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화 〉1부 13장 22
<브리핑 당시.>
“야차에게 제대로 데미지를 넣을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어요. 몸은 앙상해 보이지만, 몸 전체가 S급 수준의 공격이 아니면 효과가 없습니다. 심지어 가죽도 질겨서 S급들도 쉽게 공격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여기를 노려야 해요.”
피닉스는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옆에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야차를 뒤집으니 히어로들의 인상이 굳어졌다.
“내장이 줄줄 흐르죠? 네, 내장을 공격해야 합니다. 그게 이 녀석 약점이에요.”
“거기 말고는 다른 곳은 안 돼?”
팬텀은 노골적으로 질색했지만 피닉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 다른 곳은 쓰러뜨려도 소용이 없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특정 조건을 만족하지 않으면 계속 부활하는 녀석들. 야차도 마찬가지예요.”
피닉스는 홀로그램으로 사람의 모습을 하나 만들어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아주 작은 불꽃이 들어간 사람은 몹집이 부풀더니 야차의 모습이 되었다.
“암속성에 깃드는 괴수예요. 바이러스 괴수의 일종인데, 숙주를 이런 괴물로 만들어버리죠.”
궁성이 자신의 배에 손을 올리며 사색이 되었다. 옆에 있던 운사가 그의 손을 붙잡고 위로했다. 피닉스는 행여나 누가 볼새라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냥 쓰러뜨리면 코어는 나오겠지만, 바이러스는 다른 이의 몸으로 퍼져나갈 거예요. 그러면 또 그 대상이 괴수가 되겠죠. 어쩌면 좋겠어요? 조건 만족 없이 죽여서 코어 계속 수급할래요, 아니면 바로 죽일래요? 선택하세요.”
모두가 후자를 선택했다. 피닉스는 응당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야차의 바이러스까지 죽이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간단해요. 태워죽이면 돼요. 광속성이나 화속성이 없으면 완전히 죽이지도 못하는 아주 귀찮은 녀석이죠.”
피닉스는 화권을 가리켰다. 피닉스가 스스로 나설 수는 없으니, 야차를 완전히 쓰러뜨릴 핵심 인물은 결국 또 화권이었다.
“그럼 화권. 야차의 내장을 불태울 준비는 됐습니까?”
“.....물론입니다.”
화권은 주먹을 불끈 쥐며 피닉스에게 다짐했다.
“야차의 내장 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불태워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막겠습니다.”
“좋아요. 다른 히어로들은 화권을 지원하되, 화권이 맞을 것 같아도 가만히 내버려두세요. 진짜로 얻어맞고 날아가면 야차를 견제하고.”
피닉스는 야차와 화권의 홀로그램으로 모의전을 펼쳤다. 야차의 대검이 화권의 머리를 쪼개기 직전, 화권의 형상이 야차의 아래로 파고들어 내장을 향해 불꽃의 어퍼컷을 날렸다.
“타이밍에 맞춰서 상대의 공격을 받아넘기는 거예요. 그 상태에서 추격으로 아주 치명적인 일격을 약점에 날리는 거죠. 이해하십니까?”
“굳이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어?”
“빡치게 만드는 거죠. 바이러스에 감염된 괴수를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가 화딱지가 나서 괴수와 일체화 된 상태에서 쓰러뜨리는 겁니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게 조건인 걸요.”
피닉스는 툴툴 거리며 무어라 혼잣말을 내뱉었다. 쓸데없이 귀찮게 한다느니 짜증을 부렸지만, 정작 그걸 실제로 수행해야하는 장본인은 화권이었다.
“이른바 ‘패링’이라고 합시다. 이 패링이 제대로 먹히면 야차는 잠시 쓰러질 거예요. 그러면 그 때를 노려서 아주 제대로 공격을 퍼붓는 거죠. 내장을 향해 쏘는 게 제일 베스트겠지만, 일단 각자 위치에서 야차를 사격해주세요.”
후위에 궁성, 템페스트 레이디, 운사. 셋은 야차에 대한 견제사격과 쓰러졌을 시의 집중 사격을 맡았다.
“화권이 야차의 어그로를 끄는 동안, 운사와 풍백은 중위에서 교대로 야차를 교란해주세요. 데미지를 넣기 보다는 시선을 끄는 위주로. 혹시나 대검에 전력으로 얻어맞아도 한 번은 버틸테니까, 얻어맞기 전까지는 안심하고 안심하면 됩니다.”
중위에 운사와 풍백. 둘은 화권이 밀려나거나 하는 틈을 타, 야차의 어그로를 대신 끌 것이다.
“저랑 집행관은 흑염룡 위에서 대기합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면서 지시를 내릴게요.”
야차의 크기가 흑염룡보다 절반 정도 작기에 괴수들끼리 싸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집행관과 논의를 했던 히어로들의 역할을 적당히 배분한 뒤, 팬텀에게 황금색 수가 놓여진 무기를 하나 건넸다.
“이거 뭐니?”
“야차에게 막타를 넣을 무기요.”
무늬는 호화로웠으나 그 모양은 투박하기 짝이 없었다. 팬텀은 톱날이 달린 도끼창을 이리저리 살피며 혀를 내둘렀다.
“야만적인 무기인 걸.”
“효과는 확실할 거예요. 여러모로 카운터가 될 테니까.”
브리핑을 마무리한 피닉스는 손뼉을 치며 좌중을 훑었다. 집행관의 허락까지 맡아, 사실상 레이드는 피닉스가 주재하는 전투가 되었다.
“그럼 첫 인사는 누가 가장 화려하게 해주실래요?”
“제가 하겠습니다.”
화권이 자원했고, 피닉스는 승낙했다.
그때 까지 피닉스는 설마 화권이 저리도 당당하게 창염을 외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후 화권의 성명절기로 불리게 될 궁극기, ‘창염개진’이 전세계에 공식적으로 울려퍼지던 기념비적인 싸움의 시작이었다.
* * *
캬아아악!!
야차가 청백의 불꽃 속에서 뛰쳐나왔다. 털에 청백의 불꽃이 붙은 야차는 바닥을 굴러 불을 꺼뜨렸고, 그 바람에 시취가 나는 체액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 풍백, 운사가 시선을 끄세요. 화권은 바닥에 깔린 체액을 불태워 제거. 그거 닿으면 녹는 산성물질입니다.
워치를 통해 피닉스의 지시가 전해졌다. 크게 물러난 화권은 바닥을 향해 불을 내질렀고, 마저 지상에 착지한 풍백과 운사가 함께 달려 야차를 향해 뛰어들었다.
카앙--!
풍백의 스틱과 운사의 창이 동시에 야차의 등을 때렸다. 상대에게 입히는 데미지는 전혀 없었으나, 화권을 쫓던 야차의 시선을 돌리기에는 충분했다.
부---웅!!
야차가 기형적인 왼팔을 휘둘러 둘을 낚아채려했다. 풍백은 바람을 타고 빙둘러 도망쳤고, 운사는 과감히 야차의 아래로 파고들었다.
-운사, 무리 금지. 그냥 빠져나오세요.
"...큭!"
피닉스의 지시가 귀신같이 떨어졌다. 창을 위로 내지르려던 운사는 야차의 사타구니에서 흘러내리는 내장을 눈앞에 두고 바닥을 박차고 빠져나왔다.
- 둘은 교란에 집중합니다. 화권이 필드의 잔재를 제거하면 그 때 딜 넣으세요.
"거 본인이 지휘관도 아니면서!"
풍백이 다리에 바람을 모아 야차에게 차올렸다. 야차의 턱을 쳐날린 바람은 옆으로 흩날렸고, 야차는 눈에 불을 켜고 풍백을 노려봤다.
캬으아악!
야차의 입이 쩍 벌려졌다. 하지만 이미 풍백은 야차의 어깨를 디디고 멀찍이 뛰어올랐다.
꿈틀, 꿈틀!
야차의 등뒤로 장기 일부가 흘러나왔다. 꿈틀거리는 대장을 직접 손으로 뽑아낸 야차는 그것을 채찍마냥 휘두르려 했다.
"큭?!"
"이런."
풍백과 우사는 채찍의 거리를 가늠하고 혀를 찼다. 빨리 피하지 않으면 요격당할 위치였다.
콰---앙!
야차가 채찍을 치켜들려던 순간, 야차를 향한 포격이 시작되었다. 궁성과 우사, 템페스트 레이디가 채찍이 닿지 않는 원거리에서 화살과 마탄을 쏘며 포격을 시작했고, 야차를 중심으로 진한 폭연이 피어올랐다.
-풍백, 운사. 둘을 이 사이에 거리 벌리고 숨 고르세요.
집행관의 지시가 떨어지자, 둘은 채찍이 휘둘러지는 거리에서 크게 물러섰다. 야차는 괴성을 지르며 적을 찾았고, 마침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적을 향해 대장을 내리찍었다.
"흡!"
연기속에서 화권이 나타났다. 자신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지는 대장의 채찍을 끝까지 주시하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지금이에요.
- 지금!
피닉스와 집행관의 지시가 동시에 떨어졌다. 타이밍은 말그대로 '동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화권은 채찍이 떨어지기 직전 앞으로 박차고 달렸다.
스윽--
머리카락을 스칠 뻔할정도로 공격을 피한 화권은 오른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의 주먹에는 청백의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노리는 곳은 털 사이로 가려진 썩어 문드러진 피부. 그곳에는 온갖 기생충과 벌레로 들끓는 내장이 눈에 훤히 보였다.
"흐아아!"
화권의 눈에서 불꽃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심장에 자리잡은 창염은 화권의 전신에 마력을 둘러 그의 힘을 보조했다.
"첫번째--!!"
콰---앙!!
화권의 주먹이 야차의 내장을 찔렀다. 상처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는 불꽃의 주먹은 정확히 내장을 찔렀다.
- 비틀어서, 폭발.
피닉스의 지시가 전해졌다. 화속성 이능력자라 무언가 통하는 게 있는지, 화권은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주먹에 힘을 주고 비틀고 마력을 방출시켰다.
콰과광!!
주먹의 불꽃이 폭발하며, 화권은 야차의 아래에서 튕겨져나갔다. 야차는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고, 팔을 앞으로 떨구며 고꾸라졌다.
"큭?!"
화권이 뒤로 도망치는 속도보다 야차의 팔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대로는 깔리겠다 싶어 가드를 들어올린 순간, 검은 불꽃이 멀리서 날아왔다.
콰앙!
야차의 관절을 노린 검은 불꽃에 의해 야차의 팔은 꺾여들어갔다. 멀찍이 도망친 화권은 자신을 구원한 마탄이 누가 발사한 것인지 금방 깨달았다.
-위험하다 싶으면 이쪽에서 지원합니다. 다칠까봐 걱정하지 마요.
크르르.
피닉스와 집행관을 태운 흑염룡은 야차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상황을 주시했다. 내장을 한 번 크게 공격당한 야차는 배를 움켜쥐고 주변을 향해 괴성을 질렀다.
캬아아아아아!!
히어로들은 직감했다. 야차가 고통에 분노하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집행관은 빠르게 추가 지시를 이어나갔다.
- 전력으로 포격을 개시합니다.
- 빡치게 만드는 거예요.
집행관이 지시하고, 피닉스가 덧붙였다. 누군가는 지시를 철저히 이행하기 위해, 누군가는 야차의 역겨움을 이겨내기 위해 지시에 따라 마력을 가감없이 끌어올려 야차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키에에엑!!
야차는 철저히 내장을 보호하며 마탄을 몸으로 견뎌냈다. 실제로 야차의 털과 가죽은 보기와는 달리 상당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고, A급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뚫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화권 재진입, 운사 보조. 풍백은 대기.
화권이 다시 야차에게로 달렸다. 자신에게 큰 피해를 입힌 적에게 분노하면서도, 야차는 화권의 마력에 상당히 경계하며 팔을 휘둘렀다.
"크윽?!"
야차의 팔에서 피분수가 터져나왔다. 검붉은 혈액은 닿는 모든 것을 녹여버릴 것처럼 들끓고 있었다.
"갑니다!"
화권의 옆을 뒤따르던 운사가 창끝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창끝을 중심으로 강한 바람이 용오름쳤고, 야차의 피분수는 화권에게 닿지 않았다.
- 풍백 진입. 마탄을 타고 달리세요.
"노인네 힘들게 하는데는 선수구만!"
풍백은 허공을 박차고 달려, 궁성과 우사가 쏜 마탄의 사이로 들어갔다. 겨드랑이 사이로 쏘아진 마탄을 통해 숨어들어간 풍백은 스틱을 꼬나쥐고 지시를 기다렸다.
- 찌르세요.
"그거 고맙군!"
풍백은 지시대로 스틱을 갈비뼈 사이에 찔러넣었다. 스틱을 중심으로 질풍이 뿜어져나왔고, 풍백이 일으킨 바람은 야차의 늑골 사이에서 근육을 찢어발겼다.
키아아악!
야차는 즉시 오른손을 제 가슴을 향해 뻗어 풍백을 움켜쥐려했다.
- 템페스트 레이디, 소용돌이를. 풍백은 그거 타고 이탈.
"영감님!"
템페스트 레이디가 날아와 야차의 겨드랑이 사이로 거대한 소용돌이를 날렸다. 풍백은 소용돌이를 타고 야차의 옆구리로 빠져나왔고, 야차의 손은 애꿎은 허공만 훑었다.
- 지금, 궁성.
파--앙!
야차의 등 뒤에서 사격하던 궁성이 활을 비틀어 쏘았다. 화살은 야차의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들어 크게 휘었고, 궁성의 특기인 곡사에 따라 화살은 야차의 가슴 앞에서 U턴을 하며 풍백이 찔렀던 갈비뼈 사이를 파고들었다.
꾸드드득!!
터뷸러스의 특성이 실린 화살은 폐를 뚫고 지나가 바람 구멍을 만들었다. 야차는 다시금 크게 휘청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히어로들은 다시 집행관의 지시에 따라 포격을 개시했다.
키에에엑....
야차는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히어로들은 무기를 든 채 자리를 지키며 야차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 낚시 패턴입니다. 낚이지 마요. 공격 하는 순간 발광하면서 달려들테니까.
크르르....
야차는 누가봐도 상처입은 짐승이었으나, 피닉스의 지시를 듣는 히어로들은 아무도 야차를 건드리지 않았다.
크르....
결국 먼저 가드를 푼 쪽은 야차. 기만이 통하지 않자 다시 내장을 뽑아들려고 야차가 움직이려 들자, 피닉스가 쾌재를 부르며 상쾌한 지시를 내렸다.
- 반격기 풀려고 하네요? 마격 넣을 딜러 들어갑니다.
탓.
흑염룡의 위에서 가면을 쓴 회색 코트의 여인이 금색의 톱날 단창을 들고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