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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22화 (222/1,497)

〈 222화 〉1부 10장 25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했다.

혼돈환룡이 예상을 깨고 먼저 일어나 활동하는 것을 보고, 다른 간부들도 진작에 일어나 활동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루살카가 1999년 말에 허윤환을 만났던것처럼, 간부들은 현 2020년 시점으로부터 무려 20년도 전에 활동을 시작하고 잠들었다.

잠들어야 했다.

그런데 내 예상은 정말 최악의 결과에 치달았고, 나는 SS급 괴인을 무려 셋이나 눈앞에 두고 전투를 맞이해야했다.

"음, 일단 인사할까요. 만나서 반가워요들. 창염의 피닉스입니다."

"저거 봐라냥. 인사도 이상하게 하지않느냥."

펜릴은 꼬리까지 세우며 내게 이를 보였다. 짐승같이 날카로운 송곳니는 금방이라도 내 목을 물어뜯을 기세였다.

"내가 왜 남의 몸을 빼앗은 년에게 내 소개를 해야해? 흥! 하지만 모처럼 만났으니, 감히 내 존귀한 이름을 들을 영광을 주겠어."

흑발의 긴 생머리를 손으로 쓸어올린 여인은 머리를 두 손으로 흩날리며 경쾌하게 소리쳤다.

"듣거라! 아둔한 자여! 칠흑같은 어둠을 지배하는 밤의 여제의 존함을! 두 귀를 활짝 열고 경배하라! 나는-"

"마암룡(魔暗龍) 아지다하카."

"야아아아!!"

아지다하카가 나를 향해 그림자를 쏘았다. 나는 손가락을 튕겨 나를 덮는 어둠을 푸른 빛으로 밝혔다.

"재수없어! 짜증나! 죽여버릴 거야!"

"저도 지금 통감하고 있으니까 됐어요. 다음."

내 시선이 장신의 황갈색 머리칼의 여인에게 향했다. 어두운 와중에도 눈에 훤희 띄는 갈색의 보브컷 아래, 짙은 황갈색 눈동자가 나를 게슴츠레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본인이 아닌 모양이네. 좋아. 그렇게 듣고 싶으면 들려주지. 나는 끊지마."

"알겠어요."

아지다하카가 호명당한 걸 경계하는 지, 황갈색 여인은 헛기침까지 하며 손을 자신의 거대한 가슴 위에 놓았다.

"대지를 굽어 살피는 자. 생명의 근원인 대지모신. 이 땅을 굽어살피는 나의 이름은-"

"지륜(地輪)의 히드라야."

"...아지다하카? 왜 당신이 제 이름을 소개하는 거죠?"

히드라가 아지다하카에게 눈초리를 쏘았다. 하지만 아지다하카는 들은 척도 안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어차피 소개 망했는데 뭘."

"벌써부터 내분인가요?"

나는 셋을 향해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었다.

"간부들이라는 자들이 하나같이 나사가 빠져서야 원."

"어머. 여유를 그렇게 부릴 수 있을까?"

히드라는 구둣발로 땅을 툭툭 건드렸다. 흙바닥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튀어나와 나를 덮쳤고, 나는 눈앞을 노리고 쏘아진 흙가시를 전부 불태워버렸다.

"여유를 부릴 수 있으니까 부리는 거죠."

"칫, 건방져. 저거 진짜 가짜맞아? 하는 짓거리 보면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나한테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냥."

"그럼 짝퉁맞네. 야. 짭새. 당장 몸 내놓고 꺼져."

아지다하카는 자신의 목을 손으로 긋는 시늉을 하며 나를 위협했다. 나는 그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당장 궁금한 걸 해결하기 위해 잠시 손을 들어 양해를 구했다.

"어차피 이 필드, 당신네들이 협동해서 구축한 전장인데 뭘 그렇게 급해요? 막말로 사방이 다 적이나 마찬가지인데. 아직 대화는 안 끝났어요."

"...진짜 아닌 모양이네. 대화부터 시도하려는 거 보니."

도대체 창염은 간부와 정령들을 상대로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닌 걸까.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애써 참으며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딱 세 개만 질문할게요."

"좋아. 사람도 세 명이니 들어주지."

"야! 뭘 들어줘. 당장 저 모가지 뽑아버리자니까?"

아지다하카는 몸 주변에 검은 마력을 피어올리며 으르렁거렸다. 흉흉한 살기가 넘실거리는 그의 마력은 그의 말마따나 금방이라도 내 목을 몸과 분리하려는 것만 같았다.

"아지다하카. 궁금하지 않아? 도대체 정령이 어떻게 피닉스의 몸에 깃들었는지."

"......."

내게 흐르는 정령의 기운은 창염 본인의 것이지만, 그들은 그것까지 구분할 능력은 없는 모양이었다.

"우선 첫 번째 질문. 개천광은 어디에 있죠?"

"......."

첫 질문부터 답이 막혔다. 나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는 아지다하카를 보고 금방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 당신들이랑 같은 편이 아닌가? 푸흐흐."

"착각하지마라냥. 그 아줌마는 지금 다른 일을 하느라 바쁘다냥."

"나중에 아줌마라고 불렀다고 일러야지."

분명 강자를 찾아 무사수행을 나섰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 개천광은 적이 아니니, 나는 눈앞의 셋만 상대하면 된다.

"그럼 다음 질문."

"최소한 우리 질문도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니니?"

"어떻게 내가 '그'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죠?"

내 질문은 펜릴을 향했다. 아까도 이 질문을 한 번 주고받았지만, 내 의도는 당연히 펜릴이 언급한 문제의 '예언'에 대한 질문이었다.

"예언이라는 거, 좀 설명해보시죠."

"별 거 없어. 그냥 네가 우리들 자기 전에 한 명 한 명 찾아와서 경고를 하고 떠난 거다냥. 자기가 잠들었다 깨어나면 자기가 아닐 수 있으니까 주의하라면서."

"......칫."

이해는 가지 않지만 심증이 가는 것은 하나 있다. 나는 추후 그 심증을 바탕으로 창염을 추궁하기로 다짐한 뒤, 마지막 질문을 말했다.

"그럼 마지막 질문."

나는 손가락 세 개를 접었다 펴며 활짝 웃었다.

"셋이서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진짜 시건방지네. 피닉스의 영향이라도 되려나?"

"그래서 나도 긴가민가 했다냥. 근데 부탁할 리 없으니까 저건 가짜가 맞다냥."

"아, 몰라. 진짜든 뭐든 닥치고 죽여. 일단 죽이고 나서 생각하자고."

셋은 전투태세를 갖췄다. 히드라는 내 발 밑의 땅을 조종하고, 펜릴은 몸 주변에 칼바람을 일으켜 돌진할 준비를 하며, 아지다하카는 자신의 몸을 어둠속에 숨겼다.

"일단은 간부로서 붙어보자는 건가요. 좋습니다."

나는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자세를 잡았다. 마치 권사처럼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모습에 세 간부는 흠칫거렸다.

"뭐, 뭐니? 주먹다짐이라도 할려고?"

"네. 간부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세 간부를 쭉 눈으로 훑으며 싱긋 웃어줬다.

"왜 피닉스가 간부 중에서 필두이자 총괄의 위치에 있는지. 아주 톡톡히 보여드릴게요."

이유는 단 하나.

"제가 좀 강하거든요?"

아.

좀이 아니다.

많이 강하다.

* * *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나는 내 스스로의 한계에 대해서는 직관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인간형으로는 S+에 해당하는 95.

괴인형으로는 SS+에 해당하는 99.

시작부터 끝판왕 수준에 해당하는 능력치로 난동을 부릴 수 있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짜 '전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속성적으로 하드카운터인 석하랑은 S급 시절에 압도적으로 이겼고, 이제는 나와 오월동주의 관계를 맺었다.

궁극기적으로 난적이었던 광검은 그의 정신을 무너뜨려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 과정에서 조금 힘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진짜 마음껏 힘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질풍객도, 혼돈환룡도, 샤오린도, 그 어떤 괴수를 상대로도 나는 '창염의 피닉스'가 가진 전력을 사용하지 않고, 내가 원작 주인공으로서 사사했던 힘을 사용했다.

화권(火拳).

이승형같은 짝퉁이 아니라, 평양의 괴수 뉴클리언을 막기 위해 목숨을 바친 진짜 대영웅의 무술만 사용해왔다.

그런데 눈앞에 나를 가둔 적들은 그런 무술을 사용할만한 적이 아니다.

바람을 날리고, 땅을 조종하며, 어둠속에서 야습을 하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자들.

그런 만큼, 나는 본격적으로 진짜 힘을 발휘하기로 했다.

한 가지 분명히 말하자면.

창염의 피닉스는 전 세계 최강의 화염술사다.

권사가 아니라.

* * *

공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땅은 메말라 갈라져 푸석푸석해졌다. 짙게 깔린 어둠은 푸른 빛에 점점 영역을 빼앗기고 있다.

"흐냐아아앙!!"

펜릴이 괴성을 지르며 바람을 일으켰다. 전후좌우로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는 닿는 것 만으로 내 몸을 갈아버릴 만큼 날카로웠다.

"위는 비었죠."

나는 제자리를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네 갈래로 쏘아진 칼바람은 내가 있던 곳에서 서로 부딪혔다.

"노리고 있었다냥!"

펜릴은 손을 뻗어 손가락을 위로 들어올렸다. 뭉쳐진 칼바람이 이제는 내가 있는 위를 향해 상승 기류를 만들어냈다.

"흠."

나는 바람이 치솟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수직으로 솟구쳐 결계를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좋았겠지만, 햇빛 한 점 없는 야심한 호수는 전부 어둠의 영역이다.

"오호호호!"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귀를 찌른다. 아지다하카가 어둠속에서 실체를 드러내며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화륵!

나는 목에 감고 있던 베일을 휘둘러 아지다하카를 쫓아냈다. 하지만 아지다하카는 이미 내 앞에서 사라져 내 뒤를 점했다.

"죽어!"

푹. 아지다하카의 손톱이 내 등을 찔렀다. 아지하다카는 공격이 성공했다는 것에 기뻐하면서도 놀랐다.

"당연히 당해준 거죠."

나는 아지다하카의 얼굴을 손으로 붙잡았다. 어둠속에 스며들기 전에 손에 마력을 불어넣어 불꽃을 흩뿌렸다.

"꺄아아악!!"

아지다하카는 얼굴에 불이 붙은 채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딜 날려고!"

아지다하카를 쫓아내기 무섭게, 땅에서 기둥이 우뚝 솟아올랐다. 흙으로 된 기둥은 뱀처럼 움직이며 내 발목을 휘감았다.

"흥!"

나는 잡히지 않은 발 뒷꿈치를 앞으로 당겨 뱀의 대가리를 차버렸다. 마력을 가득 실어 뱀의 대가리를 박살내자, 땅을 조종하던 히드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

"어딜 내 아이를!"

"아이는 개뿔."

나는 전신에서 불꽃을 방출했다. 막 얼굴을 수습하고 내 얼굴을 할퀴려던 아지다하카가 전신에 불이 붙어 허공을 굴렀다.

"아아아악!!"

아지다하카는 다시 비명을 지르며 어둠속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딜."

"흐으윽?!"

나는 아지다하카의 긴 생머리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아지다하카는 자신의 머리카락이 잡히자마자 사색이 되었고, 나는 그 잠깐의 망설임을 이용해 아지다하카를 어둠속에서 뽑아냈다.

"날이 어두우면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이, 이거 놔 미친 년아!!"

"누구보고 미친 년이래."

아지하다하카가 붙잡히마자마 바람이 솟구쳤다. 이번에는 제법 강한 소용돌이가 사방팔방에서 몰아쳤다.

"엄청 날카롭네요."

"이, 이이익!!"

아지다하카는 내 손목을 손톱으로 쥐어뜯으며 풀려나려했다. 과연 나름 간부답게 내 몸에 흐르는 마력의 방어막을 뚫고 손톱을 박아넣는데 성공했다. 내 손목에서 튀어나온 붉은 피가 아지다하카의 얼굴에 튀었다.

"이래서 싸울 줄 모르는 바보들이란."

"뭐야?"

아지다하카는 표독스럽게 나를 째려봤지만, 그 전에 어떻게든 내게서 탈출해야했다. 펜릴이 쏜 칼바람이 내 몸을 사방에서 덮쳤다.

서걱! 서걱!

칼바람이 내 옷자락을 베었다. 몸 곳곳에 얇은 자상이 생기고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내 손목을 자르려고 아래에서 치솟는 칼바람이 닿기 전, 손에 힘을 주고 강하게 잡아당겼다.

서걱.

아지다하카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내게서 풀려나 어둠속으로 도망칠 수 있음에도, 어안이 벙벙해져서 어둠속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따질 거면 김펜릴한테 따져요."

나는 내 손에 쥐여진 아지다하카의 머리칼을 창염으로 불태웠다. 펜릴이 당황하고 아지다하카의 얼굴에 귀기가 흐르는 사이, 히드라가 허공까지 올린 땅뱀들이 내 발목을 휘감았다.

"죽어버려!"

히드라의 표독스러운 외침과 함께, 나는 지상으로 끌려내려왔다.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해도, 펜릴과 아지다하카가 좌우에서 나를 견제하며 날아오르지 못하게 막았다.

"죽어, 그냥 닥치고 죽어 이 나쁜 년아!"

"자꾸 욕하면 화낼 겁니다?"

"누가 화낼 처지인데!"

아지다하카는 한 번 잡혔던 것을 경계하는 모양인지, 분노에 휩싸여도 원거리에서 나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짙은 어둠이 구름처럼 피어올라 내 오른쪽 날개를 좀먹었다.

"역시 민트초코 불태우는 악랄한 년이나 할법한 생각이다냥."

"자른 건 당신 칼바람인데요."

"그런게 악랄하다고 하는 거다냥!"

펜릴도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 왼쪽 날개를 깎아냈다. 좌우의 불꽃 날개는 간부들의 공격에 외부에서 깎여나갔고, 나는 맥없이 지상으로 끌려와 땅에 구속당했다.

"원래는 대머리로 만들까 했는데."

"진짜 입이 쉬질않네! 그 입을 찢어버려야 정신을 차리지!"

히드라가 강물에 젖은 진흙을 뱀처럼 조종해 내 사지를 구속했다.

"사람 힘들게 한다냥."

"내가 죽일게. 죽여버릴 거야. 아니, 평생 내 깔로 삼아서 죽어도 죽는 게 아닌 걸로 만들 거야."

머리가 단발이 된 아지다하카는 파충류처럼 길게 찢어진 눈으로 나를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 히드라도 그 분노를 막을 생각이 없는지, 내 몸을 점점 더 땅속에 파묻으며 슬쩍 다가왔다.

"어때? 이제 좀 정신 차렸으려나?"

"하아."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걸 제어하지 못했다. 내 한숨을 저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진짜 아지다하카 쓸모 없네요."

"너, 너너너!!!"

"당신 말고 개천광이 있었으면 진짜 위험했을텐데."

"......!! 펜릴!"

히드라가 내 말뜻을 이해하고 손을 뻗었다. 펜릴은 흙속에 파묻힌 나를 구속째로 가르려는 듯 손을 높이 뻗어 아래로 그었다.

서걱!

내 오른팔이 잘렸다. 흙 속에서 붉은 피분수가 치솟았다.

"뭐?"

"허세를 부렸-"

딱.

잘려나간 내 오른손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나는 오른팔을 매개체로 하여 불안정하게 움직이던 마력을 전부 풀어버렸다.

"인간형의 육체는 결국 마력지체."

"무슨 소리를...!"

"아지다하카가 열받아서 내 머리칼을 자르려할 줄 알았는데. 이건 이거대로 나쁘지 않네요."

오른팔이 부글부글끓기 시작했다. 나는 셋을 향해 싱긋 웃어주며 오른팔로 눈짓을 했다.

"인사는 궁극기부터 시작하는 거 몰라요?"

불안정하게 꿈틀거리던 오른팔에서 거대한 빛무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쾅! 푸흐흐."

카스피 해 한 복판.

히드라가 만든 섬에 원자폭탄 하나가 터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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