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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19화 (219/1,497)

〈 219화 〉1부 10장 22

피닉스는 전세계를 민트와 초코의 도가니로 몰고들어갔다.

신서울에 온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고민하던 이들은 하나같이 청화라는 존재의 기호만 파악하게 됐을 뿐, 별다른 소득 없이 애꿎은 민트초코만 퍼먹었다.

전세계의 이목이 잠시 힌반도에서 멀어진 그 시각.

집행관 백희아는 전세계를 상대로 기습적인 발표를 선언했다.

***

<7월 1일 오후 9시 55분. 히어로 협회 프레스룸 대기실.>

"집행관 님. 이해해주세요. 말 했다가는 다른 사람들을 어찌 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예. 이해합니다."

회견장에 나서기 전, 백희아는 이승형과 단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하지만 적어도 눈치나 언질은 주셨어야지요. 당사자도 별로 안 쓰는, 오히려 제가 알기를 바라고 있던 눈치던데."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저만 보면 쓰레기장 오물 바라보듯 째려보는데."

집행관과 화권이 서로 연계하기를 바린 피닉스였지만, 정작 둘을 오해하게끔 만들어놓고 해결하지는 않았다. 백희아와 독대하여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면, 백희아는 평생동안 피닉스와 청화를 별개의 인물로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나쁜 건 그 사람이라는 거네요?"

"......원흉을 따지고 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집행관 님, 부디 다시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승형은 손위로 번쩍 들어올린 합의문을 가리켰다. 그는 백희아로부터 합의문을 빼앗아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정말 빌런과 손을 잡으실 생각이십니까?"

"아뇨. 저는 괴수 조종사와 손을 잡을 거예요."

"그게 그거 아닙니까! 사람을 죽인 빌런이라고요!

"...예. 하지만 정상참작이 가능한 문제예요. 막말로…."

백희아는 얼굴을 굳히며 이승형을 째려봤다.

"누구처럼 민간인을 학살하려고 들지는 않잖아요? 오히려 사람들을 구했지."

"하지만."

"...저도 거래를 하기는 싫었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거래를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는데. 다행히 제게 이용가치가 있어서 망정이었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을 거예요."

백희아는 처연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얼핏보면 협박에 협약을 강요당한 것처럼 보였으나, 진실을 아는 자들의 눈에는 그게 가식적인 연기라는 걸 한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집행관 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리고 이승형은 후자였다.

"당신의 속내가 어떻든, 저는 당신의 명령을 믿고 따랐습니다. 제 숙부가 당신의 가문에 저지른 죄에 대한 속죄를 위해."

"......!"

백희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승형은 시계를 확인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그래서 저는 영호 형님의 후임으로 당신이 온다는 것에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당신을 믿고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신의 속이 얼마나 검든지 간에. 하지만."

"......빌런과 손을 잡는 지휘관은 따르지 못하겠다?"

"예."

"답답한 사람 같으니...."

백희아는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이승형에 본색을 살짝 드러냈다.

"제가 이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청화일 뿐이에요. 알겠어요?"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씀이십니까? 청화라는 자가 광검 님을 죽인 빌런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쉿. 누가 듣겠어요. 목소리 낮춰요."

다행히 둘의 이야기를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백희아는 이승형에게 주의를 주며 이승형의 말에 답했다.

"알죠. 하지만 이미 돌아가신 분을 어떻게 할 수는 없죠. 광검 님도 결국에는 선의철의 사냥개였으니까요. 선의철이 서울로 광검을 파견했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졌을 것 같아요?"

"......지금 광검 님을 욕보이시는 겁니까?"

"전혀요. 그분은 분명 이 나라의 영웅이세요. 그 영웅을 죽인 피닉스에 대한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죠."

백희아는 안타까워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그걸 설화령께서 설마 모르실 거라고 생각하세요?"

"...석하랑이 피닉스와 관계를 맺었다는 말입니까?"

"말을 좀 표현을 바꾸죠. 둘에게 모종의 무언가가 있다고. 의심가는 건 하나 있기는 하지만...."

백희아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약지에 걸린 반지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나중에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 당장은 청화 양과 합의한 내용을 발표해야하니까 돌려주세요. 당장요."

"......."

이승형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결국 백희아는 자세를 바로 하며 마지막 수단을 사용했다.

"집행관으로서 명령합니다. 화권, 당장 그 합의문을 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승형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합의문을 백희아에게 반환했다. 시간은 어느덧 30초 가량 남았고, 백희아는 합의문을 한 번 더 슥 살핀 뒤 이승형을 다독였다.

"너무 우울해하지 마요. 당장은 우리에게 힘이 없으니까. 당신은 뒷감당을 할 수 있나요? 두 SS급, 아니 세 SS급이 이 나라를 떠난 뒤의 공백을? 당신도 느꼈을 거 아녜요. 광검 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사람들이 느낀 혼란과 공포를."

"......."

이승형은 침묵했다. 백희아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도 마땅한 대안은 없었다. 막 문을 열고 나가려던 백희아가 미련이 남은 듯 말을 덧붙였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말입니까?"

"......조금 그렇긴 하죠. 그리고 제가 원하는 방향은."

백희아는 그 어느때보다도 강한 의지를 보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겁니다. S급이 8명이나 되던, 그 시절. 예. ...제 오라비가 살아있었던 그 시절의 영광을 말이에요."

끼이익.

회견장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이승형은 망연히 백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언젠가처럼, 자신은 무력했다.

* * *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히어로 협회 한국 지부 소속 전술 지휘관, <집행관> 백희아 입니다.

많은 분들이 밤 늦은 시간에 이리 발표하는 것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오늘의 발표 내용에 대하여 전달하겠습니다.

<비스트 테이머> 청화의 파견에 관하여, 이제 히어로 협회 한국 지부에서 정식으로 관리 및 지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하나의 국가를 방문할 예정이며, 히어로 협회 소속의 비행정 <백나로 호>가 청화의 이동을 책임질 것입니다.

청화는 다소 특별한 능력을 가진 히어로이나 한 개인일 뿐이며, 이제 막 안정되기 시작한 서울에서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일 뿐입니다. 그러니 과도한 관심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청화가 중국 중앙당의 초청을 받아 획득한 S급 코어 두 개는 청화 개인의 소유물이며, 협회는 청화가 판매를 원할 경우 우선 협상권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드립니다.

이번 7월에 청화가 파견될 국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파견을 원하는 국가는 정식으로 외교부를 통해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내일 아침, 외교부에서 전국으로 공문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이상으로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7월 2일 00시 00분.

나는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몸 상태는 만발의 준비를 마쳤고, 신체 상태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일단 확인부터."

나는 걱정했던 부분이 잘 이루어졌는지 살폈다. 다행히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전세계는 민트초코 챌린지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착한 사람이 늘어나서 좋겠네요. 정말."

나는 들리지도 않을 그에게 빈정거리며 박스 뚜껑을 열었다. 내가 마력으로 열을 차단한 덕분에 아이스크림은 아직까지도 녹지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냥 한 통 다 꽉꽉 채워달라고 할 걸 그랬나. 쯧."

나는 뚜껑을 닫고 리본을 예쁘게 묶었다. 분홍색 박스를 감싸는 청록색의 베일은 지구 반바퀴를 돌아도 내용물이 망가지지 않을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후우."

나는 박스를 들고 VIP 룸의 문을 열었다. 불이 아직 환하게 켜진 복도에는 벽에 몸을 기댄채 하품을 하는 백발의 노인이 있었다.

"흐아암. …...응?"

"안녕하세요?"

"어, 음, 그래요, 안녕하시구려. 그...청화 양?"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풍백은 내가 갑자기 밖으로 나오자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백희아가 발표한 합의문에 대해 안경까지 끼고 문구를 하나하나 뜯어살피는 듯 했다.

"그, 그래.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선물 보내려고 하는데 잠깐 다녀오려고요."

"이 시간에?"

"예."

나는 풍백이 내 앞을 가로막으려 하자, 바로 마력을 둘러 그의 뒤를 점했다.

"밤도 늦었는데 들어가서 주무시지."

"이런…!"

풍백은 내 기습에 손에 쥔 스틱을 돌리며 반응하려했으나 이미 늦었다.

콰득.

나는 풍백의 목덜미를 잡고 마력을 방출해, 풍백의 몸안에 있는 마력을 전부 불태워버렸다. 마력의 백업이 없으면 풍백은 그저 골다골증에 허리디스크로 고통스러워하는 골병든 노인에 불과했다.

"커헉."

"당신 디스크 치료해줄 의사 잡으러 가니까 그때까지 여기서 주무세요."

나는 기절한 풍백을 VIP 방안에 밀어넣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셋이 있으면 셋 다 사이좋게 밀어넣을 생각이었지만, 어째선지 한 명밖에 없었다.

"그럼."

나는 기억을 더듬어 옥상으로 달렸다. 협회 탈출 미션의 기억을 되살려 CCTV의 사각지대로 몸을 숨겼고, 다행히 사각은 5년 전인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어떻게 보안이 5년 동안 변하지를 않지.'

5년 뒤의 미래는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용이하게 이용할 뿐이다. 나는 비상계단으로 빠져나와,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인 옥상에 도착했다.

"그러면-"

"그만."

옥상을 열고 나간 테라스에는 화권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딜 가십니까?"

"기다리고 있었나요?"

"......그렇다고 해두죠."

이승형은 짐짓 아닌 척 여유를 부렸지만 나는 봐버렸다. 그가 등 뒤로 숨긴 스크린 속 화면을.

"왜요. 청화의 동원이 생각보다 얌전해서 생각이 깊어지시기라도 한 건가?"

"도대체."

이승형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당신은 왜 이런 짓을 하는-"

"말했잖아요."

나는 이승형의 말을 끊었다.

"관악에서. 직접."

"......그건."

"세계의 평화."

나는 이승형의 바로 눈앞까지 다가가 그의 심장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 힘을 가져가는 대가로, 당신은 세계의 평화를 위해 힘써주기로 한 걸 잊었나요?"

"......그게 단순히 화마룡을 제거하라고 하기 위해 저를 속인 게 아니었습니까?"

"좋을대로 생각해요. 한 가지 여기서 확실하게 말하자면, 결국 빌런이 날뛰고 싶어도 세계가 멸망한다면 말짱 도로묵이겠죠? 푸흐흐."

"......."

이승형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까치발을 들어 이승형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뒤, 그를 지나쳐 난간에 올라섰다.

"만약 당신이 진짜로 강해져서 나를 뛰어넘고 싶다면 서울로 와요. 내가 직접 가르쳐줄테니까."

"당신은 대체...."

"뭐, 으레 있는 '날 죽이러와요'라는 거죠. 그렇다고 죽어줄 생각도 없지만."

"제게 왜 그렇게까지 잘 대해주는 겁니까? 막말로 지금 당장 저를 죽이거나 힘을 앗아가도 될텐데."

이승형은 이제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아이스크림 박스를 내 품에 안았다.

"잘 대해주는 게 아니에요."

[다 필요해서 키우는 거지.]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밤하늘 높이 뛰어올라 날개를 펼쳤다. 남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치까지 올라갔음에도, 이승형은 고개를 들어 나를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보험이다. 보험.]

과연 이 말까지 들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나는 내 진짜 목적지를 향해 서쪽으로 날개를 움직였다.

영국.

민트초코가 시작된 나라에서, 나는 악당으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행위를 할 계획이다.

이른바.

작전명 <민초 캔들>.

* * *

<영국시, 7월 1일 오후 4시 58분, 영국 런던.>

"Ms.청화는 역시 여신이 분명합니다."

원탁의 (전) 최강자, 가웨인 경은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민트초코를 두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미 그는 수 갤런의 민트초코를 먹어치웠고, 그도 모자라 영국 내 전역을 돌며 민트초코를 한 상자씩 사서 런던으로 들고 돌아왔다.

"이제 공주님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툭.

가웨인은 동쪽에서 느껴지는 꺼림칙한 기운에 오한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운은 자신이 오라클의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서 만났던, <운디네>의 지인으로 알려진 빌런 <피닉스>의 것이었다.

"설마."

드디어 원탁을 접수하려고 하는 걸까. 가웨인은 여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검을 슬며시 꺼냈다. 그의 감각대로 피닉스는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런던까지 도착했다.

"하늘을 나는 적은, 크윽."

피닉스는 고고히 날개를 접으며 빅벤의 첨탑 위에 착지했다. 가웨인은 시계탑의 안으로 달려가려다가 피닉스가 들고 있는 물건을 보고 시선을 돌렸다.

"US라빈스 포장 박스...?"

통.

피닉스는 아이스박스에서 하프갤런 통을 꺼냈다.

그리고 그는-

화륵.

작고 푸른 불꽃을 아이스크림 통 안에 살포시 올렸다.

"저거...대체 뭘 하는 거야?"

빌런 피닉스.

영국의 상징 빅벤 위에서 민트초코를 불태우는 기행을 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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