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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12화 (312/1,497)

〈 312화 〉1부 14장 3

단언컨대, 생전 처음보는 괴수였다.

말의 대가리를 단 인간이 고개는 하늘로 빳빳히 치켜든 채, 팔을 앞으로 숙여 네발로 지상을 달리고 있었다.

히히히에엑

생전 처음 듣는 요상한 소리를 내는 괴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이었다. 말의 대가리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네 발을 이용해 거미처럼 달리는 괴물은 분명히 마력 반응을 일으키는 '괴수'였다.

쿠구구구궁

괴수가 땅을 디딜 때마다 막대한 지진이 울렸다. 그리고 인간의 피부처럼 달라붙어있던 진흙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 아래에 괴수의 진짜 피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파사삭.

진흙이 떨어져나가며 강철같은 피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금속 재질로 보이는 피부는 언뜻 매끄러워보였으나, 피부 아래에 꿈틀거리는 혈관은 꼬인 물줄기마냥 구불구불했다.

타그닥, 타그닥.

괴수는 미친듯이 동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S급 괴수가 나타나 미친듯이 달려나가는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하는데 충분했고, 괴수가 향하는 방향을 눈치챈 이들은 더욱 큰 혼란에 빠졌다.

뉴델리.

괴수는 뉴델리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고, 가장 먼저 괴수의 등장에 대응한 이들은 그 누구도 아닌 협회의 '높으신 분들'이었다.

-협회에서 전보.

-파키스탄 모헨조다로에서 나타나 동쪽으로 달리는 말 형태의 괴수에 대하여 <킨나라>라고 명명.

-상대는 S급 괴수이며, 전력을 다해 킨나라를 요격할 것.

언제나 그렇듯, 놓으신 분들은 괴수의 이름을 정하고 아무런 추가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괴수, 킨나라는 분명히 '무언가를 쫓는 것 처럼' 동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

"전장은 어디로 할까요?"

나는 땅을 박차고 달리며 느긋하게 집행관에게 물었다. 내가 한 번 땅을 디딜 때마다 킨나라는 세 걸음을 달려야했고, 백나로 호는 코어 엔진이 터져라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다.

"세 군데 정도 찍어줄게요."

나는 전장으로 쓸만한 곳을 집행관에게 보냈다. 셋 다 뉴델리로 통하는 길이었고, 내가 킨나라를 동쪽으로 몰고가고 서쪽에서 날아오는 백나로 호와 마주치는 지점이었다.

[여기로 하겠습니다!]

"최고의 선택이에요."

집행관은 내가 선정한 곳 중 전장으로 가장 적합한 장소를 선택했다.

자이푸르, 반가라.

세계 13대 마경 중의 하나로 후에 진짜 괴인들의 도시가 되는 지옥같은 마경.

온 김에 미리 폭탄을 심어둘까 생각도 해봤는데, 아예 킨나라를 죽여서 땅을 못 쓰게 만들어야겠다.

"좋아요. 그러면 바로 가도록 하죠. 방향 교묘하게 틀테니까, 알아서 와요."

나는 반가라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킨나라 또한 긴 혀를 턱밑으로 떨어뜨린 채 나를 잡아먹으려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구구구구.

킨나라가 뛸 때마다 진도가 적어도 4를 넘는 지진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나는 킨나라가 일으키는 지진파보다 더 빠르게 앞길을 디디며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잡히기 직전, 날개를 펼쳐 거리를 벌린다.

먹히기 직전, 허공을 박차고 마력을 분사해 이빨을 피한다.

킨나라는 벌써 십 수번도 넘게 나를 잡아먹으려다 실패했고, 제대로 성질이 나서 숨을 헉헉거리며 내 뒤를 정확히 따라왔다.

'이미 인도 국경은 넘어온 지 오래고.'

마도기어의 내비게이션에 따라 보이지 않는 직선 도로를 만들어 달렸고, 킨나라는 그 도로의 위에 발굽을 남겼다.

일방적인 추격전이지만 반격은 곧 이루어질 것이다.

반가라.

그곳에서 킨나라는 죽는다.

***

15분 뒤.

두두두두.

백나로 호의 엔진은 과열이 의심될 정도로 마력을 뿜어내며 하늘을 질주하고 있었다. 콜커타에서부터 백나로 호를 호위하던 전투기를 잠시나마 따돌릴 정도로 빠른 백나로 호는 예정된 목적지 인근에 다다랐다.

-총원, 전투준비.

갑판에 나온 히어로들은 집행관의 명령에 저마다 무기를 들거나 마력을 일으키며 전투를 준비했다. 이미 피닉스가 도착 예정 시각을 알려준 덕분에, 그들은 지정된 시각에 정확히 예정 장소에서 맞닿는 원정대와 괴수의 조우에 소름이 돋았다.

-다시금 확인합니다. 상대의 약점은?

"없습니다."

화권이 대표로 대답했다. 약점이 없는 괴수라는 게 참 어불성설이었으나, 불행히도 킨나라는 야차처럼 내장을 집중 공격하면 쉽게 공략할 수 있다거나 하는 특성은 없었다.

-예.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죠?

"풍술사 4인 대기중."

풍백, 운사, 궁성, 템페스트 레이디.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풍속성은 많았고, 변신을 통해 풍술사가 될 수 있는 팬텀까지 포함하면 무려 다섯 명이었다.

"이거 분명 예상하고 짠 편성이겠지?"

"아무렴요. 지속성이 풍속성한테 데미지 두 배로 먹는다잖아요. 지금 여기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풍술사 다 모인 걸요."

신체적 약점이 없는 적을 상대로는 마력의 속성을 통해 약점을 공략하라.

피닉스는 새벽부터 히어로들을 상대로 짧게 상성론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읊었고, 히어로들은 수많은 전투 경험을 통해 은연중에 마력의 속성 간 상관관계를 체득하고 있었다.

역으로 그 풍술사들은 모두 화권과 피닉스, 그리고 이번에는 전투에 참가하기로 한 흑염룡에 의해 카운터를 맞지만, 그래도 지금은 함께 싸우는 동료였다.

"그런데 집행관. ...진짜로 그걸 합니까?"

- 예.

집행관은 단호히 대답하는 것으로 피닉스의 계획과 연출을 지지했다. 베레모 아래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는 기대와 흥분이 담겨 있었다.

"......완전 멋있는 장면을 다 빼앗기는 느낌이네만."

"멋있으려고 싸우는 건 아닌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걔가 말했잖아?"

청화로 변신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팬텀이 히어로들에게 기억을 상기시켰다.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싸움은 멋있게 이겨야 한다'고."

"...그 '멋'의 기준이 누구의 기준인지 참 그렇군."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지휘권자와 에이스가 지금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삼사는 이미 피닉스의 정령 감수성에 동화된 둘의 상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집행관은 이미 언제 어느 타이밍에 지시를 내릴까 몸이 근질근질해보였고, 또다른 피폭자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주먹을 쥐었다 피고 있었다.

"...염개...."

남들은 신경쓰지않고 혼잣말을 하고 있지만, 화권의 어떤 말을 하는 지는 정말 불보듯 뻔했다.

"아. 화권, 첫 공격은 네가 아니야."

"예?!"

한창 손에 녹아들어있던 하늘빛의 불꽃을 갈무리하던 화권의 표정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누님?! 아, 아니 팬텀!"

"...얘 진짜 은근슬쩍 말실수하면서 내 정체 까발리네. 뭐, 상관없지만."

팬텀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걸 사실상 포기했다. 히어로들도 팬텀의 정체를 은연중에 알고 있었으나, 그들 사이에는 불편한 부분이 있어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초격은 네가 아니야. 그렇지, 집행관?"

[그렇습니다. 초격은 다른 이의 것이니, 화권은 추가타를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집행관의 지시가 그렇다면."

화권은 분명히 아쉬워하고 있었다. 어느새 백나로 호는 약속된 장소, 반가라에 다다랐다.

"저기, 뭔가 옵-"

"짜잔!"

피닉스가 갑판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품에 쥔 코어 하나를 품안에 넣은 채, 다른 코어를 다시 귀걸이로 만들어 귀에 걸었다.

"음? 놀랐어요? 이러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피닉스는 몸을 돌려 갑판 아래를 내려다봤고, 저 멀리서 광분한 상태로 말머리의 사족보행 괴물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킨나라 레이드를 시작합니다. 레이드 시작은...."

피닉스가 갑판의 난간 위에 올라섰다. 히어로들은 미리 얘기가 된 대로 피닉스와 함께 갑판에 올라섰다.

"집행관! 낙하 카운트!"

[3, 2, 1, -]

집행관은 어디서 준비했는지 손에 쥐는 버튼까지 들어올렸다.

[낙하!]

달칵.

집행관이 낙하를 지시하자마자 피닉스-청화가 뛰어내렸다. SS급 화염술사가 아닌, EX급 이능력자 <비스트 테이머>로서 수백미터 상공에서 낙하했다.

끄우어어억!!

킨나라는 갑판에서 뛰어내리는 히어로들을 반겼다. 위아래로 쫙 벌려진 입에는 히어로들을 휘감아 잡아먹으려는 촉수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오직 이 세상에 유일한 태양이 명하노니-"

청화의 영창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귀에서 빼낸 귀걸이 두 개를 각각의 손에 쥔 청화는 두 개의 코어를 가슴의 앞으로 모아 붙였다.

"현현하라, 창염의 종복들이여!!"

청화가 합장하듯 붙인 손을 중심으로 푸른 불꽃이 거대하게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40m를 훌쩍 넘기는 거인이 된 푸른 불꽃의 위에, 검은 드래곤의 비늘같은 갑옷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쿵, 쿠웅, 쿵!

히어로들은 모두 화염거인의 어깨갑주에 안착했다. 청화는 홀로 화염거인의 투구 위, 검은 드래곤 위에 두 다리를 쭉 뻗고 곧게 섰다.

"창염--!!"

청화가 오른 주먹을 뒤로 살짝 뺐다. 동시에 화염거인 또한 주먹을 뒤로 당겼다.

크오아아악!!

킨나라가 크게 뛰어들며 입을 벌렸다. 자신의 몸통보다 더 길게 찢어진 입은 화염거인의 상반신은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듯 했다.

푸흐흐.

청화의 낮은 웃음소리는 분명 킨나라를 비웃고 있었다. 히어로들은 화염거인의 어깨 위에서 '초격'에 대비했다.

"개-"

청화가 왼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허리를 비틀었다. 그것은 화권이 이미 한 번 선보였던 기술보다 더욱 정교하고 강해보였다.

"......!!"

화권은 그것을 보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비록 자신이 레이드의 시작을 알리지는 못하더라도, '스승'이 직접 보여주는 기술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었다.

"지-"

콰아아앙!!

화염거인이 살짝 뛰어올라 킨나라의 인중에 주먹을 때려박았다. 그 자세는 청화가 수평으로 내질렀던 라이트훅과는 조오오금이나마 달랐다.

"......."

청화의 귓불이 겉잡을 수 없이 붉어졌다. 히어로들은 왠지 모르게 자신의 감각이 틀어졌나 아리송했다.

방금 청화가 기술을 말하기도 전에 주먹이 먼저 나가지 않았던가?

키에에엑....

어찌됐든, 킨나라는 강제로 다물어진 하관을 화염거인의 발치 앞에 처박았다. 대가리가 바닥에 꽂히자, 관성에 의해 앞으로 달려나가던 몸이 공중에 붕 떠버렸다.

완전 무방비 상태. 화염 거인의 발이 땅에 닿는 것과 동시에, 타이밍만 노리고 있던 집행관의 지시가 추상같이 떨어졌다.

[풍술사들은 각자 위치로! 맡은 사지를 제압합니다!]

대답을 할 시간도 없었다.

궁성이 왼 팔을, 운사가 오른 팔을, 템페스트 레이디가 왼 다리를, 풍백이 오른 다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화권은 꼬리!]

"알겠습니다!"

화권은 화염 거인의 오른팔을 박차고 달려 높이 뛰어올랐다. 수직으로 세워진 몸통의 끝자락에 흔들거리는 꼬리는 금방이라도 히어로들을 향해 휘둘러질 것만 같았다.

"창염-"

스승이 직접 보여준 기술이다. 화권의 눈과 주먹에는 하늘색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개진----!!"

콰---앙!!

화권의 주먹이 킨나라의 장골을 때렸다. 수직으로 세워졌던 킨나라의 몸이 화권의 일격에 아래로 떨어졌다.

쿠---웅!

킨나라는 바닥에 바짝 엎드린 형상이 되었다. 말대가리는 화염거인에게 찍혀, 사지는 각각의 풍술사들이 구속하여, 등은 화권에게 일격을 맞았다.

[지금이에요! 총공격!]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집행관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풍술사들은 각자 맡은 사지의 관절부를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엉!!

킨나라는 고통을 호소하며 몸부림을 부렸지만, 자신과 체구가 비슷한 화염거인에 이어 화권까지 몸을 짓누르는 바람에 옴짝달싹을 못했다.

"얘, 너 왜 말이 없니?"

팬텀은 화염거인의 머리 위에서 팔짱을 낀 채 아무 말이 없는 청화의 옆구리를 찔렀다.

"......."

청화는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피닉스로 돌아가 대외적인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준 건방진 부하 2호를 밤하늘의 별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말이고 자시고...."

투둑, 투두둑!

킨나라의 사지가 관절부부터 기괴하게 꺾이기 시작했다. 접혀서는 안 될 방향으로 접힌 팔과 다리는 팔뚝과 허벅지 위에 올라타있던 풍술사들을 향해있었다.

"다들 알아서 잘 하고 있는데, 제가 굳이 훈수할 필요는 없잖아요."

화염거인은 킨나라의 대가리를 밟고 뒷목을 지긋이 누르고 있고, 화권은 킨나라의 꼬리를 상대로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대로 2페이즈 갈 때 까지 패죽이면 되겠네요."

꾸어어엉!!

네 명의 풍술사와 화권은 킨나라의 사지와 꼬리를 상대로 자신의 힘을 마음 껏 뽐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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