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화 〉1부 13장 13
그 시각, 방문 밖.
쾅쾅쾅!
성격 급한 템페스트 레이디가 방문을 두드렸다. 푸른 불꽃의 결계는 바위조차 부수는 템페스트 레이디의 공격에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집행관!"
템페스트 레이디가 빽 소리를 질렀다. 나이는 어려도 집행관은 분명히 상급자였으나, 지금의 상황은 그런 권위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우리가 기절한 사이에 이런…!"
"진정해라, 춘자야. 껄껄."
"영감님은 지금 웃음이 나와요?!"
템페스트 레이디는 개명 전의 이름이 불렸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청화단과 접점은 커녕 악연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히어로가 청화단의 수장과 단 둘이-궁성도 같이 들어갔지만-방 안에 있다는 것에 템페스트 레이디는 전전긍긍했다.
"껄껄. 설마 죽이기야 하겠느냐. 집행관이 보장하고 그가 아끼는 존재가 스스로 인질이 되기를 자처했는데."
"그래. 언제까지 서로 으르렁거리며 살 거니?"
팬텀은 손을 휘휘 저었다. 양 옆에 우사와 화권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팬텀은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팬텀은 손안에 두 개의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느긋하게 결계가 해제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삶의 여유를 가져. 어차피 도착까지 30분 넘게 남았잖아? 그 전에는 나오겠지."
"그 시간이면 충분히 괴인으로 만들고도 남을 시간일텐데."
템페스트 레이디에 팬텀은 어깨를 으쓱였다. 시간적으로는 맞는 말이었고, 피닉스가 제안한 15분 남짓한 시간은 피닉스가 운사를 제압하도 자기 명령에만 따르는 괴인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운사가 괴인이라도 되어서 나오면 어쩔 거야? 애초에 빌런의 약속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청화로서 한 약속인데 그걸 못 믿어?"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지."
"맞는 말이기는 하네. 그래도 좀 기다려봐. 솔직히 막말로…."
팬텀은 피닉스의 방 앞에 모인 모든 히어로들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우리 애가 진심을 내기만 해도 여기 있는 너희들 다 때려잡은 시점에서 싹다 괴인으로 만들었을 걸?"
"이게…!"
팬텀의 도발에 히어로들은 울컥했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훈련이자 대련이라는 명목 하에 히어로들은 피닉스를 상대로 전력을 내어 싸웠으나, 소위 '괴인형'을 보지도 못하도 총에 얻어맞아 기절했다.
"틀린말은 아니잖니."
마음만 먹는다면 운사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괴인으로 만들 수 있었다. 팬텀은 구슬을 계속 손에서 굴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히어로들이 인내심도 없어? 고작 15분이잖아. 이제 5분 지났다고."
"......칫!"
템페스트 레이디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심정적으로는 결계를 찢고 운사를 구출해내고 싶었으나, 템페스트 레이디에게는 그럴 힘도 권한도 없었다.
"......기다립니다."
집행관은 뒷짐을 진 채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렸다. 팬텀 또한 구슬-조덕배와 흑염룡의 코어를 수도 없이 굴리며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
"집행관, 정말 안에 어떤지 아무것도 안 보입니까?"
결국 참다못한 우사가 답답함을 토로했다.
"집행관 님이라면 방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아실 거 아니십니까."
"...S급 이상은 힘들어요. 특히 이런 결계까지 만들어버리면."
집행관은 자신이 가진 이능의 한계를 실토했다. 동기화 된 모든 구역에 누가 어디서 오가는 지 훤히 꿰뚫고 있으나, 피닉스처럼 마력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버리면 무용지물이었다.
"온통 파랗게만 보이고 있습니다."
방 안에 벽지처럼 펼쳐진 푸른 결계는 집행관의 시야를 철저히 방해하고 있었다. 결국 피닉스의 방은 그 누구도-팬텀조차도 들어갈 수도 없는 밀실이 되었고, 결계밖의 이들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모른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춘자야. 벽에 귀를 댄다고 달라지겠느냐?"
"있어봐요 좀. 그리고 선우예요."
템페스트 레이디는 벽에 귀를 대고 쫑긋 세웠다. 풍백은 그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지적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소리조차 넘어오지 않는 결계 안의 상황이 궁금하기는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권아. 너는 뭐 느껴지는 거 없냐?"
"저요?"
가만히 있던 화권에게 불똥이 떨어졌다. 모두의 이목이 화권에게 쏠렸지만, 그중에서도 옆에 서있던 팬텀의 눈길이 가장 뜨거웠다.
"......글쎄요."
화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 제일 여유로운 척 하지만 팬텀이 가장 많이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
"별 일이야 있겠습니까?"
최소한 상식밖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화권은 생각하고 있었다.
* * *
끼에에엑!!
터뷸러스가 비명을 지르며 나를 할퀴려들었다. 구름같은 몸은 박라온에게서 갈취한 마력으로 실체를 갖춘 것이며, 그 손톱은 분명 S급 괴수의 파괴력이었다.
"어딜!"
나는 활이 된 유이신을 휘둘렀다. 터뷸러스의 손톱과 유이신의 활대가 부딪혔다.
꾸드득!!
유이신의 활 한쪽 날개가 반쯤 사라졌다. 터뷸러스는 손톱으로 낚아챈 유이신의 몸통을 입안에 홀라당 집어넣고 꿀떡 삼켰다.
[꺄아아악! 단장님! 저 먹혀요! 먹힌다고요!!]
"마력이니까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 마력이 먹히는, 꺄아악!!]
부웅-! 터뷸러스가 나를 잡으려 손을 뻗는 통에 유이신의 코어를 잡고 받아쳤다. 뭉툭 뜯겨나간 활대가 터뷸러스의 손아귀에 붙잡혀 완전히 사라졌다.
[히이익?!]
유이신은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진짜로 뜯어먹히는 고통은 없겠지만, 마력으로 실체화된 무기로서 동체가 씹어먹히는 것은 곧 마력을 빼앗긴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제 마력 어떡해요!? 이제 S급까지 1남았는데에?!]
"나중에 챙겨줄게요!!"
나는 유이신의 코어를 잡고 반만 남은 활대를 가차없이 휘둘렀다. 터뷸러스는 좋다고 두 팔까지 벌리며 내 공격을 받아들였고, 유이신을 끈덕지게 먹어치웠다.
꿀꺽! 꿀꺽!
유이신의 마력은 실시간으로 깎여나가고 있었고, 터뷸러스는 신나게 유이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유이신은 비명을 지르며 반항했지만, 나는 코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가 집어던졌다.
"지금부터는 직접 싸워요!"
[히이익?!]
유이신의 코어가 빛나기 시작했고, 곧 유이신은 인간형으로 돌아왔다. 터뷸러스는 귀신같이 유이신을 향해 몸을 던졌다.
"꺄아악?!"
유이신은 몸을 날려 피했으나 터뷸러스의 거체에 짓눌렸다. 터뷸러스는 유이신을 바닥에 처박고 머리칼을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으히이익?!"
유이신의 마력 일부가 뭉텅 떨어져나갔다. 코어를 제외하고는 모든 신체가 마력 그 자체였느니, 유이신의 몸은 전부 터뷸러스의 먹잇감이었다.
"다, 단장님! 이거 너무 이상, 하으악?!"
유이신이 고개를 크게 뒤로 젖혔다. 터뷸러스는 유이신의 몸을 조금씩 좀먹어들어가기 시작했고, 유이신의 몸은 구름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궁성."
"네, 네!!"
나는 유이신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괴수랑 해보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을 거예요."
"그게 무슨, 히익?!"
유이신의 몸이 굳었다. 터뷸러스는 유이신의 하반신을 집어삼키자 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자, 잠깐만요…! 아, 아하하!"
유이신은 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웃어댔다. 나는 그에 박수를 치고 잽싸게 마력을 방출해 베일을 만들어냈다.
"박라온은 보호."
"이, 이거 기분 이상, 꺄하하윽?!"
유이신은 터뷸러스가 전신을 핥아대는 통에 웃으면서 가버렸다. 나는 그 사이 베일로 절정에 기절한 박라온의 몸을 칭칭 휘감아, 행여나 터뷸러스가 숨어들어오지 못하도록 구멍 하나 없이 칭칭 감쌌다.
푸후- 푸후-
터뷸러스는 유이신의 어깨를 구름의 손으로 짓눌렀다. 유이신은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나는 그의 앞에 다가가 무릎을 쪼그려 앉았다.
"터뷸러스가 생각보다 빨리 뛰쳐나왔지만, 기본적으로 미식가예요. 마력을 먹어치울 숙주를 고르는 입맛이 까다롭죠."
"다, 단장님…! 차라리 아프게 해주세요…! 이, 이거 너무 이상, 햐읏?!"
유이신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눈을 까뒤집으며 고개가 뒤로 꺾이는 게 꼭 행위를 하다가 절정에 등이 활처럼 휘는 것만 같았다.
푸후- 푸후-
터뷸러스는 나를 경계하고 있지만 유이신을 먹는 것을 그만 둘 생각이 없어보였다. 내가 터뷸러스를 너무나도 빠르게 데워버리는 바람에 터뷸러스는 흥분상태에 빠졌고, 결계 속에 있는 다른 풍속성 이능력자의 '맛'을 보고 결단을 내려버린 것이다.
"터뷸러스는 숙주에게 기생할 때, 숙주가 자신을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어요."
"자, 잠깐만요…! 지금 팬티 찢고 들어오는게, 하악?!"
유이신은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유이신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살짝 뒤로 물러났다.
"박라온에게 기생할 때는 자위였던가…. 박라온이 손으로 하다가 구멍을 냈고, 그 안으로 들어갔던 걸로 기억해요."
처음 기생할 때의 이야기다. 괜히 숙주의 안으로 들어가다가 자극해서 밀려나면 기생이 실패할테니.
"숙주가 쾌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숙주의 몸속에 기생할 장소를 찾는 거죠. 축하해요. 터뷸러스가 당신 맛있어하는 거."
"이, 이건 너무 하시는, 흐아악…!"
푸후우, 푸후우.
터뷸러스는 마치 짐승마냥 유이신을 고꾸라뜨려서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터뷸러스의 전신에 퍼진 마력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눈에 훤히 보였다.
"아흐흐윽?!"
"어떻게 꾸역꾸역 잘 들어가네요."
나는 손을 뻗어 유이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쾌락에 절기 시작한 유이신의 눈동자는 흐리멍텅해졌고, 내 손길에 터뷸러스의 움직임이 멈췄다.
"힘내요. 잘 되면 흑사갈 코어 하나 더 드릴테니까."
"가, 감사합, 흐으…!"
유이신은 내 말에 고개를 숙이며 기뻐했다. 간부로서의 지위가 올라간다는 생각에 쾌락마저 잠시 잊고 정신을 찾은 모양이라, 나는 부리나케 손을 떨어뜨렸다.
푸후-!!
내 눈치를 보고있던 터뷸러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와의 대화를 통해 숙주가 정신을 차리려고 하자, 터뷸러스는 다시 유이신의 정신을 쾌감으로 덮어버렸다.
꿀럭, 꿀럭!
터뷸러스의 몸은 끊임없이 유이신의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터뷸러스가 자신의 몸을 강제로 집어넣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유이신의 배가 조금씩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흐아, 하아, 하아."
"지금이야 볼록하지만 곧 가라앉을 거예요. 안정화되면 코어 상태로 잠들테니까."
"그, 그치만 지금은 곰보다 더, 캬흥?!"
터뷸러스가 유이신의 하체를 더욱 들어올렸다. 수평에 가깝던 유이신의 몸은 점점 사선으로 기울었고, 흉부와 고개를 바닥에 박은 채 허리가 천장을 향해 들려있었다.
"조금만 참아봐요. 강해졌을 때의 당신을 상상해보라고요. 터뷸러스의 특성을 획득하고 난 뒤의 당신 화살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 안 돼요?"
"그전에 좋아서 죽을, 흐으…."
풀썩. 유이신은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과 침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고, 힘없이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푸후….
졸지에 숙주를 기절시킨 터뷸러스는 행동을 멈추고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름 S급 괴수이자 풍마룡의 2형태이지만, 인간의 몸에 기생하면서 눈치라는게 생긴 녀석이었다.
"잘 들어요."
나는 마도기어의 시간을 확인하고 터뷸러스의 앞에 불꽃을 피웠다.
"앞으로 5분 안에 안 들어가면 너는 나한테 죽는 것이에요."
푸후-
터뷸러스는 분명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은 무조건 죽여야하는 마룡임에도 불구하고, 나사가 빠져 마력을 탐하는게 꼭 원본이 하는 짓이랑 너무나도 흡사했다.
'펜릴도 딴청 피우다가 혼쭐이 났지.'
그 펜릴의 복제품이니, 터뷸러스도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하지만 내가 직접 터뷸러스의 눈앞에 '제한시간'을 걸어뒀으니, 터뷸러스는 목숨을 걸고 유이신의 안에 기생할 것이다.
"펜릴은 발등에 불떨어지면 열심히 하는 타입이니…."
푸후, 푸후우--!
터뷸러스가 기절한 유이신을 상대로 꾸역꾸역 몸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이 다 지나갈때까지, 냉장고에 미리 챙겨넣어둔 딸기를 베어먹으며 느긋히 침대 위에서 기다렸다.
5분.
그동안 유이신의 몸은 수도 없이 앞뒤로 흔들렸고, 터뷸러스는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나는 기절한 유이신을 침대 위 박라온의 옆에 눕혔다.
한 명은 속옷 없이 셔츠만 입은 채 기절해 있고, 다른 한 명은 내 베일에 칭칭 감겨져 있었다. 나는 박라온에게서 베일을 벗겨내, 유이신의 아래에 덮어 마력을 조정했다.
우우웅--
유이신의 아래에 푸른색의 속옷이 생겨났다. 내 마력이 깃들어있는 베일이 변형된 것인 만큼, 터뷸러스는 이제 유이신의 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걸로 끝.'
나는 천장에 붉은 조명을 뿌리고 있던 큐브를 잡아 마력으로 감쌌다. 큐브가 뿌리던 기운은 점차 잦아들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 다행이다.'
"진짜로 핸드잡 해야하는 줄 알고 식겁했네…."
허락은 받았지만 결국에는 안하게 돼서 정말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