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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88화 (288/1,497)

〈 288화 〉1부 13장 5

<2020년 7월 23일 오전 11시, 백나로 호 피닉스 개인실.>

"앞으로 밥은 절대 짓지 마요."

나는 석하랑에게 엄포를 놓았고, 스크린 너머 석하랑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바로 했는데 그러면 어떡해?!]

처음에는 변명을 하려던 석하랑은 오히려 역정을 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건지, 애써 말을 고쳐 말하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력으로 차단하고 있지만, 이 배의 모든 곳에는 백희아의 눈과 귀가 있었다.

[그러면 처음부터 제대로 알려주던가!]

"그걸 어떻게 알려줘요. 어디까지나 감각의 영역인 거예요. 라면 끓일 때 물 얼마나 넣는지 정도는 알잖아요?"

[라면 안 끓여먹어서 모르는데.]

"......."

잊고 있었다. 석하랑은 철저히 양식파라서 식생활 자체가 일반 서민과는 다르다는 걸. 내가 챙겨주기 전에는, 그리고 원작에서는 하루 한 끼만 먹고, 그걸 전부 배달음식으로 먹던 건어물이었다.

"그래도 평소에 면 종류는 끓일 거 아녜요?"

[면이라고 해봐야 파스타나 해 먹지. 면수는 다 버리는 걸.]

"하아."

보육원 12년 인생과 어려서부터 맛 본 엄청난 자본에 의해, 석하랑의 입맛은 양식과 배달음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라면에 넣을 물의 양조차 가늠하지 못하니, 이능력자의 몸에 얼마나 많은 마력을 넣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때려부은 거야.... 하아."

[그, 그래도 괜찮잖아. SS급이 된 거면 좋잖아!]

"연봉 3천 벌던 사람이 갑자기 월 3천만, 아니 하루 3천만을 번다고 생각해봐요. 씀씀이가 어떻게 되겠어요?"

[나 12살 때부터 그거보다 넘게 벌었는데. SS급인데 너무 평가가 박한 거 아니야?]

어떻게 죄다 한 마디를 지지않는다. 석하랑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찰떡같은 비유를 개떡으로 들어처먹는 석하랑의 이해도에 절로 답답해졌다.

"조덕배라면 바로 알아 먹었을텐데."

[...그 돌덩이 아저씨?]

"아저씨라니. 그거…. 아니다, 됐어요. 아무튼 A급에서 SS급으로 갑자기 스펙이 늘어나면 사람이 적응할 수 있을까요? S급으로만 올라도 적응하는데 적어도 며칠은 걸리잖아요."

[괜찮아!]

석하랑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엄지를 척 내밀었다.

[운사 언니도 히어로인 걸! 분명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이 놈의 히어로들 정신론은 진짜. 아오."

석하랑의 무책임한 발언에 나는 정신이 아뜩해졌다. 분명 운사가 좋은 방향으로 성장한 건 맞지만, 그리고 운사가 엄청난 멘탈의 소유자인 건 맞지만….

"하여튼 앞으로 주의하세요. 어떻게 우사한테는 1만 넣어주고, 운사한테는 풀로 채워주는 지."

[다, 다음에는 절대 이런 일 없을 거야! 그런데 너는 얼마나 제대로 하길래 나한테 이렇게까지 뭐라해? 내가 잘못했어? 사람이 실수도 가끔은 할 수 있잖아?]

"......."

석하랑은 말하다가 울컥했는지 이를 악물고 나를 쏘아붙였다. 하지만 나는 석하랑을 달래주지 않았다.

"나는 이승형 정확하게 S급으로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마력이 늘어나도록 폭탄까지 박아뒀는데요."

[폭탄?]

"비유적인 표현이에요."

[아닌 것 같은데. 뭐 됐어. 네가 그 아저씨한테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다 이유가 있는 거겠지. 설마 심심해서 그랬겠어.]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발언을 철회할 생각도 없다.

"그 폭탄은 화권이 성장할 때마다 크기를 늘려나갈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는 '펑!'하고 터지는 거죠."

[잠재력 말하는 거 맞지? 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꾸 엄한 생각이 드는데.]

"잠재력 맞아요. SS급으로 오르는 잠재력. 그게 폭발한다는 얘기에요."

천가을 건에 대해서 나는 쿨해지기로 마음먹었고, 이승형의 심장에 박아둔 창염은 뇌관을 제거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다시 초침이 째깍째깍 돌아가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승형을 폭파시킬 생각이 없다.

[괜히 불안한데…. 그럼 나도 괜히 선배님들 터뜨리거나 하는 건 아니지?]

"마음만 먹으면 혈액역류 시켜서 다 터뜨리고 다닐 수 있…. 미안해요."

석하랑은 내 말에 상상만으로도 역겨운 지 사색이 되었다.

[무서운 얘기 하지마라. …...혹시 그 짓 내가 했나?]

석하랑은 불안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고, 나는 잠시 고민했다. 통신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면 마력이 읽히지 않으니 거짓말도 통하기야 했으니까.

[글나. 내가 미쳐서 저지른 짓이 그렇다는 거제….]

그러나 석하랑은 내가 대답을 머뭇거린 것 만으로도 내가 말한 짓을 저지른 이가 누구인지 금방 깨달았다. 고개를 잠시 떨어뜨렸던 석하랑은 내게 단호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나, 절대 그렇게는 안 될 거다. 너처럼도 안 될 거고.]

검은색에 가깝게 발을 회색에 걸치고 있는 나와 달리, 석하랑은 하얀 선을 넘어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 또한 석하랑이 나같은 선택을 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제발 그래주세요. 당신이 못하는 것들, 다 내가 할 테니까."

[아니, 네 손에 피 묻히라는 말이 아니었는데?!]

"부하 괴인들 시킬 거니까 걱정마세요. 여차하면 내가 나서겠지만."

이미 시청사의 뱀을 죽이면서 청화단의 가능성은 보았다. S급은 충분하니, S급 세 마리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설화령께서 물을 너무 많이 부어주시는 덕분에 SS급이 탄생했네요. 실제 전력은 A급 수준이겠지만, 잘 키워볼게요."

[키운다니, 그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너 혹시 운사 언니도 나처럼 대련해서 지도하고 그럴 생각이야?]

"아뇨? 운사는 따로 지도해 줄 필요없어요. 말만 해도 알아서 SS급까지 성장할 걸요."

박라온의 천부적인 재능과 내 코칭이 결합되면, 딱 일주일-아니 사흘만 집중적으로 가르쳐도 S급을 넘어 진정한 SS급이 될 것이다.

"샤오린이랑 더불어서 투 톱인 걸요. 개인 전력상으로는."

[......그 언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음.... 스타팅?"

[???]

이유나, 박라온, 김누리.

주인공의 팀에 들어오는 첫 동료이자 히로인이며, 각자가 가진 속성에서 전세계 최고의 자질을 가진 존재들이다.

"지금 있는 유일한 약점이 마력량인 존재였는데, 당신이 그 약점을 지워버렸죠."

[......나랑 그 언니랑 싸우면 누가 이겨? 그 언니 SS급이 됐다는 전제하에.]

석하랑은 은근히 걱정하는 말투로 내게 박라온과의 승패를 물었다.

"마력량이 같다는 전제하에 말하는 거예요."

[응, 응.]

"박라온이 100번 싸우면 99번은 다 이겨요."

[......1번은 뭐야?]

나는 기억을 더듬어 박라온이 석하랑에게 패배했던 유일한 싸움을 말해줬다.

"모에사?"

[그건 또 뭔 새소리야?]

누가봐도 얼음미녀같은 외모의 석하랑이 부산 사투리로 애교를 부리던 순간, 박라온이 코피를 터뜨리던 일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새록새록하다.

"당신이 유일하게 이길 수 있는 건 마력량 뿐이니까 정진하세요. 아니면 신화에 이르거나."

[그게 말이나 쉽나. .......]

석하랑은 우물쭈물하며 입술을 끔뻑거렸다.

[내가 그냥 나중에 러시아 갈까?]

"......."

석하랑이 내게 이 말을 묻는 게 얼마나 자신의 자존심을 꺾고 묻는 건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도 죽은 광검의 묘를 한 번도 찾지 않다가, 아이가 생기고 나서야 겨우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냈었다.

"만약에 그럴 생각이 있다면...."

나는 스크린을 향해 손가락을 뻗어 톡톡 건드렸다.

"내가 그 때는 옆에서 같이 가줄게요."

[......그거 참 고맙네. 알았어. 그럼 빨리 돌아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아 참.]

울먹이던 석하랑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 씩 웃었다.

[청화단 스펙 공개했더라? 지금 난리가 났어, 난리가.]

"난리...?"

[응.]

석하랑은 손목을 가리키며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가을이 언니야 말이야, S급 환영술사는 전세계에서 최초라고 하던데?]

"아."

까먹었다.

* * *

아무리 청화와 함께 외국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많은 히어로들이 빠져나가면 그만큼 전력의 누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석하랑은 광검의 뒤를 이어 최후의 보루가 되었고, 협회는 청화를 지원하기에 최적화되어 있으면서도 여유 전력으로 다섯 명의 이능력자를 투입했다.

A급, 운사, 우사, 풍백, 템페스트 레이디.

그리고 S급, 화권.

고작 '다섯 명으로 뭘 어쩌려고 그러느냐?'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들은 모두 서울수복작전에서 좌익과 우익의 수장을 맡았던 최정예 히어로였다. 거기에 화권까지 붙으며 사람들은 파견대의 구성에 상당히 만족했다.

- 화마룡을 일격에 쓰러뜨린 화권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화마룡 처치, 흑사갈 전 활약, 라스푸틴 격퇴.

온갖 S급들을 상대로 선전한 화권 이승형은 조금 모자란 부분은 있지만 전력 만큼은 뛰어나다고 평가받았고, 대중들은 협회 측 전력이 소수임에도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청화단에서 참가하기로 한 인원수.

청화 본인과 흑염룡을 제외하고, 청화단에서 참가하는 이능력자는 여성 히어로 단 두 명 뿐이었다.

- 청화단에서 나온 애들은 그냥 청화 옆에서 돕는 시녀들이냐?

- 화염거인은 안 옴? 알고보니 화염 거인은 여자였다거나.

단 둘 뿐인 전력에 대중들은 의아해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청화단의 전력에 대한 의심으로 번져나갔다. 그것은 히어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단 <로빈> 자네는 패스."

"지금은 <궁성> 입니다."

우사는 이미 안면이 익은 궁성 유이신을 넘겼다. 소나무 부대에 있을 때부터 상당히 유명한 이능력자로 유명세를 떨쳤고, 템페스트 레이디나 운사는 구로까지는 궁성과 함께 진격하기도 했다.

"......흐음."

템페스트 레이디는 복잡한 시선으로 궁성을 바라보았다. 이전의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산들바람처럼 유들유들해졌지만, 어쩐지 자신보다 더 윗 단계에 있는 것 같은 여유가 흘렀다.

"......??"

운사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궁성과 자신을 번갈아보고 있었다. 궁성은 집행관에게 양해를 구한 뒤, 히어로들을 향해 자신을 소개했다.

"<궁성> 유이신. 궁병, 풍술사이며, 준S급이라 보시면 됩니다."

"......허어."

풍백이 감탄과 탄식을 동시에 내뱉었다. B급 평균 수준이었던 유이신은 청화단의 일원이 되며 스스로를 감히 준S급이라고 부를 정도로 강해져있었고, 실제로 그 말은 틀린게 아니었다.

"청화단은 정말 강해지는 비법이라도 있다는 겐가?"

"네. 아주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궁성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면 됩니다."

"에잉, 그러면 됐네. 나는 그냥 수명대로 천수를 누리다 살란다."

유이신은 은연중에 자신이 괴인임을 드러냈고, 다른 히어로들의 시선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한계를 넘어서 강해지기는 했으나, 궁성은 한 번 죽음으로써 한계를 뛰어넘었다.

"괴인이 되면 뭐 좋은 거라도 있나? 흥, 강해지는 것 뿐이라면-"

"일단 죽어도 부활이 가능합니다. 나이도 먹지 않으니 늙지도 않지요. 뭣보다 그 날도 없습니다."

궁성은 다른 남자들을 생각해 표현을 바꾸었다. 궁성의 옆 의자에 앉아있던 <팬텀>이 가면을 쓴 채 빈정거렸다.

"생리 안 해."

"푸흡."

막 물을 마시려던 화권이 뿜었다. 적나라한 팬텀의 표현에 모두가 불편해졌다. 팬텀은 어깨를 으쓱인 뒤, 마침 자신에게 모인 시선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팬텀>."

"...끝이야?"

"뭘 더 설명해? 이름, 나이, 3사이즈까지 물어볼려고?"

팬텀은 다소 건방지다싶을 정도로 빈정거렸다. 그건 분명히 히어로들을 상대로 하는 기싸움이었으며, 템페스트 레이디는 그에 질 생각이 없었다.

"그런 건 관심없어. 내가 궁금한 건 네 전력으로서의 가치야."

"풉."

팬텀은 코를 차며 비웃었다. 템페스트 레이디가 주먹을 말아쥐자, 집행관이 손을 들어 둘을 중재했다.

"그만. 함내에서 싸우지 마세요. 템페스트 레이디는 진정하고, 팬텀도 도발을 자중하세요."

"칫."

"알았어."

두 이능력자는 한 발짜국 물러섰다. 여전히 팬텀의 수준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고, 그나마 접점이 있던 화권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화권아, 너 지난번에 팬텀이랑 붙지 않았느냐?"

"...그랬죠."

화권은 계속 팬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에 팬텀은 다리를 꼰 발로 화권의 무릎을 툭툭 건드렸다.

"뭘 그렇게 수구리고 있어? 어깨 펴."

"......알았습, 알았어. 후우."

화권은 한숨을 내쉬었다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관악에서 한 번 싸웠고, 제가 이겼습니다."

"그랬지. 그치만 그 때가 언제적 이야기야? 지금은 달라. 나도 강해졌다고."

팬텀은 주먹을 허공에 내지르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갸냘픈 손목이 뻗어지는 것에 히어로들은 침음성을 흘렸으나, 여전히 팬텀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슬슬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환영술사인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결국 참다 못한 백희아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고자 했다. 팬텀도 더는 히어로들을 골릴 생각이 없었다.

"환영술사라.... 그렇네, 표현이 그렇겠네. 나는 <팬텀>. 청화단의 이능력자고, S급이야. 됐니?"

"......S급?"

아무렇지 않게 던진 팬텀의 말에 모두가 굳었다. 심지어 팬텀의 진짜 정체를 아는 화권마저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에 오히려 팬텀이 더 놀랐다.

"뭐야. 뭘 그렇게 놀라? S급이 뭐 유별난 것도 아닌데."

"......팬텀, 청화단이 유별난 겁니다."

S급이 워낙 많아서 팬텀은 별 감흥이 없었지만, 불과 반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는 S급이 단 둘 뿐이었다.

"후훗."

백희아는 팬텀과 궁성을 향해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에 S급이 하나, 둘, 셋.... 후후."

"......."

<궁성> 유이신, A+, 풍속성 89.

<팬텀> 천가을, S+, 환속성 95.

<흑염룡> 곽용우, S+. 화속성 95.

세 괴인은 피닉스에 의해 사실상 다음 단계 직전까지 성장한 청화단의 핵심 전력이었다.

"환속성이 드물기는 해도 내가 최초야? 세상에. 도대체 히어로들 지금까지 뭘 했다니."

"......."

팬텀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 * *

[그런데 왜 가을 언니가 최초야?]

"환룡이 마력조차 안 흘러나가게 완전히 관 속에서 자고 있었을 테니까요."

피닉스 피셜.

전 세계 모든 히어로를 통틀어봐도, 천가을의 원래 환속성 재능 88은 세 손가락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환룡이 자면서도 마력을 차단하니까 환속성을 각성하는 사람들이 적었던 거예요."

[그럼 화속성이 S급보다 적은 이유는 너 때문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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