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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81화 (281/1,497)

〈 281화 〉1부 12장 27

3번째 시도.

괴수형으로 폭주했음에도 일격에 쓰러진 캘리펠라는 방천극을 휘두르며 무인 대 무인으로 상대하려했다.

"내가 이 땅 최강의 무인이다!!"

딱.

나는 손가락만 튕겨 캘리펠라를 불태웠다. 캘리펠라는 소사했고, 나는 그 사이 위 나라 일대를 모두 평정했다.

4번째 시도.

화염술사인 내게 공포를 느낀 캘리펠라는 부활하자마자 도망쳤다. 나는 성에 틀어박혔던 괴수들을 모두 제거한 뒤, 장강을 따라 헤엄치며 도망치는 캘리펠라의 뒤를 쫓았다.

"꺄아악! 쫓아오지마 이 괴물아!!"

"혼돈환룡보다 더 도망을 못 가네요."

나는 장강의 절반도 도망치지 못한 캘리펠라의 목덜미를 낚아채 하늘높이 집어던졌다. 캘리펠라는 허우적대며 발버둥을 쳤지만, 나는 허공에서 불타는 덕배트를 크게 휘둘러 캘리펠라를 터뜨렸다.

키에에에엑!!

"에이. 안 나왔네."

네 번째 시도에도 캘리펠라의 코어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모처럼 동남쪽으로 온 김에 오 일대를 뒤덮은 메뚜기 무리 위로 불바다를 만들었다. 코어를 수급할 여력조차 없어, 그냥 코어 째로 다 태워버렸다.

5번째 시도.

"야! 나 한 번 1:1로 붙어보면 안 되냐?"

"캘리펠라한테 죽으면 경험치 리셋 되는 거 알죠?"

"너한테 한 방 맞고 뒤지는 놈인데 아무렴 어렵겠어?"

덕배는 자신감을 보였고, 화염 거인이 되어 거대 메뚜기와 평원 일대에서 레슬링을 벌였다. 덕배는 자신감이 무색하게 일격에 다리가 뜯어먹혔고, 캘리펠라는 덕배를 불꽃째로 집어삼켰다.

"꺄하하! 어리석은 것들! 이제 나도 화염 내성을 가졌다고!"

"응, 그거 내 불꽃."

나는 캘리펠라가 먹은 창염을 그의 뱃속에서 터뜨려버렸다. 캘리펠라는 내장부터 익기 시작해 속은 바삭하고 겉은 촉촉한 메뚜기 구이가 되었다. 맛은 어떨까 궁금했지만, 큐브의 영향을 받은 괴수인 만큼 입에 대는 순간 오염된 마력에 피폭될 것이 분명했다.

또 코어는 없었다. 나는 산으로 둘러싸인 파촉 전역에 불을 질렀고, 약 35일에 이른 불질에 모든 괴수를 대륙 째로 구워버렸다.

"아, 지루하다. 이제 끝내자 그냥."

덕배는 35일째 음식은 커녕 메뚜기 익어가는 냄새만 맡아 질린 것 같았다.

"S급 코어 파밍하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50트는 기본이에요 기본."

"일주일에 한 마리 부활하니까 350일…. 1년 동안 이 짓을 해야한다고?"

"그러니까 큐브만 먹고 째는 거잖아요? 너무 걱정하지마요. 나갈 방법은 다 있으니까."

찾기 드문 광속성 S급 코어라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캘리펠라 따위에게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그 시간을 덕배와 보낼 수는 없었다.

큐브 하나를 더 얻어와서 덕배를 밖에 던져버리고 창염이랑 한 달 동안 느긋하게 노닥거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창염은 카르나를 잡아올 때 까지 나를 부르지 말라고 했다.

"빨리 카르나 잡게, 마지막 시도만 하고 돌아가죠."

6번째 시도.

캘리펠라는 호로관에서 방천극을 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력 상으로 더 뛰어난 괴수형으로도 나를 이기지 못함에도, 굳이 인간 시절의 몸을 갖춘 것은 무언가 의지가 엿보일 정도였다.

"굳이 사람으로 나를 대하는 이유는?"

"......난 인간이야. 언젠가 이 세계에서 탈출해서, 원래 세계로 돌아갈 거라고!!"

캘리펠라는 절규하며 내게 방천극을 겨눴다. 새삼스럽지만 저게 다른 세계에 떨어진 이들이 보이는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나와는 다르지만.

"돌아가봤자 어차피 시궁창같은 인생일텐데, 굳이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요?"

"시끄러워! 그래도 나는 돌아갈 거야! 어떤 일을 겪더라도!!"

캘리펠라는 죽더라도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보이겠다는 것처럼 방천극을 치켜들었다. 나는 캘리펠라의 의지를 묻기위해 다시 한 번 더 물었다.

"진짜 어떤 일을 겪더라도 말이에요?"

"그래!!"

그렇다면 얘기가 다르지. 나는 덕배트를 허리 춤으로 늘어뜰이며 호흡을 골랐다.

"그럼 당신의 전력을 보이세요. 저를 이기면 이 세상에서 빼드릴게요."

"너를 죽이면 이 곳을 탈출할 수 있다는 말이지! 자, 와라!"

캘리펠라는 방천극을 X자로 교차하듯 휘두르며 제 무위를 과시했다. 눈빛으로 보이는 의지만큼은 궁극기 속에서 나를 상대하던 광검과 비슷해보였다.

"좋아요. 갈게요."

나는 덕배트를 캘리펠라에게 들어올렸다. 한손으로 배트의 손잡이를 잡고, 그 끝을 캘리펠라의 심장을 향해 겨눴다.

"저 말고, 이게."

탕---!!

나는 손잡이를 놓았고, 덕배트는 대구경 탄환이라도 된 것 처럼 내 손에서 발사되었다. 손잡이 아래에는 푸른 불꽃이 로켓처럼 분사되어, 빛보다 빠르게 캘리펠라에게 닿았다.

"이-!"

캘리펠라는 무언가 말을 할 틈도 없이 방천극을 휘둘렀다. 극의 칼날이 덕배트를 빗겨치려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졌다. 칼날에 서린 광속성의 마력은 금방 덕배트를 갈라버릴 것처럼 번뜩였다.

"미안한데."

나는 손가락을 살짝 옆으로 밀었다.

부-웅!

방천극이 허공을 갈랐다. 덕배트는 살아있는 물고기마냥 유선형으로 움직이며 칼날을 스쳐지나갔다.

"누가 드잡이질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아서. 미안해요."

푸---욱!!

덕배트가 정확히 캘리펠라의 심장을 꿰뚫었다. 가슴과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들어 어깻죽지로 튀어나온 궤적은 사선을 그렸으며, 덕배트의 방망이 끝에는 캘리펠라의 심장이 불타고 있었다.

화르륵!

바닥을 향해 고꾸라진 덕배트의 끝에는 노란 금빛의 코어가 걸려있었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캘리펠라에게 인사했다.

"잘 됐네요. 이번에 안 나오면 버리고 가려 했는데."

"그게.... 무슨...."

풀썩. 캘리펠라는 피를 울컥 토해내며 무릎을 꿇었다. 손에서 놓은 방천극은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고, 캘리펠라는 흐릿해지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꺼내줄게요. 약속하죠."

"......고마...."

철푸덕. 캘리펠라는 앞으로 고꾸라지마 절명했다. 큐브를 지키던 S급 괴물은 큐브를 빼앗기고서도 세계에 갇혀 나오지 못했다.

"이제 코어가 나왔으니 상관없지만요."

나는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덕배트와 S급 코어를 집어들었다. 메뚜기 괴수 캘리펠라는 다시 한 번 더 부활하겠지만, 더이상 이 세계는 천하를 통일해도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캘리펠라가 된 본체, 여봉선의 정신과 혼백은 본체라고 할 수 있는 코어에 깃들었다.

자연발생괴인.

간부에 의해 만들어지는 괴인과 달리, 큐브의 영향으로 큐브를 지키는 자로 선택받은 그들은 여봉선과 마찬가지로 미쳐버려 괴물로 타락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큐브도 얻고 코어도 얻고 일석이조일 뿐이지.'

나는 덕배트를 집어들어 그를 부활시켰다. 저녁 노을에 비친 그의 머리는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 A급 됐냐?"

"아뇨. 여전히 B급인데요."

"으아아악!!"

덕배는 머리를 붙잡으며-머리카락도 없으면서-발광했다. 내 무기가 되어 지난 36일 가량 수 십만에 이르는 E급 메뚜기들을 죽인 걸로도 모자라, S급 미소녀의 심장을 수차례 꿰뚫었음에도 그는 아직까지 B급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상하다. 당신 요구 경험치가 너무 많은 거 아녜요?"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잠재력이 엄청 높은가보지!"

"그래봐야 당신은 내 무기로 쓰는 게 더 효율적이니까 그냥 포기해요."

조덕배가 S급 지속성 괴인이 된다면 나는 그걸로 석장을 만들 셈이다. 정신세계에서 피닉스가 보였던 그 석장, 잘하면 조덕배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탈출하죠. 원하던 것도 얻었고, 보너스도 하나 얻었으니."

나는 조덕배를 코어로 바꾸려했고, 조덕배는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

"야! 이거 나 바꾸는 과정에서 마력 손실 나는 거 아냐?"

"글쎄요? 제가 무기가 되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그리고 손실나도 어쩌겠어요? 아예 0이 되는 것보다 낫지."

"무책임하게 말할래?! 나 그래도 메뚜기 수 만 마리는 죽였다고!"

"E급이잖아요. E급 수천만을 죽여도 A급 하나만도 못할 거예요."

캘리펠라의 리스폰을 기다리며 마냥 심심하니 E급들을 사냥했던 거지, 사실상 그것들은 경험치나 코어로 써먹을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저 전투 풍부한 전투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메리트만 있을 뿐. 나는 덕배의 뒤로 다가가 그를 코어로 바꾸었다.

"야 이!"

"코어가 되는게 좋을 걸요? 이 세계, 이대로 두면 캘리펠라의 분체가 불쌍하잖아요."

뉴 게임을 시작했는데 대륙 전체가 파괴되어 있으면 불쌍하니, 세계를 리셋시켜버리자. 나는 괴인형으로 육체를 바꾸어, 마력을 한군데로 끌어모았다.

[큐브까지 써볼까.]

나는 큐브에서 마력을 뽑아냈다. 중간중간 이계신에 의해 오염된 마력이 들끓었지만, 큐브를 감싼 창염에 의해 정화된 마력이 내 앞에 모여 뭉치기 시작했다.

[역시 엔딩은 폭발이지.]

이왕이면 핵피엔딩으로.

나는 큐브의 마력까지 동원하여, 안정된 마력의 핵을 비틀어버렸다.

[쾅.]

폭발 반경은 세계 전체.

캘리펠라의 정신으로 구현된 중국 대륙 전체가 태양의 폭발에 잿더미가 되었다.

* * *

"콜록, 콜록!"

나는 입안에 들어오는 재를 뱉어내며 '문'을 넘어왔다. 중국 전역을 날려버렸음에도 역시 그건 '이계'에 한정되었고, 현실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에이, 괜히 가져온다고 난리를 쳐서."

나는 등에 맨 그물망을 바닥에 질질 끌며 잡아당겼다. 그물망의 일부를 밖으로 내놓은 뒤, 보통의 현관문 정도의 '문'을 양옆으로 잡고 강제로 벌렸다.

키기이이잇!!

마력이 튀며 문은 좌우로 늘어났다. 좁게 닫혀진 문은 내 힘에 의해 헐거워졌고, 문에 발을 올린채 마력의 그물망을 한껏 잡아당겼다.

"부하 2호! 도움!"

"지 혼자 다 할 수 있으면서."

덕배는 궁시렁거리면서도 내 반대편에서 그물망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물망 속에는 내가 폭발 속에서도 챙겨온 E급 코어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하나, 둘, 세---엣!!"

나는 기합과 함께 그물망을 힘껏 잡아당겼다. 문에 걸린 그물망이 찢어질 뻔도 했지만, 간신히 마지막까지 문턱에 걸려있던 그물망을 꺼내는 데 성공했다.

"그럼 닫...."

쿨럭, 쿨럭.

망가진 문은 삐걱대며 재를 토해냈다. 내가 한껏 비틀어 열어젖힌 문틈 사이로 폭파시킨 대륙의 잔재가 흘러들어왔다.

쿠구구구구---

"......."

핵폭발의 여파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나는 호흡을 크게 고르고 문을 양쪽으로 잡았다.

키기기긱!!

벌려진 문을 강제로 잡아당겼다. 남들이 보기에는 허공을 잡아끄는 마임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지금 이차원으로 가는 문을 양옆에서 구기듯이 오므렸다.

기기긱---쿠웅.

이계로 가는 유일한 길은 미닫이 문처럼 좌우로 닫혔다. 비록 그 모양새는 처음과 달리 상당히 많이 찌그러졌지만, 안에서 캘리펠라가 부활하면 세계도 부활하여 다시 그럴듯한 던전이 될 것이다.

"그 때까지 여기는 봉인."

나는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E급 코어들을 문 위에 쏟아 작은 언덕을 만들었다. 짧게나마 미끄럼을 타도 될 정도로 수북히 쌓여 문을 틀어막았고, 나는 E급 코어 언덕 정상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시간 딱 맞네."

마침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지고 있었다. 나는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한 뒤, 아래 다져진 푸른 결계를 발로 두드려 상태를 확인했다.

'누구든 결계 뜯으려하면 불타는 메뚜기 때를 맞이하게 되겠지.'

"그리고 위에는 다른 걸로 덮어버리고 말이죠. 푸흐흐."

나는 한창 흑사갈과 재미를 보고 있을 백청영을 호출했다. 다행히 환룡을 잠에서 깨우기로 한 시각보다 조금 시간이 남아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백청영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흑우선으로 입을 가린 채 여유롭게 내 호출에 응했지만, 나는 아주 미세하게나마 흑사갈이 비명을 지르는 걸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뭐하고 있었어요?"

[......그, 샤오린이 모형을 하나 만들어줬고, 그걸로 저희 환룡단이 테스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샤오린 마력이면 투명할텐데?"

[예. 덕분에 빛을 비추면 안이 훤히 보입니다.]

세상에. 백청영은 내 상상을 뛰어넘는 아뜩한 외도 중의 외도였다. 설마 그런 짓을 저지를 줄이야.

"알겠어요. 그 쪽이야 뭐 알아서 하시고, 잠깐 부탁할 게 있어요. 보답은 줄게요."

[무엇입니까?]

나는 내 손에 들린 S급 광속성 코어와 아래에 잔뜩 깔린 E급 코어를 가리켰다.

"여기 땅 좀 빌려주세요. 코어 생산 공장 하나 만들게."

[......호뢰관을 공략하신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흑우선의 위로 보이는 백청영의 눈은 달처럼 휘어졌다.

잠시 뒤.

큐브와 마력의 힘으로, 옛 호뢰관 터에 작은 공장 부지가 하나 들어섰다.

무엇을 생산하는 지는 나와 환룡단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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