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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70화 (270/1,497)

〈 270화 〉1부 12장 16

괴인 DD는 쓰러졌다. 좀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고, 블라디미르 가문의 식솔들과 협회의 이능력자들은 혼란에 빠진 와중에도 주변을 정리하느라 애를 먹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만 물러나세요!"

사람들은 심야에 울린 폭음과 마력 반응에 당연히 안의 상황을 알고 싶었고, 마침 한국의 특사단이 블라디미르 저택을 방문했다는 이야기까지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의 상상은 끊이질 않았다.

"젠장. 미쳐버리겠군."

특사단은 그 혼란 가운데에 낙동강 오리알마냥 버려졌다. 수보르프가 괴한의 침입을 막으러 갔을 때부터 라스푸틴의 정체가 괴인인 걸 알기 전까지 집사장의 감시를 받는 때가 그들이 그나마 관심을 받을 때였다.

라스푸틴은 괴물이 되었다.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이능력자라면 누구든지 라스푸틴의 몸을 뒤덮고있는 끈적한 안개를 보고 이상을 느낄 것이다.

"영감. 저거 보이쇼?"

"뭘?"

"저 거인 고간에서 흘러나오는 안개 말이요."

"...거 더럽게 저딴 걸 왜 봐?"

한창 다리에 떨어진 거대한 기둥을 살피던 풍백은 우사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몸서리를 쳤다.

"으으. 그 놈 신부 빼앗겼다고 저런 참담한 짓을…."

"...좀 심하긴 했지."

풍백과 우사는 괴인이 되어 커질대로 커진 크기에 한 번 말문이 막혔고, 깔끔하게 잘려나간 단면에 말을 잇지 못했다.

"영감, 관악에서 봤던 놈들이랑 비슷하지?"

"그놈들보다 칙칙하지만 말이야. 육시럴. 승형이 그 놈은 좀 알려주고 기절하지 말이야."

풍백은 라스푸틴의 결계를 깨고 기절한 화권 이승형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뭔가 그 놈이 눈치를 채서 도발한 것 같은데…."

"영감은 어찌 아셨수?"

"그 놈이 이 사단이 났는데 잠자코 조용히 닥치고 있을 놈이더냐? 분명 또 오지랖부리면서 뛰쳐나가려 했겠지."

"그건 그렇네."

기절한 화권은 그대로 병실로 옮겨졌다. 삼엄한 경비 속에서 치료가 진행되었고, 깨어나면 중요 참고인으로서 라스푸틴의 폭주에 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모두 알릴 것이다.

"거 말로는 엄청나게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하던 모양인데."

"아무리 외국이라도 S급 이능력자가 악의 조직 하수인으로 타락했다는 것이 충격일테지. 쯧쯧."

두 히어로는 화권이 짙은 어둠에서 라스푸틴과 땀내나는 마력의 레슬링을 펼쳤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S급들은 무슨 결계가 기본인가? 이거 뭐 서러워서 살겠나. 지들끼리만 알고 아주 난리야 난리. 라스푸틴 놈도 그렇고 운디네도 그렇고 결계로 도대체 뭘 그리 꽁꽁 숨기려고 든 거요?"

"내가 그걸 알고 있으면 자네에게도 얘기했겠지, 이 사람아."

"젠장. 협회도 모른다하고 다 몰라. 뭐 아는 놈들은 기절하거나 도망치거나 철면피니 원. 그 머리 노란 놈은 도대체 어디있는 거요?"

"아 글쎄 나는 모른다니까."

괴인 라스푸틴의 폭주를 다리에서 막아선 이가 누군가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가고 있었다.

라스푸틴의 폭주를 예상하고 저택에 잠입했다고 하기에는 가솔들을 습격해 기절시켰던게 마음에 걸렸다. 도대체 그는 무슨 의도를 가지고 별궁에 잠입해 수보르프를 제압하고 라스푸틴의 성기를 자른 것인가.

"사람이 영 일관성이 없잖아 이래서야…."

"있지않나? 러시아 싫어하는 건 알겠구만."

"거 위험한 발언 하지 마쇼, 영감. 우리 특사단으로 온 사람들이니. 역사서에 기록 남고 싶소? 한러전쟁의 서막은 풍백의 말실수로 시작되었다, 라고."

"......예끼. 원 농담도 못해. 에잉, 됐네. 나중에 기다리면 알게 되겠지."

풍백은 스틱을 빙빙 돌려 어깨에 걸었다가 깜짝 놀랐다.

"으잉?"

"또 뭐요?"

"아니…. 저….."

주변 밤공기 전체가 꿉꿉해지기 시작했다. 호수의 영향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찝찝한 기운이었다.

"방금 저 괴인 라스푸틴, 움직이지 않았나?"

* * *

광검은 라스푸틴의 성기를 잘랐다.

비록 이능력의 폭주로 거인화가 되던 와중이었으나, 광검은 거대화된 상태 그대로 뿌리까지 잘라버렸다.

'결계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분명 지켜보던 모든 남자들이 하반신에 불편한 감각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임무를 완수한 광검은 루살카의 인도에 따라 호수로 몸을 피했고, 사람들이 하나 둘 라스푸틴의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건 누가봐도 괴인이네요."

"어? 저거 아직 팔팔 뛰는데?"

환룡이 가리킨 곳에는 2m의 어둠 기둥이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은 상태로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본체로부터 잘려나갔음에도 서브 코어라도 달고 있는지, 라스푸틴의 성기는 여전히 발기가 풀리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아직까지 발기가 안 풀리는 거죠?"

"내가 어떻게 알아...? 저거 저러면 회수 못하지 않아?"

"솔직히 회수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잘라낸 성기의 회수는 백청영의 부탁이었으니 굳이 완수하지 않아도 되는 미션이다.

"그래도 만약 다른 녀석이 저걸로 괴인으로 만들면?"

"그건 안되니까 회수해야겠네요. ......너 무슨 생각이야."

나는 술에 취해 히끅거리는 환룡의 볼을 쿡쿡 찔렀다. 환룡은 내게 대롱대롱 매달려 헤실거렸다.

"나 저거 달고 너 박고 싶은데-아얏!"

"이게 다 알면서 못하는 말이 없어."

"어차피 여자로 살 거잖아! 여자의 기쁨도 누려보고 그래야지!"

"나는 박는 사람이지 박히는 사람이 아니다."

환룡을 소파에 집어던진 나는 초조하게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루살카에게 창문을 가리켰다.

"루살카."

"왜?"

"자리비켜 드릴게요."

"......새삼스럽게 무슨."

루살카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따로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환룡을 챙겨 벽 구석으로 가 결계를 치려했다.

그 순간, 베란다에서 금빛의 인영 하나가 튀어나왔다.

"루살카!"

"서방님!"

광검과 루살카가 서로를 보자마자 격하게 끌어안았다. 나는 두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꿀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저런 걸 볼때마다 참 서로 좋아한다 싶어 어쩔 수 없는-

쯉, 츄으, 쮸으으읍!

"29금이군. 눈 가려라."

"씨이, 나도 볼래."

환룡과 내가 환룡의 눈 앞에서 씨름을 하는 사이, 둘은 농후한 재회의 키스를 마쳤다. 루살카는 이미 광검의 품에 전신을 맡긴 채 안겨있었고, 광검은 물에 흠뻑 젖어 루살카의 허리를 안고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여기서 더 나가고 싶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자. 우리 집에서.... 응?"

"좋아. ......피닉스."

광검이 나를 불렀다. 나?

"쓰레기가 아니라요? 방금 내 이름 부른 거 맞아요?"

"피닉스가 곧 쓰레기와 동의어니까 상관없지. ...나도 뭐라할 입장은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라."

광검은 루살카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시선 교환만으로도 서로 통하는 게 있는지, 명실공히한 부부지간이었다.

"......이 일이 끝나고 서울에 돌아가면 하랑이와 만나게 해주겠는가?"

"결심이 섰네요."

"......그래. 용서를 구할 생각이다."

광검은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었고, 루살카는 그런 광검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이제 이 세계에서 두 부녀의 관계를 중계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근데 바로는 못해드리고...."

시간과 일정상 무리가 있었다. 나는 마도기어의 스케쥴을 확인하던 순간, 피부를 찌르는 끈적한 마력에 나도 모르게 반응해 불꽃을 피웠다.

화륵!!

방 전체에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다른 세 명에게는 일절 피해가 없이, 악의가 넘치는 소름끼치는 마력만을 태워버린 불꽃은 금방 내 손으로 돌아왔다.

"그냥 잘렸으면 조용히 죽지.... 하아."

나는 베란다로 달려나가 다리에 무릎을 꿇은 라스푸틴의 상태를 확인했다. 남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고간에서 흘러나오는 이형의 마력을 아주 훤히 볼 수 있었다.

"루살카! 연락해요! 전부 물러나라고!"

"아, 알았어!"

루살카는 당황하며 스마트 워치를 눌렀다. 맞은 편에는 한창 주변을 통제하고 있던 수보르프의 얼굴이 나타났다.

[딸? 무슨 일이니?! 혹시 누가 침입자가-]

"물러나요! 그 괴인으로부터!"

루살카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물러나라니, 이미 벌써 20m가까이 떨어져 있-]

■■■■■■!!

라스푸틴의 몸에서 짙은 어둠이 터져나왔다.

* * *

억울했다.

라스푸틴은 그저 남들보다 조금 크다는 이유만으로 거물, 말 등으로 어려서부터 놀림을 받았다. 여자와 행위를 할 때면 그 누구도 자신을 끝까지 받아주는 이가 없었고, 이능력자 S급이 된 순간에는 '역시 S급'이라며 놀림을 받았다.

바지를 입으면 커지지 않은 상태로도 허벅지까지 모습이 훤히 드러나, 20대 초반부터 그나마 아래를 가릴 수 있는 사제복을 입어야 했다.

-응? 거기가 커서 뭐 어때? 나는 재능만 보는데? 흐, 흥! 절대 네 것이 커서 보기 흉하다거니 하는 건 아니야! 세계 정복을 하는데 있어서 거기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라고!

그런 자신을 온전한 라스푸틴으로서 봐라봐준 유일한 존재가 어둠의 여신이었다. 감히 존함조차 함부로 부르기 힘든 여신은 라스푸틴의 재능을 한계까지 늘려주었고, 불로불사를 선사하시었다.

-뭐? 크니까 징그럽지 않냐고?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를 바라는 거야? 풋. 너는 그걸 신경쓰지말고 네 힘을 갈고 닦아. 코어 필요해? 더 줘?

여신은 라스푸틴에게 수많은 은총을 내렸고, 라스푸틴은 감히 적수가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졌다.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자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했고, 성기마저 잘려버렸다. 성기를 잘린 굴욕보다도 여신의 힘을 온전히 발휘하기도 전에 패배했다는 굴욕이 더 컸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마음먹은 그 순간, 마음속의 어둠이 속삭였다.

[다 없애버리자.]

신의 모습을 한 어둠은 신의 목소리로 라스푸틴의 귓가에 속삭였다.

[다 죽이고 없애버려. 잘 생각해봐. 네가 이것들을 없애는게 내 세계정복의 도움이 되지 않겠니?]

맞는 말이다. 이능력을 각성하지 못한 구인류는 도태되어야 하며, 하물며 정신을 일깨우지 못한 자들은 신인류가 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그저 외형만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자들에게 신의 철퇴를 내려야한다.

[내가 힘을 줄게. 힘이 부족해? 그럼 승리의 주문을 속삭여줄게.]

신은 라스푸틴의 귀에 아주 작게 속삭였다.

[마암개벽. 마암룡의 힘을 일부나마 마음껏 부리렴. 그래…. 구인류는 너를 이제 이렇게 부를거야.]

신이 라스푸틴의 코어를 손가락으로 휘저었다.

[암마룡. 다크 드래곤 라스푸틴.]

콰득!

신의 손에 잡힌 라스푸틴의 코어가 부서졌다.

■■■■■!!

라스푸틴의 눈에서 보라색 안광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 * *

꾸득! 꾸드득!

어둠이 주변을 삼켰다. 석유처럼 끈적거리는 어둠은 주변 일대를 집어삼키며 서서히 그 영역을 확장시켜나갔다.

"으아악!"

"시, 싫어어어!"

미처 피하지 못한, 그리고 어둠의 확장 속도에 따라잡힌 이들이 전부 짙은 어둠에 파묻혔다. 어둠은 사람들의 전신을 감싸안았고, 사람들은 마치 검은 광택을 내는 마네킹처럼 굳어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모두 도망쳐!"

양 허리에 어린 집사 둘을 들쳐맨 수보르프가 남아있던 마력을 짜내어 고함쳤다. 상대가 라스푸틴이건 뭐건 일단 저 불길한 어둠으로부터 도망쳐야했다.

끄오오오오!!

거인 라스푸틴은 어둠에 빠진 사람들을 흡수하며 점점 그 몸집을 불려나갔다. 10m, 15m, 점점 그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어느덧 별궁의 첨탑을 가슴께에 둘 정도로 그 크기가 거대해졌다.

"이건...!"

"어둠의 거인?"

관악에서 나타났던 화염 거인의 형태와 너무나도 흡사했다. 하지만 다른게 있다면 눈앞의 이 거인은 보는 것 만으로도 혐오감과 구토를 일으키게 하는 더러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

"우웁!"

비위가 약한 이들이 하나둘 손으로 입을 잡고 구역질을 했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덮어버릴 정도로 상대의 기운은 역했고, 거인은 제자리에 잠시 멈춰선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우웨엑! 으, 으아악?!"

자신도 모르게 구토한 이들이 고개를 든 순간은 이미 늦었다. 꿀렁거리는 어둠은 발이 멈춘 이들을 잡아 자신의 뱃속으로 집어삼켰다.

꿀럭, 꿀럭!

어둠의 거인이 두 다리를 벌리고 섰다. 매끈하던 신체는 흉흉한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등에는 박쥐와도 같은 피막의 날개가 펼쳐졌다. 머리에는 산양처럼 휘어진 뿔이 돋아났고, 마지막에는-

쯔우우욱-!!

"히이이이이익!!"

잘려나간 고간에서, 거대한 굵기의 드래곤이 뱀처럼 솟아나와 포효했다.

캬아아아아악!!

마룡은 밤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괴물에게서 느껴지는 마력 반응에 가슴이 철렁내려앉았다.

"암마룡...?"

차원문을 통해서나 나타나던 암마룡과 달리, 눈앞의 괴물이 가진 마력 반응은 SS.

"으, 으아아악!!"

암마룡 라스푸틴이 입을 쩍 벌리며 사방으로 브레스를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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