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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30화 (230/1,497)

〈 230화 〉1부10장 32

세상이 온통 불꽃으로 물들었다.

창염이 선택한 초격은 운석낙하. 정신세계임에도 하늘에서 낙하하는 거대한 불덩어리 세 개는 엄청난 열기를 머금고 나를 향해 떨어졌다.

그 크기는 세 개가 모이면 여의도 절반을 부숴버릴 정도.

일단 나는 날개를 펼쳐, 공원에서 급히 날아올랐다.

콰-----앙!!

여의도 한복판에 세 개의 운석이 떨어졌다. 하늘에 날개를 펼치고 올라와있음에도, 운석의 낙하로 인한 진동이 공기를 타고 내 몸을 흔들었다.

이상했다.

맞지 않을 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이런 기술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힘의 과시? 나는 운석도 자유자재로 떨어뜨릴 수 있다?

'창염의 피닉스와 인간형으로 붙어본 적이 없으니 뭐 알 수가 있어야지!'

미국을 정복할 때는 총잡이로 날뛰었다고 하더니, 막상 그 기술을 내게 전수해주고 난 뒤에는 화염술사에 충실한 원거리 마법전으로 시도하는 모양새였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곧 불화살이나 불덩어리들이 날아올 터.

"아."

창염의 이어진 공격은 내 예상을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그야말로 막강한 파괴행위였다.

콰---앙!

내 발밑에서 붉은 불기둥이 치솟았다. 나는 급히 날개를 움직여 옆으로 피해냈지만, 날개 한쪽에 불이 붙었다.

"불에 불이 붙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나는 날개에 붙은 불을 급히 꺼뜨렸다. 내가 창염의 불꽃을 이용해 타인의 마력을 태우듯, 창염 또한 나의 마력을 태웠다.

쾅! 콰---앙!

불기둥은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운석이 떨어진 크레이터에서 수십미터에 이르는 불기둥은 쉬지않고 치솟았고, 그 하나하나가 나를 노리고 뿜어졌다.

"이런 미친!"

내가 불기둥을 피할 때마다, 여의도는 터져나온 마그마로 뒤덮였다. 건물들이 타들어가며 매케한 연기를 내뿜었고, 나는 발을 디딜 장소도 없이 하늘을 날아야했다. 다행히 여의도 주변으로 넓게 서울이 펼쳐져있었다.

'설마 서울 전체를 전장으로 삼는 건가?'

여의도만으로는 자신의 힘을 마음껏 펼칠 수 없다는 걸까. 창염은 초격 이후 모습을 숨긴 채, 지하에서 불기둥만 뿜어내며 나를 괴롭혔다.

쾅! 콰아앙!

날개를 접었다 펼치며 피해도, 그 예상 경로를 향해 고사포를 쏘듯 불기둥이 치솟는다. 이건 무슨 대지 전체가 창염의 권총도 아니고-

'설마.'

지하에서 직접 불기둥을 쏘는 건가? 그것도 그냥 불기둥이 아닌, 터지면 흘러나오는 마그마를?

'너무 진심 아닌가.'

아주 죽이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좌우로 피하던 불기둥을 피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여의도가 벌써 날아갔구만."

백여미터 상공에서 본 여의도는 현무암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구멍에서는 지하에서 분출된 마그마가 흘러나와 주변을 덮었고, 여의도는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푸쉬이이--

마그마는 한강으로 넘어가 거대한 수증기를 일으켰다. 나는 수증기의 열기를 피해 동작의 상공으로 몸을 피신했다.

'설마 동작에서까지 불기둥이 치솟지는-'

콰앙!

또다른 불기둥이 치솟았다. 그건 여의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정확히 나를 노리고 날아오는 저격이었다.

탕!

나는 마력으로 빚어낸 총을 불기둥에 겨눠 마탄을 쏘았다.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마탄이 불기둥의 궤도를 정확히 맞추었고, 마탄과 불기둥은 서로 상쇄되어 공중에서 폭발했다.

'요격하라는 건가?'

불기둥이 사방에서 쏘아졌다. 동작, 구로, 강남, 심지어 한강 바닥에서 까지. 온갖 각도에서 나를 노리고 분출된 불기둥은 포물선을 그리며 나를 휩쓸려 했다.

나는 불기둥의 사이를 날며 마탄을 쏘았다. 옆구리를 노리는 불기둥을 피해 총격으로 허리를 끊고, 날개를 노리는 불기둥이 닿기 직전 날개를 해제하여 수직낙하했다. 마그마 속에 풍덩 빠지기 직전, 다시 날개를 펼치며 공중으로 활강했고, 마그마속에 잠겨 녹아내리는 63빌딩의 꼭대기에 잠시 올라섰다.

"이건 뭐 괴수가 따로 없네."

원작에서 나오는 창염의 피닉스보다 더 악랄하고 파괴적인 기술들만 골라서 사용하고 있다. 그저 폭격기처럼 지상에 불덩이를 떨어뜨리는 정도가 아니라, 창염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온갖 기술을 나를 상대로 사용하려는 듯 했다.

내가 조덕배를 상대로 내 힘을 가늠했던것 처럼, 창염도 나를 모르모트 삼는 듯 했다.

"전혀 반갑지 않은데."

창염은 금방 새로운 패턴을 보였다. 여의도의 마그마에서 작고 푸른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더니, 곧 알이 깨지며 미니피닉스들이 마그마위에서 날개를 펼쳤다.

"미니가 아닌데?"

그 크기는 내가 다루던 카나리아들과는 달리, 족히 어지간한 대형 SUV만한 크기의 독수리였다. 자신과 나의 격차를 보여주기 위해 굳이 이렇게 비교를 하게 만드는 걸 봐서, 창염은 상당히 악랄한 존재였다.

ㅁㅁㅁㅁ.

그리고 그 모든 악의는 나를 향해 집약되어있다. 수백, 아니 수천의 독수리들이 나를 향해 부리를 겨누며 지상에서 날아올랐다.

"다 떨구라는 거네!"

나는 정면의 독수리들을 향해 마탄을 쏘았다. 탄환이 하나 소모될 때마다 독수리 서너 마리가 터져나갔지만, 독수리들은 전방위적으로 날아올라 나를 압박했다.

"이게 진짜!"

나는 수직으로 날아올라 날개를 최대한 넓게 펼쳤다. 내 두 손에 들린 마탄 뿐만 아니라, 깃털에서 만들어낸 화염구까지 지상으로 난사하며 독수리들을 요격했다.

여의도 전역이 폭발의 열기로 휩싸였다. 나는 마력을 쥐어짜내 막대한 양의 마탄과 화염구로 폭격을 했음에도, 독수리들은 절반 정도밖에 죽지 않았다.

ㅁㅁㅁㅁ.

"망했네."

독수리들은 편대를 구축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크기를 키웠던 날개와의 연결을 해제하여 하늘로 높이 뛰어올랐다.

새로운 날개가 내 등 뒤로 펼쳐졌고, 발 밑에 놓아둔 날개는 마력의 연결이 끊어져 불안정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독수리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내 날개를 피하려했지만, 이미 폭발의 반경 안이었다.

딸칵.

나는 손가락을 튕겼고, 십 수 미터 너비의 날개는 독수리들을 향한 부비트랩이 되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독수리들이 부리를 날개에 처박았고, 허공에서 연쇄폭발이 일어났다.

"이래도 아직 남았...응?"

남아있던 독수리들이 허공에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또 새로운 패턴임을 직감하고 호흡을 골랐고, 독수리들은 아주 작은 카나리아로 변하며 한 명의 인영을 만들어냈다.

"제법이네요?"

창염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드레스에 금빛의 석장을 든 창염은 그 어느때보다도 고고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거 너무 눈부셔서 직접 볼 수가 없는데."

"피하면서 요격하는 건 칭찬할게요. 원래 보스들 상대하다보면 무조건 피하는 패턴 나오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이제 끝이냐?"

"운석에 화산 폭발에 독수리 때. 워밍업은 이정도로 충분하죠?"

"이게 워밍업이라고?"

나는 바닥을 가리켰다.

"준비운동 세 번만 더 하면 서울 전체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적당히 한 거예요. 죽일 생각도 없었는데 무슨."

"......그렇다고 치자."

나는 총구를 창염에게 겨눴다. 창염도 석장을 자신의 정중앙에 놓았다.

"아참. 당신 말이에요."

"또 왜?"

"이거 엄청 부끄러워 하더라구요."

창염은 석장을 허공에 두드리며 성을 냈다.

"<창염개진>."

"......그, 뭐냐 그건…."

나는 왠지 부끄러워져서 총끝으로 머리를 긁었다.

"그냥 네 영창 따라하다보니까 튀어나온 말인데…."

"영창을 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에요. 체내의 마력을 더욱 강하게 끌어내는 방법이죠. 개인마다 편차는 있지만, 원래 마법이라는게 무영창보다 영창을 하는게 더 강한 법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영창을 하는데 부끄러워하지 마요. 오히려 당당하게. 간부들이 이능을 쓰거나 괴인을 만들 때 영창을 하던 건 다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한 본능적인 수단이니까."

"......."

결정했다. 앞으로 남들 안 보이는 곳에서 외치기로. 하지만 창염은 그런 내 부끄러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무 것도 안 해요?"

"그야 어이가 없, 잠깐. 것?"

"네. 왜 안 피하지?"

창염이 하늘을 가리켰다.

"저 지금 스킬 썼는데요."

"스킬을 언제-"

"창염개진. 그냥 불꽃을 쏟아내기만 하는 기술이지만."

창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푸른 불꽃의 비에 두 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었다.

"당신이 말하는 원작에서, 저는 이 기술로 남아메리카 전체를 구워버렸답니다? 기억 하시죠?"

"이런 미친."

온 세상이 푸른 불꽃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푸른 불꽃의 비에 휩쓸려 의식을 잃었다.

***

"아. 생각해보니 원작에서는 은폐된 설정이었네요. 미안해요."

창염은 내 머리를 자신의 허벅지에 눕혔다. 압도적인 패배 이후에 내가 무릎베개를 하게 되어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나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패자는 말이 없는 법. 그렇죠?"

"......인정한다."

"그럼 조용히 닥치고 있으세요~ 푸흐흐."

창염은 내 볼을 엄지로 쓸며 웃었다. 거대한 밑가슴 너머로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인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건 내가 더 고마운 것 같은데."

"승리의 포상이에요."

"네 승리?"

"아뇨. 당신의 승리."

"......?"

창염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 창염에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데.

"너 또 무슨 수작 부렸냐…?"

"넹. 당신이 저를 다시 찾아오지 않고는 못 배길 수작이요."

창염이 작은 구슬 하나를 꺼냈다. 코어와는 다른, 푸른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유리구슬이었다.

"이건 당신의 기억이에요. 당신이 승리한 기억이 여기 담겨져 있죠."

"장난하냐? 지금 자기 졌다고 기록 삭제하는 거지? 내놔."

나는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창염은 자신이 이긴 대가로 내 몸의 제어를 빼앗아갔고, 강제로 자신의 무릎에 내 머리를 놓았다.

"돌려주기 싫은데요? 갖고 싶으면 다음에는 당신이 직접 저를 찾아오세요."

"큐브로 불러내라는 거지?"

"네. 이왕이면 딸기쇼트케이크랑 같이. 그러면 이 기억, 돌려드릴게요."

"......도대체 난 너를 어떻게 이긴 거지?"

나는 내가 창염을 이겼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메테오를 날리고 화산을 폭발시키고, 세계를 구워버리는 사람을 상대로 내가 이겼다고? 진짜야?"

"네. 힌트 드리자면."

창염이 상체를 숙여 내 귀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풍만한 가슴이 내 얼굴을 덮었다.

"당신의 총...정말로 뜨거웠답니다?"

"뭐."

"힌트는 여기까지. 어떻게 이겼는지 알고 싶으면, 다음에 큐브 쓰세요. 알겠죠?"

창염이 손가락을 튕겼다.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야, 야야! 이대로 보내려고?! 장난하-"

창염이 내 입을 막아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나는 의식이 사라질때까지, 내 입술에 닿은 부드러운 감촉만을 생각할 뿐이었다.

***

"......아."

나는 깨자마자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마지막에 너무 충격적인 장면을 봐서 그런지,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미쳤다고 그러겠어. 음."

나는 스스로를 세뇌하며 내 망상을 털어버렸다. 아무리 창염에 미쳐있다고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고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차라리 간부들한테 패배한 충격으로 정신이 어디 나갔다고 생각하자. 음."

그게 차라리 나았다. 1-2-3스테이지 보스들한테 쪽도 못 쓰고 발렸다는 것에 부끄러워, 뇌내의 창염과 쎄쎄쎄를 하며 힘을 기르는 망상을 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을 위한 길이었다.

"...그래. 너무 죽으면서 싸우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 음, 좋아.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

나는 내 몸을 가둔 삼중결계를 노크하듯 두드렸다. 어둠과 공기, 돌로 이루어진 결계는 세 간부가 나를 구속해 봉인한 것처럼 보였다.

"......나 얼마나 잠든 거지?"

마도기어도 작동이 되지 않았다. 나는 행여나 내가 너무 깊게 잠들었을까 싶은 생각에 절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일단 나가고 보자."

나는 천장을 손으로 살짝 두드렸다. 다행히 봉인은 나를 가둘 정도로 그리 강하지 않았다.

"......창염-"

아무도 없으니, 세상 떠나가라 크게.

"개진--!"

창염을 머금은 내 주먹이 천장을 꿰뚫었다.

***

파사삭!

콘크리트 기둥이 부서졌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이능력자들은 스스로 부서진 기둥에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드디어 열리나...?"

콰-----앙!

하늘에 푸른 불기둥이 치솟았다. 밤하늘 높이 치솟은 불기둥은 높이만 족히 수백미터에 이를 정도였다.

으득, 으드득!

두께만 수 미터의 콘크리트가 안에서부터 쪼개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열손가락이 콘크리트 밖으로 튀어나오고, 관을 좌우로 강제로 벌리며 푸른 머리칼의 여인이 튀어나왔다.

"......지금 몇 년 몇 시?"

"일어나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거가?"

백발이 산발이 된 석하랑이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웃었다. 피닉스는 당황해 석하랑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 뭐예요. 왜 울어요?! 설마 나 잠든지 얼마나 지났어요?! 5개월?! 설마 5년?!"

"5분."

석하랑은 자신의 스마트 워치를 두드리며 피닉스를 비웃었다.

"니 신호 두절되고 지금 5분 지났다, 빙구야."

"......헐."

피닉스는 할 말을 잃었다.

* * *

<???계.>

"엄청 잘 싸우네. 에이."

창염은 유리구슬 하나를 손에 쥐고 입맛을 다셨다.

"설마 시작부터 지고 시작할 줄은...."

'그'는 모를 것이다. 자신이 왜 계속 졌는지. 창염은 그의 능력에 대해 새삼스럽다고 느끼며, 유리구슬을 소중한 보물마냥 가슴에 품었다.

"아."

유리구슬 속에 파묻혔던 창염이 눈을 번쩍 뜨며 입을 벌렸다.

"그거 말 해주는 거 깜빡했다. 제일 중요한 건데."

창염은 천장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닉스'와의 승부가 담긴 구슬을 가슴에 안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뭐, 내 잘못도 아니니까 다음에 오면 얘기해주지 뭐. 어차피 알아서 알아챌테니. "

창염은 유리구슬속에서 헤엄치며 헤실거렸다.

"방주가 벌써 출발했을텐데, 과연 나를 또 언제 부르시려나~ 푸흐흐."

창염의 목소리는 그에게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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