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화 〉1부 10장 27
피닉스가 좆 된 그 시각.
세계는 민트초코로 인한 혼란보다 더 큰 혼란에 휩싸였다.
"빌런 <피닉스>의 반응은?!"
"없습니다! 카스피 해 인근에서 소실!! 녹색의 괴인도 함께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잠옷 위에 제복을 급히 걸치고 튀어나온 백희아는 각지의 협회와 연계하여 정보를 모았다. 자신이 잠든 시각, 피닉스는 영국으로 날아가 민트초코로 향을 피워 소위 '어그로'를 끌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선물이라고 하더니 그걸 태우면 의미가 있나? 백희아는 멱살이라도 잡고 그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또다른 SS급 빌런과 투닥거리다가 4,500Km 상공을 질주하며 추격전을 벌였다.
"그 늑대같은 괴인을 꾀어내기 위한 술책?"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세상에 어떤 SS급 빌런이 고작 민트초코를 불태운다고 열받아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차라리 민트초코라는게 예의 빌런과 비슷한 녹색이기 때문에 불태워 도전장을 내밀었다는게 설득력이 있었다.
"영국 반응은?!"
"아직까지 공식적인 반응은 없지만 왕실 측에서는 자신들과 과인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알렸습니다!"
"괴인 반응이 왕성에서 시작됐는데 무슨…!"
백희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허공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두 괴인은 독수리와 늑대라는 전혀 다른 동물을 형상으로 삼고 있으나, 그 색이나 겉에서 풍겨지는 분위기가 천차만별이었다.
"누가 빌런이고 누가 히어로인지…!"
분명 피닉스는 빌런이다. 그는 광검을 죽이고 이능력자들을 살해한 명실상부한 악인이다.
하지만 그런 피닉스를 향해 바람을 일으키며 싸우는 늑대 괴인을 보는 이라면 그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사진이나 영상만 봐도 늑대 괴인은 금방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마냥 그 기세가 흉흉했다.
"<중앙>에서는 뭐라고 판정을 내렸습니까?! 저 괴인에 대해!"
"......께름칙한 기운은 있으나 아직 별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만큼 따로 빌런이라고 판정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가요."
백희아는 타들어가는 속을 숨기고자 물을 벌컥 들이켰다.
뒷거래를 하기로 한 지 불과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해외로 나가서 사고를 치고 다니는 피닉스와의 거래가 정말 괜찮은 건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협회의 지휘관으로서 빌런 피닉스를 공격한 늑대 괴인을 응원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국익을 위해 뒷거래를 하는 피닉스를 멀리서나마 응원해야 할 것인가.
백희아가 어느 쪽 줄을 잡을 지 고민하는 사이, 협회의 중앙에서 긴급 연락이 들어왔다.
"집행관 님께 보고! 협회입니다!"
"......! 뭔가요?!"
전 히어로들의 출격에 따른 요격? 그도 아니면 원탁 동원? 백희아가 머릿속에 온갖 경우의 수를 떠올리는 사이, 오퍼레이터는 굳은 얼굴로 자신의 스크린에 떠오른 내용을 보고했다.
"...신원미상의 이능력자에 대하여 코드네임 부여! 현 시각 부로 대상을 <펜릴>이라 명명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펜릴에 대한 대응은?!"
"...없습니다!"
"네?"
백희아는 순간적으로 보고가 누락되었나 착각했다. 하지만 부하의 보고는 정말로 괴인에 대한 '명명'으로 끝날 뿐이었다.
"......코드네임, 중요하죠. 중요한데…!"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 지 가이드라도 제시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중앙'으로 들어간 집정관 유영호는 어디서 뭘 하고 있다는 말인가.
"설마 이름만 지어주고 진짜 끝인 거야…?"
백희아는 차마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깨닫고 입이 떡 벌어졌다.
* * *
[하랑아. 지금 어떻게 된 거니?! 응? 너 뭐 혹시 들은 거 있어?!]
"내도 지금 미쳐버릴라 안카나…. 진정하그라."
석하랑은 당황한 은유하를 진정시켰다. 급작스러운 사태에 석하랑 본인도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적어도 피닉스로 인해 폭주하는 일은 막아야했다.
[지거나 죽는 거 아니겠지?]
"진정하고. 응? 그래서 내가 지금 간다 아이가."
석하랑은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서쪽으로 날고 있었다. 피닉스의 반응이 소실된 곳은 카스피 해로, 만약 물속에 처박혔다면 석하랑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언니야는 서울에 있는 문디들 잘 좀 다독여주라. 내 말은 안 들어도 언니야 말은 조금 들을 거 아이가. 은유하 와 이카는데?"
[넌 걱정도 안 돼?]
"걱정이 되니까 이리 날아가는 거 아이가. 알겠제? 나 이제 속도 올릴 거니까 끊을기다!"
[잠-]
석하랑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국경을 무시하고 하늘을 나는 석하랑의 옆에는 붉은 말을 탄 여인이 완전무장을 한 채 하늘을 달리고 있었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왜 옆에 안 붙어있었어요?!"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하루 뒤에 서울로 돌아오신다고 하셨단 말이에요!"
피닉스는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간다고 했다. 한 번 크게 데여보지 않은 샤오린은 그저 신서울의 일정을 끝낼 거라고 생각했지, 설마 자신을 떨어뜨려놓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환룡 각성시킨 지 얼마 됐다고 벌써부터 이카는 지, 원!"
"적토! 더 빠르게!"
두 SS급 사방에서 흘러들어오는 신호를 무시하며 하늘을 날고 달렸다.
그리고 카스피 해를 향해 날아가는 이들은 두 SS급 뿐만이 아니었다.
***
"하아, 하아!"
아나스타샤는 숨을 헐떡이며 회의실 문을 열어젖혔다. 비밀 벙커에는 심각한 얼굴로 카스피 해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블라디미르 가문의 이능력자들이 있었다.
"회의 중에 누가…딸?!"
"아빠, 저, 지금…!"
아나스타샤는 몸을 비틀거렸다. 다행히 옆에서 아나스타샤를 부축한 회색 소녀 덕분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자넨 누구-"
"루 언니 여동생. 근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환룡은 아나스타샤를 의자에 앉힌 뒤, 회의실 모니터 속 카스피 해를 가리키며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당장 방어선을 구축해야 해. 안 그러면 우리 다 죽어."
"그게 무슨…?"
"중국에서 나왔던 혼돈처럼, SS급 괴수들이 쏟아질 수 있어요…!"
아나스타샤의 말에 회의실은 심각한 비상사태에 빠졌다.
***
"우오오오오!!"
가웨인은 다리 아래로 무식하게 마력을 방출하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날개를 펄럭이는 피닉스나 하늘을 달리는 펜릴과 비교하면 분명 그 속도는 느렸지만, 가웨인은 스쿼드 미사일마냥 하늘을 날았다.
[가웨인! 위험해! 예언에는 없는 상황이라고!]
스크린 속 오라클이 비명을 지르며 가웨인을 말렸다. 하지만 가웨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앞을 향해 뻗은 양팔에 힘을 줬다.
"예언에는 없어도 가야합니다!"
[SS급 빌런이야! 그와 동급의 존재라고! 솔직히 SS도 아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웨인은 적금색으로 물든 눈을 반짝이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소리쳤다.
"저는 원탁의 기사! 평화를 위협하는 빌런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만약 녹색의 늑대 괴인-<펜릴>이라고 불리우는 자가 피닉스를 유인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가웨인은 최소한 빅 벤이 무너지고 런던이 불바다가 되는 광경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러니까 그런 미래는 없었다니까!!]
"혹시 모르잖습니까!"
[너까지 내 예언을 안 믿어?! 아아악! 너 내가 요즘 자꾸 틀린다고 꼽주는 거지!!]
"......."
가웨인은 침묵했다. 스크린을 쾅쾅 두드리던 오라클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소리쳤다.
[좋아! 간다쳐! 그래서 어떻게 멈출 거야!!]
"......잘요!"
가웨인.
그저 마력을 로켓처럼 분사하며 하늘을 날고 있으며, 그저 무식하게 많은 마력을 다리 아래로 방출하며 직선으로 날아갈 뿐이었다.
오직, 직진.
[멈출 때는 어떻게 할 거야!! 그대로 땅에다가 처박을래?! 미사일처럼?!]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가웨인은 확신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카스피 해를 완충제 삼아 착지할 겁니다!"
[꼴아박는다는 얘기잖아!!]
가웨인.
호기롭게 영국땅을 날아 출발했으나, 도중에 멈추는 방법를 몰랐다.
* * *
간부들의 이명은 당연히 모티브에 해당하는 '괴수'다. 인간형이든 괴인형이든 그 본질은 크기만 수십미터가 넘는 괴물들일 뿐이다.
히드라는 머리가 아홉개 달린 뱀.
펜릴은 늑대.
아지다하카는 블랙 드래곤.
나는 세 마리의 괴수들의 사이에서 핑퐁 게임의 구슬처럼 굴려졌다.
캬아아악!!
펜릴이 꼬리를 휘둘러 나를 하늘로 처올렸다. 나는 몸을 움직일 새도 없이 가드를 올려 꼬리를 막으려 했지만, 펜릴의 꼬리는 내 신장보다 더 두꺼웠다.
카가각!
꼬리를 감싸는 칼바람이 내 갑주를 찢어발겼다. 갑주에 마력을 최대한으로 불어넣어 방어력를 강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펜릴의 칼바람은 상성조차 이겨내고 내 갑주를 긁었다.
파---앙!!
펜릴은 수직으로 나를 쳐올렸고, 그 위에는 어둠 속에서 비늘을 반짝이는 블랙 드래곤이 입꼬리를 벌리고 있었다. 흑염룡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몸집으로 나를 주시하던 아지다하카는 나를 향해 날개를 펼쳤다.
차자작.
칼날들이 정렬되는 소리와 함께, 비늘 사이에 반짝이던 수 천 개의 칼날이 부메랑처럼 나를 노리고 발사되었다. 어둠과 그림자 속에 동화된 마력의 칼날은 그 모습을 숨기고 나를 반으로 갈라버리려했다.
화륵!
나는 불꽃을 피워 사방을 살폈다. 창염이 비추는 푸른 불빛은 검은 칼날들을 모두 밝혔고, 그 칼날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나를 노리고 있었다.
[전부 다 컨트롤하는 건가…!]
나는 급히 날개를 펼쳐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그림자의 칼날은 궤도를 바꾸어 나를 뒤쫓았고, 적당히 방향을 꺾어 칼날들을 서로 부딪히게 하여 도탄시키는 잡기는 통하지 않았다.
차캉!
행여나 검이 부딪히더라도 도탄되지않고 하나로 합쳐졌다. 나는 상하좌우로 밤하늘을 날아다니며 틈을 찾았다.
하지만 밤하늘은 전부 아지다하카의 영역. 아지다하카는 자신의 몸 전체를 어둠속에 숨기며, 사방에서 검을 쏘아 나를 위협했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구 형태의 보호막을 급히 펼쳤다.
카가강!
흑요석의 검들이 내 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갑주에 깊게 패인 상처에 마력을 둘러 응급조치를 취하고 숨을 골랐다.
[그럴 시간도 안 주는군.]
파바바박.
처음에 방어막에 튕겨져나갔던 검들은 다시 내게로 날아와 방어막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마력을 불어넣어 보호막을 강화했지만, 아지다하카의 검은 서서히 보호막에 작은 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작은 틈. 칼날이 아주 약간 들어갈 정도의 작은 틈 사이로 바람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래서야 옥사하겠어.]
괴수로서 본모습을 드러낸 덕분인지 공격이 아주 매섭기 짝이없다. 밤하늘이하는 전장은 펜릴과 아지다하카의 연계에 있어 최적의 공간이었다.
[아래에는 괴물 하나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으니 원.]
내가 집중적으로 공격했던 것을 경계하는지 히드라는 땅속에서 머리만 내민채 두 괴수가 나를 떨어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아래로 쩍 벌린 아가리 속 깊은 곳에는 닿기만 해도 녹아버릴 독의 늪이 들끓고 있었다.
불꽃으로 태워버린다고 해도, 독이 끓으며 발생하는 유독 가스에 몸이 부식되어 녹아내릴지도 모른다. 히드라의 독은 코어조차도 녹여 없애버리는 극독이니까.
[SS급들이라 강하긴 강해.]
하나만으로도 대륙을 멸망시킬 '재해'들이었다. 그 셋이 하나로 뭉쳐 나를 전력으로 죽이려들고 있으니, 나는 전력으로 그들을 상대해야했다.
[대화도 통하지 않을테고.]
캬아아아악!!
크오오오오!!
괴수들의 눈에는 보라색 귀기가 넘실거렸다. 세뇌되었음을 증명하는 오염된 마력은 그 어떤 괴수보다도 진하게 흘러, 나조차도 그 광기와 폭력적인 기운에 휩쓸릴 것만 같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도 폭주할 것만 같은, 그런 위험한 상황.
[이거….]
나는 보호막의 크기를 줄였다. 나와 두 괴수가 벌이는 마력의 줄다리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더 불리해지고 있었다.
[이러다 진짜 죽겠는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 나는 보호막이 버텨주기를 바라며, 두 손을 하나로 모아 마력을 응집시켰다.
푹!
마력을 한 곳으로 모으기가 무섭게 보호막을 뚫고 들어온 흑요석의 검이 어깨를 찔렀다. 검날의 틈으로 흘러들어온 칼바람이 내 목을 그었다.
이대로 공격이 계속 이어지면 분명 내 몸은 수 백 토막으로 잘려나갈게 자명했다. 그리고 내가 패배하는 순간, 세 마리의 괴수는 결계 밖으로 뛰쳐나가 세계를 멸망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막아야했다.
내가 위험에 처하는 한이 있더라도.
[미안하지만.]
보호막이 깨졌다. 펜릴과 아지다하카가 기다렸다는 듯 힘을 방출하며 나를 가르려하고, 히드라는 고개를 들어올리며 토막난 시체를 받아먹으려했다.
[괴인형으로 바꾸면서 쿨타임 초기화가 됐거든.]
그러니까 아무 망설임없이, 더 강력한 화력으로 찍어누를 수 있다. 나는 내 가슴께에 생성된 푸른 구체를 허공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모처럼이니 읊어볼까.]
만든 적은 몇 번 있어도, 터뜨리는 적은 처음이니까.
[케프리(Khepri).]
세 괴수가 흠칫거리며 두려워했다. 나조차도 터뜨리기 두려운 열기에 괴수들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하지만 늦었다. 결계를 해제하여 도망가기도 전에 화마가 자신들을 집어삼킬테니.
[익스플로젼(Explosion).]
한 마디로, 태양폭파.
엄청난 양의 열에너지가 내 가슴 앞에서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