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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98화 (298/1,497)

〈 298화 〉1부 13장 15

간부들을 소집한 나는 상황을 설명했고, 유이신에게 깃든 터뷸러스의 힘을 확인하기 위해 임시로 결계를 쳤다.

[또 저 몰래 무슨 짓을 하시려는 거예요?]

결계를 치자마자 내가 또 방 안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낸 걸 눈치챈 백희아가 연락을 보내왔다. 박라온과 유이신에게 집중하던 때와는 달리, 나는 백희아에게 곧장 답변을 했다.

[터뷸러스 특성 잘 박혔는지 테스트.]

[???]

나는 궁성에게 깃든 터뷸러스의 힘이 어떤 식으로 나올 지 테스트한다고 알렸다. 백희아 또한 궁성을 지시해야하는 입장이기에, 궁성의 화살이 어떻게 변할 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럼 쏘겠습니다."

유이신은 활을 들어 과녁을 겨눴다. 벽에는 조덕배가 손바닥 위에 컵을 든 채 불안한 눈빛으로 서있었다.

"내가 왜 이걸 들고 서있어야 하지?"

"화살을 잘 쏘는데 집중하기 위해서죠."

"그냥 벽에다 과녁 그리고 쏘면 되잖아!"

"죄송. 궁성이 사람을 향해 겨눌 때 제일 잘 쏘거든요."

유이신은 사선에 살아있는 대상이 걸릴 때 제일 잘 쏜다. 괜히 빌런 시절 이명이 <로빈>이 아니었다.

"후우, 후우."

아니나다를까. 유이신은 덕배의 손을 향해 겨눈 활을 자꾸만 옆으로 은근슬쩍 옮기고 있었다.

"조덕배 님. 곡사할테니까 조덕배 님을 향해 쏘면 안 됩니까?"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마!"

"쏘면 99퍼센트 곡사가 아니라 직사가 되겠지."

가을은 침대에 걸터앉아 딸기를 베어물었다. 나는 가을의 옆에서 가을이 꼭지를 떼어준 딸기를 한입에 털어넣었다.

"빨리 쏴봐요. 지금 집행관 기다리고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유이신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표정을 굳히고 온 정신을 화살에 담은 유이신의 시선은 미묘하게 덕배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앙!!

유이신의 시위를 놓았다. 녹빛의 화살은 호선을 그리며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오."

나는 화살의 몸체를 보고 절로 감탄이 나왔다. 터뷸러스의 특성이 저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으아악?!"

덕배는 아무리 봐도 자신의 손목을 향해 날아가는 녹색의 화살에 위협을 느껴 팔에 마력을 둘렀다. 바위 피부가 활성화되며 컵이 살짝 들어올려졌다.

"아."

유이신은 살짝 올라간 목표물에 놀랐고, 나는 이어질 참상에 속으로 덕배에게 애도했다.

챙그랑--

화살이 머그컵을 찔렀다. 날카로운 화살촉에 의해 머그컵에는 구멍이 꿰뚫렸고, 덕배는 안도한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이미 활을 떠나는 순간부터 '회전하고 있던' 화살이 바람을 뿜어냈다.

카가가각!!

나선을 그리는 질풍은 화살 근처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화살은 내 결계에 박혀 소멸했으나, 화살이 남기고 간 질풍은 소용돌이처럼 덕배의 바위 피부를 긁고 사라졌다.

"아오...!"

덕배는 머그잔을 바닥에 내팽겨치며 손을 붙잡았다.

"방금 그거, 바위 피부 안 썼으면 안 다쳤겠죠?"

"그걸 말이라고 지금, 아오...."

덕배의 바위피부는 마치 짐승이 할퀸 자국 마냥 쩍쩍 갈라져 있었다. 나는 품에서 저급의 코어를 던져줬고, 덕배는 그걸 자신의 상처에 문지르며 상처를 회복했다.

"아무래도 궁성에게 깃든 터뷸러스는 시한폭탄인 모양이네요."

"무슨 말씀이신지?"

"곡사로 날아가던 화살의 궤적 말고, 화살 자체가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도는 거예요. 목표물에 닿는 순간 화살이 폭발하는 거예요. 화살 안에서 칼바람이 터져나오는 느낌?"

범위는 무척 작았지만 B급인 조덕배의 피부가 무참히 찢어졌다.

터뷸러스가 깃들며 최대 마력이 일부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설령 코어로 약간 회복했더라고 하더라도-, B급 수준의 방어력을 뚫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A급이나 S급에게 통하는 지는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죠."

나는 궁성의 화살에 추가된 이능력적 특성을 백희아에게 간단히 정리해 전달했다. 백희아는 금방 답장을 내게 보내왔다.

[결과는 좋아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운사는 어떻게 되는 거죠?]

"아."

나는 갑자기 골치가 아파졌다. 유이신과 조덕배가 한 번 더 쏘는데 과녁 대신 서주면 안되겠느냐고 티격태격 하는 사이, 가을이 백희아의 연락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네. 그러면 운사는 풍속성이랑 수속성이랑 둘 다 SS급이야?"

"아뇨. 아직은. 유이신, 잠시 이쪽으로."

나는 덕배에게 무차별 난사를 하려던 유이신을 불렀고, 유이신은 활을 내려놓으며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잠깐 손 좀 줘봐요."

유이신은 내 명령에 따라 손을 내밀었고, 나는 유이신의 손목을 잡고 유이신의 전신을 훑었다.

"......터뷸러스는 당신 몸 안에 깃들어있고, 나올 생각을 못하네요."

터뷸러스는 유이신을 숙주로 택한 대신, 내가 유이신에게 입힌 봉인구 때문에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근데 그게 꼭 팬티일 필요가 있니?"

"아무렴 거기에다가 부적같은 거라도 붙이면 이상하지 않아요? 괴인은 소변을 보지 않잖아요. 어떻게 파스로 바꿔줘요?"

"차라리 팬티가 낫습니다."

유이신은 파스라는 말에 질색을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눈치를 슬쩍 보고 있었다.

"...단장님. 그러면 저 그거도 이제 못하는 겁니까?"

"누가 같이 해주고 싶겠냐?"

덕배가 내 허벅지 위에 놓인 딸기 바구니에서 대왕딸기를 훔쳐먹었다. 가을이 도끼눈을 뜨고 덕배를 노려봤지만, 덕배는 잇자국이 난 딸기로 유이신을 삿대질하며 이죽거렸다.

"봉인 풀었다가 안에서 믹서기같은 괴수 튀어나오면 어쩌려고? 박아넣은 남자 불구로 만들 일 있냐?"

"그, 그러면 저는 평생...?"

유이신은 울상으로 나머지 무릎을 꿇었다.

"단장님,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그 짓을 그렇게 하고 싶어요?"

"책임없이 쾌락만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내 무릎을 잡고 애걸복걸하는 유이신의 얼굴은 절박해보였다. 유이신의 말은 틀린말이 아니었다. 괴인은 사랑을 나누어도 그 결실이 맺혀지지 않으니, 그저 행위에 따른 쾌감만 남을 뿐이었다.

"테스트가 필요한데.... 가을?"

"왜?"

"촉수 잠깐 꺼내볼 수 있어요?"

"야, 나 귀걸이."

덕배는 몸서리를 치며 대왕딸기를 마저 입에 넣었고, 나는 그의 바람대로 코어로 만들어 내 귀에 걸었다. 장소는 벗어날 수 없었지만, 알아서 코어가 되어 인간으로서는 자리를 피해준 것이다.

"신경 안쓰셔도 되는데."

".....나 참. 부리나케 도망가는 놈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년이나."

가을은 빈정거리며 촉수를 한가닥 꺼내들었다. 나는 유이신의 손목을 붙잡고 마력을 흘려보냈다.

"찔러볼래요?"

"내가 살다살다, 어휴."

가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촉수 한 가닥을 유이신의 허벅지 사이로 밀어넣었다. 유이신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다리를 살짝 벌렸고, 촉수는 유이신의 봉인구 앞에서 멈췄다.

"이제 어쩌면 좋니?"

"그냥 찔러봐요."

"......하아."

가을은 한 손으로 얼굴을 덮으면서도 촉수를 찔러넣었다. 유이신의 음부를 덮은 푸른 봉인구는 가을의 촉수의 형태에 맞춰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어머."

유이신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빵긋 웃었다.

"꼭 콘돔같습니다."

"비슷하게 만들어놨어요. 누가 설령 안에 박더라도 그게 보호해줄 거예요."

김지화라거나. 등대라거나. 유이신은 베시시 웃으며 고개를 숙이면서도 다시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

"또 왜요?"

"이러면 안에는...."

"에휴, 진짜 가지가지한다."

나는 유이신의 손목에 마력을 조금 더 강하게 불어넣었다. 가을은 촉수를 빼냈고, 봉인구는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사정할 때만 살짝 벌어지도록 해놨어요."

"예? 그러면 터뷸러스가 날뛰지 않겠습니까?"

"터뷸러스가 숙주를 갈아타는 건 당신보다 더 강한 존재가 있을 경우의 얘기입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당신보다 강한 존재랑은 할 생각하지마요."

유이신의 A급 마력을 맛보던 터뷸러스가 만약 S급 마력의 냄새를 맡는다면 과연 유이신의 안을 방문한 그 남자는 어떻게 될까. 최소한 조덕배의 바위 피부처럼 그곳에 고양이 손톱같은 날카로운 자국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럼 김지화 님은...?"

"등대는 풍속성 당신보다 훨씬 약하니까 마음 놓으시고."

"감사합니다, 단장님."

유이신은 내게 머리까지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나는 괜히 민망해져서 딸기로 입을 막았다.

"......어디까지나 당신이 열심히 하니까 그런 거예요. 다른 소나무 부대 출신 놈들과는 다르게. 알겠어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내 뒷통수를 치려했던 철표는 완전히 소멸했다. 나는 푸른 깃털들을 부활시키지 않았고, 일단 서울에 두고 오기만 했다. 어떻게 이용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봐야 할 부분이었다.

"그럼 이제 궁성, 당신에게는 새로운 임무를 내릴게요."

"무엇입니까?"

나는 유이신의 아랫배를 가리켰다.

"인도 도착하면 박라온이랑 같은 방 쓰세요."

"...예?"

"터뷸러스 안에 있는 박라온의 마력, 같이 지내면서 조금씩 넘겨줘야겠죠?"

터뷸러스의 특성이 생각보다 좋은게 붙었으니, 죽여서 박라온에게 원래의 마력을 돌려주는 것보다는 천천히 건네주는 게 나으리라.

"둘이 아까 누워있는 거 보니까,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자매처럼."

"......."

유이신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지만, 나는 유이신의 입에 딸기를 물리는 것으로 불만을 잠재웠다.

"명령입니다."

강제로.

* * *

그 시각, 함장 개인실.

"영감은 왜 거기서 눈치없게 그러슈?"

우사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풍백을 타박했다. 하지만 풍백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엄지로 목을 그었다.

"내가 거기서 광대짓이라도 안 했으면 우리 다 모가지였어 이 놈아. 그 놈 눈 보면 모르겠더냐?"

"수틀리면 다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이었죠. 으으...."

템페스트 레이디는 몸서리를 쳤다. 입은 난처하게 웃고 있었지만, 피닉스의 눈은 결코 웃고 있지 않았다.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겨가지고 성격은 거 장난아니게 지랄맞네."

"...인간이 아니라 정령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상식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유일하게 화권만이 피닉스를 두둔했다. 피닉스의 비정상성까지는 옹호하지 않았지만.

"어떤 존재이든 간에 우리에게는 아군이라는 게 중요해요. 막말로 피닉스가 청화로서의 신분과 청화단을 챙겨서 일본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해봐요.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집행관의 가정에 다른 히어로들은 침묵했다.

"넘어간다면 중국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거 천자 놈 눈에서 꿀 떨어지던데."

"러시아도 가능성 있지. 원탁의 운디네와 친분이 두터운 것 같으니."

"...아예 미국으로 떠나버릴 수도 있죠. S급 이능력자가 가장 많은 곳은 미국이니까요."

히어로들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무작정 신뢰할 수 없는 존재가 신뢰를 강요하고 있으니, 불편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집행관, 우리는 정말 그를 믿어도 되는 건가?"

"...적어도 세계평화라는 이해관계는 일치하잖아요."

"끄응...."

히어로들은 저마다 가진 생각이나 신념이 달랐지만, 이 자리에 모인 히어로들은 최소한 집행관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템페스트 레이디가 돌발행동을 하기는 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동료인 운사의 안위를 걱정한 마음이 앞서 저지른 실수아닌 실수였다.

"운사 님, 당신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화권은 묵묵히 침묵하고 있던 운사에게 운을 띄었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운사는 고개를 들어 담담히 대답했다.

"여자 좋아한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백희아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피닉스가 남자는 지극히 꺼려하면서도 여자에게는 은근슬쩍-몇몇에게는 아예 대놓고 추파를 던지는 건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청화가 여자 좋아한다고 소문이 난 뒤로, 외국의 여성 히어로들의 한국 방문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어요. 분명 미인계를 사용하려는 걸테죠."

"여자가 여자를 상대로 미인계?"

풍백은 노골적으로 꺼리는 모습을 보였고, 우사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화권은 눈썹을 으쓱일 뿐이었다.

"야, 이승형. 너는 왜 반응이 그래?"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라."

화권은 쓰게 웃을 뿐이었다. 가을에 대한 미련은 말끔히 접었지만, 이제는 가을이 예전의 자신처럼 짝사랑을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조금은 도움을 주자. 화권은 자세를 바로하고 집행관에게 의견을 밝혔다.

"집행관 님. 이국으로 떠날까봐 걱정된다면 주변을 공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겁니다. 측근을 회유하는 거죠."

"측근?"

"예. <팬텀>입니다."

"...그건 당신의 사심이 아닌가요?"

집행관은 표정을 굳히며 화권을 추궁했다. 화권은 부정할 생각이 없는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변상련을 겪은 선배로서 응원하는 겁니다. 팬텀이라면 그나마 상식적으로 이야기가 통하기도 할 테고요."

"팬텀을 통해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집행관은 고개를 갸웃하며 혀를 찼다.

"그닥 효과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럼 스파이를 파견하는 건 어떠신가?"

풍백이 스틱으로 운사를 가리켰다.

"보니까 상당히 아끼는 것 같던데. 이쪽도 미인계를 써보는 건 어떤가? 껄껄껄!"

"......좋은 생각인데요?"

"노인네 농이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게."

풍백은 급히 정색하며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지만, 이미 집행관의 머리에는 '스파이'와 '미인계'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재능있는 미인을 좋아하죠."

"여자."

"...예, 재능있는 여성을 좋아합니다. 상당히. 그렇다면 역시 지금은...."

집행관은 피닉스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잘 부탁드립니다, 운사. 당분간 당신은 청화단에 지원을 나간 파견 히어로입니다."

"......집행관 님."

운사는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일단 저희 인도로 가면 함께 움직이는 것 아니었습니까?"

"......."

잠시 뒤.

동상이몽의 백나로 호는 인도 영공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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