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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10화 (310/1,497)

〈 310화 〉1부 14장 1

7월 24일.

원정대가 인도에 도착한 지도 벌써 하루가 지났다.

그들은 도착과 동시에 얼마 지나지 않아 야차를 공략하는데 성공했고, 이 공략전은 많은 괴수 레이드 전문가들에게 있어 모범이 되는 교과서같은 전투였다.

- 혹시 더 볼 수는 없을까?

인도에 있는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람들은 원정대가 다른 S급 괴수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S급 괴수를 상대로 싸움을 벌여 압도적으로 승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무리 최근 S급 괴수들을 상대로 승리하는 일이 잦다고는 해도, 인류는 수 십년 가까이 괴수들에게 고통을 받아왔다.

- 인도에서도 흑사갈 같은 애가 튀어나오는 거 아님? 그러면 원정대 완전 계타는 건데ㅋㅋㅋ

마하트마와 집행관 사이의 협정은 이미 협회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원정대는 야차를 너무나도 깔끔히 제압했다. 거기에 마하트마를 비롯한 인도 히어로들이 중간에 큰 사고를 친 덕분에,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인도의 협회를 여론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 양심이 있으면 야차 코어는 원정대에게 넘겨야 하는 거 아니냐?

그 여론이 잠재워 진 것은 집행관이 야차와의 전투 정보를 협회에 등록하면서, 야차의 기술-광역 도발과 반격기의 연계기가 널리 알려지게 된 이후였다.

그 일이 알려지고 난 뒤로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 어떻게 알았냐.

야차에 관해 미리 알고 있지 않았다면 대처가 불가능한 기술이 아니었을까? 정말 눈치로 상대의 의도를 알아챘다면, 집행관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휘관이었다.

그리고 집행관은 떠나기 전, 마하트마를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 최소 다섯 수 앞을 예상해야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다음 목적지로 갈 것이다.

다음 행선지를 알리는 집행관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도 굳어있었다.

* * *

<7월 24일 오전 6시, 브리핑 룸.>

"원래는 어제 저녁에 킨나라 잡으러 가려고 했는데 오늘로 미뤘어요. 그래서 지금 바로 이동합니다."

나는 스크린에 지도를 띄워 목적지를 밝혔다. 우리가 지금 위치한 콜커타로부터 약 2천 km 떨어진 지역, 뉴델리를 지나 서쪽으로 쭉 넘어간 곳에는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파키스탄이 있었다.

"여기, 킨나라가 있어요."

"...인도 땅이 아니지 않습니까?"

퀭한 얼굴의 화권은 손을 들어 질문했다. 다른 이들도 새벽부터 일어나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그렇죠. 킨나라는 인도 땅에서 나온 괴수지만, 서쪽으로 가면서 지금의 파키스탄 땅에 자리를 잡았어요."

괴수가 서식지를 옮긴 대표적인 케이스이며, 이후 국가 분쟁에 있어서 가장 큰 장해 요소가 되었던 놈이기도 하다.

"그럼 여기서 질문. 사냥한 괴수의 부산물에 대한 처리 권한은 우선적으로 누구에게 있죠?"

"사냥한 국가의 것이죠. 보통은 자국 내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지만."

"그래요. 하지만 이렇게 괴수가 태어난 지역과 현재 사는 지역이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들어...."

나는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 사이에 갈색의 원을 그렸다.

"괴수가 자기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곳이, 하필이면 두 국가의 국경을 걸치고 있는 곳이라면?"

"......."

민감한 문제였다. 괴수가 있다는 걸 아는 이상 잡아 죽여야 하는데, 막상 그걸 잡자고 하니 타국에까지 영향이 가면 큰 낭패였다.

"모비딕을 예로 들어볼까요? 모비딕은 일본에서 발생한 괴수로, 일본은 오키나와에 열린 게이트를 닫지 않고 방폐하여 모비딕이 날뛰도록 내버려뒀죠."

"국제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지. 발을 디딜 섬이 완전히 날아가버렸으니, 어찌 바다에 있는 괴수를 끌어낼 방법이 없지 않았나.

"예. 그리고 그 모비딕은 대마도에 상륙해 부산에 왔다가 격퇴되었습니다. 결국 모비딕과 그 속에 있던 아니사키스의 코어는 누구의 것이 되었죠?"

내 질문에 몇몇 히어로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아니사키스를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불쾌한 모습이었다.

"질풍객이 나타나 잡기는 했어도 원탁인 이상 1할 수준 밖에 가져가지 못했지."

"그것도 심지어 질풍객 본인이 챙겼어."

"예. 그리고 그 질풍객은 코어를 환전한 돈으로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죠."

모비딕을 눈앞에서 놓친 그들로서는 배가 아프다 못해 울분을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질풍객이 코어를 본국으로 가져갔다면 모를까, 질풍객은 제 할당량을 챙겨 한국에서 바로 환전한 뒤 전세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무튼 질풍객이 가져간 나머지, 모비딕과 그 이하 괴수들은 전부 우리가 챙겼죠. 한국 영해에서 있었던 전투이니, 한국이 챙기는 건 당연지사."

"그렇다면 파키스탄 쪽과도 따로 협의를 진행해야하나요?"

집행관의 걱정은 응당 당연했다. 만약 킨나라가 파키스탄에서 날뛰게 된다면 파키스탄 협회에서는 상당히 난색을 표하게 되리라.

"애초에 협회에 말할 수도 없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괴수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럼 그 전에 파키스탄과 협의를 진행할 수도 없다네."

"오히려 파키스탄은 협의를 거부할 걸? 일단 S급 괴수, 자국에서 먼저 처리해보겠다고 말이야."

딜레마였다.

야차처럼 이미 알려진 괴수라면 모를까, 킨나라는 아직 세간에 그 존재가 알려진 괴수가 아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이렇게 하는 수밖에."

나는 이미 킨나라를 잡으려고 했을 때부터 계획한 플랜을 히어로들에게 읊었고, 히어로들은 기가차다는 듯 나를 노려봤다.

"그걸 진짜로 하려고 했습니까?"

"지금 하려고 하잖아요?"

"아니, 어제 저녁에 말입니다."

"......시간적으로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아요?"

나는 킨나라가 자고있을 파키스탄, 모헨조다로에서 뉴델리를 향해 쭉 선을 그었다.

"백나로 호가 뉴델리로 귀환하는 도중에, 동쪽으로 진격해오는 S급 괴수 반응을 눈치채고 방향을 선회, 요격. 어때요? 괜찮죠?"

괴수가 인도 땅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면, 그 괴수를 인도로 다시 끌어당기면 될 일이었다.

"허허...."

"이거 진짜 이래도 되는 건가?"

히어로들은 저마다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물쭈물 앉아있던 집행관이 손을 들어 내게 물었다.

"...민간인 피해는 없습니까?"

"네. 없어요. 지진으로 인해 흔들거려서 컵이 깨지거나 하는 일은 있겠지만."

"지진이요?"

"예."

나는 지도를 수직으로 뒤집었다. 마도 기어를 통해 나타난 홀로그램 3D 지도에는 지하 수 십 km에 기다란 굴을 파고 돌아다니는 괴수 하나가 모헨조다로에서 잠자고 있었다.

"킨나라, 지하에서 돌아다니거든요."

그리고 먹잇감으로 판단한 것의 아래에서 수직으로 솟구치는 지속성 괴수다.

"극적인 장면, 한 번 연출해볼래요?"

* * *

백나로 호는 뉴델리로 귀환을 알렸다.

어딘가에 다른 S급 괴수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혹은 잠들었고, 사람들은 원정대의 숭고한 정신에 감탄했다.

- S급을 처리하기만 하면 되니, 코어나 부산물을 아무 필요가 없다.

집행관의 다소 억지에 가까웠던 협의도 사실은 조금이라도 빨리 괴수를 처리하고자 하는 청화의 의지가 반영된게 아닌가 사람들은 오해하기 시작했다.

- 인도에 야차 말고 다른 S급이 있었다면 아마 인도는 지금쯤 세 개로 쪼개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야차를 쓰러뜨리고 뉴델리로 귀환하는 영웅들을 칭송하며 반길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 사실 야차 쓰러지고 뭔가 또 나타날까봐 경계하고 있었던 거임!

그들이 콜커타 인근에서 하루 휴식을 취한 것도, 도저히 뉴델리로 돌아올 수 없을 만큼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라고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모두의 이목이 뉴델리에 쏠렸고, 백나로 호가 얼른 뉴델리의 공항에 들어서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그들은 보지 못했다.

백나로 호에서 아주 작은 파란 새가 갑판을 통해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 * *

"또 사기치려는 거지?"

"사기라니, 말 조심해요."

나는 조덕배를 들고 서쪽으로 전속력으로 날았다. 이미 백나로 호는 저 멀리 점이 되어 보이지도 않았고, 나는 이미 뉴델리 상공을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하여튼 괴수들은 매번 귀찮게 수 천 km씩 떨어져 있고 말예요."

"그야 S급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

"한국 생각해봐요. 서울에만 두 마리, 그것도 여의도랑 종로에 하나씩 있었지."

"그건 그러네."

촉수꺼비와 시청사의 뱀. 둘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건드리지 않았다. 체구나 힘은 시청사의 뱀이 훨씬 압도적이었으나, 촉수꺼비에게는 큐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는 서쪽에 하나, 동쪽에 하나, 그리고 가운데에 하나 이렇게 있다는 말이죠."

"가운데 하나는 네가 장소를 지정한 거 아니냐? 타지마할에서 나타나도록."

"그렇긴 하죠."

"그러면 타지마할에서 가루라 먼저 잡고 킨나라 잡으러 가면 되잖아."

덕배는 동선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내가 2천 km 하늘을 날아 킨나라를 유도하는 것, 그리고 뉴델리로 향하던 백나로 호가 그걸 요격하러 방향을 선회하는 것을 따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가운데에서 태어날 가루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말.

"가루라는 말이에요, 새벽에 알로 태어나거든요? 그러다가 햇빛을 쨍쨍 받으면서 알이 조금씩 커지는데, 정오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S급 괴수가 돼요."

"아, 그거냐?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정답입니다. 지금 먹어봐야 E급인 걸요. 햇빛에 숙성시키는 거예요."

"숙성란이냐? 근데 지금 타지마할에 잔재 처리한다고 사람들 많이 몰려있잖아. 그건 어떻게 처리할래? 다 불태워 죽이려고?"

"그랬다가는 히어로들 바로 저한테 칼질하려 들 걸요."

원정대의 히어로들이 내게 어느정도 반감이 수그러들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니 나는 그들과 척을 지지 않도록, 수법을 교묘히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늦어도 오늘 두 시 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가루라가 설령 태어나더라도 쉽게 날뛰지 못할테니."

나는 마도기어로 타지마할의 상공을 촬영하는 위성 영상을 띄웠다.

"찾아봐요. 제가 뭘 하고 갔는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덕배는 영상을 한참동안 살펴보다가 백기를 들었다. 영상에는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만 가득했고, 그 어떤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당연하죠.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에라이."

덕배가 몸부림을 치며 난동을 피웠다. 나는 덕배의 후드를 비틀어 움켜쥐어 그를 제압한 뒤, 속도를 슬쩍 늦췄다.

"푸흐흐, 알았어요. 가르쳐 드릴게요. 가루라가 화속성 괴수라고 얘기했던 거는 기억나요?"

"그래. 그게 뭐가 다르냐?'

"당연히 다르죠. 화속성이면 괴수라도 제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녀석이거든요. 제 마력을 느끼면 제 명령을 무조건 들어야 하는 거예요. 순정 괴수라 괴인이나 흑염룡처럼 대화는 불가능하지만, 애완조로 키울 수는 있죠."

"애완조??"

덕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S급 괴인을 자가용 삼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애완조로 키우려는 속셈이냐?"

"괜찮지 않아요? 서울에 상주하고 있던 흑염룡이 자리를 비웠으니, 그 자리에 또다른 괴수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럼 물지기나 지파룡으로 하면 되지않냐? 흑전갈은 스펙이 너무 낮다고 치더라도."

"부하 2호."

나는 덕배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를 밝혔다.

"저는 제 아래 괴수로 화속성 말고는 받지 않습니다."

"아주 귀족 혈통 나셨네. 화속성이 그리도 잘났냐?"

"네."

누가 창염의 피닉스가 주관하는 속성 아니랄까봐, 화속성은 전부 동급 내에서도 하이 스펙을 자랑했다. 당장 내가 깃든 창염의 피닉스부터 시작하여, 화권, 흑염룡, 그리고 그 외 기타등등 모두가 평균 이상의 스펙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인도의 세 괴수 중에서 가루라가 제일 강해요."

"사심없이 말해봐."

"리얼 팩트. 야차랑 킨나라 둘이서 힘을 합쳐도 가루라 못 잡아요."

"화속성은 뭐 특별한 거라도 있냐? 농담하지 말고."

"음…."

나는 설명을 망설였다. 피닉스 루트에서만 알려지는 정보를 굳이 덕배에게 밝힐 이유가 있을까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우리가 파키스탄 일대에 이르기 까지는 아직 시간이 제법 남아있었다.

속도를 높여서 대답하기도 전에 도착할까 고민이 되었지만, 덕배는 그런 내 망설임을 금세 눈치챈 것 같았다.

"좋아. 내가 듣고 어디가서 얘기 안 한다. 남아일언중천금. 내가 들은 거 다른데 얘기하면 내가 앞으로 평생 너 주인님으로 모시고 산다."

"그럼 지금까지는 주인님으로 생각 안 했다는 거잖아요."

"새삼스럽냐?"

"아뇨. 그럴 줄 알았어요."

화속성이 제일 강한 이유라. 나는 덕배에게 간단히 설명을 할까 고민했지만, 그래도 덕배가 나중에 말실수를 할까봐 소상히 알려주기로 했다.

"다른 건 아니고, 테라가 망하기 전에 성주의 군단을 상대로 끝까지 버텼던게 창염의 피닉스 이하 화속성 정령들이었을 뿐이에요."

테라의 인류는 멸종했고, 정령들은 성주에 의해 괴수가 되었다.

"성주의 부하들, 그리고 세뇌당한 정령들과 끝까지 싸우면서 강한 자만 살아남았고, 죽지 않은 이들은 세뇌되어 괴수가 되었어요. 창염의 피닉스 또한 마찬가지고."

테라의 마지막 수호신, 그게 창염이었다.

결국 성주에게 패배하고 멸망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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