 대한 튜토리얼은 마도 기어를 통해 신원 불상의 누군가가 잔소리를 해대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검은 실루엣으로 목소리만 나왔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백희아더라.
"결국에는 미래의 백희아가 현재의 백희아에게 잔소리하는 격이죠. 제 입을 빌어서."
"으, 싫겠다."
"무슨 의미에요?"
"네가 더 잘 알 거 아냐? 하나를 지적하면 너 분명 거기서 엄청 살 덧붙이면서 열로 늘릴 걸?"
가을의 일침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화제를 돌렸다. 잡담을 할 여유는 있지만, 우리는 지금 전투 중이었다.
"오. 마침 딱 시간이네요."
투둑, 툭!
네 명의 풍술사가 협동하여 사지를 거의 동시에 공략했다.
나머지 셋이 시선을 끄는 사이 궁성이 터뷸러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절부에 구멍을 만들었고, 그 구멍 사이로 세 풍술사가 무기를 찔러넣어 사지의 연결을 헐겁게 만들었다.
"지금!!"
□□□□□!
화염 거인은 등을 누르던 손을 풀어 킨나라의 왼쪽 팔뚝을 잡았다.
투두둑, 투둑!
어깨를 누르고 팔뚝을 잡아당기자 킨나라의 근육과 살점이 뜯어졌다. 킨나라는 괴로움에 발광을 했으나, 다른 부위도 상태는 비슷했다.
"팬텀."
"응."
팬텀은 화염 거인의 머리 위에서 살포시 뛰어내렸다. 손에는 켈리팰라가 날을 번뜩이고 있었고, 팬텀이 켈리팰라를 겨눈 곳은 오른 다리의 연결부위였다.
서걱-!!
팬텀은 깔끔하게 다리를 잘라냈다. 그리고 그 사이, 나머지 두 사지 또한 킨나라의 몸에서 뜯겨나갔다.
궁성과 운사, 템페스트 레이디와 풍백이 조를 이루어 오른 팔과 왼 다리를 뜯어냈다.
■■■■■■!!
킨나라는 거의 동시에 사지가 뜯겨나가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화염 거인에 의해 주둥이가 밟히고 있음에도, 전신으로 마력을 방출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꿈틀, 꿈틀.
킨나라의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사지가 절단되어 몸통만 남아있으면서도, 다시 사지를 재생시키려는 몸부림이었다.
재생이 끝나면 2페이즈가 시작된다.
하지만 나는 킨나라가 2페이즈로 넘어가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다.
"1페이즈나 2페이즈나 보상이 똑같으면 굳이 넘어갈 필요 없잖아요?"
촉수꺼비가 그러했다. 2페이즈로 넘어가면서 코어의 질이 더 높아진다거나, 아예 또다른 부산물이 생기는 놈들이 아니면 굳이 2페이즈로 넘겨줄 필요가 없었다.
[지금, 화권!]
집행관의 지시와 함께, 꼬리를 불태우고 대기하고 있던 화권이 제자리에서 높이 뛰어올랐다. 십 미터 가까이 훌쩍 뛰어오른 화권은 주먹을 크게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해도 됩니까?
화권은 입모양으로 중얼거렸고, 나는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내 손발의 안녕을 위해야 하는가, 아니면 레이드의 끝을 히어로로서 장식해야 하는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겠지만.'
"그러면 의지가 약해져서 데미지가 안 나오겠죠."
화권의 몸이 허공에 멈췄다. 이제 중력에 이끌려 아래-킨나라의 등을 향해 낙하할 때.
끄덕.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화권에게 허락을 하고 말았다. 화권은 그 어느때보다 해맑게 웃으며 전신의 마력을 불태웠다.
"창염---!!"
나는 마력으로 귀를 막았다. 그리고 나는 왜 허락을 했을까 후회했지만, 내게 허락을 받은 화권의 마력은 그 어느때보다도 뜨겁고 강렬했다.
풍술사들과 팬텀이 등에서 킨나라에게서 이탈하고, 화염거인 또한 몸을 일으키며 거리를 크게 벌렸다.
레이드의 시작은 화염 거인이 알렸으나, 레이드의 끝은 히어로이자 에이스의 몫.
나는 마력으로 귓구멍을 막은 채 킨나라의 등을 향해 떨어지는 마무리 일격을 내려다봤다.
개지-----인!!
아.
젠장.
들어버렸다.
"생방송 끌 걸 그랬나."
* * *
<그 시각, 김해공항.>
S급 괴수, 킨나라 격퇴.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지 고작 세 시간이 지나지 않아, 유령도시 반가라에서 절명했다. 화권을 위시한 원정대의 전투는 전세계에 생중계가 되었고, 김해공항 전체에 화권의 우렁창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개지-----인!!]
"""우오오오오오!!"""
TV 스크린에 옹기종기 모인 이들도, 구식 스마트폰으로 생중계를 보던 이들도, 스마트 워치의 홀로그램으로 전황을 보던 이들도 모두 비명을 질렀다.
화권의 일격은 킨나라의 등 한가운데에 내리꽂혔다. 사지가 뜯겨나간 킨나라는 화권의 일격에 단말마를 내지르며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이번에는 얼마나 걸렸어?!"
"30분!"
사람들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전투의 영상을 찾았다. 채널을 통해 중계되는 영상은 모두 한 사람이 전장에서 실시간으로 촬영하는 영상이었다.
"야, 야! 청화 님 뭐라고 하는 지 들려?!"
"젠장, 가슴밖에 보이지 않아!"
전투 영상은 청화의 시점에서 촬영되었다.
백나로 호의 난간에 히어로들과 일렬로 선 순간부터 시작된 영상은 S급 괴수의 아가리를 향해 낙하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생중계로 송출되었고, 청화의 영창과 함께 흑염룡이 화염 거인으로 변해 지상에 착지하는 장면은 실시간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젠장! 도대체 팬텀이랑 청화 님이랑 무슨 대화를 하는 거야?!"
화염거인의 머리 위, 청화는 지진에도 흔들림없이 두 발로 선 채 전황을 중계했다. 사람들은 S급 괴수가 압도적으로 제압당하는 것을 청화의 시점에서 직접 목도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청화가 팬텀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지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백나로 호의 포격 소리, 풍술사들이 불러내는 바람 소리, 화권의 기합 소리는 모두 영상에 담겼으나, 청화와 팬텀이 여유롭게 나누는 대화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오점에도 불구하고 전투 중계 영상은 화려하고 압도적이었다. 영상의 백미는 사지를 뜯어낸 순간 하늘 높이 뛰어오른 화권.
청화를 향해 활짝 웃는 미소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 뒤에 킨나라의 등을 향해 내리꽂는 주먹은 마무리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하늘색 불꽃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과 동시에, 영상의 끝은 불꽃에 구워진 킨나라의 절명으로 끝났다.
"흐음.... 역시."
대합실의 한 가운데, 영상을 주시하던 민트색 머리칼의 여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씩 웃었다. 상당히 눈에 띄는 머리칼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 색을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민트 좋아하는 사람 치고 약한 사람은 없지. 후후."
여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고양이같은 발걸음으로 흥분에 찬 대합실을 바람처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