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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301화 (301/1,497)

〈 301화 〉1부 13장 18

타지마할에 큰 불이 일어났다.

수백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굳건히 서있던 대영묘는 막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무덤앞의 공원에는 붉은 불꽃이 만개했고, 궁전같은 성의 겉에는 그을음이 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건조해서 그런 걸까, 햇빛이 강렬해서 그럴까. 그도 아니면 괴수의 준동으로 인해 소방시설이 전부 망가져서 그런 걸까.

하늘에 내리쬐는 태양빛은 그 어느때보다도 강했고, 소방차가 와도 끌 수 있을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화르륵.

화마는 타지마할 전체를 집어삼켰다.

불길은 겉잡을 수 없었고, 천막촌에서 간신히 도망쳐나온 고승은 화마를 보며 망연자실했다.

"태양이시여...."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가는 불꽃은 마치 불사조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 * *

촤아아악!!

대기중에 물기운이 넘실거린다. 우사가 높이 치켜든 지팡이를 중심으로 거대한 구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영감!"

"오냐!"

템페스트 레이디와 합을 맞추어 사방을 뛰어다니던 풍백이 구름을 향해 스틱을 찔러넣었다. 뭉쳐있기만 하던 구름이 속에서 스틱을 중심으로 소용돌이를 치기 시작했고, 구름은 크게 출렁거리며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흐아앗!"

우사와 풍백이 동시에 마력을 사용해 소용돌이치는 구름을 던졌다. 구름은 부메랑처럼 날아가 불길의 위를 덮었고, 불기운을 받자마자 곧장 터져버렸다.

쏴아아아--!!

구름이 터져나오고 물줄기가 사방으로 솟구쳤다. 우사와 풍백이 합동으로 만들어낸 구름은 회전하는 스프링쿨러 마냥 흩뿌려지며 불기운을 잡았다.

"안 돼! 이래서야 너무 오래 걸려!"

우사는 마력을 모았지만, 마력을 모으는 속도보다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아무리 건조한 곳이라고 해도, 이상하리만큼 불길이 확산되는 속도가 빨랐다.

"육시럴! 드럽게 뜨겁네!"

풍백은 욕지기를 내뱉으며 기막을 펼쳤다. 마력을 통해 불길을 덮어 산소를 차단했고, 풍백이 펼친 기막 아래의 불꽃은 잔불만 남았다. 너무 많은 마력을 소모한 풍백이 호흡을 고르는 사이, 우사가 수탄을 난사하며 풍백을 부축했다.

"정신차리쇼, 영감.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 많으니까."

"죄다 빛나리 놈들이니까 그러지, 젠장...!"

풍백은 사방에 가득한 대머리의 승려들을 보며 혀를 찼다. 비록 복장은 각양각색이었으나, 한 번 밀어버린 머리카락은 불꽃에 반짝여 빛나고 있었다.

"이 나라 이능력자들은 왜 죄다 하나같이 반짝거리고 난리야?!"

"거 광속성인가 뭔가밖에 없다잖소."

"무리예요, 지금 우리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요."

한 바퀴 타지마할을 돌고 온 템페스트 레이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계를 토로했다. 설화령이나 루살카라면 모를까, A급인 우사로서는 약간의 구역 정도밖에 화마를 꺼뜨리지 못했다.

"협회는 뭐라고 하던가?"

"아직 감감 무소식이우. 젠장, 이거 참 어이가 없구만."

우사는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인도 협회의 이능력자들을 보고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떻게 자기내 땅의 걸 불에 타도록 방치할 수 있냐고!"

셋의 분노는 마하트마를 향했다. 인도 협회의 대표이면서, 타지마할을 포기하는 선택을 해버린 남자를 향해.

* * *

"다친 사람은 없고, 불길은 타지마할 안에서만 타들어가지요. 지금의 시설로는 도저히 불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럼 타지마할이 그냥 타도록 내버려 두자는 말씀이신가요?"

"예."

집행관은 마하트마의 입에서 나온 단호한 말을 순간 잘못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뇌여봐도 마하트마가 타지마할이 전소될 위기를 가만히 지켜보겠다는 선택을 했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문화유산을 포기하실 겁니까?"

"문화재를 보존한다고 하여 인류가 괴수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더욱이."

마하트마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차갑기 그지 없었다.

"불길을 더 확산되지 않게 막을 수는 있어도, 불길 자체를 완전히 잡을 수는 없습니다. 다행히 앞으로 수 시간 뒤면 비가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불길이 인근 숲에 번지지 않게 막으면 될 것입니다."

"바로 위에 강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나 강이요! 물을 끌어다 쓰면 되잖아요!"

"...한국은 물을 다루는 이능력자들이 많지요? 오죽하면 가정에 소화기보다 물을 조종하는 이능력자가 많다고 하는 농담도 있지요."

마하트마는 딴소리를 하다가 씁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닙니다. 이능력자들 대부분이 광술사이며, 그들을 동원하게 되면 괴수들을 상대로 하는 전선이 무너지게 되겠지요. 관리해야할 땅은 엄청나게 넓고, 곳곳에 온갖 괴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는 게 상책입니다."

마하트마는 자신의 지시에 따라 배치된 히어로들을 가리켰다. 영상 속 히어로들은 타지마할을 에워싸는 긴 담벼락 위에 서서 형형색색의 빛의 장막을 펼쳐 불꽃이 담을 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원정대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안에서 아무리 불길을 끈다고 해도 소용이...."

"......."

집행관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며 불길을 끌 생각을 하지 않는 마하트마의 대답에 멱살이라도 쥐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게 당신의 지시라면 알겠습니다.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집행관은 단호한 목소리로 마하트마에게 제 의사를 확고히 밝혔다.

"저라면 모든 수단을 활용해서라도 꺼뜨렸을 겁니다."

집행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마하트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바닥을 쳐다봤고, 집행관은 인사도 없이 몸을 돌려 방을 박차고 나섰다.

삐비빅.

집행관은 나가자마자 용의자 1호를 호출했다. 마침 당사자는 집행관의 전화를 금방 받았다.

[부르셨어요?]

"혹시 당신이 한 짓인가요?"

[......너무하시네. 제가 남의 나라 문화재까지 불지르는 사람으로 보여요?]

스크린 너머 피닉스는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부라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집행관은 잠시 미안해져서 눈의 힘을 풀었다.

"죄송해요. 오해했어요."

[오해라.... 집행관, 미안해요.]

피닉스는 오히려 사과하며 멎쩍게 웃었다.

[사실 저예요.]

"......."

집행관은 복도의 벽에 이마를 박았다. 차가운 벽의 감촉이 이마에 전해져 화끈거리는 머리가 잠깐이라도 가라앉은 것 같았다.

"....좋아요, 이유를 들어봐도 될까요?"

[당연하죠. 아, 그 전에.]

피닉스는 손가락을 들어 집행관에게 엄포를 놓았다.

[괜히 불 끄려고 들면 안 돼요. 타지마할은 전소되어야 하니까. 안 그러면 다른 사원에 또 불질러야 해요.]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예요?"

집행관은 듣자마자 따박따박 쏘아붙일 수 밖에 없었다. 타지마할에 불을 지른 것도 중범죄인데, 중간에 끄면 다른 사원에 불을 질러야 한다니.

[말 같지도 않죠? 그런데 그게 그래요. 이 인도에서 나오는 괴수들이 하나같이 이상하거든요.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피닉스는 집행관에게 설명을 마쳤다. 집행관은 몸을 뒤집어 벽에 기대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친 사람은 없죠?"

[당연하죠. 그보다 협약은 잘 맺었어요? 야차 코어 넘겨주는 대신에 가루라랑 킨나라의 모든 건 저희가 얻는 걸로.]

"......하아."

집행관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피닉스는 실실 웃으며 집행관에게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역시 백희아. 믿고 있었어요.]

"다음부터는 미리 얘기라도 하고 저질러주세요...."

집행관은 그저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 * *

"너지?"

"네."

가을의 추궁에 나는 순순히 내 범행을 시인했다. 숨겨봤자 의미는 없었고, 나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이라고 안 새겠냐? 국회의사당에 불 지른 놈인데. 진시황릉도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었었지?"

"아, 그거 아직 사람들 모르잖아요. 들켰네."

나는 환룡을 깨우러 가는 길에 병마용을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어놨다. 도굴꾼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곳부터 박살을 내놓았으니, 아마 진시황릉의 상태가 개판이 된 게 세간에 알려지는 건 먼 미래의 일이리라.

"근데 무덤 당사자가 부활했으니까 무덤 부숴도 되는 거 아녜요?"

"그래서 타지마할에 있는 분은 괴인으로 되살려줬니?"

"......가을, 이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데요."

나는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어차피 미래에 완전히 박살날 거, 내가 그 전에 먼저 태운다고 별로 달라지는 게 있겠어요?"

"이거 완전 또라이 아니야?"

가을은 기가 차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같은 논리면 나는 나중에 처녀 잃는 사람이니까, 네가 처녀 따주겠다 그거니?"

"아니 무슨 비유가 그래요?"

"말 잘했네. 말에 깔린 의도는 저열하지만 인정한다, 천가을. 일석이조야 아주."

화내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옆에서 박수를 치는 덕배가 영 아니꼬왔지만 나는 속을 가라앉혔다. 이들은 모르니까 내게 화를 내는 것이다.

"타지마할을 불태우는 것으로 얻는 효과 세 가지가 있다면, 그 때는 이해하시겠어요?"

"그럼 그 이유라도 먼저 설명하고 저질러주지 않을래? 인도 협회 대표가 아주 죽을 상이더라."

"...라고 했죠?"

"응. 그래."

처음 듣는 이명이었다. 인도에는 원탁의 히어로도 그럴싸한 네임드도 없었다. 이명에서 상당한 패왕색이 묻어났지만, 알아보니 평범한 A급이었다.

"...마하트마에 대해서는 조만간 알아보는 걸로 하고, 타지마할을 불태운 이유를 설명할게요. 흠흠."

"짧게 세줄로 요약해. 각 이유마다 하나."

"......."

가을은 내게 너무나도 어려운 것을 요구했다. 나는 입이 근질거려 미쳐버릴 지경이었지만, 가을은 내가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칼같이 끊어버리고는 했다.

"첫번째, 개천광 카르나가 지내던 곳이라 불을 질렀습니다."

"환룡도 시황제 관뚜껑 열고 그 안에서 자고 있었으니까 그럴 듯 하네."

"밖에 나가 있다고 해서 집에다 불지른 거라더라. 불난 거 보고 돌아오지 않을까 하면서."

가을이 보충하고 덕배가 근거를 추가했다. 졸지에 나는 더 할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두번째, 개천광 카르나랑 싸울 전장이어서 미리 준비를 좀 했습니다."

"어차피 망가질 곳이었다 이거지? 싸움터를 바꾼다는 생각은 안 했나봐?"

"......여차하면 아키택트 잠깐 부르죠 뭐."

마력과 코어만 있다면 건물은 복구가 가능하지 않은가. 공원의 풀이야 전부 불꽃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건물은 다시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 건물만.

"근데 사람은 안 죽었다니?"

"아무렴 제가 사람 있는데 불 질렀을까봐요?"

"그래. 사람은 안 죽었어도 지금 그거 끄러간 사람들은 아주 개고생을 하고 있지."

청화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내 방에는 두 명의 간부-천가을과 조덕배 밖에 없었다. 흑염룡은 내 귀걸이로 자고 있고, 유이신은 박라온의 옆을 지키도록 명령을 내려 보냈다.

"히어로들 지금 타지마할 있는 곳 까지 달려갔잖아. 만약에 네가 범인인 거 알면 어쩔래?"

"의심 못하게 조치 다 취해뒀으니까 걱정마요."

"그래도 너랑 나랑 거기 다녀간 건 알텐데?"

"변장했잖아요? 모를 거예요. 아마. 그리고 세번째 이유를 들으면 딴 소리 못할 걸요?"

나는 엄지부터 중지까지 세 개의 손가락을 펼쳐 검지를 좌우로 움직였다.

"S급 괴수 중에 화속성인 가루라, 어떻게 나오는지 혹시 아세요?"

"알 리가 있냐. 히어로 위키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

"그쵸? 아직까지 사고가 없어서 그래요."

내가 마저 설명을 하려던 순간, 백희아로부터 연락이 들어왔다.

"부르셨어요?"

[혹시 당신 짓인가요?]

"......."

시작부터 추궁당하는 게 억울해서 괜히 장난을 쳤다가 눈총만 받았다. 나는 다른 간부들에게도 설명할 겸, 백희아에게 '가루라의 출현 조건'을 설명했다.

"타지마할이 완전히 전소하면, 그 다음날 무너진 타지마할의 잔해에서 햇빛을 받는 즉시 S급 괴수로서 태어나요. 그게 가루라죠."

그러니까 나는 카르나의 어그로를 끌 겸, 겸사겸사 가루라를 부르기 위한 조건을 만족시켰다.

"효율적이지 않아요?"

S급 괴수도 불러내 사냥하고, 궁극적인 목표인 카르나도 불러내는 일석이조의 기책이었다.

다음부터는 알려주고 하라고 핀잔을 들었다.

알려주기만 하면 더한 것도 해도 좋을까싶었다.

어찌됐든.

"누가 불질렀는 지는 몰라도 아주 깔끔하게 불타버렸네요! 푸흐흐."

타지마할은 전소했다. 이제 내일이면 가루라가 태어날 것이며, 카르나가 집에 불난 것을 보고 달려올 것이다.

"그럼 우리는 내일까지 기다리면 되니?"

"무슨 소리예요? 그 동안 야차 잡으러 가야지. 저녁에 시간되면 킨나라도 잡으러 가고."

"......일정 진짜 타이트하게 잡네, 이 여행사."

시간은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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