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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99화 (299/1,497)

〈 299화 〉1부 13장 16

수 시간의 비행 뒤, 우리는 인도에 도착했다.

기습적인 방문이었고, 외교적인 절차를 무시한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인도 측에서는 우리의 방문을 환영했다.

"그만큼 비스트 테이머의 존재를 반긴다는 거겠죠?"

"아무렴 S급 괴수 치워준다는데 안 반기겠냐."

나와 조덕배는 백나로 호에서 미리 빠져나와 그 뒤를 쫓았다. 다행히 햇빛이 쨍쨍한 날씨라 태양빛 속에 몸을 숨길 수 있었고, 우리의 존재는 S급 이상이 아니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S급 하나를 처리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지난 번에 셋이라고 하지 않았냐?"

"나머지 둘은 아직 발견을 못한 것 같아서요. 이거 봐요."

나는 히어로 위키에서 검색한 내역을 덕배에게 보였다.

"가루라, 킨나라. 두 S급은 지금 아무도 어디있는지 몰라요. 심지어 존재도 모르죠. 알고 있는 것은 암속성 S급인 야차 뿐."

나는 야차의 데이터를 꺼냈다. 개의 얼굴에 사람같은 몸을 하고 있지만, 팔이 등 뒤로 꺾인 기형적인 구조를 하고 있었다.

"꼭 야수같지 않아요?"

"이름은 야차인데?"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야차는 상당히 징그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위가 약한 존재라면 금방 올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으나, 그 역함을 참고 자세히 살피면 무언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하 2호, 레이드 대상에게서 무언가 특이한 점 안 보여요?"

"......혹시 저 거적데기 말하는 거냐?"

"정답."

야차는 덕배의 말대로 거적데기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적데기는 어찌보면 내가 항상 입고있는 사제복과 어느정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저거, 타락해서 괴수가 된 성직자예요."

"헐."

"원래 성직자들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괴수가 되는 법이죠."

신을 모시고 도를 닦던 이가 한순간에 타락해 괴수가 된 이유는 테라의 마력 때문이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는 타락했고, 사람을 보면 어깨 너머로 걸친 대검으로 썰어버리는 살인귀가 되어버렸다.

"첫 레이드 대상으로 아주 적절할테고요."

"나는? 나 명단에 없잖아."

"당신은 다크 레기온의 간부지 청화단이 아니잖아요."

덕배는 나와 마찬가지로 청화단으로서 협회에 등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번 원정에도 덕배는 내 무기로서 참가할 뿐, 괴수 레이드에 참가하지는 못했다.

"흑염룡은 레이드 뛰는데에에에!!"

"꼬우면 당신도 괴수하실래요?"

"아니."

덕배는 흑염룡과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나도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강권할 생각은 없었고, 그 사이 백나로 호는 호위 전투기의 인도에 따라 공항으로 착륙했다.

"그러면 귀찮은 일들은 다 집행관이랑 팬텀에게 맡기기로 하고, 우리는 낮동안 탐문이나 하죠!"

"누가 쓰레기 아니랄까봐 일 떠넘기는 거 봐라?"

국빈 방문 행사, 만찬, 그리고 기타 등등. 중국을 갔을 때 느낀 거지만, 귀찮은 절차는 사양이었다.

"일을 떠넘기는게 아니죠. 시간을 적절히 사용하기 위해 대역을 세운 거죠."

"천가을은 아주 좋다고 난리치겠네. 어휴, 불쌍한 것."

"......본인이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좋아하고 있잖아요. 그럼 빨리 다녀옵시다."

나는 백나로 호가 완전히 공항 활주로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빠르게 남쪽으로 선회했다.

"결투장이 될 곳을 미리 확인해야죠?"

나의 행선지는 타지마할.

원작에서 개천광 카르나와 맞붙을 장소였다.

* * *

<오후 12시, 인도 협회 뉴델리 지부.>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길 오시는 데 불편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인도 측 협회의 대표, <마하트마>는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집행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청화만이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누님."

옆에 앉은 화권이 테이블 아래에서 손가락으로 X자를 그렸다. 청화-팬텀은 자신이 무언가 결례를 했는가 싶어 어색하게 손을 풀었다.

"......?"

"하하, 괜찮습니다. 신경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하트마는 개의치 말라고 고개를 가로저었으나, 그게 오히려 더 팬텀을 신경쓰게 만들었다.

"나 무슨 실수했ㄴ...나요?"

팬텀의 물음에 집행관은 마하트마의 눈치를 봤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볼을 긁적이며 난처하게 웃었다.

"그....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합장은 기도나 인사의 한 방법이었습니다만, 지금은 공적으로는 지양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왜요?"

"연쇄살인마의 공격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팬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회색의 눈동자가 좌우로 굴려졌고,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해요. 그런 건지 몰랐어요."

"이해합니다. 인도 내에서 활동하는 빌런이니까요."

마하트마는 활동'하는' 빌런이라고 말했다. 그 말인 즉슨, 합장으로 연쇄살인을 하는 악당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피해가 어느정도길래...."

"지금까지 400여명이 살해당했습니다. 그 중에는 10명의 히어로들도 포함되어 있죠. ...합장에 모두 죽은 것은 아니고, 히어로들과의 전투에서 건물이 무너지면서 그 여파로 죽은 사람들이 많았죠."

마하트마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화권은 테이블 아래에서 재빨리 스크린을 띄웠다.

- 마하트마 아내랑 딸이 그 사고로 죽었어요.

팬텀은 바로 고개를 다시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빌런을 잡지 못한 저희의 실책일 뿐입니다. 오히려 저는 청화 님이 인도를 방문해주신 것에 정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하트마의 시선이 집행관을 향했다. 청화가 얼굴마담이자 괴수 조종을 하는 장본인이기는 했지만, 일단 한국 협회의 대표는 집행관이었다.

"그럼 집행관, 보내주신 일정은 잘 확인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바로 S급 괴수, 야차에 대한 레이드를 하신다고요?"

"예. 히어로들은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야차 또한 무지막지한 괴수입니다."

"저희의 전력을 걱정하시는 거라면 괜찮습니다. S급 괴수 하나를 상대하기에 최적화된 소수 정예를 구성하였으니까요."

집행관은 마하트마에게 명단을 넘겼다. 삼사와 템페스트 레이디, 거기에 궁성과 팬텀, 그리고 흑염룡. 마하트마는 한참동안 원정대의 전력을 찬찬히 살피다가 내용상 비어있는 한 부분을 짚었다.

"팬텀이라는 S급 이능력자의 이능력은...?"

"환영술사입니다."

"......끄응."

마하트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난감해했다.

"아무리 S급 환영술사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실력인지 저희도 알아야할텐데요."

"국가 기밀입니다."

집행관은 넌지시 묻는 마하트마의 질문을 딱잘라 거절했다. 팬텀은 자신의 이능력이 널리 밝혀지는 것은 바라지 않았지만, 집행관이 이렇게 단호히 대처할 줄은 몰랐다.

"대략적으로 어떤 이능력인지도 말씀하시기 어려우십니까?"

"당연합니다. 환영술사의 이능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무례입니다."

"......."

마하트마는 한참동안 집행관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분명 실수는 마하트마가 먼저 했고, 을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마하트마는 집행관을 압박하려했다.

"죄송합니다. 실은 아까전의 연쇄살인마가 환영술사가 아닐까 하는 제보가 들어와서 조금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무례에 대한 용서를."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 연쇄살인마에 대해 이렇게까지 경계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A급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예. 그랬죠. 불과 며칠 전까지는."

마하트마는 치부를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 이마를 손으로 짚었으나, 괜히 숨겼다가 원정대가 살해당하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A급 이능력자 한 명이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 마력 패턴은 검출하는데 성공했지만, 놓치고 말았죠. 오히려 스스로 마력 패턴을 노출한 겁니다. 그는."

마하트마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중앙에서는 해당 S급 빌런에 대해 <살법>이라는 코드네임을 붙였습니다. 아직까지 대외적으로 공표는 못했습니다."

"......누구 솜씨인지 알겠네요. 그런데 왜 발표를 미루신 거죠...?"

"그, 그게."

마하트마는 죄인마냥 고개를 숙이며 청화의 눈치를 봤다.

"사실은 오늘 오전에 발표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청화 님께서 인도로 오시기를 희망한다고 한국 협회를 통해 연통을 받아서-"

"이보세요."

집행관이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으르렁거렸다.

"S급 살인귀가 날뛰기 시작하는데 지금 그걸 비밀로 했다는 거예요? 언제 어디서 미쳐 날뛸 지 모르는데?"

"거, 걱정마십시오! 살법은 특정 타깃만 노리는 변태같은 빌런입니다! 승려나 수도사같은 이들만 노리는 살인귀로-"

"아."

마하트마의 시선이 팬텀을 향했다. 지구 어느 종교에서도 볼 수 없는 디자인이기는 하지만, 팬텀이 입고 있는 청화의 복장은 기본적으로 신을 모시는 사제복과 비슷한 행색이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마하트마는 무릎까지 꿇을 기세로 사과했다. 히어로들은 마하트마의 기만에 대해 불쾌해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해했다.

"어차피 S급 괴수 처리하러 왔으니 위험 부담이야 똑같지."

"설마 그걸 얘기하면 우리가 안 올까봐 걱정하셨던 거예요? 나 참. ......."

템페스트 레이디는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으려다 시선을 팬텀에게로 돌렸다. 팬텀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차이를 홀짝이며 눈을 껌뻑였다.

"......안 오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기만이나 통수에 대해서는 상당히 불쾌해하겠지만, 피닉스는 인도로 오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흑. 역시 태양의 천사님...!"

하지만 마하트마는 그걸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며, 팬텀에게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팬텀은 나이도 지긋한 자가 머리를 숙이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동시에 마하트마가 언급한 별명이 더 신경쓰였다.

"그.... 태양의 천사라고 하심은?"

"아, 그렇군요.... 어쩌면 모르실 수 있으시겠군요."

마하트마는 헛기침을 하며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A4 홀더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종이와 만년필을 팬텀에게 내민 마하트마는 동경하던 아이돌의 사인을 받는 여중생처럼 수줍게 웃었다.

"청화 님께서는 아실 지 모르겠지만, 청화 님의 팬클럽 <태양 교단>에서 부르는 별명입니다."

"......."

팬텀은 입꼬리가 미미하게 떨렸다. 인상을 팍 쓰는 통에 일그러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지만, 마하트마는 종이를 은근슬쩍 팬텀에게로 자꾸만 내밀었다.

"......염치가 없지만 사인 한 번만 해주시겠습니까?"

"하아."

팬텀은 마하트마의 뻔뻔함에 한숨과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팬텀은 만년필을 들어 멋드러지는 사인을 했다.

"......감사합니다?"

마하트마는 사인을 받고도 긴가민가한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팬텀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사인을 본 화권은 서랍 아래에서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종이에는 천가을의 사인이 적혀있었다.

* * *

"나마쓰떼. 좋은 하루 되세요."

"......아무쪼록 조심하시길."

나는 합장한 상태로 허리를 들어올렸으나, 아무리 봐도 승려복을 입은 이들은 고개만 숙이고 나를 피해다녔다.

"왜 저러는 걸까요. 싸와디캅이라고 해야하나?"

"그건 태국이잖냐. 그냥 네 변장이 개떡같아서 그런 거 아니냐?"

"이게 왜요?"

나는 드레스를 들어올렸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인도 전통 스타일의 드레스에 연녹의 베일로 머리까지 가렸다.

"누가봐도 너 아니냐?"

"그거야 부하 2호는 저를 자주 보니까 그렇죠. 막말로 사람들이 저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다들 그냥 따라하는 아이인가보다 하고 생각하지."

나는 마도기어에서 영상을 하나 꺼냈다. 우리의 앞에는 백나로 호에서 내리는 청화-팬텀이 있었고,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뉴델리의 협회로 쏠려있었다.

"그리고 청화가 이렇게 대머리 후드를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하지는 않죠."

"그거야 그렇네. 그러면 이제 여기는 왜 왔냐?"

덕배는 두 팔을 벌리고 주변을 가리켰다. 관광객도 없었고, 그나마 있을법한 승려들도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인도에 무슨 일이 터졌나...?"

"또 네가 모르는 뭔가가 생긴 거 아니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디 한 번-"

"나마스떼."

갑자기, 인자한 얼굴의 승려 하나가 우리를 향해 합장하며 다가왔다.

"타지마할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데이트 중이셨나요?"

"우웩."

"퉤."

나는 헛구역질이 나왔고, 덕배는 바로 바닥에 침을 뱉었다. 승려의 인자한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거랑 연인이라고요?"

"초면에 막말이 심하네."

"......실례했습니다."

승려는 다시금 합장하며 우리에게 사과했다.

"관광차 오신 거라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좋아요."

"?"

덕배는 의문을 표했지만, 나는 순순히 승려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승려가 등을 보인 사이, 나는 조덕배에게 내 옆을 가리켰다.

"제 옆에 딱 달라붙어있어요. 알겠죠?"

"......오냐."

덕배는 인상을 와락 찡그리면서도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이쪽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는 승려의 뒤를 조용히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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