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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74화 (274/1,497)

〈 274화 〉1부 12장 20

검을 그저 그어내리면 끝이지만, 루살카는 고민하는 듯 했다.

"뭘 망설이고 있어요?"

[아니.... 사람들 갇힌 곳이 어디야?]

루살카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면서도, 고간룡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이 갇힌 곳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고간룡의 목 아래 여의주는 총 두 개.

하나는 코어요, 하나는 사람들이 갇힌 결계였다. 나나 환룡은 괴인을 통해 무엇이 진짜 코어인지 알 수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루살카는 그걸 구분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죠. 딱 한 번만 도와드릴게요."

[도와준다니, 뭘?]

"사람들은 제가 구할테니까, 당신은 코어 잘라버려요."

나는 드디어 품에 몰래 넣어온 물건을 앞주머니에서 꺼냈다. 환룡은 내가 꺼낸 물건을 보자마자 표정이 달라졌다.

"총?"

"그래. 겉보기에는 플라스틱 모델건이지만."

나는 리볼버처럼 옆으로 밀려나오는 탄창에 마력을 탄환처럼 빚어 장전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마탄은 총열의 위에 올랐고, 나는 베란다에서 고간룡의 아래를 향해 겨눴다.

"술 마시고 쏴도 돼?"

"내가 이래뵈도 특급 사수였거든?"

"그러다 코어 쏘기라도 한다면?"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해보지."

무책임한 발언이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창염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이라면 눈감고 쏴도 명중할 것이다.

"어, 고간룡이-"

환룡이 라스푸틴을 가리켰다. 고간룡은 목을 길게 늘어뜨리며 우리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안 되겠군."

나는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쏩시다!"

왠지 이 말을 해야할 것만 같았다. 총구에서 푸른 불꽃이 터져나왔고, 마탄은 창을 넘어 빛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 * *

운디네가 금빛의 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을 녹여낸듯한 금색의 검은 운디네의 마력을 머금고 그 크기를 점점 키워나갔다.

고오오오---!!

하늘로 길게 솟구친 금색의 검을 중심으로 호수의 물줄기가 휘감기기 시작했다. 별궁을 타고 오른 물줄기는 검신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

암마룡은 몸부림을 치며 물줄기의 구속을 끊어냈다. 접혀진 날개를 활짝 펼쳤고, 팔을 몸뒤로 잡아당기던 물줄기를 완력으로 끊어냈으며, 하체에 마력을 실어 늪에서 빠져나오듯 호수의 위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캬오오오!!

고간룡이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운디네가 힘을 모으는 동안, 강가에 있던 히어로들은 고간룡의 목기둥을 향해 모든 화력을 집중시켰다.

"<운디네>를 지켜라! 암마룡을 막아!"

운디네가 사용하려는 기술이 어떤 기술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상당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모든 히어로들이 직감했다. 피부를 찌르는 청량하고 습한 기운은 운디네의 마력이 주변 일대를 아우르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이거 설마...."

"저게 운디네 님의 궁극기?"

어느덧 물줄기는 별궁의 높이보다 더 크게 솟구치고 있었다. 암마룡 라스푸틴 또한 호수에서 기어이 하반신을 빼내는데 성공하여, 날개를 펼치며 수면에 발을 디뎠다.

캬아아악!

암마룡은 아직도 끈덕지게 몸을 구속하는 물줄기를 손으로 찢으며 운디네를 향해 뛰었다. 심장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은 암마룡의 배에 부딪혀 호수 곳곳으로 튕겨나갔다.

■■■■!!

날카로운 손톱이나 날개보다도 더 빠르게, 고간룡이 새까만 이빨을 번뜩이며 입을 쩍 벌렸다. 그 속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신속했고, 운디네는 고간룡에게 잡아먹히는 것 처럼 보였다.

"<운디네>?!"

딸이 고간룡에게 먹히기 직전인 모습에, 수보르프는 자신도 모르게 강물에 뛰어들었다. 운디네의 기술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고간룡이 운디네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첨탑 아래 방에서 푸른 불빛이 흩날렸다.

와장창-

유리창을 깬 푸른 불빛은 마치 탄환처럼 나선을 그리며 날아가 고간룡의 송곳니를 깨뜨렸다.

고간룡은 아주 순간적이나마 고개를 뒤로 당겼고, 연이어 두 번째 탄환이 휘어지듯 고간룡의 몸 아래로 스쳤다.

타---앙!!

푸른 불꽃의 탄환은 짙은 어둠을 푸르게 밝히며, 고간룡의 목 아래에 놓인 검은 구슬에 이르렀다. 강가에 들어와있던 수보르프는 구슬의 윗부분을 노리고 날아드는 탄환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새?"

마치 불사조의 형상을 한 푸른 카나리아는 날개를 좌우로 펼치며, 말그대로 탄환처럼 고간룡의 구슬에 박혔다. 새 모양의 탄환은 기둥과 구슬 사이에 박혀 폭발했고, 검은 구체가 옆으로 툭 떨어지며 좌우로 벌어졌다.

"으아아악?!"

찢어진 구슬 안에서 암마룡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들이 낙하하여 떨어지는 곳은 극적으로 괴수 한 마리 허우적대지 않는 호수 한 가운데였다.

"달에게 부치는 노래-"

운디네의, 루살카의 목소리가 호수 전체에 울려퍼졌다. 첨탑의 꼭대기에 오른 루살카는 호수를 지키던 요정마냥 아름다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눈 내리는 밤의 루살카>."

루살카가 검을 아래로 그었다. 강하게 내려치지도 않고, 그저 지휘봉을 내려놓는 것 마냥 검을 그어내렸다.

서걱-

사람들은 그저 무언가 잘리는 소리밖에 듣지 못했다. 박수도, 함성도, 환호도 지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루살카가 손에 든 금빛의 검을 사랑스럽다는 듯 끌어안는 것만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루살카가 검을 회수한 이유를.

쩌---억

암마룡은 루살카가 그은 검의 궤적에 따라 반으로 갈라졌다.

루살카는 암마룡의 왼쪽 어깨에서부터 사선으로 심장을 가로질러, 고간룡의 코어까지 일격에 잘라버렸다. 코어가 잘려진 고간룡은 움직임을 멈췄고, 몸의 왼쪽이 비대칭으로 잘려나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암마룡 라스푸틴은 운디네를 잡기 위해 상체를 숙이며 오른손을 뻗었다.

[우--ㄴ--ㄷ--ㅣㄴ--ㅔ---]

암마룡 라스푸틴의 오른손이 첨탑의 꼭대기를 향해 뻗어졌으나, 몸의 오른쪽 전체가 앞으로 미끄러지듯 고꾸라졌다.

"흥."

운디네는 좌우로 각각 벌어지며 호수를 향해 기우뚱 넘어가는 암마룡을 내려다보며 낮게 읇조렸다.

"난 루살카란다."

금빛의 검을 끌어안으며 살포시 웃는 그 미소는 분명 사랑을 하는 소녀의 얼굴이었다.

* * *

"내 손 발."

나는 루살카가 내뱉은 기술명에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아예 괴인형으로 바꾸어버렸다. 검은 갑주가 된 손과 발은 더이상 부들부들 떨리지 않았고, 내 옆에서 술을 홀짝이던 환룡은 술잔을 꽉 쥐며 눈물을 참았다.

"저 언니...."

환룡은 터지려는 웃음보를 참고있었다. 세뇌는 당했으나 정신은 온전히 유지하고 있던 환룡의 입장으로서는, 한 번 세뇌당해 다크 레기온적 감수성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루살카가 안쓰럽고 불쌍해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미 환룡이 저질렀던 일을 상기하며 지적했다.

"너도 딱히 다르지 않잖냐."

"달라. 나는 필요로 얘기하는 거고, 저 언니는 지금 진짜로 '멋있다'고 생각해서 저러는 거라고."

"......하긴. 그 피가 어디 갈 리가 없지."

나 또한 창염개진이니 뭐니, 괴인 제작을 위한 영창이나 언행은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일 뿐이다.

"솔직히 쪽팔려."

"근데 풀파워내려면 어쩔 수 없잖나."

"앞으로 우리끼리는 서로 부끄러워하지 말자? 어때?"

환룡이 내게 술잔을 들어올렸고, 나는 내 술잔을 들어올려 짠하고 부딪혔다. 우리는 아직까지 괴인 감수성을 벗어던지지 못했을 네 간부를 각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다짐하자는 의미에서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그런데 피라는 게 무슨 소리야?"

"미래의 이야기다."

나는 원작 스테이지의 여섯번째 간부, 폭주 석하랑이 저질렀던 일에 대해 짧게 언급했다.

"짧게만 읊어주지. '몰아쳐라! 시간마저 얼어붙게 할 설풍이여! 나 설야의'.... 그만 하지. 내 입으로도 더는 못하겠군."

"응. 좋은 생각이야."

이미 한 번 석하랑을 마주한 적이 있는 환룡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진짜 잘 했다. 걔 아마 알았으면 평생 밖으로 못 나왔을 거야. 폭주를 어떻게 가라앉혔어?"

"동료들의 우정으로."

같은 팀원으로서 겪었던 추억을 읊으며 석하랑의 세뇌를 되돌리려던 주인공 일행의 고군분투는 전세계에 생방으로 흘러버렸다. 안그래도 건어물이었던 석하랑은 폭주에서 풀려남과 동시에 두문불출하기 시작했고, 이후의 모든 개인 에피소드는 석하랑의 집에서만 이루어졌다.

"다행히 이제는 그럴 일이 없지만 말이다."

"그거 참 다행이네. ......걔도 혹시 네 그거야?"

환룡은 새끼손가락만 들어올린 채 내게 흔들었다. 나는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어 고개를 끄덕였고, 환룡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부루퉁해졌다.

"뭐야. 걔한테는 어떻게 사랑을 속삭이셨어?"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생방송으로 프로포즈했지. 허리 끌어안고 키스하니까 세뇌 풀리던데."

"와."

환룡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했다.

"나한테, 나한테도 해주면 안 돼?"

"내가 너한테 왜 하냐, 그걸."

"나중에 나를 사랑하게 되면 말이야. 응?"

"......고려는 하도록하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는 술잔을 들어올렸으나 빈 잔이었다. 환룡도 이미 잔이 비어있었고, 더이상 남은 보드카는 없었다.

"음.... 더 구해올 수도 없고. 어쩌지? 루 언니 불러서 더 달라고 할까?"

"됐다. 라스푸틴도 이미 죽었-"

내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려던 그 순간, 호수에서 이상징후를 감지했다.

"이런-"

■■■■■!!

축늘어져있던 고간룡이 물속에서 튀어나오며 아가리를 벌렸다. 코어와 육체는 잘려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대가리만 남겨 자신을 죽인 원수를 죽이겠다는 듯한 자색의 안광은 광기가 넘실거렸다.

우리의 위, 루살카 부부를 향해.

* * *

압도적인 힘이었다.

SS+인 피닉스의 마력, 그리고 그 마력을 바탕으로 사용한 SS급 무기 광검. 사랑하는 님을 무기로 사용했다는 것이 루살카는 마음에 걸렸지만, 그 힘으로 자신의 가솔들을 지켜냈다는 것에 루살카는 만족하고 있었다.

"미안해, 서방님. 화난 건 아니지?"

[그럴리가.]

루살카는 광검을 품안에 꼭 끌어안았다. 광검의 검신은 루살카의 가슴 사이에 파묻혔고, 루살카는 검의 손잡이에 고개를 파묻으며 볼을 비볐다.

"고마워. 서방님 덕분이야."

[별말씀을.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어 다행이다.]

"응. 이렇게 같이 싸우게 될 줄은 몰랐어. ......이건 감사의 표시야."

쪽.

루살카는 검의 손잡이에 입술을 살포시 맞췄다.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절로 입꼬리가 씰룩거렸고, 광검의 검신은 부르르 떨렸다.

"돌아가면 일단 한 번 하자. 사태 수습되면, 이번에는 내 침대에서-"

[루살카!!]

광검이 먼저 이상을 감지했다. 루살카는 광검과의 사랑을 나눌 생각에, 그리고 전투가 끝났다고 오판하여 몸의 긴장을 풀고 있던 바람에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캬아아아악--!!

고간룡이 아가리를 벌리고 둘을 집어삼키려고 했다. 이빨에는 보기만해도 녹아내릴 것 같은 산성 물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군데군데 깨진 송곳니는 살짝 옆으로 비틀려 루살카의 옆구리를 향하고 있었다.

"아-"

검을 세워도 늦다. 상상하던 행복한 미래가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루살카의 시야는 검게 물들었다.

서걱.

서걱?

"거 나보고는 끝까지 방심하지마라고 잔소리 잔소리를 해대더니 죽을 뻔 했지?"

루살카의 앞에는 긴 흑발을 휘날리는 검사가 고간룡의 대가리를 반으로 갈라버린 채 웃고있었다. 바람을 타고 달려온 원탁의 히어로, 질풍객은 허공을 디디고 서서 고간룡을 칼로 푹푹 찌르고 있었다. 칼질을 할때마다 점액질같은 검은 어둠이 묻어나왔다.

"......검에 저걸 묻히기 싫었을 뿐이야."

루살카는 검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숙였다. 질풍객은 어깨를 으쓱이며 칼끝에 박힌 고간룡의 대가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럼 내가 저거 다 썰어도 돼?"

키야아아악!!

루살카가 차원문을 베었으나 그 전에 튀어나온 괴수들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질풍객은 혀로 입술을 할짝이며 당장이라도 모든 걸 베어버릴 기세였다.

"......원탁이 개입하면 1할도 못 얻어가는 거 알지?"

"관심없어! 내가 원하는 건-"

질풍객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괴수 무리를 향해 달렸다.

"저것들 모가지 따는 거라고!!"

* * *

"끝났네."

암마룡 라스푸틴은 사망.

성기는 백청영이 회수.

차원문은 붕괴.

완벽한 승리였다.

"좆같은 싸움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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