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242화 (242/1,497)

〈 242화 〉1부 11장 12

14일.

협회와 원탁의 향방이 정해지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렸고, 나는 그 동안 놀고만 있지 않았다.

평양 일대에 다시 생성된 괴수들의 제거.

압록강에 박아둔 미니 피닉스 둥지에 모인 코어의 회수.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위한 부지 확보.

동작 지하에 뚫린 토굴의 개조.

언제나 쉴틈없이 정말 많은 일을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한반도 내'에서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괜히 내가 어줍잖게 움직였다가는 협회와 원탁이 나에 대하여 삐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최대한 몸을 웅크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했다.

가장 중점적으로 한 것은 다른 간부들의 위치 확인.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펜릴은 잠적해버렸고, 아지다하카와 히드라는 애초에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카르나는 깨어났는지조차 불분명. 아마 깨어났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알리는 때는 2022년이다.

14일간 나는 그 어떤 간부의 행방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회담을 하고 난 뒤, 나와 동맹관계에 있는 간부들을 움직였다.

석하랑.

원탁과 협회라는 양 측에 적을 두고 있는 2대째 설야의 루살카에게 부탁을 하여,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간부나 큐브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찾아오면 어떤 부탁도 들어주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 * *

"햐읏, 흐아.... 이거 너무 좋다...."

"움직이지마라, 칫. 내가 왜 밑에 깔려야하는지...."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하지 않나? 알려주지 말까? 오빠야 또 손가락 놀제?"

"......세상 어느 오빠한테 이런 일을 시키는 여동생이 어디있다고."

나는 빈백에 누워있었고, 석하랑은 내 위에 누워버렸다. 그리고 나는 석하랑의 교환 조건에 의해, 석하랑의 앞부분을 마사지하고 있다.

"흐흥, 원래 좋아하는 사람이 마사지 해주면 큰다는 속설도 있다 아이가. 흐응, 새끼 한 두번 만져본 솜씨가 아니네. 히힛."

"......."

나는 석하랑의 꼭지를 살짝 비틀었다. 마사지와는 확연히 다른 짓이었지만, 석하랑은 그조차도 즐기며 기뻐했다.

"하으으...."

"만져준다고 진짜 커질거라고 생각해?"

"몰라.... 일단 커질 때 까지 해보는 거지. 또 손 멈췄다. 계속 하거라."

"......."

석하랑은 큐브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채 나를 놀리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어쩔 수 없이, 석하랑이 원하는대로 그의 흉부 마사지를 계속해야했다.

"그래서 내가 알려준 곳에는 있더냐."

"흐응, 어. 덕분에 수중 다이빙 즐기고 왔다. 정령 미쳤던데? 무슨 지하 1만미터까지 내려가고 말이야."

"SS급 수준이면 거의 반은 신이지. 거기에 너는 정령아니냐."

큐브 하나.

오직 물속성 SS급 중에서도 석하랑만이 갈 수 있는 장소.

마리아나 해구의 지하 1만 990m 깊이에 있는 챌린저 해연에 큐브 하나가 굴러 떨어져 있었다. 석하랑은 물속성 정령이라는 권능을 이용해, 심해어들을 뚫고 해저로 내려가 큐브를 주워오는데 성공했다.

"다른 간부들이 못 찾은 것도 당연하네. 흐음."

"그 외에 다른 곳들은?"

"없더라. 싹다 털렸다. 네 생각대로 간부들, 큐브 몇 개 가지고 있는 거 확실한 듯?"

"......그런가."

최종적으로 32개가 전부 모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이거 볼래? 내 지하 내려갔다가 새 친구 하나 사귄 거."

석하랑은 심해에서 찍은 사진들을 내게 자랑하며 깔깔거렸다. 석하랑의 손목에는 내 것과 마찬가지인 마도기어가 걸려있었고, 히카리 수제 기기 답게 에베레스트 높이를 거꾸로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마도기어는 고장없이 잘 작동 된 모양이었다.

"이거 봐봐라. 니 닮았제?"

"죽을래?"

"햐읏! 으, 흐으...."

석하랑은 자신의 가슴이 내 손에 주물러지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어그로를 끌어서 일부러 내가 강하게 자극하기를 바라는 걸까.

절대로 큐브 때문이 아니었으면, 이런 서비스도 없었다. 이건 창염도 정상참작을 해 줄 일이다.

저 큐브를 얻어야 창염을 딸기뷔페로 데려가니까.

"내 덕분에 지금 해양생물학자들 아주 난리나 난리. 심해어들 새로 봤다고."

"심해괴수들이겠지. 보아하니 하나하나가 S급인데."

"어. 그렇긴 한데.... 그냥 평범한 물고기던데? 막 먼저 안 달려들고 온순해가지고 그냥 같이 사진만 찍고 왔다."

석하랑은 자신이 발견한 S급 심해괴수와 찍은 사진을 보였다. 아귀같은 외모에 초롱처럼 반짝이는 발광체를 빛삼아서 셀카를 찍는 석하랑의 대범함은 전세계에 큰 이슈를 몰고왔다.

"이건 내 좀 억울하다. 다들 아쿠아리움가면 물고기들 배경으로 하고 사진 찍는다 아이가. 내가 한 게 그거랑 뭐가 다른데?"

"스케일의 차이지. 세상 누가 심해 S급 괴수들이랑 사진찍고 놀거라고 생각하겠냐."

"칫. 그래도 걔들 막 사람 죽일라카고 그러는 애들도 아니더구만. 내 보자마자 공격할라 했으면 대가리에다가 꼬챙이꿰어가 바로 조졌다."

"...그래, 그래. 잘 했다. 겸사겸사 전 세계 강 돌아다니면서 괴수들 청소도 잘 했고."

"히힛."

내가 칭찬하듯 밑가슴을 두드리자 석하랑은 좋다고 헤실거렸다. 미래의 석하랑도 그렇지만, 석하랑은 참 스킨십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그래서 하나는 마리아나 해구에서 얻었고, 또 하나는 어디서 얻었는데?"

"아, 이거?"

석하랑의 표정이 조금 미묘해졌다.

"인도 지나갈 때 문화탐방같은 거 해가지고 겐지스 강에 있었는데, 어떤 꼬마애가 나한테 주더라. 언니야 여기 온 기념으로 선물이라면서."

"......꼬마애?"

"어. 생긴 건 되게 야시꾸리한데 뭔가 재미있는 장난감 같은 거 아이가. 그냥 관광 기념품 같은 건 줄 알았는데, 막상 받고 나니까 큐브더라. 으으, 세상 참 무섭데이."

"그 꼬마애가 어떻게 생겼는지 혹시 기억하나?"

"벌써 열흘도 전의 일인데.... 아."

석하랑이 허공에 얼음조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어 자신에게 큐브를 줬다는 그 정체불명의 소녀의 외형을 조각했고, 나는 석하랑의 가슴을 만지던 손으로 겨드랑이를 들어 바닥에 내팽겨쳤다.

"아야! 니 뭔데! 큐브 받기 싫나!"

"눈 앞에 두고도 보지를 못하네. 어휴. 이런."

"뭐, 뭔 소리꼬!"

나는 120cm도 되지 않을 작은 소녀를 가리키며 역정을 냈다.

"얘가 카르나다."

"뭐?"

"얘가 카르나라고! 개천광 카르나!"

"......."

석하랑은 자신이 조각한 얼음상을 가리키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암만봐도 유딩인데?"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정령은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그리고 너는 딱 보면 모르겠냐."

나는 카르나의 전신을 위아래로 가리켰다.

"저게 어디 어린애 몸이냐? 성인 여성 체형을 줄여놓은 거지."

"내, 내가 그걸 우예 아는데!"

"딱 보면 알아야지. 어휴. 루살카 딸내미면서 그런 것도 모르다니."

"그게 엄마랑 뭔 상관인데! 이게 지 엄마도 아니면서 남의 엄마 욕하는 거 봐라!"

석하랑은 루살카가 욕을 먹자 역으로 성질을 부렸다.

"울 엄마는 지금 러시아 공주님이니까 상관 없다 아이가!"

"말 조심해라. 너보다 고작 몇 살 많은 공주님인데, 21살 짜리 딸이 있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믿겠나?"

"그래도 엄마는 엄마지!"

"만나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면서. 쯧."

내 디스에 석하랑이 울긋불긋하다가 내 옆에 다시 주저앉으며 우울해졌다.

"글체.... 엄마긴 엄만데, 뭐 엄마랑 만난 적이 있어야 엄마라 카지."

"......우울하냐? 가슴 만질래?"

"아니. 가슴 만져줘."

나는 본부대로 석하랑을 오른쪽에 끌어안으며, 등 뒤로 뻗은 손을 빼내어 가슴을 움켜쥐었다.

"하아...."

"너도 참 별난 녀석이야."

"니 손 따뜻해서 좋다.... 암튼 엄마랑은 어떻게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고, 그나마 한다면 누가 소개를 해주면 마음이라도 편하다 아이가."

석하랑은 고개를 돌려 나를 째려봤다.

"니는 가족사라고 끼어들 생각이 없고, 엄마 남편은 지금 아직도 술 쳐먹고 있제?"

"엄마 남편이 네 아버지 아니냐."

"아빠가 뭐 아빠같아야 아빠지. 씨, 야."

석하랑이 몸을 옆으로 굴리며 내게 안겼다.

"니가 그냥 내 아빠하면 안 되나?"

"어디 말같지도 않을 소리를 하고 있어. 이게 죽을라고."

"왜? 니 정령 킬러 아이가. 같은 정령이면서 다른 정령 후리고 다니는 카사노바. 울 엄마도 혹시 미래에서 어떻게 했제? 글체?"

"까먹었냐. 네 엄마 미래에서는 고인이라고. 난 아나스타샤가 네 엄마인 걸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글나. 끙."

석하랑은 아쉬운 듯 혀를 찼다. 나는 석하랑에게서 조심스레 큐브를 빼앗아 내 손에 쥐었다.

"야! 니 왜 남의 걸 가져가는데!"

"이것 때문에 너도 지금 정신이 훼까닥 할 것 같아서 말이지."

화륵.

나는 큐브에서 흘러나오는 귀기를 정화했고, 석하랑의 흐리멍텅하던 눈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 내가 왜 니랑 이렇게 또 붙어있지?"

"참고로 말하자면 방금 전까지 가슴 만져달라고 엉겨붙었다."

"힉?!"

석하랑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움츠러들었다. 나는 그가 진정할 수 있도록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큐브라는게 이래서 문제야. SS급의 정신도 좀 먹어들어가는 아주 악랄한 물건이지. 뭐.... 그래봐야 너는 그 영향이 크게 가지는 않은 것 같지만."

"내, 내 큐브 가지고 계속 돌아다녔는데...?"

"나랑 이렇게 만나고 나서부터 긴장이 풀린 거지."

"......그건 또 그렇네."

석하랑은 이제 제법 진정한 듯 호흡이 안정되었다. 내가 계속 석하랑의 마력을 안정화시켰던 것도, 큐브의 영향으로 석하랑이 미쳐날뛸까봐 걱정이 되어 그랬던 것이다.

"아마도 가슴 안 만져줬으면 나를 덮쳐서 그보다 더한 짓거리를 해달라고 했을 걸."

"......뭔가 아닐 것 같으면서도 내가 할 것 같아서 무서운 말이네. 쯧. 쪽팔리게시리."

"걱정마라. 여기 너 말고 다른 사람 없다. 뭐...루살카와 모녀덮밥 하라는 말은 나도 좀 충격이었다만."

"덮밥...? 킥, 니 엄마 후리면 내까지 후릴 생각이었나?"

석하랑은 내 옆구리를 검지로 푹푹 찌르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젠장, 하나만 주워오지 왜 두 개나 주워와서는."

"왜? 두 개면 뭐 달라지나?"

"그래. ......정말, 이계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다만."

나는 은은한 조명처럼 반짝이는 큐브를 가리켰다.

"큐브 두 개가 모이면 주변에 상당히 에로사항이 많이 피어오르지."

"방금 뭔가 이상한 말을 한 것 같은데."

"어. 맞아. 지금 큐브 색깔 보이냐?"

"......뭔가 조명같은 느낌 아이가?"

나는 큐브를 천장으로 올렸다. 큐브는 천장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은은하고 화사한 빛을 뿌렸다.

"저거 무슨...."

"너 모텔 가본 적 없지."

"힉!"

석하랑은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무드등 같은 거다."

"니, 니 암만 그래도 글치, 이렇게 뜬금없이, 아, 아니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큐브에서 흘러들어오는 마력을 잘 읽어봐. 어떤지 말이야."

"......음."

석하랑은 자신의 몸에 닿는 큐브의 빛에 눈을 감고 집중했다. 큐브에서 흘러나오는 살의와 악의는 두 개가 모였을 때, 상당히 요상한 방향으로 주변을 몰고가기 시작했다.

"'보벼'...? '꽁냥대지말고 떽뜨해...?'

"이계신이 아주 변태같은 놈이라서 말이야."

석하랑은 대번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나는 허공에 띄워둔 큐브를 푸른 막으로 감쌌고, 우리 둘에게 영향이 없도록 멀리 내려놓았다.

"이제 좀 정신이 드나?"

"......이거 사람 되게 부끄럽게 만드는 마력이 있네."

"뭘. 그래도 이렇게 연소가 되니 망정이지. 당분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폭주할 일이 없을 거다. 당분간은."

나는 석하랑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석하랑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가, 헛기침을 하며 내 배를 톡톡 건드렸다.

"이, 있다아이가. 그럼 아까 정령은 자기 신체 조정이 가능하다고 했었잖냐."

"그래."

"그럼 나도 슴.... 조정 가능하나?"

"......."

석하랑은 얼굴을 붉히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그, 내가 스스로 안 되면 네 도움이라도 받아야 할 거 아이가. 응? 적어도 외형은 같은 여자끼리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고. 그체? 니 방금 내 만졌으니까 어떻게 될 지는 모르-"

석하랑은 자신의 둘레를 가늠하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빠야!"

석하랑이 내 위를 덮쳤다.

"내 0.2cm 늘었다!"

"......밥 먹어서 살찐 거다. 마사지 받아서 부어오른 거야. 그리고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쓸데없는 지식이니까 좀 비켜주지 않겠나."

"흐흐, 니 오늘 밤은 뒤졌다. 진짜."

석하랑은 나를 내려다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내 5cm 늘려주기 전까지 니는 오늘 이 방 못 나간다."

"큐브는 분명 억제했을텐데...?"

"큐브고 나발이고."

석하랑이 나와 숨결이 닿을 만큼 얼굴을 내렸다.

"당장 내 가슴 키워주지 못 해?"

"......이능력을 키울 생각은 안 하고. 하아."

"니 여기서 튀면 내 진짜 가만 안놔둔다."

석하랑은 샐쭉 웃으며 앙큼한 협박을 했다.

"니 어디 한 번 설야의 루살카가 폭주하는 거 보고싶나? 어?"

"......쯧."

결국 나는 밤새 석하랑의 폭주를 제어해야했다.

큐브를 두 개나 얻어왔으니, 창염도 이 정도는 양해해주리라.

"어! 1cm 늘었다! 꺄아아악!!"

"......."

아무래도 설야의 폭주는 생각보다 오래 갈 것 같은 모양이었다.

하여튼.

나는 석하랑의 도움으로 큐브 두 개를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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