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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41화 (241/1,497)

〈 241화 〉1부 11장 11

큐브를 막상 회수하기는 했지만 마땅히 사용할 곳이 없다.

1차적으로 나는 의도치않게 창염과 마주할 수 있었고, 2차적으로 큐브를 쓸만한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창염을 다시 불러내자니 현상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불러내냐고 화를 낼수도 있고, 혹시나 모르니 보험으로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했다.

'다행히 협회는 나와 함께 서기로 했다.'

어찌보면 상생하기로 한 거고 어찌보면 청화단을 가져다 바치고 나만 빠져나온 것 같지만, 나는 백희아가 주는 국뽕을 피하지 않고 즐기기로 했다.

- 청화단 전부 협회 소속 된 거 실화냐

ㄴ 응 그래봐야 소나무 부대 Mk.2

ㄴ 나 같으면 청화단 몰고가서 신서울 점령한 다음에 저런 놈 키보드를 분질러버렸을텐데

ㄴ 국가를 위해 빌런들을 하나로 규합해 나라에 바친 짱닉스니뮤ㅠ

"......뭔가 나라에 바쳤다고 하니까 갑자기 꼬운데요."

여러모로 상당히 기분이 묘했지만, 다행히 청화단의 헌터 길드 합류에 대해 여론은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청화단의 뒤에 <피닉스>가 존재함을.

그리고 백희아와 은유하의 여론전에 의해, <피닉스>는 청화단을 나라에 떠넘기고 홀로 뒤에서 암약하는 존재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이른바 비밀병기라는 거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비밀이지만요."

하늘성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청화단이 뒤로 몸을 숨긴 것 처럼, 청화단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피닉스가 뒤로 몸을 숨긴 택이다.

피닉스가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청화단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원탁에서 청화단을 '공적'으로 세울 일도 없다.'

"원탁이 세계 공적으로 내세울만한 존재들은 다크 레기온의 일곱 간부가 될 테니까요."

설야의 루살카는 사망.

혼돈환룡은 중국에서 격퇴.

그러니 남은 다섯 명의 간부들을 체포하려 들 것이고, 나는 원탁에 의해 마지막 순위로 밀리게 될 것이다.

"그런 달콤한 미래는 내게 있을 수 없으니, 미리미리 준비해둘까요."

나는 부산으로 향했다.

* * *

<7월 19일 저녁 6시, 석하랑 자택.>

"닌 그래서 또 왜 오자마자 남의 집을 청소하고 난린데?"

석하랑의 집은 오늘도 여전히 쓰레기장이었다.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SS급은 원탁이 되어서도 딱히 생활력이 달라지지 않았다.

"또 배달 시켰나?"

"내가 요리할라고 장보러 갈 수도 없는 노릇 아이가."

"인터넷 대형마트 장바구니에 담아서 주문하면 되는 것을. 쯧."

"......그렇게 해봤는데 다 이꼬라지 났다."

석하랑은 냉동실의 문을 열었다. 나는 각진 얼음으로 차곡차곡 쌓인 음식물 쓰레기에 냉장고 문을 덮어버렸다.

"이 냉장고는 버리는 거로 하지."

"니 미쳤나? 이거 유성에서 파는 삼백만원 짜리다."

"삼백만원짜리를 쓰레기통으로 만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석하랑은 침묵했다. 나는 냉장고에 있는 부재료들을 겨우겨우 살려내 인간이 먹을 수 있을만한 요리를 만들어냈다.

다행히 냉장고는 블루베리 음료들 때문에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안찝찝한가? 저렇게 놔두면."

"바빠 죽겠는데 뭔 소리고.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이 불려다니는 지 아나."

7월 1일 이후 오늘까지 무려 18일 가량.

내가 석하랑에게 다시금 세계의 진실을 알린 이후, 나는 석하랑과 처음으로 부산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매일매일 원탁들 만나러 다닌다고 사진만 거의 수 백장 찍었을 끼다. 아이고, 나 죽네에에!"

석하랑은 바닥을 뒹굴며 앓는 시늉을 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음식들의 위에 마력을 펼쳐놓은 뒤, 석하랑의 뒤에 올라타 마사지를 했다.

"아이고.... 살 것 같다 진짜."

"비행기를 안 타고 전세계를 날아다니니까 그런 거다. 마력도 근육같은 거니, 너무 많이 쓰면 혹사당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럼 마력 너무 안 쓰면 마력도 손실이 오나? 근손실 같은 거."

"...손실되지는 않아도 혈관에서 흐름이 굳어버리지. 한 번 뚫린 맥은 다시 닫히지 않지만, 다시 흐름을 일깨우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거다."

나는 석하랑의 혈관을 따라 손을 움직이며 마력의 순환을 도왔다. 내 마력의 인도에 따라 석하랑의 마력은 전신을 천천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흐아아, 온천 온 것 같다...."

"사람을 마사지사 취급하더니 이젠 온천 취급인가. 나 참."

"그래도 따신 건 따신 기다. 하아, 니 어차피 밖에 못 나오는 거 내 전속 피로회복제 하면 안 되나?"

"어디 말이 되는 소리를."

나는 점혈을 찌르듯 석하랑의 등 아래를 찔렀다. 수면바지 위로 살짝 드러난 엉덩이골 위가 찔리자, 석하랑이 고개를 안으로 푹 처박았다.

"흐으응...."

석하랑의 목소리에는 비음이 흘러나왔다.

"너 설마 이걸로 느끼거나 하는 건...."

"계, 계속."

석하랑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내게 마사지를 재촉했다. 나는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 정도 유혹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나. 여기서 그만두는 걸 추천한다만."

"이걸 우예 그만두는데. 빨랑 해라. 내 밥 무야 한다."

"...누가 차려놓은 건데."

나는 본격적으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 전체를 스캔하듯 손으로 석하랑의 피부 위를 쓸었고, 개중에는 제법 민감한 부위도 스쳐지나갔다.

"하으으, 흐아앙."

석하랑은 이제 대놓고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나를 뒤돌아보는 눈빛은 여우처럼 샐쭉거리고 있었다.

"니 왜 궁디는 피하는데."

"발랑까져가지고."

"왜? 내는 그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갑제? 아니면 내한테 반할까봐 쫄았나?"

"엉덩이 만진 것 가지고 내가 마음이 변했으면 이 세계는 진작에 망했다, 이것아."

나는 몸을 일으켜 석하랑의 엉덩이를 발로 밟았다. 석하랑은 하반신이 흔들거림에도 그것을 마사지 인양 긴장을 풀고 있었다.

"이건 이거대로 좋네.... 흐흐."

"......진짜 하나같이 왜 다들 이 모양 이 꼴인지."

나는 석하랑부터 시작해 다들 왜 자꾸 이러는 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섹스 어필로 나를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응, 엄청."

석하랑은 정말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에잇."

석하랑은 내 발목을 잡고 몸을 비틀었다. 마력까지 사용해 잡아당기는 통에, 나는 180도 몸을 뒤집은 석하랑의 위에 포개지듯 쓰러졌다.

"흐흐, 니도 좋아고 앵기는 거 아이가."

"내가 버티면 너 다치니까 그런 거다."

마력을 사용해서 버텼으면 석하랑이 다쳤을 것이다. 나는 석하랑의 위에서 그냥 긴장을 풀어버렸다.

"그래. 너 좋을 대로 해라. 그래서 내 적만 되지 마라."

"아이고, 우리 피닉스 님 슬슬 쫄리나보네. 내가 원탁이라고 적이 될까 무섭나?"

"그래. 무섭다. 됐냐?"

"히히힛."

내 빈 말에도 자신을 인정하는 말에 기쁜지, 석하랑은 나를 인형처럼 끌어안고 흔들었다.

"하아, 치유된다아아...."

"괴인형으로 바뀌어도 그런 말이 나올까."

"뒤질래. 그대로 있어라. 흐아아, 이 포동포동한 거 봐라.... 흐흐흐."

석하랑은 변태처럼 내 허리를 잡았다. 음흉하게 웃는 게 광검을 노리는 루살카의 얼굴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네가 힘써줬으니까 이런 것 까지 허용해주는 거다. 안 그랬으면 죽었어 아주."

"야. 그래도 겉모습은 여자인데, 같은 여자끼리 궁디랑 가슴 만져봐도 되나."

"개소리. 이미 지금 닿고 있잖나."

석하랑은 나를 끌어안고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엎어져있으니 당연히 가슴이 겹쳐져 있었다.

"쯧, 이 봐봐라. 지 부탁 들어준다꼬 내가 세계를 한 바퀴 돌고 왔는데 그런 부탁도 못 들어주나."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지."

"왜? 니 몸 만질 수 있는 사람은 니 찐사랑만 있다 이거가?"

"당연하지. 지금 이렇게 하는 것도 내가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다른 이라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석하랑은 반인반령인 만큼, 다른 이들에 비해 그다지 심한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정령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조카같은 관계라서 그런가."

"닌 조카를 상대로 욕정하고 임신시켰나?"

"...나 아닌데."

"퍽이나. 다른 언니야들은 속여도 내는 못 속인다. 니 남자다. 백 퍼센트."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몸을 붙이고 있는 만큼 코어의 박동이 빨라진다면 금방 눈치를 채일 것이다.

"아니면 어쩔건데."

"아니면 아닌대로 생각하는 거지. 괜찮다. 내도 정령아이가. 내가 남자가 되면 되는 기지 뭐.

"그렇게 내가 좋나?"

"응, 엄청."

석하랑은 내 얼굴을 붙잡고 시선을 맞췄다. 바다처럼 고요하고 깊은 눈동자에 푸른 불꽃이 비치고 있었다.

"첫 인상은 개쓰레기였어도.... 니 덕분에 이렇게 세계 최강도 되어보고 여러모로 도움 많이 받았다 아이가. 뭐...이성적으로 사랑하냐고 묻는 다면 그건 별개지만."

"......??"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석하랑은 내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흐흐흐, 임마 완전 당황하는 거 봐라. 니 코어 지금 미친듯이 뛰고 있다."

"아닌데."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데 개뿔. 내는 있다 아이가, 니랑 이렇게 투닥거릴 때마다."

석하랑은 상체를 일으켰다. 졸지에 내가 그에게 안긴 형상이 되었다.

"꼭 오빠가 있으면 이런 느낌이다 싶겠더라. 응, 가족."

"세상에 오빠랑 여동생이 이렇게 끌어안고 있는 가족이 어딨나."

"히메지 남매는 그렇던데."

"......그건 걔들이 특이한 거고."

"그럼 우리도 특이한 사이지. 안 글나? 내 S급 때는 니 죽일라고 온갖 지랄을 하다가, SS급 되니까 생각이 좀 바뀌더라."

석하랑은 표정을 굳히며 내 고개를 다시 잡았다.

"만난 지 고작 몇 달도 안 지났지만, 네가 내 가족이 되어줬어. 지금도 그렇잖아?"

석하랑은 사투리까지 풀어버리며 식탁을 가리켰다.

"안 그래도 머리아플텐데 굳이 이렇게 부산까지 내려와서 나랑 밥 먹어주는 사람이 어디있니? 안 그래?"

"......그건 너 생활력이 개판이라 그런 거다."

"그래, 그래. 나 생활력 개판이니까 살림 잘하는 가족이 옆에서 보듬어줬으면 좋겠네. 음, 내가 이제는 서울에 있어도 부산 커버 가능하니까 내가 서울로 올라갈까? 나한테도 펜트 하우스 줄래?"

"......가족인가. 허, 참."

묘한 인연이 생겨버렸다. 나는 석하랑의 어깨를 잡고 일어서며 몸을 떨어뜨렸다.

"밥 식겠다. 일어서."

"말 돌리기는."

나와 석하랑은 식탁에 마주앉았다. 단촐한 밥상이었지만 석하랑은 군말없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있다 아이가."

"또 사투리 돌아왔네."

"신경 끄라. 내 집에서 내 맘대로도 몬하나. 참 내. 먹으면서 들어래이. 원탁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

나는 꿀꺽 밥을 삼켰다. 이 말을 듣기 위해 부산까지 내려왔고, 석하랑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

"그래. 원탁의 결정은?"

"......축하한다."

석하랑은 영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향해 손뼉을 쳤다.

"니 원하는 대로, 세계 멸망에 대해 전 세계에 알리기로 했다."

"......세계가 혼란에 빠지겠군. 좋아."

멸망을 앞둔 인간의 행동은 과연 어떻게 될까. 스피노자가 말한대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지, 아니면 전기톱으로 잘라버릴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덕분에 간부들의 움직임도 잘 드러나겠군. 펜릴부터 시작해서 꽁꽁 숨어버리더라니. 흐흐."

"전세계를 돌아봤는데도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더라. 니 혹시 구라치는 거 아니제? 진짜 간부 셋 다 활동하는 거 맞나?"

"그건 확실하다. 내가 직접 그 놈들을 때려잡았으니."

"그랬던 아가 공구리쳐져서 바다 깊숙히 처박혔나. 쯧."

"......."

나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창염에 대한 사항을 알려줄 수 없으니, 나는 방심하다가 결계에 갇혀버린 놈이 되어버렸다.

"암튼 니는 진짜 복받은기다. 간부들끼리 아귀다툼 벌이는데, 세계에서 가장 이쁘고 착하고 강한 정령이 아군이라는 거에 진짜 고마워 해라. 알겠제?"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안 드나?"

"조금 과하다고? 니 이것때문에 지금 입 꾹 닥치고 있는 거 아이가?"

석하랑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셔츠 앞주머니에 넣어둔 작은 물건을 두 개 꺼냈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둔 물건에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는 하나만 알려줬는데."

"어쩌다보이 찾았다. 이히히. 자, 빨리 밥 먹고 설거지나 하그라. 같이 빈백에 누워서 내가 어떻게 이걸 얻었는지 알려줄게."

석하랑은 손에 쥔 두 개의 큐브를 만지작거리며 헤실거렸다.

"내 좀 쩔지 않나? 오빠야."

"그래. 쩐다. ...그 놈의 오빠야는 언제까지 할 참이냐."

"글쎄? 음...."

석하랑은 큐브를 자신의 셔츠 앞주머니에 넣으며, 식탁 아래에서 맨발로 내 무릎을 툭툭 건드렸다.

"오빠야가 여보야가 될 때 까지?"

"......포기하는 게 좋을 걸."

"히어로가 언제 빌런 계도하는 거 포기하는 거 봤나? 히히. 니 잘못 걸렸다. 진짜로."

석하랑은 반찬을 하나 집어 내 입에 강제로 물렸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꽃받침을 하며 입꼬리를 들었다.

"정령 아내 하나 받을 생각 없나? 진짜 참한 가시나 하나 있는데."

"......음."

나는 입안에 들어온 반찬일 삼키며 석하랑에게 검지 손가락을 들었다.

"난 이 몸보다 가슴 작은 여자를 아내로 들일 생각이-"

"이 거지같은 오빠 새끼가!"

그래.

이게 진짜 남매간이지.

나는 오빠가 여보가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결계 속에서 펼쳐진 SS급들의 식후 운동에서 최선을 다했다.

"야이 미친 놈이 첨부터 궁극기 쓰고 자빠졌네!"

[꼬우면 너도 궁극기 쓰던가!]

건방진 여동생을 상대로 질 수는 없으니, 일단 시작부터 태양을 하나 터뜨리고 시작했다.

다행히 이겼다.

...중간에 한 번 진짜로 질 뻔 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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