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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61화 (261/1,497)

〈 261화 〉1부 12장 7

환룡단의 괴인들은 봉효에 의해 한 번 '걸러진' 이들로, 모택평의 명령에 의해 악행을 하기는 하였으나 완전히 타락하지 않은 회색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피닉스가 굳이 데려온 '푸른 깃털'은 엄연히 시커먼 속내를 가진 악인들이었다.

자신의 형기를 줄이기 위해 선의철과 청송의 명령을 자행하였으며, 그 마지막 명령은 서울의 주민 학살과 큐브의 회수였다.

피닉스는 광검과의 일전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관악에서의 듀라한 소동처럼 그들의 죽음 마저 이용하였다. 푸른 깃털들이 간부의 자리에 오른 궁성을 꼬셔서 반란을 일으키려했던 것도 가만히 내버려뒀다.

과연 그들은 갱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피닉스는 악인들을 상대로 일종의 '실험'을 했고, 그 실험은 보기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

헬멧을 쓴 괴인은 피닉스의 명령을 다시금 상기했다. 별궁 안의 사람들을 별궁 바깥으로 빼놓을 것. 환룡단과 연계하여 '죽이지 말 것'.

그러나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피닉스는 뒷감당을 꺼려하여, 그 힘을 과시하기를 두려워하고 자제하고 있다.

'병신같은 놈.'

괴인으로서, 그리고 전직 빌런으로서 결코 수긍할 수 없는 행보였다. 세계를 경천동지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힘을 과시하여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면 되는 일이 아닌가. 자신은 오를 수 없는 SS급이라는 경지에 올라놓고, 하는 짓은 여자들 치마폭에 갇혀 헬렐레하는 자의 아래에 있기란 고역이며 굴욕이었다.

'엿이나 먹으라지.'

그래서 괴인은 피닉스의 명령을 거스르고 그의 얼굴에 먹칠을 하기로 했다. 자신을 감시하는 환룡단의 유령이 사람을 밖으로 옮기는 사이, 그는 소란에 한껏 경계하고 있던 집사의 앞에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비, 비상!! 별궁에 괴한이 침입, 커흑!"

집사 한 명이 스마트 워치에 괴인의 침입을 알리고 기절했다. '죽이지 말라'는 명령 때문에 집사의 눈 앞에서 가시돋힌 주먹은 멈췄으나, 집사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혼절해 쓰러졌다.

"네 놈! 도대체 무슨?!"

집사를 공격한 괴인을 따라오던 환룡단의 단원 <사재>가 실체를 갖추며 화들짝 놀랐다.

애애애애앵-------

이미 그들의 주변으로 고막을 찢는 비상 부저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뭘. 테러 집단이 테러를 한 거 가지고."

집사를 죽이려했던 괴인, <철표> 박성태는 부들부들 떨리는 자신의 손을 보며 자조했다.

"씨발. 절대명령권이라더니, 어기니까 바로 조지려고 하네."

박성태를 구성하고 있던 몸의 아래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어느때보다도 흉흉하게 피어오르는 창염은 명령을 어긴 부하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처럼 타올랐다.

"크흐흐, 하지만 그래도 목적은 완수했다. 어디 엿 먹어봐라, 새새끼. 크하하! 하, 하하...아아아아악!!!"

박성태는 불꽃에 타들어가면서도 배를 잡으며 웃었다. 그 웃음이 곧 이루 말할 수 없는 비명이 되었고, 사재는 그걸 옆에서 뜬 눈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아아아악! 아파, 뜨거워!! 살려줘어어!!"

"큭!"

사재는 생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박성태에게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으나, 소란에 복도를 달려오는 이들을 보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뭐, 뭐야?!"

"방화범인가?!"

"일단 제압해!"

경비병들이 총을 쏘고, 집사와 메이드가 이능력을 발휘해 박성태를 제압하려 들었다.

"아파, 으아아, 아아아악!"

박성태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이능력을 사용해 공격을 방어하려 들었다. 피부를 감싸는 강철은 탄환과 총칼을 능히 막아냈다.

"A급?!"

"도대체 무슨?!"

별궁을 지키던 블라디미르 가문의 일원들은 눈앞의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A급 이능력자가 푸른 불꽃에 타들어가며 회색의 쇳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광경은 이능력이 있는 이 세상에서도 가히 초현실적인 상황이었다.

"끅, 끄어, 커헉...."

박성태는 단말마를 내뱉으며 끓는 쇳물로 남아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도와줄 이는 없었고, 결국 그는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과 함께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톡.

검은 코어 하나가 녹아내린 쇳물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사람이 죽고 그 자리에 코어가 남아있는 것에 경비원들은 등에 소름이 돋았다.

"이거...도대체 뭐야?"

그 누구도 쇳물 사이에 반짝이는 A급 코어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타닥, 타닥.

쇳물을 장작삼아 타오르며 코어를 지키는 푸른 불꽃은 그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단 가주님께 알려! 별궁에 괴한이 침입!"

"이유는.... 몰라! 하지만 이런 자들이 더 있을 수 있다! 조심해! 다른 별궁에도 연락을 넣어!"

박성태의 괴사에 당황한 것도 잠시, 경비들은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고 경비 태세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제서야 다른 별궁에서 아무런 연락이 회신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거...무슨?"

카앙!

유령이 되어 집사 한 명의 뒤를 점한 사재가 실체를 갖추며 집사의 뒷목을 내리쳤다. 또다른 A급 이능력자의 등장에 경비들은 즉각 무기를 들어올려 대응했다.

빠--악!

총검을 든 경비의 뒤에서 붉은 핼멧의 괴인이 등을 덮쳤다. 사재는 집사와 메이드들을 삽시간에 제압해 기절시켰고, 두 A급 괴인은 서로 복도에서 대치했다.

"......너도 헛짓을 할 생각이냐?"

사재의 말에 붉은 핼멧의 괴인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목을 그은 뒤, 입을 가리키고 X자를 그렸다.

"아. 너 대가리 없다고?"

끄덕끄덕. 사재는 사전에 들은 정보를 통해, 철표 박성태만이 머리가 있음을 전해들었다. 그는 상대를 어떻게 부를지 고민하다가, 핼멧의 붉은 색을 보고 기절한 이들을 가리켰다.

"너도 명령을 어기고 이들을 죽일 셈이냐?"

붉은 헬멧은 쇳물이 가득한 검은 코어를 집어들며 고개를 가로저은 뒤, 바이저 속에서 빛을 뿜어 글로써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난 뇌절 안 함ㅇㅇ]

"......뇌절?"

이해할 수 없는 표현에 사재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코어를 품안에 챙긴 붉은 핼멧은 피닉스의 명령대로 저택의 사용인들을 하나 둘 집어들어 밖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모르겠다."

나는 본 대로 얘기해야지. 사재는 자신이 본 것을 똑똑히 전하기로 마음먹고, 붉은 헬멧과 함께 저택의 경비와 사용인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장소는 특정되었다. 나는 별궁에 남아있는 인원이 전부 다 빠져나가도록, 투입된 청화단과 환룡단에게 지시를 내렸다.

"별궁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강에 집어던져서 쫓아내. 죽이지는 말고."

"알았어...."

환룡은 내 지시를 빠르게 전달했고, 환룡단의 유령들은 빠르게 별궁 안을 제압해 인간들을 밖으로 집어던졌다.

"그런데 괜찮아? 이러면 들키는데.... 행여나 깨어나기라도 하면?"

"들킬 리는 없다. 작전대로만 수행하면."

".....알겠어."

환룡은 성 밖으로 쫓아내는 이들이 행여나 의식을 차릴까 염려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강물 위에다 집어던지는 꼴이니 익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다른 별궁을 수색하고 있는 이들은 전부 호수로 집합. 투입된 인원들이 쫓아낸 자들을 뭍에 옮긴다."

다른 별궁을 수색하던 괴인들이 내 지시에 하나 둘 호수 근처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나는 별궁에 사람이 완전히 빌 때 까지, 별궁에서 사람을 빼내는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조금 시간이 걸리네."

"광검이 없었으니 제압에 시간이 걸리는 거지."

청화단과 환룡단에 의해 대부분 특수부대 훈련을 받은 인간이나 그에 준하는 신체 능력을 지닌 이들이었고, 아무리 괴인들이라도 그들을 쉽게 막기는 무리였다.

"걱정마라. 일부러 걸리지 않는 이상 계속 저들 모르게-"

애애애애앵-----

말이 화근이었다. 내가 괜한 말을 함과 동시에 블라디미르 저택 전체에 괴한의 침입을 알리는 비상이 울려퍼졌다.

"나, 나 아니야...!"

환룡은 재빨리 손사레를 쳤다. 환룡의 불안하지만 확고한 눈동자는 자신이 실수하지 않았음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 안다."

"내 부하들도 실수 안 했어...!"

"알아. 그러니까 겁먹지 마라."

나도 모르게 내 표정이 딱딱해졌는지, 나는 굳어버린 환룡의 어깨를 토닥이며 환룡을 진정시켰다.

"그래. 언제 한 번 나를 엿먹이려고 사고 칠 줄 알았지."

환룡단이 실수를 한 게 아니다. 청화단이 걸린 것이다.

정확히는 '푸른 깃털'이 나를 엿먹이기 위해 일부러 적에게 걸린 것이다.

"썩을 놈."

역시 쓰레기같은 빌런들은 거두는 것이 아니었다. 정상참작조차 되지 않는 놈들을 시간을 두고 갱생시켜보려고 했던 내 계획은 전면 백지화되었다.

".......가을이가 자기 죽였던 거 기껏 봐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 군."

"뭐?"

블라디미르 가문의 집사에게 걸린 괴인은 <철표> 박성태로, 서울 수복 작전에서 큐브 회수를 위해 국회의사당에 투입되었던 소나무 부대 출신의 이능력자였다.

"나를 제대로 엿 먹였어."

"이, 이거 어떡해? 일단 물러나야 하지 않아?"

본궁의 기운도 심상찮다. 고작 침입자를 알리는 비상이 떨어졌을 뿐인데, 벌써부터 본궁에서 분주한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차라리 잘 됐다. 지금이 기회야."

"기회라니, 꺄악?!"

나는 우리가 있었던 흔적을 지운 뒤, 환룡을 끌어안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도중에 유리창 하나가 부서졌지만, 나는 금세 괴인의 형태로 바꾸어 수직으로 솟구쳤다.

[밤이라서 아쉽군. 낮이었으면 모습을 숨길 수 있었을 텐데.]

밤하늘에 대놓고 날개를 펼치는 바람에 소동에 뛰쳐나온 이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다. 환룡은 진즉에 영체가 되어 모습을 숨겼고, 결국 나만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무슨 생각이야...? 모습을 드러내는 건 계획에 없었잖아?"

[청화단의 모토가 하나 있다. 언제나 임기응변으로 작전에 임할 것. 계획은 언제나 틀어지기 마련이야.]

최종 목적만 달성한다면 그 과정은 계획과 달라져도 괜찮다. 어차피 작전은 예상한 것이든 예상하지 못한 것이든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고, 다행히 지금의 상황은 통제 가능한 변수다.

[그럼 가지. 루살카를 만나러.]

"만난다니, 저거 안 보여...?"

환룡은 첨탑 창문에 반짝이는 얼음의 벽을 가리켰다. 루살카 답게 S급 이능력자가 친 얼음의 벽은 분명히 결계가 틀림없었다.

"이제 어쩔 생각이야? 루 언니 결계면 깨지 않는 이상 열기 어려울텐데. 그렇다고 가서 문 두드리고 기다리기에는 시간도 없어."

[깰 건데.]

"......?"

나는 의문을 표하는 환룡을 향해 손가락으로 이마를 튕겼다.

[힘으로 깨버리고, 당사자는 납치한다.]

"......왜?"

[우리 작전의 핵심은 두 가지다. 라스푸틴의 거시기를 자르는 것, 그리고 루살카를 구출하는 것. ...구출한다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첨탑 상공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창문에 반짝이는 얼음의 결계가 훤히 눈에 들어왔다.

[결계가 사라지지 않고는 루살카와 만날 수 없다는 거다. 그렇지?]

나는 다른 별궁에서 이쪽의 섬까지 달려오고 있는 광검과 수보르프를 위해, 내가 미리 결계를 깨기로 마음먹었다.

[어이쿠, 마침 눈 앞에 유리창이 있군.]

"뭐? 너 지금 뭐하려는-"

나는 허공을 발로 툭툭 차며 발끝에 마력을 실었다.

[꽉 잡아라.]

허리를 끌어안은 환룡을 앞으로 잡아당겨 내 가슴에 안은 뒤, 날개를 활짝 펼쳐 수직으로 솟구쳤다가 미끄러지듯 날개를 접었다.

[내 결계는 안 깨져도 남의 결계는 깨뜨려야 제 맛이지!]

"이, 이런 미친, 꺄아악!!"

환룡이 나를 끌어안으며 비명을 질렀고, 나는 그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다리를 쭉 뻗었다.

"무슨 수로 깨려는 거야?!"

[결계를 어떻게 깨? 그야 간단하지!]

마력을 모아 힘으로 깬다.

[그냥 깬다!]

S급의 결계니까, SS급의 마력으로 일점돌파하여 깨트릴 뿐.

와장창!

가속도까지 붙인 낙하에너지가 발끝에 실려 유리창을 깨뜨리고, 얼음으로 된 결계까지 박살을 냈다. 나는 환룡의 몸을 붙잡고 바닥을 구르며 카페트 위에 착지했다.

"......너희 지금 뭐하는 거야?"

영혼없이 침대 위에 주저앉아있던 루살카가 나와 환룡을 발견하자마자 당황해 눈이 떨렸다. 나는 몸에 묻은 유리조각을 불꽃으로 태우며 카페트에 두 팔을 대각선으로 뻗으며 섰다.

[오랜만이군, 예비 신부님. 그래서 착지 점수는 몇 점?]

"......왜 온 거야."

[왜 왔냐니. 그야 간단하지.]

나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흔들었다.

[신부 납치하러 왔다. 결혼식은 한국에서 해야지?]

"......흑!"

루살카가 웃으며 눈물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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