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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11화 (311/1,497)

〈 311화 〉1부 14장 2

성주는 부하들을 이용해 테라의 주민들을 학살했고, 걸리적거리는 정령들을 하나 둘 세뇌시키는 것으로 테라를 점령해나갔다.

최초에, 절풍이 당했다. 절풍은 펜릴이 되어 정령들을 향해 이빨을 세웠다.

이어서 마암룡, 지륜, 개천광이 당했다. 셋은 각각 아지다하카, 히드라, 카르나라는 괴수가 되었다.

저항을 포기하고 잠적한 환룡은 결국 성주에게 붙잡혔다. 정신은 도망치는데 성공했으나, 육체는 혼돈이라는 괴수가 되었다.

남은 정령은 설야와 창염.

다섯 간부들의 협공에 의해 설야까지 제압당하고, 창염은 테라에 남은 모든 이들을 자신의 신전에 모아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전황은 극도로 불리. 매일 매시가 싸움의 연속이었으나, 창염은 성주와 여섯 간부들을 상대로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쓰러졌다.

성주는 압도적인 힘에도 찍어누를 수 없었던 창염과 그의 군단을 다른 이계를 정복하기 위한 첨병으로 만드는데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

그게 화속성 괴수들이 다른 속성에 비해 더 강한 이유였다. 테라에 남은 화속성 괴수들은 최후의 결전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던 최정예였고, 그 괴수들이 하나 둘 지구로 넘어왔으니 평균보다 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이야 석하랑 때문에 물의 기운이 더 강해 화속성 이능력자가 극악으로 적지만, 전세계 적으로 화속성의 수가 적은 이유도 그런 이유였다.

성주는 화속성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자신의 군대와 세뇌한 여섯 간부들을 상대로 하여 승기는 잡지 못했어도 끈덕지게 버틴 창염과 화속성 괴수들을 꺼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화속성 괴수는 잘 없다. 괴수가 많이 풀리고 죽어서 지구에 마력을 흩뿌려야 그만큼 그게 인간들의 몸에 축적되는데, 성주는 하나하나가 알짜배기인 화속성 괴수들을 소모시키기 두렵고 아까워하는 것이다.

그 바람에 화속성 이능력자도 많이 없다. 간혹 열린 차원문을 통해 괴수가 지구로 넘어오게 되더라도, 괴수가 가진 마력의 질은 높지만 그게 많은 이들에게 뿌려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이 화속성이 이른바 '귀족 혈통'이 된 이유였다.

내가 어떻게 이 뒷설정을 알게 된 것은 다른 게 아니고, 피닉스 루트에서만 할 수 있는 특수 임무 덕분.

내가 창염이 된다는 전제하에, 휘하 괴수들을 지휘함으서 패배가 확정된 전투에서 최대한 많은 괴수들을 쓰러뜨린다는 임무를 간접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아군으로 사용할 수 있는 괴수들은 창염을 위시하여 지극히 적은데, 상대인 성주의 군대는 거의 무한에 가깝게 쏟아진다. 그런데 그걸 클리어하려면 B급 이상 괴수 3천마리를 넘게 죽여야 했고, 그중에는 온갖 S급 괴수들, 그리고 SS급인 여섯 간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어떤 전투보다도 힘들고 괴로웠지만, 나는 9시간을 훌쩍 넘기는 길고 긴 전투 끝에 미션의 목표를 완료하는데에는 성공했다. 비록 그 끝이 성주가 세뇌빔을 쏴버리는 거라 기분은 더러웠지만, 덕분에 창염의 피닉스 개인 루트의 마지막 조건을 클리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루라는 그 전장에서 활약한 S급 괴수 중 하나였다.

* * *

적당적당히 창염의 피닉스적으로 길게 이어진 내 설명이 끝나자, 덕배는 기가 차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듯 해보였다.

"왜요? 막상 최종 보스가 이렇게 무서운 적이라는 거에 놀랐어요?"

"아니. 그거랑 여섯 간부들을 상대로 개같이 버틴 네가 더 무서운데."

"이게 못하는 말이 없네."

나는 덕배를 허공에서 빙빙 휘둘렀다. 태양빛에 그의 민머리가 반짝였고, 지나가던 새들이 화들짝 놀라 자리를 피했다.

"그럼 버텨야지 가만히 앉아서 '흐아앙 성주님 갱장해여엇!'하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래도 결국에는 졌잖아."

"가만히 앉아서 지지는 않았죠. 창염의 피닉스가 끝까지 개긴 덕분에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지 않았다면 성주가 20년은 더 빨리 지구에 도착했을 테니까."

창염이 이악물고 버티지 않았다면, 아마 지구에서 성주에게 일격을 먹일 수 있었던 원탁 1기가 성장을 채 하기도 전에 성주가 지구를 휩쓸었을 것이다.

"그러니 감사하십시오, 지구인. 저 덕분에 지구는 또 구원받는 것을."

"그래,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든 필수불가결한 거다 이거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죠. 푸흐흐."

그리고 성주가 도망친 20년-원작까지 포함하면 약 25년의 시간은 성주를 쓰러뜨릴 후세대의 영웅들이 자라기에 딱 좋은 시기였다.

"그 영웅들이 네가 마음껏 갈아치운 전 아내들이냐?"

"표현 한 번 되게 이상하네. 근데 틀린말은 아니라서 더 빡치고. 아무튼 걔들 덕분에 쉽게 이길 수 있었죠. 성주의 뒤에 있는 이계신까지 완전히 쓰러뜨리려고 하니까 여러모로 신경 쓸 부분이 많아서 그렇지.

"알았다. 더 들으면 머리 터질 것 같으니까 더 안 물을게. 킨나라에 관해서나 이야기해봐."

"썰을 풀게 뭐 있어요? 얘는 지금부터 보면 될텐데."

나는 날개를 접고 허공에 멈췄다. 덕배는 관성 때문에 내게 후드만 잡힌 채 대롱대롱 진자처럼 흔들렸다.

"얘?"

"네. 도착했거든요."

나는 내 발밑을 가리켰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나는 어느새 킨나라가 잠들어있는 지역-'모헨조다로'에 도착했다.

"지금부터는 킨나라를 유인하기만 하면 돼요."

"일단 깨워야 유인을 할 거 아니야."

"네. 맛있는 먹잇감이 있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죠."

나는 덕배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덕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래도 잠에서 깨우는데 빈손으로 오기는 그래서 먹을 것도 들고왔죠. 푸흐흐."

"□□□ㅁㅁㅁㅁ!!!"

덕배가 아무래도 심한 욕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덕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들을 수없었다. 이미 덕배는 지상을 향해 빠르게 '낙하'하고 있었다.

"저런, 욕 안했으면 들어줬을 텐데."

나는 덕배를 향해 들어올렸던 엄지를 이리저리 살폈다.

사실, 덕배의 후드를 잡았던 손이었다.

"미안해요. 킨나라 본인이 지속성이라, 입맛이 상당히 까다로운 친구거든요."

조덕배가 지속성이라서 다행이다.

맛은 없겠지만.

나는 추락하는 조덕배의 뒤를 쫓아 수직으로 낙하했다. 조덕배의 자유낙하속도보다 내가 더 빨랐고, 조덕배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나는 조덕배의 후드를 낚아챘다.

"흐, 흐아아! 하하하!"

이번에는 심장마비로 안 죽었다. 조덕배는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나를 향해 삿대질했다.

"중국처럼 죽을 줄 알고! 이번에는 안 죽-"

콰득.

그래서 내가 죽였다.

증발해버린 조덕배의 경험치는....

"알게 뭐람."

어차피 수십만 메뚜기 괴인을 잡아봐야, 현실에서 B급 하나 잡는 것 만도 못한 것을. 나는 조덕배의 코어를 움켜쥐고 땅을 향해 마력을 흩뿌렸다.

"빈손으로 오기 그래서, 선물 사왔거든요?"

나는 흙바닥을 향해 손을 뻗어 노크했다. 지금은 잠잠했지만, 이 근방에 지속성의 마력을 가진 존재는 덕배 하나 뿐이니 아마 금방 뛰쳐나올-

"아. 이거도 있지."

나는 지파룡의 코어를 꺼냈다. 사용해야지, 어디 써야지 하다가 결국은 사용하지 못한 지속성 S급 코어를 꺼내니 덕배가 상당히 초라해보였다. 나는 지파룡의 코어를 감싼 막을 해제하여, 지파룡의 냄새를 흘렸다.

유이신이 S급 코어의 마력에 절정에 빠졌던 것처럼, 괴수도 S급 코어의 냄새를 맡으면 아주 제대로 광분할-

구구구구-

지진이 났다. 하늘은 화창했다.

나는 입꼬리가 씩 올라가려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바로 나와주고 아주 고맙네요!"

쿠어어어어어!!!

킨나라.

말대가리에 거적데기만 두른 괴인이 땅을 가르고 튀어나왔다. 기형적으로 꺾인 두 팔을 앞다리 삼아 짐승처럼 걷는 모습은 동쪽의 야차와 별반 다를게 없을 만큼 혐오스러웠다.

"그럼 킨나라, 동쪽 뉴델리를 향해 산책!"

쿠아아아아!!

킨나라는 나를 향해 입을 쩍 벌리며 달렸지만, 나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동쪽을 향해 달렸다.

"햇살도 좋고,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네요!"

햇빛은 쨍쨍.

덕분에 나는 햇살 속에 몸을 숨긴 채 달릴 수 있었다.

킨나라와 나의 신나는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골인 지점은 파키스탄의 국경을 넘어, 내가 인도에 도착할 때 까지.

* * *

<10분 전, 백나로 호 브리핑 룸>.

"정말로 똑같군. 아니, 다른가?"

히어로들은 청화의 주변에 모여 청화를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브리핑룸에서 호되게 피드백을 하던 날선 정령과는 달리, 다소곳이 앉은 괴인은 날이 서기는 커녕 포근하기 그지 없었다.

"이거 진짜 본인이랑 똑같아?"

"나도 몰라. 본인을 만져본 적이 있어야지."

가을은 청화의 얼굴로 빈정거렸다. 청화의 입에서 가을의 시니컬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색다른 느낌이었지만, 가을이 이능인 변신의 특성상 육체는 똑같았다.

"...? 팬텀, 자주 안고 다니지 않으셨습니까?"

유이신은 기억을 더듬어, 회의 때마다 가을에게 마스코트 인형처럼 안겨있던 피닉스를 떠올렸다. 분명 그 때 여러번 만지작거렸을텐데.

"겉으로 보이는 건 그래. 근데 걔, 항상 몸 위에 아주 얇게 마력으로 보호막 두르고 다닌다고. 걔 진짜 웃긴다? 자기는 막 다른 사람 만지면서, 남이 자기 몸 만지는 거 엄청 싫어해."

"음…. 그렇습니까?"

박라온은 긴가민가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고, 유이신은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유이신은 괜히 불똥이 튀기 전에 대답을 피했다.

"흠흠. 아무튼 그래서 이게 진짜 걔 몸인지는 몰라."

"팬텀."

백희아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팬텀의 상체를 훑었다. 특유의 사제복으로도 가릴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백희아는 주먹이 울었다.

"거기도 진짜 본인입니까?"

"크흠!"

천현택이 헛기침을 하며 불편함을 내비쳤지만, 가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가슴-청화의 가슴을 마음껏 주물럭거렸다.

"손 가늠으로만 치면 D는 되는 것 같은데. 한 번 만져볼래?"

"그래도 되나요?"

"내 몸도 아닌데 뭘. 괜찮아. 왠지 너라면 이 가슴을 만져도 당사자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것 같거든."

가을의 예상은 거의 정확했다. 가을이 청화로 변신해 그 몸을 백희아가 주물럭거린다고 하더라도, 본인은 기가막혀하면서도 따로 제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꼭 집행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유이신의 시선이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던 박라온을 향했다. 가을 또한 박라온이 자신을 만지는 것에 당사자가 화를 내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너는 어떨까?"

"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이승형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못했다. 남과 여의 비가 3:5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문란하다 못해 노골적으로 성적인 주제가 오가는 건 남성진에게 고역이었다.

"집행관. 담배 한 대 피워도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진짜가 신호를 보낼 때 까지는 브리핑 룸에서 대기합니다."

"...그러면 대화 주제를 조금 바꾸시지요."

강하백은 자꾸만 청화의 가슴으로만 대화가 흘러가는 상황이 불편했다. 청화로 분한 팬텀은 성적 주제에 대해 남녀간의 분간이 없는 듯 절제가 없었다.

"왜요? 남자들 이런 거 좋아하지 않나?"

"남의 몸으로 그런 짓을 하니까 얘기하는 거 아니요."

"내가 내 몸으로 하면 당신 물빼러 가야할 걸? 그치, 화권아?"

"그건 맞는 말이지만…."

팬텀의 노골적인 섹드립에 모두의 시선이 이승형에게로 쏠렸다. 이승형은 부리나케 손사레를 쳤다.

"오, 오해입니다! 저는 관악에서 팬텀을 한 번 이겨서 진짜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요! 그래서 아는 겁니다!"

"화권아, 진짜 저거보다 크다고?"

천현택은 믿기지 않는 다는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키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인 청화보다 더 크다니 믿기 어려웠다.

"아니, 그…."

이승형은 답변을 하기가 어려웠다. 평소에 가을이 대놓고 자기 원래의 모습에 가면만 쓰고 다니는 걸 아는 입장에서, 괜히 말실수를 한 것 같아 신경쓰였다.

"그러네. 이런 것도 변신 가능한 걸?"

짝! 가을이 손뼉을 치며 변신했다. 청화의 몸에서 회색 빛이 나옴과 동시에, 가을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흑사갈이 되었다.

"어때? 엄청 크지?"

가을은 120cm로 거대해진 가슴을 자랑하며 밑을 받쳐들었다. 이승형은 대놓고 자신을 놀리는 가을이 원망스러워졌다.

"팬텀…. 일부러 그러는 겁니까?"

"응. 그러고보니 너 이 몸에다가 엄한 짓 했지? 윗가슴에서 미끄러져서…."

"그만. 마하트마의 연락입니다."

백희아는 청색의 베레모를 고쳐쓰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가을 또한 흑사갈의 몸에서 청화로 되돌아왔고, 히어로들은 표정을 굳혔다.

삐빅.

집행관의 응답과 함께 스크린에 마하트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인자한 얼굴의 그는 고개를 숙이며 그들을 맞이했다.

[뉴델리로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영웅들이시여.]

"야차의 사체는 잘 정리되었나요?"

[예. 말씀하신대로 한 곳에 모아 불태웠습니다. 코어는 현재 저희 측에서 철통경비 속에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마요. 언제 어디서 괴수가 또 튀어나올 지 모르니까."

[흐하하. 집행관께서는 걱정도 많으십니다. 설마 괴수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하겠-]

키에에에에엑

땅에서 솟아나더라.

백나로 호는 뉴델리를 지나쳐 서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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