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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28화 (228/1,497)

〈 228화 〉1부 10장 30

새삼스럽지만, 창염의 피닉스와 벌인 주인공의 전투는 괴수 피닉스와의 전투로 한정되어있다.

다른 간부진들과는 달리 인간형, 괴인형, 그리고 괴수형으로 전투를 벌일 일은 없는 필수 이벤트였기 때문에, 피닉스는 오직 괴수형으로만 전투가 가능했다.

그렇다면 피닉스가 간부로서 싸운 전투 스타일은 어떠했을까. 나는 그게 상당히 궁금했지만, 어떻게 알아볼 방법은 없었다.

개인루트를 타도 피닉스가 인간형으로 싸울 일은 없었고, 손만 튕기면 적의 절반이 불타 없어지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피닉스의 몸으로 내가 가장 익숙한 전투방식, 진정한 화권 김철수로부터 사사한 박투술로 전투를 해왔다.

죽음의 고통만 조금 참으면 무한한 재생과 부활이 가능한 피닉스의 육체는 내게 압도적이고 빠른 승리를 가져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창염은 내 전투 스타일을 교정하겠다며 스스로 나섰다. 나는 창염이 정신공간 속에서 만든 배경을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지정한 순간부터, 최소한 전투는 필수불가결한 일이겠거니 하고 확신했다.

그런데.

이건 예상 못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총 맞아요!"

창염이 총잡이 계열의 원딜이라니.

* * *

탕!

마탄이 내 귓불을 스쳤다. 피했으니 귓불이요, 안 피했으면 눈이었다. 탄환에는 살의가 끓어넘쳤고, 창염은 나를 죽일 생각이 만만이었다.

타당!

두 개의 탄환이 연속으로 발사되었다. 하나는 전방에서, 그리고 또 하나는 우측에서. 각각 궤도를 달리하는 공격에 나는 각각의 위치에 팔과 다리를 들었다.

"막지 말고 피해야지!"

창염이 내게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탄환은 나선을 그리며 내 갑주를 꿰뚫었다.

푸---욱!

갑주에 구멍이 뚫렸다. 몸을 꿰뚫은 탄환은 몸안에 박혔다. 손목과 종아리가 끊어질 것처럼 뜨거웠지만, 나는 고통을 감내하며 창염이 소리를 질렀던 방향으로 달렸다.

"계속 마력 흐르잖아요!"

"이기고 치료하면 돼!"

"하여튼!"

창염은 옆으로 뛰며 내게 총구를 겨눴다. 자신의 이미지 컬러인 푸른색과는 달리, 하나는 적색이고 하나는 황색이었다.

"빨강이는 아포라고 하고 노랑이는 칼립스에요!"

"줄여서 아포칼립스냐!"

"정답!"

아포칼립스가 불을 뿜었다. 최악의 네이밍이지만, 최악의 위력이었다. 창염은 쌍권총에서 자신의 푸른 불꽃을 탄환으로 정제해 나를 향해 쏘고 있었다.

머리를 노린 마탄은 고개를 돌려 피하고,

배를 노린 탄환은 몸을 옆으로 돌리는 것으로 피하고,

발을 노리는 탄환은 걸음을 멈추는 것으로 피했다.

이전에 발사되었던 것들을 포함해 내게 쏘아진 탄환은 7발. 본래라면 탄창을 갈아야할테지만, 창염은 자신의 마력을 탄환으로 삼는 만큼 재장전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왜 장전 모션을 하는 거냐?!"

"여유라는 거죠? 푸흐흐."

창염은 진짜로 여유가 있는지, 총구까지 옆으로 뉘이며 고개를 으쓱거렸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상처를 불꽃으로 땜질한 나는 땅을 박차고 달렸다. 창염은 미소를 지우고 지그재그로 달려가는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탕!

총구가 불을 뿜었다. 총구의 방향은 내 심장을 향해 있었다. 정통으로 맞으면 죽을 수도 있는 각도였다.

푸---욱!

그러니 아주 조금만 몸을 비틀어, 심장의 직격을 피했다. 마탄은 막강한 저지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어거지로 몸에 마력을 밀어넣어 피격의 반동을 이겨냈다.

"칫!"

그리고 그 억지 덕분에, 나는 창염의 지척에 닿는데 성공했다.

"멀리서 깔짝거리니 좋더냐?"

나는 허리 아래에서 말아쥔 주먹을 위로 치켜올렸다. 창염은 두 권총을 X자로 교차하며 내 주먹을 막았고, 뒤로 크게 뛰어 내 공격을 흘렸다.

"놓치지 않는다!"

한 번 거리를 좁힌 이상 다시 거리를 벌리지 않는다. 나는 창염이 마탄을 쏘기 전, 다시 거리를 좁혀 주먹을 내질렀다.

창염은 자신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가는 내 주먹에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그리고 나는 창염의 속내를 읽었다.

- 얼굴을 노리다니, 최악.

하지만 나는 그에 맞받아쳤다.

- 남녀평등. 그리고 강자에 대한 존중이지.

남자고 여자고 나발이고 일단 내가 지게생겼는데 얼굴이 대수냐. 나는 말아쥔 건틀릿을 창염의 얼굴에 내질렀다.

"흥!"

창염은 고개를 뒤로 꺾는 것으로 내 주먹을 피했다. 동시에 창염은 나를 향해 총구를 들어올렸다.

지근거리에서의 사격은 통하지 않는다. 화권의 주먹은 총격보다 빠르니까. 나는 창염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 그보다 훨씬 빨리 다른 주먹을 창염의 복부를 향해 내질렀다.

"바보."

나를 향해 입꼬리를 비튼 창염의 이어진 행동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미친 짓이었다.

카앙!

내 주먹이 무언가에 부딪혔다. 창염은 내 주먹의 궤도에 자신의 권총을 살짝 밀어넣었다.

"이런-"

주먹으로 부술 수 없는 총기는 결국 손에 들린 둔기나 다름없었다. 내 주먹을 권총으로 흘린 창염은 내 허벅지를 밟고 뛰어올라, 한쪽 발을 내 어깨에 올리며 총구를 겨눴다.

"전혀 말을 듣지 않으시네."

창염은 태양을 등지고 화사하게 웃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총구가 내 이마에 닿아있었다.

"......졌다. 내 패배군."

나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창염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좀 식히세요."

탕.

내 의식은 또 날아갔다.

* * *

"아무리 그래도 죽여서 진정시키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뭐래요. 꼬우면 이겨보던가."

창염은 내 허벅지에 머리를 이고 키득거렸다. 여의도에 만들어놓은 내 펜트하우스를 모방한 듯, 최고급 제품들로만 가득 찬 가구 정도는 얼마든지 구현화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당신 오늘 저한테 몇 번 죽었는지 아세요?"

"47번."

"정답. 그리고 제게 공격을 성공한 횟수는?"

"......0번."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나는 창염에게 단 한 번도 데미지를 넣지 못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해가 안 되는데. 이계의 정령이 갑자기 왠 건 카타냐."

"저기요. 제가 맡은 지역이 어디에요?"

창염은 역으로 질문했다. 나는 그게 창염이 대답하기 위함임을 알고 순순히 질문에 답했다.

"미국."

"땡. 틀렸어요. 아메리카죠."

"......혼자서 그 넓은 땅을 다?"

"넹."

창염은 리모컨을 조작해 TV에 세계지도를 꺼냈다. 5대양 6대주가 평면으로 그려진 세계지도에, 창염은 일곱가지 색으로 각각의 구역을 칠하기 시작했다.

"먼저 설야의 루살카. 극동아시아와 러시아, 북극 전반을 맡았죠."

"그래. 그러다가 오호츠크 해를 떠내려가서 허윤환이 건졌지."

"일본에 안 떨어지고 동해에 떨어진게 참 우연찮네요. 그쵸?"

"......아무튼 그 다음."

창염은 키득거리며 다음 구역으로 화면을 넘겼다. 중국을 동쪽에 두고 있는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 전반에는 회색의 빗금이 그어져 있었다.

"혼돈환룡이 여기. 남의 묫자리를 강탈하고 지하로 숨어들지만 않았으면, 아마 다른 간부들과는 달리 가장 넓은 땅을 지배하고 있었겠죠."

"혼돈환룡이 활동을 뜸하게 해서, 다른 간부들이 점점 동쪽으로 세력을 넓히는 형국이 되었지."

나는 기억을 더듬어 지도에 깃발을 꽂았다. 창염은 내 의지를 읽고 깃발의 색깔을 바꿨다.

"다음은 개천광이죠?"

"발견은 인도에서 되었지.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 나는."

나는 창염을 내려다보았다. 창염은 그저 웃기만 하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 대신 이것만 알려주라. 걔도 지금 깨어있냐?"

"네."

"그럼 됐다."

20년 전에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알려줄 성격이었으면 진작에 떠벌렸을 것이다. 나는 일찌감치 포기를 했고, 개천광에 해당하는 적황의 깃발을 잠시 치워버렸다.

"일단 그러면 펜릴은 영국이 확실한데."

"아마도 저기에 있다가 북유럽으로 넘어간 게 아닐까요?"

"그렇겠지? 그러다 요격을 나온 루살카를 잡아먹은 걸 거야."

어디서 그런 요상하고 고풍스러운 말투를 배웠나했더니, 아마 영국 왕실에서 지내면서 듣고 배운 말투일 것이다.

감히 원탁의 핵심인 가웨인이 하루가 멀다하고 드나드는 영국 왕실에 팔자 좋게 고양이로 잠입해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다음은 지륜이네요."

지륜의 히드라. 위치는 대충 예상이 갔다.

"그리스겠지?"

"그건 히드라를 지륜으로 각성시켰던 장소구요, 진짜는 어디있는지 몰라요. 애초에."

창염이 아프리카 일대에 원을 그렸다.

"이걸 다 정복하고 올라왔었죠? 각성시킨 격전지가 파르테논 신전이었을 뿐이잖아요."

"네가 어디 짱박혀있으라고 한 거 아니야?"

"저는.... 아, 또 낚일 뻔 했네."

창염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툴툴거렸다. 정보를 빼낼 기회였나 싶었지만, 아쉽게도 창염은 낚이지 않았다.

"뭐, 알려줘도 상관없겠죠. 아마 쟤들, 깨어있기만 했지 어디 다른 곳으로 갔을 걸요?"

"원래 스타팅 지역에 바로 거점 차리지 않나?"

"자원없고 거지같으면 다른 꿀지역으로 옮겨서 개척해야하는 거 몰라요?"

"나는 그 자리에 알박고 시작하는 타입이라."

창염과 나는 이견이 갈렸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기에, 일단 작전회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그럼 남은 건 아지다하카인데."

"마암룡은 내버려둬요. 어차피 대충 밤에 조금만 신경 긁어도 뛰쳐나올테니까."

"그렇겠지? 그러면 우선 순위는...."

나는 위에서 아래로 쭉 순서를 정했다.

"카르나, 히드라, 아지다하카, 펜릴."

"개천광, 지륜, 마암룡, 절풍."

"굳이 정령의 이름으로 정정할 필요는 없지 않나?"

"남한테 세뇌당한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는 않네요. 흥."

창염은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나는 내 옆에 놓아둔 딸기의 꼭지를 떼고 그의 입에 집어넣었다.

"정신세계인데 맛이 느껴지냐?"

"기억을 더듬는 거죠. 아는 맛. 다들 그러잖아요? 그런 거에요."

창염이 눈을 떴다.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눈동자는 그 어느때보다 반짝거렸다.

"그런 의미에서 딸기뷔페 가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간다고 하면 풀어줄 거냐? 응?"

"......음, 으으으음."

창염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졸지에 나에 대한 걱정과 딸기에 대한 기호를 두고 비교당했다는 게 참 우스웠지만, 나는 묵묵히 다음 딸기를 창염의 입에 넣으며 자조했다.

"됐어. 어차피 생각만 하고 말겠지. 너도 나를 영원히 여기다가 묶어 둘 생각은 없을테니까, 그 때 돌아가면 바로 가주마."

"......."

창염은 딸기를 우물거리며 침묵했다. 눈썹까지 찌푸리며 고뇌하는 게 상당히 갈등이 깊은 모양이었다.

"일단 개천광부터 아군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싸움꾼이니까 적당히 싸울만한 장소를 만들면 되잖아요."

딸기를 꿀떡 삼킨 창염이 리모컨을 조종해 달력을 펼쳤다. 달력에는 내가 머릿속에 입력해두었던 일정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으엑, 뭐 이리 빈 곳이 없어요?"

창염은 내가 세운 일정까지는 읽지 않았는지, 빼곡히 차있는 시간 단위의 계획에 질색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어디보자. 7월 3일, 펜릴을 데리고 6민트 챌린지? 신서울 방문해서 개목걸이? 각성하면 안 사고, 미각성 시 펜트하우스에 묶어두기? 무슨 짓을 하려던 거예요?"

"정신 차릴 때까지 옆에 두고 기를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 계획이었다. 나는 펜릴과 관련된 일정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그리고 어디 봅시다. 백희아 설득해서 인천에 데려오기. 음, 좋아요. 쟤가 운행하는 배는 제법 푹신한 모양이니까, 저도 타보고 싶네요. 백희아말고는 또...."

나는 창염의 눈을 가렸다.

"치워요."

"안 보는게 나을텐데."

"일단 보고 판단할게요."

창염은 내 손을 치우고 일정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큐브의 위치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어."

창염이 얼굴을 붉히며 일정을 닫아버렸다. 나도 창염과 고개를 마주하지 못했다.

"......지난 번 공중 데이트가 그렇게 인상적이었어요? 무슨 큐브 얻고 나면 1순위가 데이트 할 생각 뿐이에요?"

"......이왕 전세계 다니는 거, 그 정도는 나쁘지 않잖나. 사람이 이렇게 바쁘게 사는데 그런 여유는 있어야지."

"아주 그냥 머릿속에 저 만날 생각밖에 없네요, 푸흐흐. 그렇게 제가 좋으세요?"

"일단 2천억 보다 좋은 건 확실한데, 음...."

나는 창염의 머리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나? 네가 원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여행지를 정하지. ...유럽이나 서남아시아는 조금 계획을 잘 짜야 할테지만."

"데이트 플랜 다 까벌려져놓고 강행하시려고요?"

"다시 새로 짤 거다."

"푸흐흐, 좋네요. 그럼 그건 헤어질 때 얘기하기로 하고."

창염이 손가락을 튕겼다. 주변 배경이 뒤바뀌었고, 우리는 다시 여의도 한강공원로 돌아왔다.

"쉴 만큼 쉬었죠?"

"그래."

창염은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순백의 하얀 원피스형 드레스는 속옷조차 없는 창염의 나신이 그대로 비쳤지만, 나는 저 몸에 성욕을 느낄 틈도 없었다.

"빵야!"

창염은 예고도 없이 총을 쏘았다.

나는 벤치를 박살내며 몸을 크게 굴렀다.

1시간 뒤.

창염은 내 뒷통수를 한강에 처박고 방아쇠를 당겼다.

48번째 패배.

나는 또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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