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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16화 (216/1,497)

〈 216화 〉1부 10장 19

샤오린은 서울로 올려보낸 나는 본격적으로 신서울 탐방을 위해 준비를 마쳤다.

내가 가진 지도와 현재의 신서울 지도를 비교하여 예전의 기억을 더듬었고, 현재 메인 히로인들이 있을만한 곳을 떠올렸다.

한 명은 중학생인 김누리.

히어로임에도 암속성을 가진 그는 상당히 까칠한 성격을 가진 길고양이같은 소녀로, 막되먹었다고 욕을 먹을 정도로 막나가는 개차반이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고등학생일 이유나.

타이틀 히로인인 동시에, 내가 정말 많은 신세를 졌으며, 이능력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인류 최강자.

불행히 원작 시점에서는 신이라고 불리우게 될 재능을 '모종의 이유'로 누구도 알지 못했고, 주인공이 그 재능을 알게 되며 주인공 일직선을 달리는 여주인공이었다.

급식계 히로인과 치유계 히로인.

두 명에게는 정말 많은 신세를 졌고, 원작 특성상 지금은 상당히 불행한 과거를 겪고 있을 시기였다.

'세상을 구하는 김에 겸사겸사 도움을 주는 거다.'

결코 다른 의도는 없었다. 아무리 나라도 미성년자를 상대로 음심을 가지지는 않는다. 원작에서는 둘 다 20대 초반이었고, 지금은 원작보다 5년 전인 과거일 뿐이다.

재능있는 동료는 언제나 환영. 아카데미 양성소에 영입할 최우선 타깃은 바로 그 두 명이었다.

"내가 왜 이런 변명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무슨 말씁이십니까?"

"그냥 헛소리예요.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요. 그....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나는 알면서도 굳이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물었다. 시원시원한 복장에 나보다 키가 훨씬 큰 여인은 다시 자기소개했다.

" 박라온. A급 이능력자이며, 청화 양의 호위로 지명받았습니다. 군신 님의 힘과는 많이 부족할지오나, 맡은 바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 고마워요, 운사 님."

그리고 또 한 명의 히로인, 운사 박라온. 나는 의도치않게 이미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고보니 운사 님은 서울수복작전에 참가하셨다고...."

"그렇습니다. 당시 괴수대책부 장관의 지휘를 받아, 구로 방면으로 진격했습니다."

박라온은 그저 담담히 내 질문에 대답만 했다. 결국 참지 못한 나는 그에게 먼저 질문을 했다.

"안 궁금해요?"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신을 막아선 헬하운드들. 누가 조종했는지."

"청화 님 아니십니까?"

"그러면 말이에요."

나는 말을 멈추고 박라온에게 지적했다.

"저는 당신의 임무를 방해한 빌런인데, 아무런 망설임없이 이렇게 옆에서 호위로 있어도 돼요?"

"윽."

나는 우리의 뒤를 눈치없이 따라오는 화권 이승형을 간접적으로 지적했다.

박라온의 도움을 받아 둘이서 신서울을 돌아다닐 생각이었건만, 호위는 한 명으로 부족하다며 굳이 백희아를 설득해 뒤를 쫓아왔다.

내가 박라온이 눈치채지 못하게 운전석을 향해 짜증을 부리자, 이승형은 운전하던 틈을 타 내게 반박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대응하기 위해서 그런겁니다."

"신서울에 무슨 일이 있다고."

"무슨 일이 있을만하죠."

"그런 일 없을 거예요."

나는 창틀에 팔을 올리며 빈정거렸지만 이승형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화권."

오히려 조수석에 조용히 앉아있던 백희아가 화권을 나무랐다. 이승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계속 내 눈치를 봤다.

"......."

"앞에 보고 운전이나 바로 하세요."

나는 자꾸만 백미러로 나를 흘기는 이승형에게 면박을 줬다. 이승형은 결국 먼저 포기하고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잠잠히 있던 박라온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청화 님은 듣던 것과 달리 상당히 당차신 분 같습니다."

"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상당히 긴장하시던 것 같은데, 이렇게 화권 앞에서는 자기주장이 확고하신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

운사 박라온.

5년 후의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자기 생각을 정제된 언어 없이 표현하여 오해를 불러오는 타입의 인간이다.

얼핏 들으면 칭찬같기도 하고 얼핏 들으면 비꼬는 것 같기도 한 괴이한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놀랍게도 운사의 그 모든 말은 상대에 대한 칭찬이었다.

즉.

-너는 딴 사람들 앞에서는 쭈볏대다가 이승형 앞에서는 이렇게 활발하게 말하고 그러니?

라는 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잘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강하게 의사를 표현하시니 보기 좋습니다.

라는, 적당히 뇌내 변환을 거쳐야 하는 귀찮은 히로인이었다.

"운사. 그...."

당연히 걱정많은 백희아는 전자와 후자 사이에서 전자인줄 알고 눈치를 줬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박라온의 말에 화답했다.

"싫어하는 사람이랑 자꾸 사귀니 마니 엮는 거, 아무리 저라도 조금 그렇단 말예요."

"헙."

백희아가 숨을 삼켰다. 이승형과 나를 엮어보려고 여론을 만들고 자리를 만드는 수작은 백희아의 짓이 대부분이었다.

"저도 그쪽과 이성관계로 엮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머, 다행이네요. 푸흐흐."

조수석에 앉아있는 백희아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의 계획에서 사이좋게 지내야 할 나와 이승형이 이리도 반목을 하니, 졸지에 백희아는 우리 사이를 중재해야 할 난처한 위치에 처해있었다.

물론 그건 이승형이 너무 내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다.

'백희아가 내가 피닉스 인 걸 알면 절대로 이렇게 하지 않겠지.'

외려 나를 상대로 독대를 하든 무슨 수를 쓰든 설득하고 또 설득하려 들 것이다. 힘으로는 제압할 수 없으니.

"아 참, 집행관 님."

"예...."

"왼손 약지에 그 반지.... 혹시 결혼하셨나요?"

"예?!"

백희아가 화들짝 놀랐다. 나는 몸을 앞으로 쭉 뻗어 그의 팔을 잡아당겨 반지를 확인했다. 빼려는 흔적은 엿보였지만, 손가락을 잘라내지 않는 이상 빼지 못할 것이다.

"예쁜 반지네요."

"아, 저, 그, 그러니까...."

백희아는 당황했다. 반지의 출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나와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야되겠지만, 그건 신서울 한복판에 SS급 빌런이 다녀갔다는 걸 시인하는 꼴이나 다름 없었다.

"......."

이승형이 나를 향해 눈썹을 찌푸렸지만, 나는 일부러 그를 무시하며 백희아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부럽네요. 누군지 몰라도 집행관 님과 결혼하실 분이라니."

"이, 이건 그러니까, 그냥 끼고 다니는 걸로...."

"집행관님은 좋은 어머니가 되실 것 같아요."

그건 내가 확실하게 보장한다. 나는 백희아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며 그를 진정시켰다.

"청화 양은."

박라온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레즈비언 이십니까?"

"......."

차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오직 박라온만이 궁금하다는 듯 내게 질문을 이어나갔다.

"아,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말을 정정하겠습니다."

박라온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혹시 동성애자이십니까?"

"......."

오해하는 말하기를 하여 타인이 자주 오해를 하게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의 언어를 익히 알고있는 나로서는 그의 속내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턱.

나는 박라온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리며 게슴츠레 웃었다.

"글쎄요...?"

"......."

박라온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의 귀는 살짝 붉어져있었다.

이후 신서울 전역을 차로 돌아다녔지만, 내가 찾는 이들은 또 눈에 비치지도 않았다.

적어도 집에 들어가는 중딩 하나 쯤은 볼 줄 알았는데.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협회로 귀환했다.

* * *

이승형의 차로 신서울 전역을 돌아다니며 투어를 한 나는 신서울을 떠나기 전, 나는 히어로들을 홀로 눈앞에 두고 공식적인 문제에 대하여 논의를 해야했다.

"그럼 청화 양."

백희아는 이전까지의 당혹감을 감추고, 집행관으로서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지파룡과 물지기, 두 S급의 코어는 어떻게 활용하실 생각이십니까?"

"협회에서는 둘을 어떻게 사용하시길 바라는 건가요?"

협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나는 먼저 그들에게 질문했다. 청화라는 개인이 가진 S급 코어의 행방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처분에 대해 상당히 궁금해했다.

"우선 협회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첫번째 사용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집행관은 내게 지도를 펼쳐, 신서울과 부산을 가리켰다.

"서울에는 흑염룡이 상주, 그리고 지파룡과 물지기를 부활시켜 각각 신서울과 부산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활용하는 방안."

"......."

나는 급진적이기까지 한 백희아의 제안에 속으로 조금 놀랐다.

"만약 제가 다른 마음을 품으면 어쩌시려고요?"

"다른 마음을 품으실 생각이십니까?"

백희아는 역으로 나를 위협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백희아의 옆에 따라나온 정부 부처 관계자가 허둥댔지만, 백희아는 그 어느때보다도 굳은 얼굴로 내게 진심을 요구하고 있었다.

"......흐흐."

새삼스럽지만 다시금 백희아와 내가 현재 동료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백희아가 소중히 여기는 건 아직까지는 자신의 가문과 신서울이라는 것을.

아마도 마음같아서는 신서울에 둘 다 두고 싶어하겠지만, 그러면 너무 노골적으로 신서울을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아 연막을 친 것이리라.

"질문드릴게요."

"예."

"괴수가 진짜로 사람들을 지키는 수호신이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내 도발에 백희아가 살포시 눈을 감았다. 로서는 할 말이 아니었지만, 동시에 나는 백희아가 가진 제안의 위험성을 지적해야만 했다.

"괴수는 그저 괴수일 뿐이에요. 그걸 조종하는 사람은 오직 저 하나 뿐이고. 만약에 제가 죽어서 괴수들의 제어를 잃거나, 다른 마음을 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예를 들어서."

나는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다른 나라의 스파이에게 포섭을 당해 테러를 일으킨다거나 하면. 그 때는 어쩌시려고요."

"이 무슨...!"

정부 관계자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려 했지만, 차갑게 굳은 백희아가 손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백희아는 협회의 대표이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 상당한 뒷배경을 가진 거물이었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청화 양 같은 인재를 국외로 유출한다는 건 이 나라의 보배를 잃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어요?"

나는 의자에 몸을 묻으며 여유를 부렸다.

"저를 무슨 방법으로 설득하시려고요? 애국심이라도 강요하시려나? 서울에 살던 주민들 학살하려 들었는데?"

"저, 저런 무례한!"

"나가세요."

백희아는 제 옆에 앉은 이를 차갑게 쫓아냈다.

"하지만 집행관!"

"협상에 방해가 되니, 나가서 머리를 식히세요. 화 좀 삭히시고. 아니면...."

백희아가 옷깃을 손을 잡고 살짝 들어올렸다.

"옷 벗겨드려요?"

"......큭!"

남자는 입술을 깨물며 방에서 빠져나갔다. 졸지에 나는 백희아와 이 넓은 방에서 독대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편안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 심하게 쫓아내신 거 아녜요?"

"청화 님이 편해지실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해야지요."

"음. 그러면."

나는 카메라가 가득한 회의장 전체를 가리켰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건 좀 그렇고.... 제 방으로 가셔서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카메라와 녹음기가 돌아가는 곳에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을 가리켰다.

"......후."

백희아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눈에 훤히 보여 안쓰러웠다.

"알겠습니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

백희아가 앞장 서서 회의실 문을 열었다. 밖에는 이미 수많은 관계자들과 히어로들, 그리고 방금 쫓겨난 정부 부처의 관계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 무슨-"

"청화 님이 상당히 불편해하셔서 자리를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관계자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누구에게 향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백희아의 안내에 따라 내 개인실-협회에서 제공한 VIP 전용의 방에 들어왔다.

철컥.

나는 문을 잠궜다.

"벌써부터 방을 어떻게 사용하시는 지 잘 아시네요."

"하루면 충분하죠. 그리고 여기만큼 방음이 철저한 곳이 없잖아요?"

이 방은 이제 밖에서는 절대로 열지 못하는 밀실이 되었고, 오직 방의 주인으로 등록된 나만이 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옆의 빈 자리를 두드렸다.

"자. 그러면 이쪽으로 와요. 둘이서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자고요."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백희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한 얼굴로 내 옆에 붙어앉았다. 얼굴은 붉어질대로 붉어져 있고,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긴장한 티를 역력히 내고 있었다.

"저, 저를 바쳐서라도 당신을 설득할 수 있다면 뭐든지...!"

[그럼 그렇게 하지.]

나는 백희아의 옆에서 괴인형으로 몸을 바꾸었다. 백희아는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기이한 상황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피닉-"

[너를 바친다고, 네 스스로 얘기했다. 분명히.]

나는 일어서려던 백희아의 몸을 덮쳐, 침대에 강제로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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